개청 60주년 기념
(농)며드는
(시) 공모전 수상작

정리 ㅣ 편집부
자료 ㅣ 농촌진흥청 개청 60주년 기념사업 추진기획단
농촌진흥청은 개청 60주년을 기념해 지난 1월 24일부터 2월 11일까지
농촌진흥기관 임직원을 대상으로 「(농)며드는 (시) 공모전」을 개최했다.
농촌진흥청 60년 역사 동안 일상을 기적으로 바꾼 수많은 이야기들이 담긴
이번 시공모전의 23개 수상작 중 4개 작품을 대표로 소개한다.

장원
농사꾼과 하느님
유수경
국립식량과학원 기술지원과
벼농사는 수평을 잡는 일이다.
묵은해를 뒤집어 새해와 섞는 일
땅을 고르고 써레로 물밑을 바로잡는 일
모판의 볍씨가 들쭉날쭉하지 않고
고르게 올라오기를 바라는 일
건너편의 이앙기 소리에 연연하지 않고
내 못자리를 살펴 때를 기다리는
마음자리 수평을 잡는 일이다.
벼농사는 물을 다스리는 일이다.
위쪽 논부터 차곡차곡 채워지는 못물이
아래쪽 내 논에 들어오길 조급해 말고 기다리는 일
태풍과 장마에 넘쳐난 흙탕물을 내보내거나
바닥 갈라진 가뭄 속에 논물 다시 들일 때
이웃의 전답까지 두루 살펴 물꼬를 트고 막는
온 마을의 평화를 다스리는 일이다.
도시의 건물들이 수직으로 치솟을 때
푸르디푸른 평정의 넓이를 늘려나가고
경쟁에 밀려난 이들의 메인 가슴엔
의뭉스럽게 제 물길을 나눌 줄도 아는
세상 이치에 능한 농사꾼도
겨울만은 일손을 내려놓는데
그것까지 다 아는 누군가가
가끔씩,
소금 같은 눈을 뿌려 세상의 밑간을 마저 맞춘다.

차상
농부의 시간
노정호
국립원예특작과학원 기술지원과
그를 다시 만날 땐 성인이었다.
억센 어깨에 드리워졌던 젊음은 시나브로 헤어지고,
지난 무더운 여름날 어디에 처박혀 천수무강 탑골을
쌓았는지 영감 태가 난다.
티 없이 맑던 얼굴도 한낮 햇빛에 그을려 원래의 색을
헤아리기 힘들다. 열정에 사로잡혔던 불그레한 볼은
망각의 색으로 변해가고 뭉쳐 바위를 쪼갤 듯 힘차게
내 쥔 주먹도 힘없이 떨군 볏자락으로 변했다.
바람처럼 사라져, 구름처럼 떠돌다, 이젠 더 이상
발 디딜 곳 없는 양 다시 내 앞을 방문한다.
잊혀지기를 학수고대하며 정한수 한 사발에 치성드려도
억겁의 고통 속에서 편안함을 찾은 듯,
이젠 성스럽기까지 한 눈빛을 하고 또다시 내 앞에 선다.
펑퍼짐한 석반 위에 가부좌를 틀고, 목가의 새소리에도
먼눈 시선 고정한 채 아무런 반응 없이 그의 몸을
할퀴는 들짐승에게 제 몸 그대로 보시한다.
그는 메아리 없는 우뚝 선 태산 그대로 앉아 있다.
그는 바로 농부의 시간이었다.

차상
물었더니
이유리
농촌진흥청 고객지원담당관실
한 톨 씨앗이 어디서 왔는지 물었더니
작고 조그마한 그것은
우주, 시간 그 너머
움켰다 폈다 온누리를 일궈내는
영원한 생명입니다.
한 끼의 음식은 어디서 왔냐 물었더니
밥숟가락에 꼴깍 넘어간
바람 타고, 햇살에 익어가
부르터진 손등을 품은
어머니의 정성입니다.
자연은 어디서 왔을까 물었더니
마음 닿는 곳마다
싹 틔우고 꽃피워내
제 발자취를 남기는
그대로의 나였습니다.
삶이란 어디서 왔을까 물었더니
굽이굽이 젖어가는 나이테의
아버지의 흘러내린 땀을 닦아주는
이순 넘긴 친구
그리고 나의 터전이었습니다.

차상
농비어천가
김도현
국립농업과학원 농촌환경자원과
강 상류 어스름 위 착지하는 철새들의 날갯짓 끝에
새벽녘의 깃털 방패 얻어맞은 채 미소 짓고 있는 평야
기지개를 남긴다 머리맡에서 환하게 울리는 간두령
지평의 눈가에 주름이 잡힌다
오, 다들 와서 풍요로운 곡조를 향해 열어주오 가슴에 큰 이중창을!
벼꽃 한 아름 안겨주고 싶은 듯
허리 편 하늘 어깨로 땀 닦으려 하는 구레나룻에
손수건 밑단을 건네는 미풍의 종아리 가늠하면서
페달을 구르는 물레방앗간 물길을 따라가네
유서 깊은 자전거처럼 군데군데 벗겨진 그늘코
눌러쓴 밀짚모자의 바큇살 자신의 윤회를 알리며
강 하구의 귓바퀴를 밟는다
느리게 쏟아지는 오후 시비되는 별똥들의 윤작법
오, 그대들 너그럽지 않은 미간이라면
이제라도 거둬들임이 어떠오
우리네 순금 작물들의 현전이 놀랍지 않소?
저 자신이 누구인 줄도 모른 채 울고 있는
전통지식의 순진무구 잠깐 서러웠던 수고 아름다운 그 필기체!
저 바다에 휘갈겨진 양 보이는 태양의 노숙한 서명을 보시게
파도를 말아 쥐는 주먹 끊임없는 만경의 기상 보람찬 겨드랑이
펼쳐드는 귀갓길 난간 없는 달의 진흙 테두리 어느 시절을
비손하고 있는 오밤중 이마께 날아가는 새 이윽고,
탄생하는 먼동의 학술적인 배냇저고리
밥 짓는 부엌 살 냄새 옹알거리는 농가의 등불 입술 사이
젖을 물리는 산자락 아랫목을 훔치다
풀어헤친 옷고름 앞섶에서 조용히 하품하는 아, 축복을
그만 내가 알아버렸네-빛나는 어부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