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소나무와 참나무가 한데 어울려 숲을 이룬 강원도 영월 송학산 자락. 그 아래 터를 잡은 양봉장 하늘 위로 꿀벌들이 분주하게 날아다닌다. 이곳에 생태계 매개자인 꿀벌을 살리고, 블렌딩 꿀로 차별화된 가치를 만들어 나가는 ‘양봉곰’이 산다. 둥글둥글한 인상이 귀여운 곰을 똑 닮은 양봉곰 김민수 대표를 만나 유치원 선생님에서 농부로 새로운 꿈을 키워 온 과정을 들어본다.
귀농을 결심하게 된 계기는?
유아교육을 전공하고 대학 졸업 후 6년간 유치원 교사로 일했습니다. 학위 과정을 밟아 박사 학위를 취득해 교수를 꿈꾸기도 했는데요. 점점 심각해지는 저출산 문제로 유치원 교사를 꿈꾸는 학생 수가 줄어들면서 저 또한 다른 길을 찾게 되었습니다. 2022년 부모님께서 살고 계시던 영월로 돌아와 50년이 넘게 양봉업에 종사해 오신 아버지를 이어 양봉을 선택했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가 일하시는 모습을 지켜봐 왔기 때문에 뒤늦게 양봉에 뛰어들었지만 빠르게 적응할 수 있었습니다.
‘양봉곰’이라는 이름에 담긴 의미는?
많은 사람이 ‘꿀은 어른들이 먹는 건강식품’ 정도로 생각하고 있는 현실이 안타까웠습니다. 아이들과 젊은 사람들에게 더 친숙하게 다가갈 수 있도록 ‘양봉곰’이라는 귀여운 이름을 짓게 됐습니다. ‘영월에서 양봉하는 곰’이라고 하면 뭔가 만화나 동화 속 주인공 같지 않나요?
양봉을 하며 겪은 어려움이 있다면?
아버지께 일을 배우며 벌을 늘려갔기 때문에 초기 진입에 큰 어려움은 없었습니다. 보통 처음 양봉을 시작할 때 지역 주민들과 갈등을 겪을 때가 많다고 들었는데, 오랜 세월 영월에서 터전을 닦아온 아버지 덕분에 오히려 동네 어르신들의 응원을 받고 있어요. 하지만 자연 속에서 벌의 개체수가 눈에 띄게 줄어든 것을 확인할 때마다 꿀벌 위기 상황을 실감하게 됩니다. 실제로 많은 양봉 농가들이 기후 변화로 인한 급작스러운 냉해 등으로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요. 더 세심한 관리로 작은 생명들을 소중하게 지켜 나갈 생각입니다.
양봉을 하며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아버지와 함께 기르는 벌이 총 600군 정도 되는데, 그중 150군 정도를 제가 맡고 있어요. 꽃이 만개하는 5월이 되면 꿀 채집을 위해 벌통을 트럭에 싣고 전국 각지로 여행을 떠나는데요. 영월에서 고흥, 경주, 안동을 거쳐 다시 영월로 돌아올 때까지 밤마다 먼 거리를 이동해야 합니다. 하지만 꿀벌들과 동고동락하며매일매일 관찰하다 보니 작은 행동 하나하나가 소중하게 느껴지더라고요. ‘내 새끼’ 같다는 게 그런 느낌일까요? 그 순간이 준 벅차오름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나만의 양봉 비법을 공개한다면?
꿀벌은 작은 곤충이므로 항상 관심을 기울이고 세심하게 관리해야 합니다. 소소한 행동도 놓치지 않고 관찰해야 병해충을 예방하고, 냉해를 피할 수 있지요. 제가 벌통을 싣고 전국 각지로 떠나는 이유도 냉해에 대비하기 위함입니다. 겨울이 되면 날씨가 포근한 고흥에 벌통을 옮겨 놓고, 벌통마다 온열판을 설치해난방을 하고 있어요. 아무리 작더라도 ‘생명’을 키우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을 느낍니다. 또, 양봉은 햇빛이 강하지 않은 오전에 일을 모두 끝내야 합니다. 그래서 날마다 새벽 4시 반 무렵 일어나 하루 일과를 시작하는데요. 오전에는 벌을 돌보고 오후에는 블렌딩 꿀 개발과 제품 포장 등을 하고 있습니다. 시간을 소중히 여기며 부지런하게 움직이는 게 모든 농부의 비법 아닐까요?
양봉곰의 정체성으로 자리 잡은 ‘블렌딩 꿀’, 무엇이 다른가요?
