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업 과학자들의 서재

아프리카 원조 문제에서 찾은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길

농촌진흥청 국외농업기술과

설영주 농업연구관

넓은 땅에 수많은 자원을 보유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전 세계 인구 약 81억 명 중 14.5억 명을 차지하는 아프리카. 1960년대 이후 대부분의 국가가 독립하면서 국제 사회의 원조가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프리카는 여전히 빈곤과 기아, 내전에 허덕이고 있다. 수십 년간 국제 원조를 받고도 제자리걸음인 이유는 무엇일까? 설영주 농업연구관이 추천한 책 『왜 아프리카 원조는 작동하지 않는가』를 통해 아프리카의 절망을 희망으로 이끄는 올바른 원조에 대해 생각해본다.

농생명 빅데이터 전문가, 공적개발원조(ODA)를 만나다

농촌진흥청은 지난 60년 동안 축적한 농업 기술과 경험을 바탕으로 전 세계 개발도상국의 기아 해결과 농촌 지역 빈곤 해소를 위해 공적개발원조(ODA)사업을 펼치고 있다. 설영주 농업연구관은 그중 코피아(KOPIA) 센터를 주축으로 아프리카 벼 우량종자 생산과 농업 기술 전수를 지원하는 ‘라이스피아(RiceSPIA, Rice Seed Production Improvement for Africa)’ 사업을 이끌고 있다.

“2023년부터 농림축산식품부가 추진하고 있는 ‘아프리카 K-라이스벨트’ 사업과 연계해 진행 중인 라이스피아 사업을 이끌고 있습니다. 지난해 시범 사업을 통해 처음 생산한 벼 종자를 올해 3월 가나 정부에 인계하는 성과를 거두었는데요. 이를 계기로 현지 여건에 맞는 생산성 높은 벼 우량종자가 확산되기를 기대합니다.”

농촌진흥청 기술협력국 국외농업기술과 설영주 농업연구관과 라이스피아팀 팀원들

설영주 농업연구관이 처음부터 공적개발원조 사업에 관심을 두었던 것은 아니다. 그는 대학에서 컴퓨터 공학을 전공하고 대학원에서 생물정보학으로 석박사 과정을 밟은 뒤 2005년 농촌진흥청에 입사했다. 처음 맡은 업무는 농생명 빅데이터 구축과 활용을 위한 연구개발이었다. 이후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한자리에서 연구에 매진해 왔다.

“2016년부터 공적개발원조사업에 참여하게 됐습니다. 그 당시에도 담당 지역이 아프리카였는데요. 그동안 해 오던 업무와는 아예 다른 생소한 분야이다 보니 공부가 필요했어요. ‘원조’란 무엇인지 기본적인 개념을 정립하는 것이 우선이라 생각해 관련 도서를 많이 찾아봤어요. 당시에 처음 읽었던 책이 아프리카 경제학자인 담비사 모요가 쓴 『죽은 원조』였습니다. 저자는 ‘원조’가 오히려 아프리카 경제 성장을 저해하고 국가 빈곤 상태를 지속시키며 심지어 내전의 잠재적 원인이 될 수 있으므로 중단해야 한다고 주장하지요. 어떤 식으로 사업을 펼쳐야 실질적으로 효과를 거둘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이 점점 더 커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직접 아프리카로 현지 답사를 가 낙후된 농촌의 현실도 체감했다. 벼 종자 생산에 투입된 원주민들은 오랜 시간 배고픔에 시달려서인지 점심 배식을 받아 눈 깜짝할 새 식사를 마치고 다시 긴 행렬 뒤에 줄을 서곤 했다. 직접 눈으로 보고 나니 안타까운 심정이 더 커졌다. 하지만 고민하는 사이 시간은 금세 흘렀다. 공적개발원조사업에 참여한 지 2년째 되던 해, 그는 다시 원래 담당하던 연구개발직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설영주 농업연구관과 아프리카의 인연은 2023년 8월 라이스피아 사업 팀장으로 부임하면서 다시금 이어졌다.

