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은 부모의 그림자를 닮는다’는 말이 있다. 3년 전 강원도 춘천으로 귀촌해 농부로서 새 삶을 가꾸고 있는 이규호 대표의 그림자도 어느새 아버지를 닮아 있었다. 30년째 방울토마토 농사를 지으며 아버지가 일군 삶의 터전, 이제 그곳에서 자라고 있는 건 우리 농업·농촌이 활기를 되찾길 바라는 청년 농부의 염원이다. ‘정직하게 키워야 좋은 농작물을 수확할 수 있다’는 아버지의 가르침을 되새기며, 올곧은 농부의 길을 향해 걷고 있는 이규호 대표를 만나본다.
귀농을 결심하게 된 계기는?
농업대학을 졸업하고 5년간 농약 회사에 근무했어요. 마케팅 업무를 주로 맡았는데, 작목반 세미나를 진행하기 위해 태백을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세미나에 참석한 농업인 모두 60~70대 어르신인 것을 보고 농촌 고령화를 여실히 느낄 수 있었습니다. 청년들이 농촌으로 돌아와 젊은 활력을 불어넣으면 우리 농업·농촌이 겪고 있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귀농을 결심하게 됐습니다.
청년 후계농으로서 농업을 시작한 이점은?
이미 기반을 모두 갖추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농작물 재배가 활발히 이루어졌던 터라 다른 청년 농업인들보다 진입이 쉬웠습니다. 그만큼 새로운 농사 방법을 연구하고, 판로를 모색할 시간적인 여유도 얻을 수 있었지요. 다른 지역 토마토 농장을 찾아 노하우를 습득하는 데 주력했고, 지금도 여전히 농업기술센터 등을 통해 지속적으로 교육을 받고 있습니다. 국내뿐 아니라 해외 현지 실습을 나가 선진 농업 기술을 배운 적도 있는데요. 배움에는 끝이 없다는 말이 농업에도 해당하는 것 같네요.
왜 ‘토마토’였나요?
강원도 춘천은 제 고향입니다. 이미 30년 전부터 아버지께서 토마토 농사를 지어온 터전이기도 하지요. 새로운 작물을 키우기보다는 기본 인프라를 갖추고 있는 ‘토마토’를 이어서 키우는 것이 유리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토마토 농장 아들이 토마토 농부가 된 건 어쩌면 당연한 일 아니었나 싶습니다.
‘정직한농장’이라는 이름에 담긴 의미가 궁금해요
어렸을 때부터 농작업을 하는 아버지를 따라다니며 거들었어요. 그때 아버지께서 하신 말씀이 있는데요. ‘정직하게 키워야 좋은 농작물을 수확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기술’도 중요하지만, 꼼수 부리지 않고 정직하게 밭을 돌보는 우직한 마음을 갖고 있어야 진짜 농부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정직하게 농사를 짓겠다는 나 스스로와의 약속을 되새기고, 조금 투박하더라도 그대로를 소비자에게 보여주고 싶은 마음을 담아 농장 이름을 지었습니다.
농사를 지으며 맞닥뜨린 어려움이 있다면?
사실 초기에는 직장을 다닐 때와 너무 다른 생활 패턴 때문에 고생했어요. 출퇴근 시간이 정해져 있는 직장 생활과 달리 농사는 해 뜨면 시작, 해 지면 야근이었거든요. 매일 야근을 하지는 않았지만, 농업 현장에 머무는 시간이 생각보다 길었습니다. 농업에 맞춰 생활 패턴을 바꾸기까지 족히 2년이 걸렸네요. 지금은 아침이 되면 저절로 눈이 떠질 정도로 농업인다운 생활 패턴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어려웠던 점은 아버지와의 의견 충돌이었습니다. 아무래도 오랫동안 농사를 지은 베테랑이니만큼 기존 방식을 고수하셨거든요. 새로운 재배법이나 농작업 법을 시도하기 어려웠지요. 그래도 지금은 누구의 방식이 더 효율적인지 농사에 적용해 시험해 보며 이견을 조율하고 있습니다.
