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업 과학자들의 서재

우리는 왜, 어떻게 맛과 향을 느낄까?
시간이 만드는 숙성의 풍미를 찾아서

농촌진흥청 국립축산과학원

조수현 농업연구관

맛이란 무엇일까? 입으로 느끼는 것만을 맛이라고 정의한다면 단맛, 짠맛, 신맛, 쓴맛, 감칠맛을 나눌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수만 가지 요리를 통해 다양한 맛을 느낀다. 맛을 결정하는 건 단순히 미각을 넘어 감각의 총합이기 때문이다. 도서 『Flavor, 맛이란 무엇인가』에는 바로 이러한 맛의 과학적 원리가 담겨 있다. 지난 25년 간 숙성을 통해 한우의 풍미를 이끌어내는 연구를 이어온 조수현 농업연구관과 함께 ‘맛’에 숨겨진 비밀을 파헤쳐 본다.

맛을 찾아 떠난 25년 숙성의 길

지난해 농촌진흥청은 농업과학기술 우수성과 공유대회를 열고 15건의 우수성과를 국민과 함께 공유했다. 국립축산과학원에서도 맛과 풍미를 높여주는 한우 숙성 기술을 공유하며 큰 호응을 얻었다. 그리고 그 성과의 중심에는 오랜 시간 동안 한우 숙성의 외길을 걸어온 조수현 농업연구관이 있었다

“1999년 연구사로 첫 발령을 받은 이래 국립축산과학원 축산물이용과에 몸담아 왔습니다. 어느덧 25년이란 긴 시간이 흘렀네요. 저는 한우 저지방 부위의 맛과 풍미를 높이는 숙성 기술을 지속적으로 연구개발해 왔습니다. ‘마블링이 촘촘할수록 최고’라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등심, 안심, 갈비, 채끝 등 구이용 부위에 수요가 편중된 한우는 비싸서 사 먹기 힘든 식재료가 되어버렸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지방 부위는 질기고 맛이 없다는 편견 때문에 외면받아 왔는데요. 한우 한 마리를 도축했을 때 저지방 부위의 비중이 약 48%나 된다는 걸 아시나요? 소비자가 저렴하게 접근할 수 있는 비인기 부위의 소비를 촉진하고, 농가 소득 확산에 도움을 주고자 맛과 풍미를 이끌어내는 ‘숙성’의 힘을 빌리게 됐습니다.”

조수현 농업연구관은 숙성 기술에 대한 연구개발을 거듭할수록 맛의 원리에 대해 고민하게 됐다. 사람들이 왜, 어떻게 맛을 느끼는지 맛에 숨겨진 과학적 원리를 찾아가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만난 책이 바로 최낙언 박사가 지은 『Flavor, 맛이란 무엇인가』다.

“저자는 ‘식재료란 식품 이전에 생명이고, 생명의 구성 물질은 대부분 무미, 무취, 무색의 고분자 물질’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또, ‘맛이란 단지 향일 뿐’이라고 주장하고 있죠. 우리가 수만 가지 요리에서 다양한 맛을 느낄 수 있는 건 입 뒤로 코와 연결된 작은 통로를 통해 향기 물질이 휘발하면서 느껴지는 극소량의 향때문이라고 해요. 실제로 코를 막고 먹으면 맛은 희미해지고 불완전해집니다. 하지만 우리가 말하는 맛은 ‘맛(Taste)’과 ‘향(Flavor)’의 합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맛은 미각, 후각, 촉각, 온도 감각, 통각, 내장 감각(영양), 감정, 분위기, 취향, 심상과 문화까지 모든 감각의 총합’이라고 저자는 말합니다. 결국 맛은 뇌와 감각의 인식에 따라 결정된다는 것이죠.”

- 맛은 향이 지배하고 향은 뇌가 지배한다 -

조수현 농업연구관이 이 책을 만난 건 201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의 눈길을 끈 것은 표지 상단의 강렬한 카피였다.

“댓잎을 주식으로 먹는 판다는 원래 다른 곰이나 동물들과 마찬가지로 초식과 육식을 같이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약 400만 년 전 감칠맛 수용체가 고장나면서 고기 맛을 모르게 됐고, 그 결과 지금까지 대나무만 먹고 살게 됐죠. 저자는 ‘감칠맛은 단백질을 찾는 것’이라고 말해요. 숙성을 통해 분자 크기를 변화시켜 육류의 자극취를 줄이고 풍미를 이끌어낼 수 있다고도 말하죠. 또, 녹아야 맛을 느낄 수 있고, 씹어야 맛이 난다고 주장합니다. 저절로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죠.”

데이터로 열어갈 한우 산업의 미래

‘녹아야 맛을 느낄 수 있고, 씹어야 맛이 난다’는 저자의 말에서, 조수현 농업연구관은 한우 저지방 부위를 맛있게 즐기기 위해서는 부드러운 질감과 풍미를 살리는 최적의 숙성 기술이 필요함을 다시 한번 절감했다.