물고기 잡는 방법을 그들 스스로 떠올리게 하는 것이 올바른 원조 방향

올바른 원조에 대한 고민은 설영주 농업연구관에게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그는 팀원들과 함께 사업 방향에 대해 자주 이야기를 나눌 뿐만 아니라, 원조와 관련한 새 책이 나오면 가장 먼저 서점으로 달려간다. 최근 관심을 끄는 책은 전 세계은행 중앙아프리카 지부장이자 경제학자인 로버트 칼데리시가 지은 『왜 아프리카 원조는 작동하지 않는가』이다.

“라이스피아를 이끌게 된 이후 다른 기관에서 진행했던 무상원조 사업에 대해 알아보았는데요. 현재 라이스피아와 연계해 진행 중인 ‘아프리카 K-라이스벨트’와 유사한 사업을 진행한 해외 사례가 많을 뿐만 아니라 대부분 실패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실패한 이유가 궁금했어요. 그러다가 우연치 않게 이 책을 만나게 되었고, 원하는 답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절대 빈곤의 원인은 농업 분야의 개선이 늦다는 데 있다. 생산성 증가가 거의 농가 소득으로 직결되는 아프리카 농업의 특성을 감안해보면 정부의 무관심이나 정책 실패가 주된 원인이다.”

- 『왜 아프리카 원조는 작동하지 않는가』 본문 내용 중

설영주 농업연구관은 “원조 규모를 키우는 것만으로는 아프리카를 구할 수 없다”는 의견에 동의했다. 그리고 우리 농업의 근간이며 전 세계적으로 기술력을 인정받고 있는 벼 재배 관련 기술을 공유하는 것이 해결의 열쇠가 될 것으로 추측했다.

“복잡한 정치적 요인이나 시스템적 요인은 차치하고, 농업 기술 전수를 통해 식생활 자립만큼은 도울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실제로 라이스피아 사업을 추진하는 동안 예산 대비 실효성이 크다는 것을 체감하기도 했고요. 보통 마을 단위로 사업을 진행하는데, 주민 모두 박수 치고 춤추며 우리를 환영해 줍니다. ‘진짜 도움’을 주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는 걸 알 수 있어요.”

무작정 도움을 베푸는 것은 어쩌면 변화를 가로막는 거대한 벽이 될 수도 있다. 설영주 농업연구관은 ‘물고기를 잡아주는 것보다 잡는 방법을 그들 스스로 떠올리게 하는 것이 올바른 원조’라고 말했다. 종자 생산 기술과 보급 시스템, 재배 기술까지 하나로 묶은 패키지 형태로 기술 전수가 이루어지는 이유이다. 일부 기술을 전수받는 것만으로는 진정한 자립을 할 수 없다.

기회의 땅에 단단한 토대를 다지다

설영주 농업연구관을 비롯한 라이스피아 사업 팀원은 총 다섯명이다. 매일 데이터와 분석 보고서 등을 보며 아프리카 현지 정세와 내전 위험성 등을 파악하고 분석 결과를 바탕으로 진행 중인 사업에 대한 타당성과 방향성을 논의하다 보면 하루가 짧기만 하다.

“전 세계가 아프리카에 주목하고 끊임없이 원조를 보내는 이유는 단순히 인류애나 동정심 때문이 아닙니다. 가능성 때문이지요. 『왜 아프리카 원조는 작동하지 않는가』를 쓴 저자도 검은 대륙에서 기회의 땅으로 변모할 아프리카의 미래를 역설합니다. 중국이 일찌감치 아프리카에 눈을 돌려 막대한 자원을 투입한 것을 보면 그 미래가 머지않은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도 올해 6월, 정부 출범 이후 최초로 아프리카와 정상회의를 준비하고 있는 상황이지요. 앞으로 2050년까지 아프리카 인구는 25억 명으로 크게 증가할 것으로 예측됩니다. 세계 인구 4분의 1이 아프리카인이라는 뜻이지요. 아직까지는 아프리카가 개발되지 못했지만 젊은 인구가 성장했을 때 상황은 크게 변화할 것입니다. 현재 농촌진흥청에서는 아프리카에서 해외 농업을 경험할 수 있는 다양한 글로벌 농업 인재 양성 사업을 진행하고 있는데요. 농업 경험이 없어도 참여할 수 있으므로 적극적으로 관심을 갖고 도전하길 바랍니다.”

