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스트푸드점에서 만난 부부, 슬로푸드로 시작한 새 인생

유명 패스트푸드 프랜차이즈에서 일하며 만나 부부의 인연을 맺게 된 장현미 대표와 정대기 이사 부부가 귀농을 결심하고 남원에 내려온 것은 지난 2010년이었다. 어린 시절을 시골에서 보낸 부부는 결혼하고 아이를 낳으며 귀농에 대한 결심을 굳혀 왔던 터였다.

“남편은 오랫동안 귀농을 고민해 왔던 것 같아요. 저도 시골에서 자랐지만 도시 생활에 익숙해졌기에 처음에는 귀농을 제안하는 남편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남편의 지속적인 설득으로 저 또한 귀농을 결심하게 되었어요. 한과 장인으로 오랜 세월 기술을 닦아 오신 시어머니가 계신 남원으로 내려와 한과 만드는 기술을 전수하였습니다.”

장현미 대표가 기술을 전수하기까지 족히 2년여의 세월이 걸렸다. 귀농 전 매장 관리 업무를 맡았던 때와 달리 시어머니의 ‘손맛’을 이어가는 일은 생각보다 녹록지 않았다. 여느 어머니들이 그랬듯이 정량의 레시피 없이 오로지 손끝에서 나오는 맛을 따라잡기란 어려운 일이었지만 열심히 공부하고 시행착오를 거치며 몸으로 체득했다. 이처럼 어렵게 전수한 기술이었지만 한과는 찾는 소비자가 많지 않고 계절을 타 수익을 높이기 어려운 상품이었다. 그래서 장류로 상품을 넓히게 되었다.

“메밀꽃 피는 항아리라는 회사명은 장류를 담그면서 지은 이름이에요. 항아리 속에서 간장이 맛있게 숙성되면 그 위에 하얗게 곰팡이가 피는데, 그걸 메밀꽃이라고 불러요. 여기서 메밀꽃 피는 항아리가 탄생했지요.”

정직한 고집이 만든 신뢰

전통 한과에서 장류로 변화를 도모했지만, 여전히 막막함을 느낀 부부는 ‘떡’으로 눈을 돌렸다. 처음 만들어 판매한 것은 송편이었다.

“송편은 추석 음식이라는 편견이 있어 판로 확대에 어려움이 있었어요.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떡볶이 떡이에요. 떡볶이는 남녀노소에게 언제나 인기 있는 음식이니까요. 코로나19로 모두가 힘들었던 시기에 모짜렐라 치즈 떡을 출시하며 걱정도 많았는데, 오히려 그해 매출이 세 배나 올랐습니다. 건강한 먹거리를 원하던 소비자의 요구에 우리 제품이 부합했던 것 같아요.”

부부는 처음 귀농할 당시부터 줄곧 ‘우리 농산물을 주원료로 사용하고 누구나 안심하고 먹을 수 있는 바르고 건강한 먹거리’를 목표로 했다. 한과에서 장류, 그리고 떡으로 품목을 변화하면서도 그 원칙을 고수했다. ‘낭만부부’라는 새로운 브랜드로 떡 제품을 출시하면서도 화학조미료, 색소, 방부제가 없는 것은 물론 도정 15일 내 국산 쌀을 고집했다. 값싼 원재료로 대량 생산하는 제품에 비해 가격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단점도 있었지만 개의치 않았다. 오랜 세월 이어온 바른 먹거리를 향한 정직한 고집은 마침내 빛을 발했다.

“오랜 시간 품목을 바꾸며 성과를 거두지 못했을 때는 마치 어두운 터널을 지나는 듯한 느낌이 들었어요. 하지만 떡으로 품목을 바꾸고 팬데믹 시기에 오히려 온라인 매출 비중이 크게 올랐을 때 우리의 가능성을 확신할 수 있었습니다.”

