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움의 힘

갖가지 맛을 어우르는 여름 미식

상추쌈

한국인들은 쌈 싸 먹기를 좋아한다. 그중 상추쌈은 예부터 농부의 밥상에서 임금님 수라상에도 올랐을 정도로 누구나 즐겨 먹었던 음식이다. 어떤 재료들을 넣어도 그 맛을 한데 어우르고, 몸을 차게 해주는 성질까지 있기에 더운 여름 입맛을 돋우는 별미로 제격이다. 오래전부터 상추쌈과 함께해 온 우리네 일상을 되돌아본다.

습기 그리고 더위와 더불어 살아야 하는 즈음이다. 그래도 한 김 나간 밥에 어울리는 쌈이 있고, 거기 어울리는 별미장이 있어 한국인은 다시 힘을 낼 수 있다. 지난 연재 ‘김밥’ 편에서 이미 조선 문인 이덕무(李德懋, 1741~1793)가 남긴 상추[苣萵]쌈·취[馬蹄菜]쌈·김[海苔]쌈 이야기를 살짝 언급했지만, 쌈이 언제 시작되었는지 따지기란 어려운 일이다. 그저 텃밭 채소에서부터 산과 들의 나물이며 바닷말까지 다 잘 먹는 우리네 먼 조상들의 일상에서, 자연스레 쌈이 태어났으리라는 싱거운 소리를 해볼 수 있을 뿐이다. 여기에는 지역도 상하· 귀천도 없었다.

“ 상춧잎에 보리밥 둥글게 싸 삼키고는(萵葉團包麥飯呑)/

고추장에 파 뿌리를 찍어 곁들이지(合同椒醬與葱根)/

올해 가자미잡이는 시원찮은데(今年比目猶難得)/

잡히면 죄다 말려 관아에 바쳐야 한다네(盡作乾鱐入縣門)”

정약용(丁若鏞, 1762~1836)이 유배지 장기에서 쓴 서사시 <장기농가(長鬐農歌)>속의 한 장면이다. 오늘날에도 온갖 종류의 가자미가 많이 나고 또 잘 먹기로 포항과 그 일대를 빼놓을 수 없다. 여름 노동의 나날 아래 상추쌈 싸 넘기고 고추장 곁들이는 포항 사람들의 일상이 생생하다. 그의 둘째 아들 정학유(丁學游, 1786~1855) 또한 당시 농촌의 열두 달을 읊은 장편 가사 <농가월령가(農家月令歌)>에서 들판의 상추쌈을 이렇게 노래했다.

“ 아기 어멈 방아 찧어 / 들바라지 점심 하소 /

보리밥 파찬국의 / 고초장 상채쌈을 / 식구를 헤아려서 /

넉넉히 능을 두소 / 샐때의 문에 나니 / 개울에 물 넘는다”

<농가월령가>의 무대는 경기도이다. 어디서든 상추쌈은 요긴한 노동 음식이었다. 그 쌈을 넘길 때 고추장은 쌈을 한층 맛나게 하는 별미장이었다. 여름 파 향이 훅 끼치는 파 냉국도 여기 어울렸다. 이렇게 상추쌈으로 한 끼를 먹고는 다시 일을 시작한다. 이 모습은 오늘날 한국인의 일상과 별로 다르지 않다.

상추쌈. 아예 기록 자체가 없지는 않다. 이익(李瀷, 1681~1763)은 자신의 저술 『성호사설(星湖僿說)』, 제5권 ‘만물문(萬物門)’에 원나라 시인 양윤부(楊允孚)가 고려 사람의 상추쌈을 읊은 시구를 소개했다. 그 아래, ‘우리나라 풍속은 지금까지도 그러해서 채소 가운데 잎이 큰 것은 모두 쌈을 싸 먹는데, 상추쌈을 제일로 여기고 집마다 심는다. 쌈을 싸 먹기 위해서다’라고 부연했다. 이러나저러나 상추쌈 사랑은 참으로 면면하다. 게다가 이왕 먹을 쌈을 싼다면 보다 맛나게 먹으려 들었다.

