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집사의 세계

봄을 닮은 구근식물 키우기

수선화, 튤립, 히아신스, 라넌큘러스 등 봄이 되면 꽃을 피우는 식물 대부분은 알뿌리가 달린 구근식물이다. 양파처럼 생긴 알뿌리만 보아서는 어떤 꽃을 피울지 짐작하기 힘들다. 봄과 마주해야만 비로소 정체가 드러난다. 올봄 구근식물을 키우며 작은 설렘을 더해보자.

구근식물이란?

구근(球根, bulbs)식물이란 식물체의 잎, 줄기 또는 뿌리 일부가 저장기관으로 변형되어 비대해진 것으로, 생육에 필요한 영양분을 저장했기 때문에 일반적인 식물과 달리 통통한 덩어리 부위를 가진다. 구근에 양분이 축적되어 있으므로 건조, 저온, 고온과 같이 생육에 불리한 환경에서도 장기간 견딘다. 구근이 어느 정도 성장하고 온도가 내려가는 겨울이 되면, 구근식물은 잎을 모두 떨어뜨리고 지상부가 시든다. 이것은 생존을 위해 생장을 멈추고 휴면하는 것인데, 이듬해 봄이 되면 구근에 저장된 양분을 사용해 다시 새잎을 낸다.

다양한 구근식물의 종류

구근류는 비대해진 기관의 부위에 따라 구분할 수 있다. 잎 일부가 저장기관으로 변형되어 비대한 것은 인경(비늘줄기), 줄기가 단축되고 비대하여 구형 또는 편원형으로 발달한 것은 구경(알줄기), 줄기의 일부가 불규칙한 모양으로 비대한 것은 괴경(덩이줄기), 뿌리 자체가 저장기관이 된 것은 괴근(덩이뿌리), 땅속줄기, 즉 땅속줄기의 일부가 비대한 것은 근경(뿌리줄기)이라고 한다. 튤립과 백합, 무스카리 등은 인경에 속하며, 글라디올러스와 프리지어, 익시아 등은 구경에 속한다. 시클라멘, 칼라디움, 구근베고니아 등은 괴경에 속하며, 달리아, 작약, 라넌큘러스 등은 괴근에 속한다. 그리고 국화, 칸나, 아이리스 등은 근경에 속한다. 구근식물에는 주로 꽃을 감상하는 것이 많지만, 잎을 감상하는 식물인 알로카시아와 아프리카 식물 알부카, 스테파니아 등도 구근식물 중 하나다.

구근을 심는 알맞은 시기

구근식물은 심는 시기에 따라서 봄에 심고 가을에 꽃을 피우는 춘식구근(春植球根), 가을에 심고 이듬해 봄에 꽃을 피우는 추식구근(秋植球根)으로 나뉜다. 봄에 꽃을 피우는 식물에는 튤립, 히아신스, 수선화 등이 있는데, 이들은 가을에 구근을 심고 겨울에 저온에 의해 춘화 처리가 된 후 기온이 올라가는 봄에 꽃을 피운다. 반면 가을에 꽃을 피우는 달리아, 칸나, 글라디올러스 등은 봄에 구근을 심는다.

구근을 심는 알맞은 방법

재배하는 방법에 따라 저온에 견디는 힘이 강해 실외의 노지에서도 잘 자라는 노지 구근, 온도가 높은 온실에서만 재배해야 하는 온실 구근으로 나뉜다. 노지 구근에는 튤립, 수선화, 칸나 등이 있으며, 온실 구근에는 시클라멘, 칼라디움, 아네모네 등이 있다.

노지 구근 중 겨울철 추위에 약해 월동이 불가능한 것은 지상부가 완전히 시들면 구근을 파내어 표면을 건조한 후 통풍이 잘되는 그늘에서 저장하다가 알맞은 시기에 다시 심는다. 구근을 심을 때는 뿌리가 아래를 향하고 잎이 날 눈이 위를 향하도록 심어야 하며, 구근 전체가 충분히 땅에 묻히도록 한다. 실내에서 화분에 기를 경우에는 저온에 노출되지 않으므로 구근을 파내지 않아도 된다. 그러나 저온 처리가 있어야 개화하는 추식구근은 겨울 동안 베란다 창가에 두어 7~10℃ 저온에 4주 이상 노출한다.

구근식물을 기르는 방법

구근식물은 지하부에 양분을 저장하고 있기 때문에 과한 습기로 구근이 썩을 수 있다. 따라서 토양은 배수가 잘되도록 마사토나 펄라이트를 섞어 식재하고, 통풍이 잘되는 장소를 선정해야 한다. 알부카나 스테파니아같이 구근이 흙 위로 나오게 심는 경우, 구근을 눌렀을 때 말랑말랑하다면 물을 줄 시기이다. 구근이 흙 속에 묻혀 있는 경우, 지상부가 축 처지는 시기와 흙이 마르는 기간을 고려하여 물을 준다. 대개 화려한 꽃이 피는 구근식물은 햇빛을 많이 받아야 하므로 양지바른 곳에 배치한다. 실내에서 기를 때는 구근을 캘 필요가 적지만, 양분 보충을 위해 거름을 넣은 새 흙으로 분갈이를 해주는 것이 좋다. 그러나 식물이 자라는 동안에는 구근에 손상이 갈 수 있으므로 분갈이를 하지 않는 것이 좋다.

구근식물 번식하기

식물이 번식하는 방법은 종자를 퍼뜨리는 종자 번식과 영양기관의 일부를 떼어내어 독립적인 성체로 만드는 영양 번식으로 나뉜다. 구근식물은 화려하게 피는 꽃을 수정하여 종자를 얻고 파종하여 새싹을 틔울 수도 있지만, 양분을 저장하고 있는 기관이나 자구(bulbil)를 분리하여 번식시킬 수 있다. 본래 구근(모구) 주위에 자연적으로 생성된 자구를 분리하여 심음으로써 새로운 개체를 생성할 수 있으며, 인편을 떼거나 괴경을 잘라 심음으로써 개체 수를 늘릴 수도 있다. 모구를 분리할 때는 새잎이 나는 눈이 붙어 있어야 하며, 이때 늘어난 새 개체들은 모구와 동일한 형질을 가진, 이른바 복제된 식물이다. 이는 식물이 단세포 또는 식물 조직 일부로부터 완전한 식물체를 재생하는 능력 즉, 전형성능(totipotency)을 가졌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분구에 의한 영양 번식은 종자 번식보다 생장과 개화에 걸리는 시간이 짧다는 장점이 있다.

구근은 씨앗과 유사하다. 씨앗은 꽃의 수정으로부터 결실을 본 산물로, 새로운 식물의 첫발인 떡잎을 만들기 위해 영양분을 비축하고 있다. 구근도 마찬가지로 기존 식물의 흔적으로서 새로운 시작을 위해 양분을 비축하고 있다. 씨앗을 심는 것과 구근을 심는 것은 새로운 시작을 위한 기대를 품는 것과 같다. 기온이 올라가고 햇볕이 따스해지면서 서서히 지난해에 심은 구근이 꽃으로 피어나고 있다. 오늘은 미래에 피어날 아름다움을 위해 춘식구근을 심어보는 것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