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언가를 알고 싶으면 곧바로 스마트폰 화면에 답이 나타나고, 무언가를 사고 싶으면 다음 날 아침 바로 문 앞으로 배송받을 수 있는 시대이다. 어느새 우리는 무언가를 곰곰이 생각해서 알아내거나 답을 찾아가는 동안 좌절하고, 기다림을 인내할 능력을 잃어가고 있다. 사방에 도파민이 넘쳐나는 지금, 우리는 어떻게 중독에서 벗어나 건강한 행복을 찾을 수 있을까? 곽지은 농업연구사가 추천한 도서 『도파민네이션』을 통해 그 해답을 알아보자.
이제 밀 대신 가루쌀! 쌀 가공산업의 새로운 지평을 열다
현재 국민 1인당 쌀 소비량은 해마다 크게 줄고 있지만, 그에 반해 밀 소비는 지속적으로 증가해 연간 200만 톤 이상을 수입하고 있는 상황이다. 곽지은 농업연구사는 가공용 쌀 품종인 가루쌀 연구로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대부분의 쌀은 밥을 지어 먹는 밥쌀용 품종입니다. 이를 물에 불린 후 가루로 만든 것이 기존 쌀가루였다면, 물에 불리지 않고도 밀가루만큼 곱고 균일한 가루를 만들 수 있는 쌀이 바로 가루쌀이지요. 새롭게 개발한 ‘바로미2’ 품종은 밀가루를 사용하는 제과·제면·제빵 등 대부분의 식품 가공에 적용할 수 있습니다. 더불어 밀가루와 달리 글루텐이 없어 소화가 잘되는데요. 가공 제품 특성에 따라 혼합 비율을 달리해 밀가루 일부, 또는 전부를 가루쌀로 대체할 수 있어 기존 쌀 가공식품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됩니다.”
정부에서 식량주권 강화를 위한 핵심 수단으로 가루쌀 활성화를 추진한 것은 2년도 채 되지 않는다. 농촌진흥청은 1년 남짓한 짧은 기간 안에 ‘바로미2’를 처음 재배하는 농가에 기술 교육을 통해 재배 기술을 정착시키면서, 2024년 1만ha 재배에 필요한 종자 673톤을 생산했다.
“‘바로미2’의 특성은 일반 쌀가루, 밀가루와는 확연히 다릅니다. ‘바로미2’의 산업적 이용을 위해서는 품종의 고유 특성을 철저히 파악하고 가공 품목에 대한 가공성 검토를 통해 적합 조건을 찾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현재는 가공 원료로서의 안정성 확보를 위해 저장 기간 중 일어나는 품질 변화를 모니터링 하는 중인데요. 내년 하반기에는 ‘바로미2’ 원료곡 저장 방법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바로미2’의 품종 개발, 재배 기술과 산업화 기술 개발에 이르기까지 현재까지의 성과는 농촌진흥청 내 여러 부서가 조직적으로 협업해 빠르게 이루어 낸 값진 결과입니다. 앞으로 가루쌀 생산량이 대폭 증가될 예정입니다. 더 많은 양의 가루쌀이 더 많은 분야에서 활용될 수 있도록 연구와 지원을 지속하겠습니다.”
식품공학을 전공한 곽지은 농업연구사는 2012년, 박사후연구원으로 농촌진흥청에서 근무를 시작했으며 2017년 농업연구사로 정식 발령받았다. 12년이 넘는 긴 시간 동안 일하며 가장 큰 보람을 느낀 순간은 언제였을까?
“제 연구 결과가 농업 현장에 실제로 도움이 된다고 생각할 때 가장 큰 보람을 느낍니다. 또, 2019년 국민디자인단 활동을 통해 여러 쌀 가공업체의 어려움을 듣고, 쌀 가공품에 대한 소비자들의 생각을 들어볼 기회가 있었는데요. 6개월 동안 전국 각지를 돌며 체력적으로 힘에 부치기도 했지만, 쌀가루 연구와 산업화가 얼마나 중요하고 가치 있는 일인지 깨닫는 계기가 됐습니다.”
앞으로 곽지은 농업연구사는 가루쌀 가공 이용 확대를 위해 산업 현장과 소통하며 가공적성 향상을 위한 연구와 함께 쌀 가공품의 영양 가치를 높일 방법을 연구해 나갈 계획이다. 가루쌀이 수입 밀가루의 10%를 대체하는 그날까지 그의 노력은 계속될 것이다.
