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이 점점 더워지는 요즘, 특유의 아삭한 식감과 청량한 향기가 매력적인 미나리로 입맛을 돋워보는 건 어떨까? 고려시대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오랜 시간 우리 식문화에 스며들어 다양한 요리 재료로 쓰인 미나리의 연대기를 돌아본다.
“미나리 싱싱하다 살진 미나리 / 가만히 씹으면 향기도 높네 / 푸른 줄기를 슬슬 감아서 / 실고추 한 잎 비슥 꽂으니 / 소반 위에 봄빛 가득 찼더라….”
미나리가 뿜는 풀빛이 숲과 녹음에 깃든 풀빛보다 선명한 때다. 미나리의 변신은 그야말로 무한대다. 미나리 김치, 미나리 물김치, 데치거나 무치거나 볶아 만든 미나리나물, 생선에 어울린 미나리, 고기에 어울린 미나리, 탕국에 어울린 미나리, 탕평채 등 잡채에 어울린 미나리, 통통한 대에 녹말 묻혀 데친 푸른 고명, 달걀옷 입혀 지져 노랑 감도는 고명➊, 미나리 샐러드, 미나리 페스토… 열거하다가 숨넘어갈 판이다. 또는 앞서 본 박종화의 시처럼, 그 푸른 줄기를 슬슬 감아 그저 실고추만을 더해도 미나리는 단박에 미나리강회로 변신한다. 이보다 한참 더 화려한 미나리강회도 있다. 조선 말기 조리서 『시의전서(是議全書)』에 실려 있는 미나리강회 조리법을 오늘날 한국어로 풀어 쓰면 이렇다.
“미나리는 다듬어서 삶아 건지고
고추, 지단, 석이, 양지머리, 차돌박이는 채를 친다.
잣을 가운데 끼우고, 채 친 여러 재료를
옆으로 돌려가며 색색이 끼우고 감아 접시에 담는다.”
여기다 윤즙, 곧 꿀과 후추 등으로 맛을 더한 초고추장을 함께 내면 또 다른 미나리강회가 된다. 이 방식은 뜻밖에도 오늘날 조리 관련 교육 과정과 한식조리기능사 실기 시험으로 면면히 이어지고 있다. 보신 대로다. 손에 잡히는 대로 데치고 한 번쯤 감는 것으로도 맛이 나고, 마음먹고 호사스럽게 하면 화려하기 이를 데 없는 일품요리가 된다. 한반도 어디서나 잘 자랐고, 대도시 사람들도 절대 잊지 않고 찾아 먹어 왔기에 조선 시대의 기록도 풍성하다. 이를테면 『열하일기(熱河日記)』의 저자이자 손수 고추장을 담가 먹을 정도로 자기 입맛이 분명했던 박지원(朴趾源, 1737~1805)은 일찍이 서울 왕십리의 무, 석관동의 순무, 서소문 밖의 가지·오이·수박·호박, 연희동의 고추·마늘·부추·파·염교, 청파동 미나리, 이태원 토란을 당시 경제작물로 손꼽았다. 해방 이전에는 서울 왕십리, 경기도 수원, 평안도 안주, 전북 남원 미나리가 유명했다. 오늘날에는 전주 미나리, 나주 미나리, 경산 미나리, 청도 미나리 등의 명성이 대단하다. 그 가운데 옛 서울 미나리, 서울 근교 미나리는 겨울을 견디고 새봄에 뿜는 기운으로 사람들을 사로잡았다.
“다른 곳의 미나리는 봄철에만 있지만 서울 미나리는 (중략)
사시(四時)에 없는 때가 없다. 길고 연하기도 하려니와
향취가 또한 좋다. 특히 동지섣달 얼음이 꽝꽝 언 논 속에서도
새파랗게 새싹이 난 미나리를 캐내는 것은 서울이 아니고는
그 생신(生新, 생기 있고 새로움)한 맛을 보지 못할 것이다….”
해방 전 인기 잡지였던 『별건곤(別乾坤)』 1929년 제23호에서 다룬 서울의 명물, 그 가운데서도 미나리에 부친 한 문장이 눈에 콕 박혀 들어온다. 이어서 서울 미나리를 유달리 사랑했던 조선 미식가 심노숭(沈魯崇, 1762~1837)이 떠오른다. 철 따라 잉어·청어·전복·복어·도미·게장·어리굴젓·쑥국·수박·참외·대추·밤·배·감을 빠뜨리지 않고 즐겼던 이 미식가는 미나리 김치, 미나리강회, 미나리볶음도 참 좋아했다.
“서울서울 문안 부잣집에서는 2월 김치는 /
실처럼 부드러운 미나리를 양념해 담그지 /
거위알처럼 흰 분원사기➋ 종발에 /
담아내 차리니 입안에서 먼저 침이 도네 /
반찬으로도 맛있지만 안주로는 더욱 좋아 /
꿩고기, 양고기 요리보다 훨씬 낫지 / 청포묵 탕평채 곁들이고 /
소곡주 새로 담갔으니 종일 거나할 판 /
또 ‘강회(剛回)’라고 부르는 별미가 있어 /
데친 미나리에 생파 적당히 나누어 더해 /
빙빙 돌려 묶어 엄지손가락만 하게 감고 /
물고기 살 발라서는 고추장에 섞지 /
미나리 작게 잘라 기름에 볶은 것은 ‘짠지[殘支]’라 이름하니 /
봄날 점심에 비빔밥 하기 딱 좋네 /
이현시장➌에서 팔리는 온갖 나물 가운데 /
미나리 장수의 치마에만 돈이 넘치네….”➍
겨울도 견디고, 새봄에 더욱 청신한 모습으로 제 몸을 드러내는 미나리 연대기가 이만하다. 데쳐서도 무쳐서도 볶아서도 묶어서도, 생선에도 고기에도 묵에도, 예부터 좋았던 이 땅의 미나리가 이만하다. 멋을 내자고 하면 한껏 멋을 낼 만한 나물이 또한 미나리였다.심노숭 흉내를 내 볼거나. 아끼는 흰 접시 좀 꺼내고, 초고추장도 공들여 개고. 침이 고인다. 미나리 한 움큼 다듬으러 가야겠다.
➊이런 방식의 고명을 ‘미나리초대’라고 한다.
➋분원은 경기도 광주에 있던 관요(官窯)를 가리킨다. ‘분원사기’는 곧 최고급 사기로 통했다.
➌오늘날의 서울 광장시장의 전신.
➍『 수근가시신생주한(水芹歌示申生周翰)』에서. 교감과 번역은 성균관대 안대회 교수의 작업을 따랐다.
“城裏 朱門二月菹/軟芹如絲兼蘖葷/分院砂鐘鴨卵白/盛來先令口流芬/饌固爲美肴尤佳/絶勝雉臡與羊臐/間以靑蒲蕩平菜/少麴新釀終日醺/又有別味號剛回/熟芹生蔥各等分/回回束得栂指大/啑來魚臠椒醬熅/寸切油炒殘支名/且合春晝汨董饙/梨峴朝市百種菜/獨有芹商錢滿裙….”
필자 소개
대학에서 고전문학을 공부했다. 고전문학 작품 번역과 해제 및 음식문헌 읽기와 정리에도 힘쓰고 있다. 현재 경향신문 기명 칼럼 <고영의 문헌 속 밥상>을 연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