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완연한 봄, 초록으로 옷을 갈아입은 산과 들에는 온갖 나물들이 지천이다. 겨우내 비어 있던 두릅나무 가지에도 새순이 달렸다. 산 아랫집 장독대 위로는 꽃망울을 활짝 터뜨린 산벚꽃이 환한 그늘을 만들었다.고즈넉한 시골 봄 정취를 즐기며 쌉쌀한 참두릅을 맛볼 수 있는 곳, 전북 순창으로 초대한다.
섬진강 자락 산촌에 찾아든 봄
맑은 섬진강과 푸른 산으로 둘러싸인 순창. 이곳에도 어김없이 봄이 찾아왔다. 산림청이 뽑은 전국 100대 명산 중 하나이자 순창 1경으로 꼽히는 강천산에는 진달래, 개나리, 산벚꽃이 만개해 장관을 이루었다. 순창의 젖줄로 불리는 경천 변을 따라 이어진 수십 그루 벚나무 아래는 종일 꽃비가 내린다. 발길 닿는 자리마다 초록이고, 눈길 닿는 자리마다 생명이 움트는 곳. 봄맞이에 한창인 순창은 그 어디보다 활기가 넘친다.
순창에서 오롯이 봄을 만끽할 방법은 다양하다. 사시사철 절경을 자랑하는 명산은 물론 우리 식문화와 전통을 되돌아볼 수 있는 순창고추장 민속마을, 섬진강 변을 따라 조성된 자전거길 등 볼거리와 즐길 거리가 무궁무진하다.
특히 1981년 우리나라 최초로 군립공원으로 지정된 강천산은 깊은 계곡과 맑은 물, 기암괴석과 절벽이 어우러진 아름다운 풍경이 보는 이로 하여금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왕복 5㎞에 이르는 맨발 산책로가 있어 자연을 온몸으로 느끼며 걸을 수 있다. 산중 볼거리도 많다. 통일신라시대에 세워진 사찰인 ‘강천사’, 높이 120m나 되는 ‘구장군폭포’, 호남 최대 높이와 길이를 자랑하는 구름다리 ‘현수교’ 등을 모두 구경하려면 하루로는 어림없다. 5월부터 11월까지는 매주 토요일마다 강천산을 배경으로 화려한 미디어 쇼가 펼쳐지므로 놓치지 말자.
강천산을 거닐며 힐링했다면, 이제 ‘스릴’을 만끽할 차례다. 강천산과 더불어 순천 3대 명산 중 하나로 꼽히는 체계산에는 길이 270m에 달하는 출렁다리가 있다. 국내 최장 산악형 출렁다리로 짜릿한 흔들림을 맛볼 수 있다. 체계산에 출렁다리가 있다면, 그 옆 용궐산에는 하늘길이 있다. 용궐산 하늘길은 거대한 암반 위에 조성한 1㎞ 인공 구조물로 이루어진 길이다. 수직 암반에 수평으로 만든 길 위에 서면 유장하게 흐르는 섬진강을 한눈에 굽어볼 수 있다. 물줄기를 따라 매화와 산수유, 벚꽃이 만개한 꽃 대궐이 펼쳐진다.
진짜 순창 고추장이 익어가는 마을
다양한 볼거리로 눈요기를 했다면, 이제 지식을 채울 차례다. 순창은 장류 본고장으로 일컬어질 만큼 고추장으로 유명한 지역이다. 그 역사는 고려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고려 말 순창을 찾은 이성계가 어느 농가에서 고추장 시초인 ‘초시’를 먹어보고 그 맛을 잊지 못해 임금이 된 후 순창 현감에게 진상하도록 했다는 설화가 전해 온다.
조선 중기에 이미 순창 고추장은 특산품으로 인정받았다. 1740년대 저작인 〈수문사설〉에 순창 고추장 제조법이 기록되어 있는 게 그 증거다. 하지만 순창 고추장이 전국적으로 유명해진 건 1980년대 후반부터다. 우체국 택배 시스템이 만들어지고 전국으로 팔려 나가기 시작했는데, 인기가 높아지자 순창에 식품공장이 들어서고 공장 고추장이 순창 고추장으로 둔갑하는 일도 생겼다.
1997년 순창군은 순창 고추장의 명성과 전통적인 제조 비법을 이어가기 위해 순창 고추장 민속 마을을 조성했다. 순창군 곳곳에 흩어져 있던 고추장 제조 장인들이 모인 마을 곳곳에는 수많은 장독대가 즐비하다. 봄 햇살이 내려앉은 장독 안에는 고추장이며 된장, 간장, 청국장 등 다양한 장류가 발효되고 있다.