건강한 행복을 찾는 사람들을 위한 책 『도파민네이션』
직장에서는 여성 과학자로서 가루쌀 산업 발전의 초석을 놓은 곽지은 농업연구사도 가정에서는 한 아이의 엄마이자 아내이다. 지난해 아들이 중학교에 진학하면서 사춘기가 찾아와 여느 엄마들처럼 잔소리가 늘었다고.
“지난해부터 아이가 너무 오랫동안 컴퓨터 게임을 하며 시간을 보내더라고요. 게임을 하면 할수록 더 깊이 빠져드는 모습을 보면서 잔소리도 더 많이 하게 됐는데요. 오히려 아이의 반항심만 키우게 되어 서로 감정만 점점 더 상하더라고요.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서 중독 증상에 대한 책을 찾아보던 중 『도파민네이션』을 알게 됐습니다.”
『도파민네이션』은 도파민과 중독의 관계성을 파헤치고, 디지털 기기 등 중독적 환경에 놓인 우리의 일상에 대해 경고하고 있다. 또, 정신과 의사인 저자가 직접 보고 들은 다양한 사례를 통해 ‘절제’와 ‘고통’을 추구함으로써 중독에서 벗어날 수 있고, 더 건강한 행복을 느낄 수 있게 된다는 것을 역설하고 있다.
“아이를 위해 읽은 책인데, 오히려 ‘나도 도파민 중독에 빠져 있구나’를 느끼며 스스로를 되돌아보게 됐어요. 저 또한 여가 시간 대부분을 스마트폰 검색과 인터넷 쇼핑에 할애하고 있었거든요. 심지어 주말에도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보다 스마트폰과 함께하는 시간이 더 많을 때가 종종 있었어요. 서로 간에 대화와 이해가 부족해지면서 서운함이 쌓이고, 점점 ‘가족’으로서 결속력이 약해지고 있음을 깨닫게 됐습니다.”
실제로 곽지은 농업연구사는 대화를 통해 가족 불만 중 하나가 그의 과도한 스마트폰 사용과 관련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고 한다. 이후 곽지은 농업연구사는 가족과 함께 스마트폰 사용 규칙을 정했다. 집에서는 스마트폰 사용 시간을 제한하고, 그 시간 동안 스마트폰은 ‘핸드폰 감옥’이라고 이름 붙인 상자 안에 넣어두기로 했다. 처음 1시간이던 제한 시간은 이제 1시간 30분이 되었고, 점점 늘려갈 계획이라고 한다.
균형을 찾아 유지함으로써 얻어지는 보상은
즉각적이지도 않고 영원하지도 않다
…(중략)…
당장 영양가 없어 보이는 지금의 행동들이
실제로는 긍정적인 방향으로 축적되고, 이것이
미래의 언젠가 나타날 거라는 믿음을 가져야 한다.
생활 습관처럼 스며든 스마트폰 중독이 단시간 내 개선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도파민네이션』에서 이야기하고 있듯이 ‘지금의 행동들이 실제로는 긍정적인 방향으로 축적되고, 이것이 미래의 언젠가 나타날 거라는 믿음’을 잃지 않으면 더 건강한 행복이 찾아올 것이다.
2021년 미국에서 출간된 『도파민네이션』은 피로 사회에서 도파민으로 버텨내는 현대인을 위한 인간, 뇌, 중독 그리고 회복에 대한 안내서이다. 저자인 애나 렘키는 스탠퍼드대학교 의과대학 교수이자 스탠퍼드대학 중독치료센터를 이끄는 정신과 의사이다. 그는 미국 행정부와 의회의 의료 정책을 만드는 데 참여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100여 편이 넘는 글과 논문을 발표한 성공한 학자이다. 그러나 이러한 사회적 성공과는 무관하게 그는 어릴 때부터 우울증을 앓아왔고. 의사가 된 후에도 에로티시즘 소설에 중독된 적이 있었다고 한다. 중독에 관한 전문가인 동시에 중독자였다.
