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움을 따라가기 바쁜 세상에서도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 역사와 고전이 주는 지혜와 깨달음이다. 그것들은 때때로 우리가 겪는 인생의 문제들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한다. 김국환 농업연구사와 함께 오랜 세월을 견딘 문화유산 속에 숨겨진 이야기로 머릿속을 환기해 보자.
최첨단에서 미래 농업을 이끌다
국립농업과학원은 우리나라 농업 과학 기반 기술 개발과 실용화, 산업화를 촉진하는 중추적인 연구기관이다. 김국환 농업연구사는 2010년부터 국립농업과학원에서 박사후연구원으로 일하다가, 2015년 농업연구사로 정식 임용되었다. 현재 스마트팜 개발과에서 자율주행 기술을 접목한 첨단 농기계와 농업 로봇 연구를 수행하며 우리 농업을 최첨단 기술로 이끌고 있다.
“현재 농촌은 인구 감소와 고령화, 여성화로 인해 인력난 등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앞으로 첨단 농기계와 농업 로봇은 농업인을 대신해 고된 농작업을 수행하는 효자손으로써 농촌 문제를 해결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입니다. 일손이 모자라 농업을 포기하는 농업인이 없는 농촌, 하루 종일 허리 숙이고 무릎 굽힐 필요 없이 효율적으로 일할 수 있는 농업의 미래를 만들어 나가고 싶습니다.”
김국환 농업연구사는 2020년 과수원에서 무인으로 농약을 살포할 수 있는 스마트 로봇 방제기를 개발해 주목받았다. 스마트 로봇 방제기는 고정밀 위성항법장치(RTK-GNSS)를 활용하여 사전에 설정한 경로를 따라 이동하면서 LiDAR라는 센서를 통해 과수를 인식하여 과수가 있는 곳에만 농약을 살포할 수 있다. 무인 방제가 가능할 뿐만 아니라 농업인의 농약 흡입이나 농기계 전복 사고 등을 예방할 수 있는 장점을 갖고 있다. 과수가 있는 곳에만 농약을 살포해 농약 살포량 절감 효과도 있다. 국내 사과 과수원 무인 방제 실험 결과 30%가량 농약을 절감할 수 있었다.
“스마트 로봇 방제기 외에 기존 농기계에 장착해 직진 주행을 도와주는 조향 장치를 국산화하기도 했는데요. 설정 경로에 따라 작은 오차 범위 내에 주행이 가능하여 농작업 편이성을 도와줄 뿐만 아니라, 파종할 때도 사람이 직접 운전하면서 작업하는 것보다 더 많은 작물을 심을 수 있어 농가 수익 향상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농가에서 제가 개발한 농기계와 농업 로봇을 직접 사용하고 ‘많은 도움이 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 큰 보람을 느낍니다.”
세상에 의미 없이 만들어지는 것은 없다
농업 로봇 기술 적용은 일반 산업 로봇과 많은 차이가 있다. 무논 환경, 과수원 등 불규칙한 노면, 고온 다습한 작업 환경 등 로봇을 적용하기에 앞서 다양한 변수에 부딪힐 때가 많다. 하지만 김국환 농업연구사는 ‘넘어서야 할 난관이 클수록 성취감도 크다’는 생각으로 도전을 이어나가고 있다. 그리고 쉬 해결하기 힘든 난제를 만날 때면 연구실이 아닌 다른 곳에서 답을 찾는다. 바로 ‘책’이다.
“평소 역사 관련 서적이나 소설을 주로 읽고 있습니다. 기계 설계나 프로그래밍 같은 일을 많이 하기 때문에 머릿속에 과부하가 걸릴 때는 전혀 다른 분야의 책을 읽는 것이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또, 역사와 고전을 읽다 보면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가 넓어져 고민하고 있던 문제에 좀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게 됩니다.”
그렇다면 김국환 농업연구사가 꼽은 인생 책은 무엇일까? 바로 유홍준 교수가 쓴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시리즈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는 전국 각지에 분포한 우리 문화유산에 대한 유래와 그 안에 있는 세세한 문양, 현판, 조각, 건축물 구조, 벽화 등 사소한 것들까지 총망라해 의미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역사의 흐름 속에서 문화유산들이 어떤 의도를 갖고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어떤 의미를 담고 그 자리를 지켜 왔는지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하나하나 의미를 두고 완성된 문화유산들이 농기계와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선조들의 고민과 치밀함으로 완성한 문화유산들처럼 제가 만든 농기계와 로봇도 치열한 고민으로 이룬 결과물이니까요.”
김국환 농업연구사는 시리즈 중 제6권에서 다룬 경복궁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건물 형태, 이름, 궁 굴뚝, 심지어 바닥 모양까지 어느 것 하나 의미가 없는 것들이 없단다.
“대부분 사람은 화려한 궁궐 모습에 감탄하지만, 유홍준 교수는 근정전 앞에 깔린 박석 마당이 가장 아름답다고 이야기했어요. 비 오는 날 박석 마당을 보라고요. 빗물이 박석 이음새를 따라 제 길을 찾아가는 그 동선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모른다고 말이에요. 이 바닥은 박석 형태로 배치해 햇빛의 난반사까지 해결해 준다고 해요.”