팬데믹 이전부터 부부는 온라인 판매 준비를 하고 있었다. 미리 준비한 자가 기회를 잡는 법. 예상하지 못했던 팬데믹으로 온라인 판매가 활성화되고, 낭만부부가 추구한 ‘건강하고 바른 먹거리’라는 이미지가 부각되면서 소비자들의 관심을 끌었다. 값싼 원재료를 사용하는 등 이윤만 추구했다면 이룰 수 없었던 성과다.

“정직하고 바른 먹거리를 향한 우리의 고집이 없었다면 이룰 수 없었던 성과라고 생각합니다. 처음 이곳에 정착할 당시 주변이 모두 논이었는데, 천천히 흙을 채우고 기반을 다지며 터전을 닦았어요. 욕심내지 않고 정도를 걸어온 것이 성장 비결이라면 비결 아닐까요?”

올해 7월 1일은 부부에게 잊을 수 없는 기념비적인 날이었다. 낭만부부의 브랜드를 내건 제품을 필리핀에 직접 수출한 날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지자체를 통한 간접 수출은 해 왔지만 직접 수출은 처음이었다.

“초도 물량은 샘플 납품 수준이지만, 현지 반응과 매출에 대한 기대가 큽니다. 4~5년 전부터 해마다 식품 박람회에 참가하고 있는데, 올해 만난 필리핀 현지 바이어가 우리 제품에 큰 관심을 가져준 덕분에 불과 몇 주 만에 수출이 성사되었어요. 현지 소비자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았으면 좋겠네요.”

온 세상에 피어날 메밀꽃을 꿈꾸며

‘낭만부부’라는 브랜드는 ‘항상 마주 보고 선 부부의 모습이자 농부와 소비자의 신뢰를 바탕으로 함께 손을 맞잡고 나아가는 모습을 상징한다’고 한다. 브랜드 이름에 담긴 의미처럼 부부는 낭만부부가 취약계층에 안정적인 일자리를 제공하고 지역 사회와 함께하길 희망한다.

“이곳에서 일하는 직원 수는 총 15명 정도 됩니다. 이들 모두 지역 주민들인데요. 직원들 모두 ‘우리 회사’라는 자부심을 갖고 함께 성장해 나가길 바랍니다.”

장현미 대표가 직원들에게 늘 입이 닳도록 강조하는 것이 있다. 바로 건강과 안전. 순식간에 일어날 수 있는 미끄럼 등 아차사고를 주의하라고 날마다 강조한다.

“이곳에서 일하는 사람과 지역이 함께 행복하고 상생하는 기업이 되고자 합니다. 함께하면 더 멀리, 더 빨리 갈 수 있으니까요.”

장현미 대표는 “앞으로 먹거리뿐 아니라 제가 좋아하는 원예 체험까지 경험할 수 있는 복합문화공간으로 발전시키고 싶다”는 중장기적인 포부를 밝혔다. 또, “회사에서 먼 곳에 살아 출퇴근이 힘든 직원들을 위해 기숙사를 건축하고 싶다”고 전했다. 이는 회사와 직원, 그리고 지역 농가들이 모두 함께 성장해야 이룰 수 있는 꿈이다.

“해마다 300톤가량의 제품을 생산하고 있지만 여전히 우리 회사나 브랜드에 대해 모르는 분이 많습니다. 하지만 박람회에 참가하는 햇수가 늘어가면서 우리 브랜드를 알아봐 주는 고객과 바이어를 만날 때마다 큰 힘을 얻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메밀꽃 피는 항아리와 낭만부부가 쌓아온 신뢰가 더 두터워질 수 있도록 정직하고 바른 먹거리만을 판매하겠습니다.”

‘진심은 통한다’는 말이 있다. 이는 신뢰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성립될 수 없다. 지난 14년 가까이 바른 먹거리를 향한 올곧은 약속은 부부의 ‘진심’을 보증한다. 깊고 오래된 항아리에서 찬란한 메밀꽃을 피워낸 낭만부부의 진심이 더 큰 세상에 닿을 날을 고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