2021년 3월에는 순창 고추장 민속 마을을 포함한 44만 5천여 ㎡ 규모의 대지에 체험관과 전시관, 교육관이 함께 있는 발효 테마파크가 문을 열었다. 발효, 미생물, 효모를 주제로 한 전시와 놀이시설은 물론 다양한 체험행사를 운영하고 있어 가족 단위 여행객들에게 인기가 좋다. 아이와 함께 전통 장류와 발효에 대한 가치를 알아보고, 진짜 순창 고추장이 품은 깊이 있는 맛을 직접 느껴보자.
제철 맞은 순창 참두릅이 선물하는 봄맛
맛과 영양이 뛰어나 ‘봄나물의 제왕’으로 불리는 두릅. 순창의 봄은 두릅과 함께 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순창은 전국 생산량의 약 70%를 차지하는 참두릅 주산지이다. 해발이 높고 일교차가 커 두릅을 재배하기에 최적 조건을 갖추고 있다. 집 근처며 밭 근처 비탈진 곳, 산등성이마다 참두릅이 지천이다. 논에 두둑을 높게 하고 두릅을 심은 곳도 눈에 띈다. 봉긋하게 돋아난 두릅나무 새순이 향긋한 봄 내음을 전해온다.
참두릅 수확은 보통 4월 초부터 5월까지 이어진다. 유독 연하고 향이 짙은 순창 참두릅은 수확 전인 3월부터 전국에서 예약 주문이 밀려들 정도로 인기 만점이다. 본격적인 수확 철을 맞이해 순창 지역 농가들은 분주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참두릅은 나무 한 그루당 하나만 채취할 수 있기 때문에 더욱 귀한 식재료이다. 처음 올라오는 원순이 가장 맛이 좋은데, 잘 데친 두릅은 마치 고기를 씹는 것처럼 쫄깃하면서도 아삭한 식감이 일품이다. 입안에 퍼지는 쌉싸래한 맛과 특유의 향은 집 나간 입맛도 돌아오게 한다.
참두릅 수확이 한창인 지금, 순창을 찾으면 식당에서도 참두릅으로 만든 반찬을 흔히 볼 수 있다. 순창 고추장으로 만든 초고추장을 곁들인 숙회는 그 자체만으로 일품이다. 흔히 먹는 방법인 숙회 외에도 무침, 전, 튀김, 김치 등 다양하게 요리해 내는 식당들도 많다.
오감이 즐거워야 진정한 여행이다. 순창은 오감 여행지로 손색이 없다. 맑은 공기와 자연에서 온 소리로 가득 찬 숲과 강, 천년 장맛을 이어가는 장독대들, 그리고 삐죽 고개를 내밀어 봄 마중을 나온 참두릅까지. 각양각색 다채로운 봄을 만끽하러 순창으로 떠나보자.
순창 맛집, 여기 어때?
우리 음식에 있어 기본이 되는 ‘장’의 본고장으로 꼽히는 순창. 소박한 동네 백반집만 가도 투박하지만 깊이 있고 맛깔스러운 요리를 맛볼 수 있다. 된장에 버무린 봄나물들과 초고추장을 곁들인 참두릅 숙회 등 봄 한 상으로 잃었던 입맛을 되찾아 보자.
1. 장구목 가든섬진강 변에 위치한 20년이 넘은 한식당. 산야초 자연밥상과 쏘가리, 메기 등이 주재료인 매운탕, 향긋한 꽃 차 등을 맛볼 수 있다. 직접 산에서 캔 산야초와 나물, 들꽃 등을 버무려 반찬을 만들어 ‘약’이 되는 밥상을 선사한다.
- 주소순창군 동계면 장군목길 706-4
- 운영 시간11:00~19:00
- 문의063-653-3917
3대째 이어온 대물림 맛집. 직접 국산 콩을 맷돌로 갈아 가마솥에 끓여 두부를 만든다. 메뉴는 순두부, 황태 순두부, 콩비지 비빔밥, 모두부 4가지뿐이지만 고소하고 담백한 손두부만의 풍미가 살아 있다. 봄에는 데친 두릅이 반찬으로 나온다.
- 주소순창군 순창읍 장류로 358-5
- 운영 시간12:00~18:00(매주 월요일 휴무)
- 문의063-652-8773
지역 주민들이 추천하는 현지 맛집으로 9천 원이라는 저렴한 가격에 20여 가지 반찬이 나오는 백반을 맛볼 수 있다. 생선조림과 다양한 나물 반찬이 입맛을 돋운다. 특히 봄이면 제철 맞은 참두릅을 살짝 데쳐 무침으로 내는데 그 맛이 일품이다.
- 주소순창군 구림면 구림로 474/li>
- 운영 시간매일 상이(문의 후 방문 권장)
- 문의063-653-45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