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에서 만나다

도시농업으로 키우는 농업과 공동체의 가치

도시농업관리사

인천도시농업네트워크 김충기 도시농업관리사

아파트와 빌딩 숲으로 가득 찬 도심 속에서 농업의 가치를 이으며 새로운 마을 공동체를 만들어 나가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도시농부’들이다. 도시농업법이 시행된 지 어느덧 10여 년이 흐른 지금, 도시농업은 어떻게 발전해 왔을까? 또, 도시농업을 전국적으로 확산시킨 첨병 역할을 한 도시농업관리사는 어떻게 활약하고 있을까? 국내 최초 도시농업 단체인 인천도시농업네트워크를 이끄는 김충기 도시농업관리사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본다.

도시농업
확산의 주역,
도시농업관리사

점점 더 심각해지는 기후 위기와 식량 안보 문제를 해결하는 열쇠로 도시의 유휴 공간을 활용한 도시농업이 주목받고 있다. 도시농업은 이름 그대로 농촌이 아닌 도시의 땅과 건물 등 생활공간에서 농작물이나 동물을 기르는 것이다. 2012년 ‘도시농업 육성 및 지원에 대한 법률’이 제정되면서 전국적으로 확산하기 시작한 도시농업은 오늘날 많은 도시인에게 수확의 기쁨과 정서적 안정을 선물하고 있다. 나아가 삭막한 도시에 녹색 생태계를 조성하며 사람과 자연이 공생할 수 있는 풍요로운 환경을 만들고 있다.

“도시농업에 관심이 커지면서 2017년부터 도시농업관리사 자격제도가 시행됐습니다. 도시농업관리사는 도시민이 도시농업에 대한 이해를 높일 수 있도록 교육하고 기술을 보급하는 역할을 하는데요. 도시농업관리사로 일하기 위해서는 도시농업 전문 인력 양성기관에서 80시간의 교육을 이수하고 시설원예와 유기농업, 종자, 화훼장식, 조경 등 농업 계열의 기능사 이상 국가기술자격증을 취득해 자격 신청을 해야 합니다. 현재 도시농업 전문인력 양성기관은 각 지역 농업기술센터를 중심으로 100여 곳이 운영되고 있는데요. 2023년 기준 1만 1,000여 명에 이르는 도시농업관리사를 배출했습니다.”

도시농업은 일반적으로 농업인들이 짓는 농사 규모와 기술과는 큰 차이가 있다. 보통 도시 텃밭 형태로 농사를 짓는데 그 규모가 16~33㎡ 정도에 불과하다. 소규모 텃밭에서 효율적으로 농작물을 재배하고 수확하기 위해서는 파종 시기별로 키우기 유리한 작물을 구분해 심어야 한다. 하지만 도시농업에 참가하는 초보 도시농부들은 대부분 농사 경험이 없기 때문에 선배 도시농부로서 기술을 전수해 주는 도시농부관리사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도시농업관리사의 증가는 곧 도시농업 활성화로 이어진다.

“도시농업관리사는 도시농부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도시농업관리사의 증가는 곧 도시농업 활성화로 이어진다고 볼 수 있습니다. 도시농업관리사 자격제도 시행 이후 지역 소도시에서도 양성 과정을 운영할 정도로 도시농업이 활성화된 것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지요. 도시농업관리사가 강사로 활동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자격증만 갖추는 게 아니라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운영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춰야 하는데요. 그러기 위해서는 지속적으로 도시농업을 공부하고 농사법을 연구해야 하죠. 또, 아이부터 성인까지 다양한 연령층을 교육해야 하므로 누구에게나 스스럼없이 다가갈 수 있는 성향을 가진 분들에게 추천합니다.”

개인의 치유에서
공동체 회복으로

도시농업법이 시행되기 훨씬 이전부터 도시농업은 민간에서 주말농장 등의 다른 이름으로 불리며 농업에 관심 있는 도시민들의 발길을 이끌었다. 김충기 도시농업관리사가 이끄는 ‘인천도시농업네트워크’는 2007년 민간 주도로 설립된 국내 최초의 도시농업 단체이다. 인천도시농업네트워크는 텃밭 농사의 기초 이론과 실습을 진행하는 도시농부학교, 텃밭 보급 사업, 도시농업 컨설팅 등 다양한 사업을 펼쳐 왔으며, 2014년부터 도시농업 전문 인력 양성기관으로 지정되어 831명의 도시농업전문가를 배출하기도 했다.

“인천도시농업네트워크는 450여 명의 회원이 활동하고 있습니다. 인천 남촌농산물도매시장 과일동 옥상에 4,716㎡ 규모로 조성된 ‘해바람텃밭’을 비롯해 공동체 텃밭 다섯 곳을 운영하고 있는데요. 이 외에도 교육청, 농림축산식품부와 연계한 학교 텃밭 관련 사업에도 활발하게 참여하고 있습니다.”