류몽인(柳夢寅, 1559~1623)의 『어우야담(於于野譚)』을 펼쳐 보자. 서울에서, 그래도 굶지 않고 사는 사람들은 자기 집 텃밭에다 상추를 길러 이렇게 싸 먹었다. ‘이슬을 머금고 비를 맞아 잎이 파초처럼 너푼너푼 자라 연하고 싱그러운 모양’이 되면 그 상추를 ‘대바구니가 넘치도록 따 담는다’. 여기에 ‘달기가 벌꿀 같고 빛깔이 말피 같은 된장’을 담가 마련한다. 이윽고 인천 안산 바다에서 그물로 잡은 밴댕이가 시장에 나오면, 그놈을 사다 기름간장을 발라가며 석쇠에 굽는다. 이제 상추는 물기를 탈탈 털어 손바닥에 벌려 놓는다. 그 위에 쌀밥을 한 숟갈 떠 올린다. 그 위에 다시 고소한 된장을 얹고, 그 위에 다시 노릇노릇 구운 밴댕이를 올려 쌈을 싼다. 그러고는 ‘남대문 열리듯 입을 떡 벌리고 쌈을 밀어 넣었다.’

쌈의 미식, 미식으로서 쌈의 기록은 자신만의 자유로운 문체를 고집하다가 정조 임금에게 밉보여 성균관에서 퇴학당한 이옥(李鈺, 1760~1813)이 쓴 문장에서 절정을 이룬다. 이옥은 상추를 유달리 좋아했다. 어떻게 먹든 ‘달게 먹[甘之]’었다. 품종도 구분했다. 이옥에 따르면 당시 조선에는 ‘상불로(裳不老)’와 ‘오십엽불로(五十葉不老)’ 두 가지 상추가 유통됐다. 오십엽불로는 ‘삼월불로(三月不老)’라고도 했다. 상불로는 줄기가 굵고 잎이 넓고 짙푸르러 적흑색을 띠고 주름치마처럼 주름이 많이 진 상추다. 오십엽불로는 줄기는 가늘고 잎은 좁으며 주름이 떡갈나무처럼 조금 지고 흰색을 많이 띠는 상추다.

아무튼 한여름 단비가 처음 지나가고 ‘상춧잎이 마치 푸른 비단 치마’처럼 자라면 상추쌈의 계절은 시작이다. 좋은 상추는 물에 한 번 담갔다가 두 번 깨끗이 씻어 준비한다. 두껍고 넓은 상추 두 장을 뒤집어 손바닥에 펴고, 흰밥을 올리고, 그 위에 다시 얇게 뜬 송어회를 겨자장에 담뿍 찍어 얹는다. 송어회에는 미나리와 시금치를 곁들여도 좋다. 가는 파와 향기로운 갓 서너 가닥을 회에 얹어도 좋다. 막 볶아낸 고추장도 바른다. 그러고는 오른손으로는 쌈을 입에 밀어 넣고, 왼손으로는 오른손을 받친다. 쌈은 한입 가득! 느긋하게 씹다가 천천히 삼켜야 한다. 그러면 “달고 상큼하고 정말 맛있어서 더 바랄 것이 없게 된다[旣甘且爽允美, 無量當其].”

상추, 상추쌈, 상추쌈의 일상은 이렇게 이어졌다. 잘 익은 고추장, 온갖 별미장, 약고추장, 바특하게 지진 장, 여름 채소며 버섯이며 우렁이 등과 어울린 장, 양념해 굽거나 볶은 고기, 생선구이, 생선을 비롯한 해산물을 넣고 바짝 조린 장 등등 곁들이는 먹을거리의 감각, 그 관능의 감각도 이어지고 있다. 다음 세기에도, 이 모습은 이어질 듯하다. 어린이도 청소년도 오늘, 쌈만큼은 싫다 하지 않고 싸고 있으니 말이다.

오늘날의 경상북도 포항시 남구 장기면 일대.

오늘날 한국어로 풀어 쓰면 이렇다: ‘아기 어멈은 방아 찧어 들일 나간 사람을 위해 점심을준비하소. 보리밥과 파냉국에 고추장과 상추쌈이 좋지. 함께 먹을 식구 수 헤아려서 여유 있게 마련하소. 새참 때 문 밖을 나서는데 개울물이 넘친다.’

필자 소개

대학에서 고전문학을 공부했다. 고전문학 작품 번역과 해제 및 음식문헌 읽기와 정리에도 힘쓰고 있다. 현재 경향신문 기명 칼럼 <고영의 문헌 속 밥상>을 연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