아이들과 젊은 사람들이 꿀을 더 쉽고 맛있게 먹을 수 있는 방법을 찾다가 ‘블렌딩 꿀’에 대해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생소하지만 해외에서는 오래전부터 보편화되어 잼 대신 빵에 발라 먹거나 차, 요리 등에 다양하게 활용하고 있는데요. ‘이거다!’라는 생각이 번뜩 들었습니다. 해외 논문 등을 찾아 혼자 공부하고 많은 시행착오를 거친 끝에 매콤한 맛이 나는 스파이시 꿀과 향긋한 라벤더 꿀을 처음으로 완성할 수 있었어요. 현재는 다양한 허브와 향신료를 활용해 블렌딩 꿀 제품군을 확장해 나가고 있는데요. 블렌딩 꿀은 단순히 꿀과 재료를 섞는 게 아니라, 오랜 시간 숙성을 거쳐야 완성됩니다. 또, 숙성 후 원물을 거를 때 유실되는 꿀의 양도 많기 때문에 더 귀한 꿀이라 할 수 있습니다. 양봉곰의 블렌딩 꿀로 자연스럽게 꿀 속에 스민 다양한 맛과 풍미를 느껴보세요.
가장 인기 있는 블렌딩 꿀 제품은 무엇인가요?
양봉곰은 고추를 넣은 ‘얼얼허니’를 비롯해 라벤더 향을 품은 ‘라벤더허니’, 쑥 향이 진한 ‘쑥쑥허니’, 싱그러운 향이 매력적인 ‘블랙커런트허니’, 홍차와 어울리는 ‘얼그레이허니’, 깻잎 향이 가득한 ‘깻잎허니’, 마늘 향이 일품인 ‘알싸허니’, 아이들이 좋아하는 ‘카카오허니’ 등 다양한 블렌딩 꿀 제품을 생산해 판매하고 있습니다. 그중 가장 인기 있는 제품은 쑥쑥허니와 알싸허니인데요. 쑥쑥허니는 ‘처음 먹어보지만 익숙한 맛’이라는 평가가 많고, 알싸허니는 요리 등에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어 양봉곰의 인기상품으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현재 양봉곰이 생산하는 천연 꿀과 블렌딩 꿀은 인스타그램과 오프라인 마켓에서 구매가 가능하며, 내년 초부터 온라인 판매도 시작할 계획입니다.
양봉곰을 널리 알리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나요?
양봉장 주변에 수련원이 있는데, 단체 여행객들이 자주 방문합니다. 특히 봉사단체는 연령층이 다양하기 때문에 수련원을 방문할 때마다 시음 행사를 자주 열었어요. 솔직한 평가와 조언이 제품을 개선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됐습니다. 또, 사람들에게 양봉곰을 알리게 된 계기가 되기도 했지요. 지역의 다양한 베이커리, 카페 등과 협업을 통해서도 블렌딩 꿀을 알리고 있으며, 서울에 팝업 스토어를 열 계획인데요. 좋은 꿀을 선보이기 위해 열심히 준비하고 있으니 기대해 주세요.
청년 농업인의 성장을 위해 꼭 필요한 지원이 있다면?
귀농 이후 농업기술센터에서 받은 교육들이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또, 영월 농업희망대학에서 유통과 브랜딩에 대해서도 공부하고 있는데요. 이러한 교육의 장은 청년 농부들에게 만남의 장이 되기도 합니다. 앞으로 더 많은 농업 기술 교육의 기회가 주어지고, 청년 농업인들이 소통할 수 있는 공간이 확대되었으면 합니다.
앞으로 계획과 목표는?
아이부터 어른까지 누구나 좋아할 만한 건강하고 좋은 꿀을 판매하는 브랜드로 자리매김해 나가고 싶습니다. 요즘 산미가 느껴지는 시트러스 계열의 블렌딩 꿀과 커피를 활용한 블렌딩 꿀을 개발하고 있는데요. 신제품에 대한 많은 기대와 관심도 부탁드립니다.
귀농을 꿈꾸는 청년들에게 해주고 싶은 조언이 있다면?
무작정 재배하기 쉽고 생산성이 좋은 작물을 선택하기보다 더 먼 미래에 대한 꿈을 품고 귀농을 시작하면 좋겠습니다. 저도 아이들이 자유롭게 뛰어놀며 많은 경험을 할 수 있는 양봉장을 만들고 싶은 꿈이 있는데요. 현재에 안주하지 않고 미래를 꿈꾸는 사람만이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은 도시나 농촌이나 매한가지라는 사실을 기억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