올해 라이스피아 사업은 가나, 감비아, 기니, 세네갈, 우간다, 카메룬, 케냐 7개국으로 확대된다. 2027년부터 매년 벼 종자 1만 톤을 생산·보급해 3천만 명이 먹을 수 있는 쌀을 생산하는 것이 목표이다.

우리가 그랬듯이 아프리카 또한 언젠가는 수원국에서 공여국이 될 수 있을 정도로 빛나는 발전을 이루기를 염원한다. 설영주 농업연구관을 비롯한 라이스피아 사업 팀원들의 노력이 아프리카 발전에 단단한 토대가 되길 바라며 앞으로의 행보에 응원을 전한다.

설영주 농업연구관 추천 도서
『왜 아프리카 원조는 작동하지 않는가』
로버트 칼데리사 지음초록비책공방

저자인 로버트 칼데리사는 세계 최대 원조 기구인 세계은행에서 경력을 대부분 쌓았고, 아프리카 대변인으로도 일했다. 더불어 탄자니아와 코트디부아르에 세계은행 지부장으로 부임해 현장 경험을 축적했다. 이외에 선진국들의 원조 관행을 조정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도 일했다. 이 모든 과정을 거치는 동안 그는 소농부터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이념과 문화의 차이가 매우 큰 수천 명의 아프리카인들과 만나 대화를 나눴다. 그리고 이러한 경험 속에서 아프리카의 국제 원조가 그간 실패했던 이유와 현실적인 해결책을 찾았다. 먼저 저자가 밝힌 실패 원인은 다음과 같다.

“원조 규모를 키우는 것만으로는 아프리카를 구할 수 없다.”

과거에 있었던 아프리카 국제원조의 상당수가 실패한 것은 규모의 문제가 아니라는 뜻이다. 저자는 실패 원인을 ‘필요에 따라 개발 정책의 우선순위를 설정 및 시행하고 이에 필수적인 기관을 설립하는 정부가 아프리카에는 거의 없기’ 때문이라고 보았다. 이러한 현실과 대비되는 대표적인 예가 바로 한국이다. 1960년대 한국은 가나만큼 가난했지만 30년 후에는 아프리카에 원조를 제공할 만큼 부강해졌다. 이러한 변화가 가능했던 것은 우수한 경제 정책, 견고한 공공 재정, 낮은 인플레이션, 명료한 투자 규정 덕분이었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더불어 아프리카에서 자생한 독재 정치, 아프리카의 잘못된 정치와 행정의 관행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은 채 원조의 목표에 대해서만 논의하려 하는 서방국들, 아프리카 대륙 내 국가들이 경제에 대해 갖는 경시적 시각, 이 모든 문제에 맞서는 데 필요한 힘과 동기를 잃어버린 아프리카인들의 현실 등을 보다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원인으로 지목한다.

이 책의 실질적 가치는 아프리카의 문제들을 적나라하게 파헤치는 데만 있지 않다. 저자는 아프리카를 올바른 방향으로 발전시킬 원조란 어떤 것인지 실제 경험을 사례로 들어 제시한다.

먼저 온 미래, 우리 농업 농촌. 농촌진흥청에는 농업과 농촌을 연구하며 기술을 보급하는 농업 과학자, 농업 전문가들이 있습니다. 농업을 과학으로 이끄는 선구자들입니다. 농업 과학자는 어떤 책을 읽고, 연구에 활용할까요? ‘2023 농업과학기술 우수성과 공유대회’를 통해 선정한 농업 과학자들의 서재를 들여다봤습니다. <편집자 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