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시사철 다채로운 주전부리가 넘치는 요즘이지만, 여전히 동짓날 긴긴 겨울 밤이 되면 달큰하고 구수한 팥죽을 떠올리는 이들이 많다. 팥고물을 잔뜩 올린 시루떡도 겨울 제철 음식이다. 팥은 우리 식문화와 매우 가까이 있지만, 그 종류가 무수히 많다는 걸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많고 많은 토종 팥 중 그 맛이 으뜸이라는 재팥에 대해 알아본다.

팥죽은 겨울철이 되면 생각나는 별미 음식 중 하나다. 옛날에는 동짓날이 되면 팥죽 냄새가 집집마다 풍겨오고, ‘동지팥죽을 먹어야 진짜 한 살을 더 먹는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사랑받던 음식이었다. 여전히 사시사철 시중에서 쉽게 찾아 먹을 수 있다는 사실은 그 맛에 매료된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반증한다. 아쉬운 점은 팥죽 재료로 붉은팥이 주로 사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더 맛있는 토종 팥이 있지만,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바로 ‘재팥’이다.
재팥은 이름 그대로 재색이나 쥐색에 희색 띠가 중심에 있는 생김새로 언뜻 보면 쥐눈이콩과 비슷하다. 가래팥, 거두, 검은팥이라고도 한다. 530년 전 조선 후기 농서인 금양잡록(강희맹, 1492)에도 토종 팥의 한 종류로 기록돼 있을 정도로 역사와 유래가 깊다. 재팥 중 ‘중원팥’ 품종은 충북 토종팥 중에서 장려품종이 된 것으로 유명하다. 개골팥, 흰팥, 노란팥, 연두팥, 쌀알처럼 기다란 이팥, 녹두팥 등 종류가 매우 다양하다. 우리 땅에는 50여 가지가 넘는 토종 팥이 자라고 있는데, 맛으로는 재팥을 으뜸으로 치는 곳이 많다.
재팥은 붉은팥보다 단맛이 강하고 구수한 데다가 떫은 맛도 적다. 껍질이 얇아 식감도 좋다. 당연히 재팥으로 만든 팥죽은 붉은팥보다 구수하고 은은한 단맛이 난다. 예전에는 인절미, 수수떡, 백무리 등 떡을 해 먹을 때 재팥으로 고물을 내 묻혀 먹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는 잊혀져 찾는 사람이 적어진 탓에 시장에서 홀대를 당하고 있다. 붉은팥이 만 원이라면, 재팥은 6천 원 남짓 밖에 안 한다. 그래도 말리지 않은 풋팥은 재팥이 더 비싸다. 푸를 때 밥에 넣어 지으면 고소한 동부콩 맛이 나 밥맛을 더 좋게 한다. 맛만 좋은가? 영양도 풍부하다. 심혈관 건강에 좋은 비타민 B1과 해독 작용을 하는 사포닌이 풍부하고, 이뇨 작용이 탁월하다.
동짓날은 이미 오래 전에 지났지만, 여전히 긴긴 겨울이 계속되고 있다. 재팥으로 쑨 팥죽 한 그릇으로 몸과 마음을 따뜻하게 달래 보는 건 어떨까? 설탕이냐, 소금이냐를 고민할 필요도 없다. 본연의 맛 그대로만으로 구수하고 달큰하다. 그것이 바로 투박하지만 건강한 토종 씨앗의 맛이다.
신품종 新品種
- 홍미인농촌진흥청은 2020년 ‘홍미인’ 팥 신품종을 개발하였다. 홍미인은 밝은 붉은색이며, 통팥용으로 가공적성이 좋아 떡 만들기에 알맞은 품종이다. 홍미인 성숙기는 10월로 알맹이가 큰 품종 중에서는 성숙기가 빠르며 경장 58cm, 백립중 20.5g의 생육 특성이 있다. 종자는 국립식량과학원 기술지원과에서 소량 보급하는데, 해마다 1월 상순에서 2월 상순까지 정기 분양을 진행한다.
- 홍다겉껍질이 얇고 밝은 적색을 띠며 향이 좋고 식감이 부드러워 앙금용 또는 팥죽용으로 적합하다.
- 아라리어두운 적색을 뜨며 맛과 향이 우수하다. 앙금으로 만들었을 때 입자가 곱고 색과 향이 뛰어나 호두과자, 찐빵에 많이 이용되고 있으며, 전체 재배면적의 50% 이상을 차지할 만큼 많은 인기를 얻고 있다.
- 흰나래겉껍질이 연한 노란색으로 흰색 앙금을 만들 수 있다. ‘검구슬’은 겉껍질이 검은색이고 폴리페놀, 플라보노이드 등 항산화 활성 성분 함량이 높아 ‘아라리’ 등 다른 품종에 비해 항산화 활성이 우수하며 단맛이 강해 주로 팥 칼국수용으로 쓰인다.
- 연두껍질이 연두색으로 팥순에 아주키사포닌 II가 많이 들어있어 체지방 감소에 도움을 주는 건강 기능성 식품으로 활용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