많은 사람이 어떤 일이나 사람, 사물을 대할 때 겉으로 보이는 것만 보고 판단하곤 한다. 하지만 우리가 인지하는 것만이 전부는 아니다. 그 참모습은 우리가 보지 못하는 곳에 있을 수 있으며, 사소한 것 하나에도 의미가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연구할 때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우리가 개발하고 연구하는 것들에 있어 그 목적만을 달성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도 좋지만, 사소한 것까지 감안해 그 참모습을 관찰하고 의미를 분석해 연구한다면 더 큰 성과를 얻을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미래 농업을 향한 여정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는 제목 그대로 많은 독자를 답사길로 이끌었다. 책이 출간된 후 전국 각지의 문화유산을 찾는 발길이 이어졌다고 한다. 김국환 농업연구사도 영주 부석사와 고창 선흥사를 찾아간 적이 있다.
“아이와 함께 문화유산을 찾아 하나하나 숨은 의미를 설명해 주었어요. 아버지로서 뿌듯함을 느꼈습니다. 기회가 된다면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를 읽고 관심 있는 문화유산을 직접 찾아가 보길 권합니다. 언젠가 한번 가 보았던 여행지처럼 친근함을 느낄 수 있을 거예요.”
올 한 해 김국환 농업연구사는 무인 농작업 로봇을 현장에 잘 보급하고 확산하는 데 집중할 계획이다. 첨단 농업 기술 개발을 위해 임용된 신진 연구자들과 활발한 소통을 통한 협업 시너지도 기대하고 있다.
“앞으로 타 산업이나 해외 선진 기술 등 이미 적용되거나 연구되고 있는 기술을 우리 농업에 빠르게 적용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이음새 하나에도 의미를 담고 있는 문화유산처럼 더 정밀하고 연결성 있는 첨단 농기계와 농업 로봇으로 미래 농업을 앞당길 것입니다.”
‘문화유산’이란 후대에 계승·상속될 만한 가치를 지닌 전대의 문화적 소산을 의미한다. 4차산업혁명과 함께 농업이 빠르게 진화하고 있는 가운데, 김국환 농업연구사는 미래 농업 혁신의 중심으로 평가받을 문화유산을 남길 수 있을까? 먼 미래 『나의 농업 문화유산답사기』에 등장할지 모를 앞으로의 발자취가 궁금해진다.
미술평론가이자 미술사학자인 유홍준 교수가 쓴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는 1993년 5월 제1권 ‘남도답사 일번지’를 시작으로 현재까지 총 12권이 발간되었다. ‘문화유산 답사’라는 말조차 생소했던 시절, 순식간에 100만 권이 넘게 팔린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는 전 국토를 박물관으로 만들며 답사 붐을 이끌었다.
문화유산과 예술을 해석하는 유홍준 교수의 탁월한 안목, 문화적 향취와 역사를 아우르는 풍부한 지식, 오랜 경륜으로 전하는 편안한 해설, 사람 냄새 나는 에피소드까지. 한국 인문서를 대표하는 독보적인 시리즈로 인정받는 만큼 역사, 예술, 문화를 아우르는 방대한 정보를 쉽게 풀어냈다.
유홍준 교수는 ‘전 국토가 박물관이다’라는 기치를 내걸고 문화유산이 품고 있는 내재적 가치는 그냥 다가오는 것이 아니라 ‘아는 만큼 보인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조선시대 한 문인의 말을 이끌어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면 보이나니 그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라며 우리 문화유산에 대한 사랑을 호소했다.
유홍준 교수는 ‘한국 미술사의 전도사로서 내 신앙은 한국 미술사이고,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는 내 신앙의 전도서’라고 표현했다. 실제로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는 출판에 그치지 않고 독자들의 현장 답사로 이어졌다. 제1권 ‘남도답사 일번지’에서 다룬 강진과 해남은 그해 여름에만 50만 명이 다녀갔다. 강진군 초입 입간판에는 ‘남도답사 일번지 강진군입니다’라는 홍보 문구가 추가되기도 했다.
남도 특유의 태양과 선명한 붉은색을 묘사한 부분이 두고두고 회자하는 1권부터 지리산 동남쪽 농월정에서 부석사 무량수전, 평창·정선 일대, 토함산 석굴암, 청도 운문사와 부안 변산 일대를 다룬 제2권, 크게 4개의 문화권으로 나누어 우리 문화유산을 서술한 제3권 등 제주, 북한을 돌아 서울에 입성하기까지는 햇수로 25년이 걸렸다.
틀에 박힌 형식 대신 문화유산마다 초점을 달리하여 풀어낸 흥미진진한 에피소드는 30여 년이 흐른 지금도 독자들을 전국 곳곳 문화유산 앞으로 이끌고 있다.
먼저 온 미래, 우리 농업 농촌. 농촌진흥청에는 농업과 농촌을 연구하며 기술을 보급하는 농업 과학자, 농업 전문가들이 있습니다. 농업을 과학으로 이끄는 선구자들입니다. 농업 과학자는 어떤 책을 읽고, 연구에 활용할까요? ‘2023 농업과학기술 우수성과 공유대회’를 통해 선정한 농업 과학자들의 서재를 들여다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