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가 먼저 인정한 가치
온몸을 뒤덮은 검은 줄무늬가 이름 그대로 칡덩굴을 닮은 칡소는 오랜 세월 우리와 함께해 온 토종 한우다. 정지용의 시 ‘향수’에서 고향을 묘사하는 구절 중 한 부분인 ‘얼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에서 말하는 얼룩백이 황소가 바로 칡소를 말하며, 우리에게 익숙한 동요인 ‘송아지’의 노랫말에 나오는 얼룩송아지도 칡소를 가리킨다.
우리 곁에서 칡소가 자취를 감추기 시작한 때는 일제 강점기다. 일본이 1938년 한우 심사 표준을 만들어 우리 한우 털색을 붉은색으로 통일한다고 규정했기 때문이다. 털색을 통일하면서 다른 털색 품종을 도태시킨 것이다. 광복 이후에도 황소 위주로 한우 개량 사업이 진행되면서 칡소를 비롯한 토종 한우들이 사라져 갔다.
멸종위기에 처해 있던 칡소가 다시 주목받은 것은 지난 2013년 ‘맛의 방주’에 등재되면서부터다. ‘맛의 방주’ 란 슬로푸드 국제본부➊가 음식문화유산 소멸을 막고 세계 음식에 관심을 두자는 취지로 전통 종자를 보호하고 그 지역 음식과 문화를 보전하는 활동이다. 현재 전 세계에서 6,300여 종이 등재되어 있는데, 우리나라는 111종이다. 그중 처음으로 등재된 것이 바로 칡소다.
세계가 먼저 인정한 칡소의 맛은 과연 어떨까? 국립축산과학원에서 칡소 고기 맛 특성을 조사한 결과, 유리아미노산 함량 분석에서 단맛과 관련된 알라닌, 프롤린, 트레오닌이 많은 편으로 나타났다. 향기 성분을 분석한 결과에서는 구운 고기 향을 내는 피라진류 함량이 높았다. 한마디로 차별화된 감칠맛과 남다른 고기 향을 지니고 있어 일반 한우와는 차별화된 별미로 즐기기에 충분하다는 뜻이다. 또한 칡소는 영양학적으로도 가치가 높다. 근내 지방 함량이 낮아 마블링은 적지만 단백질 함량이 높아 저지방 고단백질 식품 급원으로 가치가 있다.
하지만 칡소는 멸종위기에 처해 있어 번식할 수 있는 수소 숫자가 매우 적고 털 색깔의 유전 양식도 복잡하다. 이에 농촌진흥청은 지난 2008년 국내 가축 유전자원 발굴· 보존 프로젝트의 첫 과제로 칡소와 흑우 증식·보존 계획을 발표했다. 먼저 칡소 증식을 위해 유전자원을 확보하고 자체 개발한 수정란 이식 기술을 이용해 체내에서 수정된 수정란을 황소 10마리에게 이식했다. 그 결과 절반이 임신에 성공하며 칡소 복원에 청신호를 켰다.

칡소를 되살리기 위한 노력과 결실
농촌진흥청 국립축산과학원을 비롯해, 도 축산 관련 연구기관, 한국종축개량협회는 2013년부터 칡소의 개량과 보존을 위해 전국 농가 칡소의 털색 및 혈통을 조사하는 개량 사업을 시작했다. 국립축산과학원 가축개량평가과에서는 ‘칡소 시스템’을 개발, 운영하면서 칡소의 친자 감정을 통한 정확한 혈통 정보 입력, 칡소 무늬 발현에 영향을 미치는 털색 유전자형 분석, 칡소의 털색 표현형(사진 촬영) 자료를 수집·관리하고 있다. 또한, 칡소의 순종 교배와 근친 교배로 인한 퇴화를 방지하기 위해 8개도 축산 관련 연구기관과 협력하여 각 도에서 선발한 칡소 씨수소의 정액을 교환하는 협의회를 연 2회 열고 칡소를 개량하고자 하는 농가에서 교배에 사용할 수 있도록 정액을 공급하고 있다.
한편, 국립축산과학원은 ‘칡소 시스템’에 입력한 자료를 바탕으로 2016년 칡소 털 색깔의 적정 판단 시기를 제시했다. 털 색깔은 칡소를 구분 짓는 가장 큰 특징으로 뚜렷한 줄무늬가 칡소의 가치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한다. 그러나 칡소의 털 색깔은 송아지 때부터 다 자랄 때까지 패턴이 변화해 농가에서 칡소의 털 색깔 특징을 결정하는 데 혼란을 야기했다. 국립축산과학원은 호반 무늬의 발현 강도에 따라 7단계 털색 분류 기준을 정함으로써 칡소의 다양한 털색 발현 형태를 쉽게 구분할 수 있도록 했다. 이와 더불어 칡소의 털 색깔은 24개월령경에 판단하는 것이 적정하며, 호반모 발현 비율을 높이기 위한 육종 계획과 교배 조합 설정은 털 색깔이 고정된 24개월 이상 칡소를 대상으로 실시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밝혀 농가 혼란을 방지하는 데 기여했다. 또한 2022년부터는 칡소 유전체 정보를 수집하고 유전능력을 평가해 유전능력이 우수한 씨수소를 선발하는 등 칡소 개량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2024년 하반기 칡소 개량협의회에서는 농가 칡소의 유전체 정보를 분석하여 유전능력이 우수한 개체를 가려내고, 이를 개량에 활용할 수 있도록 8개도 연구소 담당자와 협의를 진행한다. 또한, 유전능력 기반으로 칡소 씨수소를 선발하는데 특히, 체중과 근내지방도 개량을 중점적으로 하기 위한 ‘선발지수식’을 도 연구소와 논의하여 결정하고, 하반기 칡소 씨수소 선발부터 적용할 계획이다.