온라인 위주로 제품을 판매하고 있는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귀농을 결심했을 때부터 온라인 판매를 염두에 두고 있었어요. 팬데믹 시기와 겹쳐 온라인 시장도 활성화되고 있었고요. 아버지께서 운영하실 때는 도매시장에 전량을 출하했는데, 그러면 경매 입찰로 제값을 받기 어려울 때가 많았습니다. 농가가 가격을 정하는 시스템이 아니니까요. 처음 온라인 쇼핑 기획전에 참가해 라이브 커머스를 진행했을 때 불과 몇 시간 만에 천 건이 넘는 주문을 받았습니다. ‘정말 큰 시장이구나’라고 느꼈지요. 이후 구매자들의 리뷰 수가 누적되고 좋은 평가를 얻으면서 판매율이 오르기 시작했어요. 중간 단계를 거치지 않고 직접 판매를 하다 보니 수익률도 훨씬 좋아졌습니다. 인터넷 쇼핑 스토어도 운영하고 있지만, 홈쇼핑이나 오픈마켓 상품 기획자들과 꾸준히 연락하는 것도 중요해요. 기획전 일정을 파악하고 부지런히 참가해야 더 많은 소비자에게 상품을 알릴 수 있고, 판매율을 높일 수 있으니까요.
나만의 농사 비법이 있다면?
시설 농업은 시기에 맞춰 작물이 가장 좋아하는 생육 환경과 비료물을 주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저는 물과 비료를 배합하는 비율을 생육 주기에 맞게 직접 만들어 넘치지 않도록 비료물을 주는 데 중점을 두고 있는데요. 비료물을 주는 방법을 달리하는 것만으로도 더 단단하고 풍미 있는 토마토를 생산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춘천에만 대략 320곳의 토마토 농가가 있고, 해마다 1만 톤이 훌쩍 넘는 토마토가 쏟아집니다. 그 가운데 우리 토마토가 많은 소비자들에게 선택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짙은 풍미와 아삭한 식감 덕분이 아닐까, 생각해요. 소비자들이 만족할 만한 품질 좋은 토마토를 수확할 때마다 큰 보람을 느끼고 있습니다.
청년 농업인이 성장하기 위해 필요한 지원은 무엇일까요?
현재 저는 춘천시 청년 4-H연합회 회장을 맡고 있습니다. 월례회와 워크숍, 대학 4-H연합회와의 체험 활동 등을 통해 지역 청년 농업인들과 소통하고 있는데요. 귀농 초기 청년 농업인의 고충을 들어보면 하나같이 초기 투자 비용에 대한 부담감, 수입이 없다는 막막함을 꼽고 있습니다. 청년 농업인의 정착을 돕기 위해서는 이미 진입한 청년 농업인을 대상으로 한 영농정착지원사업 추가 연장이나 신규 사업 추진 등이 필요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청년 농업인이 좀 더 단단하게 자리를 잡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귀농을 고민하는 지인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수입을 확보하기 힘든 귀농 초기를 비롯해 중장기 계획을 확실하게 설계하고 도전해야 합니다. 상황에 맞춰 임기응변으로 대응할 수도 있지만, 큰 틀을 계획해 두지 않으면 순식간에 방향성을 잃고 헤매게 될 것입니다. 본인의 설계도에 맞게 차근차근 한 단계씩 올라간다면 어느새 우리 농업·농촌을 이끌어가는 핵심 농업인으로 성장해 있을 것이라 확신합니다.
앞으로의 계획은?
고품질 농작물을 더 많이 수확하기 위해서는 효율적인 환경 제어 시스템을 구축해야 합니다. 향후 5년 안에 노후화된 시설을 새로 지을 계획을 하고 있습니다. 또, 지역 전략 작목 품목을 대형 유통 플랫폼에 공급할 수 있도록 유통 시설을 갖추는 방안도 고민하고 있습니다. 귀농을 결심했을 때 각오를 기억하며 농촌에 젊은 활력을 불어넣을 방법도 찾고 있습니다. 청년 4-H연합회 활동을 더욱 활성화하는 등 활기 넘치는 농촌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