최근 인천도시농업네트워크가 주목하는 도시농업의 역할은 ‘마을 공동체’로서의 진화이다. 치유나 힐링 같은 개인적인 가치보다 도시농업의 사회·환경적 가치에 집중하고 있다.

“도시농업은 다양한 역할과 기능을 하고 있어요. 개인에게는 농업과 자연으로 치유를 선물하고, 먹거리를 직접 생산하고 소비하는 활동은 사회·경제적인 기여를 하고 있죠. 또, 도시농업은 친환경을 지향하는데요. 농사를 지을 때 비닐이나 화학 비료 사용을 지양하고 음식물 쓰레기를 퇴비로 재활용하는 등 자연 친화적인 시도를 다양하게 하고 있습니다. 텃밭 회원을 중심으로 ‘마을 공동체’를 함께 운영하고 있는데요. 농사도 재미있지만, 도시농업의 가치를 함께 나눌 수 있는 이들과의 만남은 매일매일 새로운 설렘을 선물해 줍니다.”

인천도시농업네트워크에서 파생한 공동체 텃밭은 500여 명의 회원이 마을 공동체를 이루어 자율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공동체 텃밭 회원들은 운영위원회를 꾸려 다양한 행사를 열고 있는데, 그중 올해 6회째를 맞이한 텃밭 그림 그리기 대회는 아이들에게 농업의 가치를 자연스럽게 전파하는 교육의 장이 되고 있다.

“지난해 공동체 텃밭 회원들이 힘을 합쳐 활동 자료집을 만들었는데, 책을 펼쳤을 때 감회가 새로웠어요. 이 정도까지 공동체가 성장할 수 있을 줄 몰랐거든요. 도시에서 점점 잊혀가는 공동체의 가치를 더 많은 사람에게 일깨워주고 싶습니다.”

농업으로
키우는 ‘함께’의 가치

지난해 농림축산식품부는 ‘제3차 도시농업육성 5개년 종합계획’을 통해 도시농업이 갖는 환경적, 사회적 가치 등을 활용한 다양한 활동을 지원하고 도시민과 농업인, 기업 등이 상생하는 체계를 만들 것이라는 계획을 밝혔다. 김충기 도시농업관리사는 “군 단위 지역까지 도시농업이 확산한 지금, 양적 성장은 충분히 이루었으니 이제 질적 성장을 고민할 때”라고 강조했다.

“공동체의 가치를 일깨우고 생태 전환 교육을 통해 미래 세대에게 농업의 소중함을 전하는 것이 도시농업이 앞으로 나아갈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많은 농업인이 도시농업에 대해 ‘농민의 역할을 빼앗는 것이 아닌가?’ 오해하는데요. 도시에서만 할 수 있는 농업의 역할이 따로 있다고 생각해 주면 좋겠습니다. 농사를 지어보지 않은 사람은 농업과 먹거리의 가치를 알지 못합니다. 농업을 이해하고 먹거리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데 도시농업은 주요한 역할을 합니다. 그런 점에서 오히려 도시농업은 우리 농업인에게 든든한 지원군이 되어줄 것입니다. 실제로 도시농업을 하다가 귀농하는 분들도 많은데요. 앞으로 도시농업이 도농상생의 교두보 역할을 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김충기 도시농업관리사는 ‘앞으로 도시농업이 주말농장과 같은 단기적인 활동에서 장기적인 활동으로 변모해 나가야 공동체의 기반을 다질 수 있을 것’이라며 이에 대한 집중 투자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지난주 인천도시농업네트워크에서 도시농업관리사 양성 과정 수료식을 진행했습니다. 수료자 중 유독 기억에 남는 분이 있는데요. 밝고 쾌활한 성격을 갖고 있는 평범한 직장인이었습니다. 양성 과정 중간에 조별 간담회를 진행한 적이 있는데, 그 자리에서 우울증을 앓고 있다고 이야기하더군요. 정기적으로 약물과 상담 치료를 병행해 왔지만, 결국 텃밭에 와서야 ‘숨이 트였다’ 고 했어요. 생태적인 삶 속으로 들어와 자연스럽게 공동체에 스며드는 동안 혼자서는 경험해 보지 못한 즐거움과 행복을 느낄 수 있었다고 해요. ‘함께’라는 것의 가치란 그런 게 아닐까요?”

온통 회색 고층 건물 일색이던 도시에 벌과 나비가 날아오고, 건물 옥상과 외벽이 초록으로 물들어 가는세상을 상상해 본다. 사람과 자연이 조화롭게 공생하는 도시의 모습은 우리 모두가 바라는 미래일 것이다. 더 나은 세상을 향한 희망은 작은 씨앗 한 알을 심는 데서 비롯된다. 그 싹을 틔우는 막중한 책임을 안고 있는 이 땅의 도시농부들에게 격려를 보낸다.

인천도시농업네트워크
참여문의: 032-201-4549
블로그: www.dosinong.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