우리 유전자원 보존은 미래 세대를 위한 책무
위와 같은 농촌진흥청의 노력으로 한때 칡소 수는 4,000여 마리까지 늘었다. 하지만 현재는 그 수가 다시 줄어 2,300여 마리에 머물러 있다. 이 같은 감소 요인은 칡소에 대한 소비자 인지도가 부족한 데서 찾을 수 있다. 또, 칡소는 일반 한우보다 사육 기간은 더 긴 반면 몸집이 작아 출하 시 농가에서 손해를 보는 경우도 많다.
현재 전국 칡소 사육 농가 수는 221곳에 머물고 있다. 어려움 속에서도 칡소 농가들이 사육을 포기하지 않는 이유는 칡소에 대한 애정과 함께 우리 고유 유전자원을 지킨다는 자부심과 사명감 때문이다. 앞으로 칡소 농가의 자생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경제성과 소비자 인지도,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아야 할 것이다. 국립축산과학원이 칡소 개량 연구에 몰두하는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다.
칡소는 마블링은 적지만 육질이 매우 부드러워 건강하게 먹을 수 있다. 또, 고기 향도 남달라 국을 끓였을 때 특유의 진한 풍미를 느낄 수 있다. 음식에 대한 개개인의 취향이 점점 세분화되고 다양해지면서 더 특별한 맛을 찾는 소비자들에게 칡소는 매력적인 대안이 될 것이다.
실제로 인구수가 적은 울릉군에서 180여 두만 사육되는 울릉 칡소는 일반 한우보다 40%가량 비싼 몸값에도 출시될 때마다 ‘완판’을 하고 있다. 청정섬에서 풀과 천연 암반수를 마시며 자란 한우로 입소문이 나면서 지난 13년간 내놓기가 무섭게 조기 완판됐다. 이와 더불어 얼마 전 34곳의 칡소 사육 농가가 있는 강원도 고성군에서도 기쁜 소식이 들려왔다. 500번째 칡소가 태어나며 국내 최대 칡소 사육지로 자리매김하게 된 것이다. 칡소가 이미 산업화를 위한 첫발을 뗐음을 방증하는 사례들이다.
칡소와 같이 우리 토종 품종이자 유전자원 가치가 있는 희소 가축을 보존하는 것은 다음 세대를 위한 책무다. 지금 당장 생산성이 낮고 경제성이 뒷받침되지 않아도 미래 자원으로 계속해서 이어 나가야 할 소중한 우리의 자산이다. 농촌진흥청은 앞으로도 개량 연구를 지속해 칡소의 품질을 높이고, 국민들에게 칡소의 가치를 널리 알리기 위해 최선을 다할 계획이다.
칡소는 고소한 등심, 살살 녹는 안심, 부드러운 채끝살, 쫄깃한 안창살까지 다양한 부위를 구이로 즐길 수 있다. 지방은 적지만 육질이 부드러워 흔히 국이나 찜, 장조림 등으로 요리하는 양지 부위도 울릉도에서는 문어를 넣고 매콤하게 볶아낸 칡소문어두루치기로 즐긴다. 씹을수록 담백하고 고소하다는 칡소의 맛은 과연 어떨까? 어느새 추석 명절이 코앞으로 다가온 지금, 맛과 건강, 친환경성, 전통문화의 계승 그리고 프리미엄 가치를 모두 갖춘 ‘칡소’를 선물하며 고마운 사람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해보자. 오늘날 소비자들이 추구하는 다양한 가치와 맞닿아 있는 ‘칡소’ 가 명품 토종 한우로서 축산 농가의 새로운 경쟁력으로 자리 잡기를 바란다.

➊지역의 사라져가는 식문화와 전통을 지키고 제대로 된 먹을거리를 알리기 위해 1989년 설립된 비영리 국제기구로 이탈리아에 본부가 있으며 현재 180여 개국이 가입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