이 책을 통해 저자는 중독에서 벗어나 삶의 균형을 찾기 위한 새로운 시각을 제시한다. 그는 자신이 20년 동안 만난 수만 명의 임상 사례를 바탕으로 인간이 중독에 빠지는 원인을 ‘도파민’에서 찾는다.
도파민은 뇌에서 분비되는 신경전달물질로 ‘행복 호르몬’으로도 불린다. 맛있는 음식을 먹거나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할 때, 성취감을 느낄 때 도파민이 분비된다. 하지만 ‘보상 그 자체의 쾌락’을 좇다 보면 결국 그 대상에 중독되고 만다. 도파민이 ‘중독 호르몬’이라는 또 다른 이름으로 불리는 이유다.
SNS, 숏폼, 음식, 도박, 쇼핑, 게임, 음란물, 알코올 등 중독 대상이 넘쳐나는 쾌락 과잉의 시대. 우리에게 도파민 중독은 일상이 되었다. 사례를 멀리서 찾을 것도 없다. 스마트폰으로 SNS와 숏폼 콘텐츠를 소비하며 인터넷 세상에 빠져들다 보면 눈 깜짝할 사이에 몇 시간이 훌쩍 지나갈 때가 많다. 침대에 누워서도 스마트폰만 만지작거리다가 뜬눈으로 아침을 맞기 일쑤다. 많은 사람이 스마트폰과 잠시라도 떨어질라치면 엄마 잃은 아이처럼 안절부절못하며 불안을 겪는다. 우리는 이미 스마트폰, 아니 도파민의 노예가 되었다. 비단 게임, 마약, 도박뿐만 아니라 일상 자체가 도파민을 좇는 상태가 된 것이다.
도파민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다. 하지만 노력 없이 인위적으로 얻는 도파민 분비가 증가할수록 충동성, 집중력, 사회성 측면에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또, 계속된 쾌락 추구는 더 큰 쾌락을 갈망하게 만든다. 웬만한 자극에는 내성이 생겨 더 강한 자극을 찾게 되기 때문에 행복을 느끼는 역치도 점점 높아진다.
이제 쾌락 반대편에 있는 ‘고통’에 대해 들여다볼 차례다. 쾌락과 고통은 같은 뇌 부위에서 처리되며, 둘은 역 상관관계에 있다. 우리 뇌에 저울이 있다고 가정해 보자. 저울은 수평 상태, 즉 평형을 유지하려고 한다. 한쪽으로 오랫동안 기울어져 있는 걸 싫어한다. 이러한 이유로 일정 수준 이상 쾌락을 느끼면 그만큼 고통이 증가한다. 점점 더 큰 쾌락을 원하게 되는 이유다.
우리가 다시 쾌락과 고통의 저울 균형을 찾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저자는 ‘절제’와 ‘고통’에서 답을 찾았다. 그는 노력 없이 인위적으로 얻는 쾌락 대신 고통을 견디는 노력을 함으로써 그다음에 오는 쾌락을 건강하게 즐길 수 있다고 말한다. 쾌락에 중독될수록 작은 고통에 점점 둔감해지기 때문에, 적정 수준의 고통은 성취감을 가져오며 도파민 분비를 촉진한다는 것. 아이러니하게도 고통을 선택하는 것이 쾌락과 성장을 이끈다는 사실을 밝히고 있다.
중독성 물질과 자본주의, 디지털이 결합한 현실은 우리를 점점 더 쉽게 도파민 중독으로 이끈다. 저자는 ‘중독은 더 이상 개인적 문제가 아닌 우리 모두의 문제이며, 사회 전체의 관점에서 바라보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기다림이 없는 시대, 원하면 언제든 바로바로 욕구를 충족할 수 있는 세상이다. 우리를 둘러싼 삶의 조건은 중독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도파민의 법칙을 이해하고 고통과 화해하는 법을 익히는 것만이 이미 일상 깊숙이 파고든 도파민 중독에서 벗어나는 길임을 기억하자.
먼저 온 미래, 우리 농업 농촌. 농촌진흥청에는 농업과 농촌을 연구하며 기술을 보급하는 농업 과학자, 농업 전문가들이 있습니다. 농업을 과학으로 이끄는 선구자들입니다. 농업 과학자는 어떤 책을 읽고, 연구에 활용할까요? ‘2023 농업과학기술 우수성과 공유대회’를 통해 선정한 농업 과학자들의 서재를 들여다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