“갓 도축한 소고기는 가장 신선하지만 가장 질깁니다. 사후강직이라는 근육 수축으로 인해 매우 질겨지다가 시간이 경과할수록 근육들이 이완되면서 연해지죠. 숙성이 중요한 이유입니다. 저지방 부위의 냉장육을 구입해 진공 포장을 한 후 2℃의 일정한 온도로 맞춰 김치냉장고에 3~4주간 보관해보세요. 상상할 수 없었던 진한 감칠맛과 연한 육질을 경험할 수 있을 거예요.”

숙성 기술 연구개발을 위해서라면 조수현 농업연구관은 몸을 아끼지 않았다. 연구실을 벗어나 전국 각지를 돌며 소비자 반응 평가를 실시해 데이터를 모은 경험도 있었다. 무려 2년이 걸렸다.

“2006년 습식 숙성 기술을 연구할 당시 4,600명의 소비자를 대상으로 반응 평가를 실시한 적이 있는데요. 한우 저지방 부위별로 숙성 기간과 요리법을 달리해 소비자들의 반응을 조사했습니다. 전국 방방곡곡을 직접 누비며 평가를 진행하고 데이터를 수집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죠. 데이터를 시스템화하는 데까지 걸린 시간을 합치면 총 6년이 소요됐어요. 힘든 여정이었지만 당시 모은 데이터는 최적의 숙성 기술을 연구하는 초석이 됐습니다.”

최근 4차산업혁명에서 가장 주목받고 있는 기술 중 하나가 바로 빅데이터다. 조수현 농업연구관은 그동안 축적한 기술 데이터가 미래 스마트 홈에 새로운 맞춤형 기능을 제공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하고 있다. 실제로 습식 숙성 기술을 접목한 ‘한우고기 맛 예측(연도관리) 시스템’도 개발했다. 부위별 육질 특성을 고려해 적정 숙성 기간을 제시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한우는 5가지 등급으로 나뉘고, 마블링 수준에 따라서도 1~9번까지 분류됩니다. 암소, 거세소, 숫소냐에 따라서도 평가가 다른데요. 미래에는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적정 숙성 기간을 자동으로 추천해주는 냉장고가 등장하지 않을까요? 이력번호를 입력하면 고민할 필요 없이 알아서 숙성을 시작하는 거죠. 전문 지식 없이도 최적의 숙성 한우를 먹을 수 있으니 저지방 부위 소비도 크게 확대될 거라 기대해 봅니다.”

조수현 농업연구관은 올해부터 퇴직 준비 교육 기간을 갖는다. 2025년이 되면 국립축산과학원을 떠나 새로운 도전을 준비할 계획이다.

“국립축산과학원을 떠나지만 앞으로도 한우의 가치를 높이고 산업 성장에 기여할 수 있도록 다양한 활동을 펼칠 계획입니다. 산업체, 협회 등을 통해 연구를 이어 나가는 한편, 도움이 필요한 현장이 있다면 어디든 찾아가 제가 갖고 있는 지식을 나누고 싶어요. 퇴직을 준비하는 1년 동안 자기계발을 통해 스스로를 보강할 계획도 세우고 있어요. 최근 동영상 편집에도 많은 관심을 갖게 됐는데요. 창작자로서 콘텐츠를 통해 한우 숙성 기술을 전한다면 보다 친근감 있게 다가갈 수 있지 않을까요?”

앞으로 한우 숙성 전도사로서 저지방 부위의 숨은 가치를 알려 나갈 것을 다짐하는 조수현 농업연구관. 그가 앞으로 펼칠 행보를 기대하며 응원의 박수를 보낸다.

조수현 농업연구관 추천 도서
『Flavor, 맛이란 무엇인가』
최낙언 지음예문당

가장 일상적인 음식의 맛과 향에 대한 이야기로 맛에 관한 진실을 말해준다. 우리가 왜, 어떻게 맛과 향을 느끼고 있는지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다. 저자는 이 책에서 사실 맛은 단맛, 짠맛, 쓴맛, 신맛, 감칠맛이 있을 뿐이며 우리가 알고 있는 다양한 맛은 사실 향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입으로만 맛을 느끼는 게 아니라 내장 기관의 만족도 중요하지만 미각, 후각, 촉각 등 오감에 내장 감각을 합해도 맛의 절반밖에 설명하지 못한다고 이야기한다. 나머지는 뇌의 작용이며 그것이 맛에 얼마나 많은 역할을 하는지 일깨워준다.

먼저 온 미래, 우리 농업 농촌. 농촌진흥청에는 농업과 농촌을 연구하며 기술을 보급하는 농업 과학자, 농업 전문가들이 있습니다. 농업을 과학으로 이끄는 선구자들입니다. 농업 과학자는 어떤 책을 읽고, 연구에 활용할까요? ‘2023 농업과학기술 우수성과 공유대회’를 통해 선정한 농업 과학자들의 서재를 들여다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