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농촌에서 START

고부의 손맛,
깊이를 더한 전통 된장

여름을 지나 어느새 선선한 가을바람이 불어온다. 따사로운 햇살이 스며들며 항아리 속 장맛이 점점 더 깊어지는 시간. 쿰쿰하면서도 구수한 장 냄새가 발길을 멈추게 하는 그곳에서 청년 농부 박명희 대표를 만났다. 경상북도 예천으로 귀촌해 시어머니의 손맛을 이어받은 지 어느새 12년의 세월이 흘렀다. 오랜 세월만큼 깊어진 박명희 대표의 맛과 삶을 들여다본다.

회룡포 장수진품

박명희 대표

귀농을 결심하게 된 계기는?

가업을 잇고 싶다는 남편의 바람에 따라 귀농하게 되었습니다. 시부모님께서 전통 장을 빚고 계신다는 건 결혼 전 알고 있었어요. 일궈 놓은 기반이 워낙 탄탄했고 전통 발효 사업이 크게 성장할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망설임 없이 도전할 수 있었어요.

회룡포 장수진품은 어떤 회사인가요?

회룡포 장수진품은 100% 지역 농산물을 이용해 전통 방식으로 장을 생산하고 있습니다. 시부모님께서 지켜오신 고유의 맛을 이어가는 한편 상품군은 확대하는 중입니다. 된장, 고추장, 청국장 등 전통 장류에서 참기름과 들기름 등 유지류로 상품군을 다양화했으며 이 외에도 선식과 볶은 깨 등을 판매하고 있습니다. 가장 최근에는 ‘40초 큐브된장’도 출시해 즉석간편조리식품 시장에도 진출했습니다. 또, 농촌교육농장을 운영하며 전통 발효 식품을 이해하고 경험할 기회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회룡포 장수진품이 생산하는 전통 장, 무엇이 다른가요?

재료 재배부터 제품 생산까지 전 과정을 원스톱으로 운영하고 있어 믿고 먹을 수 있습니다. 무쇠 가마솥에 콩을 삶고, 발로 디뎌서 으깨고, 친환경 볏짚에 자연 발효를 시켜 메주를 만듭니다. 전통을 고수하며 옛 맛을 지키고 있어요. 쥐눈이콩이나 뽕잎 등을 첨가하며 다양한 시도를 했는데요. 새로운 맛을 만들기보다는 사라져가는 옛 맛을 이어 나가는 게 장수진품이 선택한 길입니다.

40초 큐브된장의 개발 이야기가 궁금합니다

전통의 맛을 이어가겠다고 해놓고 즉석간편조리식품이라니 웬 말인가 하시는 분들도 있을 거예요. 하지만 조리 방법이 간편해야 전통 장 소비도 늘어날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요즘 아이는 물론 어른도 된장을 즐기는 사람이 많지 않은데요. 장 담는 엄마를 둔 우리 아이들은 전통 장을 즐겨 먹는데 놀러온 아이 친구들은 된장을 즐겨 먹지 않는다는 말에 더 간편하게 건강하고 맛있게 전통 장 먹는 법을 고민하다가 40초 큐브된장을 만들게 되었습니다. 큐브 형태의 건조 간편식은 시중에 많이 나와 있지만 40초 큐브된장은 첨가물을 최대한 줄이고 우리 전통 장을 활용해 재료 본연의 맛을 느낄 수 있다는 점으로 차별화를 두었습니다. 예천군 농산물가공기술지원센터의 도움을 받아 1년에 걸쳐 개발해 완성할 수 있었는데요. 오랜 시간과 노력의 결실이니만큼 많은 분이 맛보고 애용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청년 농업인으로서 정착하기까지 어려움은 없었나요?

시어머니의 손맛을 잇는 과정이 녹록지 않았습니다. 시어머니의 방식은 재료를 계량해서 만드는 방식이 아니라 눈대중과 감으로 익혀야 했기에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어요. 경북농산물가공연구회 장류분과 총무로 일하면서 회원들과 만나 해마다 발효에 대해 소통하고 배우고 있는데요. 그 과정에서 눈대중과 감으로 이어가던 손맛을 일정한 맛과 품질로 유지하기 위해 재료 정량을 정리하는 등 차근차근 준비하고 노력을 이어왔습니다. 홍보와 마케팅은 예천군 농업기술센터의 도움을 받았고요. 남들이 보기에는 조금 느릴지 몰라도 나만의 속도로 꾸준히 나아가고 있어요.

전통 장을 빚고 판매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매년 회룡포 장수진품을 믿고 찾아주시는 고객에게 늘 감사하며 그 안에서 보람을 느끼고 있습니다. 고객 중에 병마와 싸우며 우리 무염 청국장을 꾸준히 주문해 드신 분이 계셨습니다. 그분은 떠나셨지만, 마지막을 함께 한 ‘맛’이 우리 청국장이어서 감사했습니다. 지금도 그 고객 가족과 연락을 나누고 있어요. 오래 잊히지 않는 맛을 내는 장을 만들고 싶고, 더 건강하고 좋은 제품으로 고객의 성원에 보답하고 싶습니다.

회룡포 장수진품을 더 널리 알리기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였나요?

처음 귀농했을 때 블로그가 한창 활성화되기 시작했어요. 블로그를 중심으로 온라인에서 홍보했습니다. 고객 한 분 한 분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을 전하고자 짧은 손편지를 맛보기 서비스 상품과 함께 보내드렸습니다. 지금도 배송 후에는 항상 제품이 잘 도착했는지 문자나 전화로 확인하고 있고요. 요즘은 ‘제품이 잘 도착했다’며 먼저 연락을 주시는 단골손님도 있어요. 고객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 소통하고자 하는 노력이 쌓여 큰 감동으로 돌아온다고 생각해요. 앞으로도 초심을 잃지 않고 고객과 소통하고 라이브 방송 등으로 판로를 확대할 계획입니다.

귀농을 계획하는 이들에게
건네고 싶은 말이 있다면?

갓난아이를 안고 예천군 농업기술센터를 매일 드나들며 배움을 이어간 게 엊그제 같은데 이제 그 자리에 제가 강연자로 서게 됐습니다. ‘어떤 일이든 힘들지 않은 것은 없다’는 마음으로 즐겁게 일했기에, 이 자리에 올 수 있었습니다. 예천군에는 50여 명의 청년 농업인이 미래농업청년경영인회를 통해 소통하고 협력하고 있는데요. 서로가 친구이자 스승, 파트너로서 시너지를 내고 있습니다. 혼자 걸으면 더 빨리 갈 수 있지만 함께 가면 더 멀리 갈 수 있다는 말처럼 함께하는 사람들이 있기에 더 먼 미래를 꿈꿀 수 있는 것 같습니다. 그 길에 동행하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더 빨리, 더 멀리 나아갈 수 있지 않을까요.

어떤 회사를 만들고 싶은지?

지난해 예천 지역은 큰 수해를 입었습니다. 집마다 장독대가 비바람에 휩쓸려 가버릴 정도였지요. 도움이 되고 싶어 피해 주민들과 함께 장을 담그는 회복 프로젝트를 진행했는데요. 이처럼 앞으로도 지역 주민과 함께 상생하는 회사로 성장하고 싶습니다. 또, 농촌교육농장에서 진행하는 체험 프로그램을 다양하게 운영해 미래 고객이 될 아이들과 많은 사람들에게 전통 장류의 참맛과 이로움을 알리고 싶어요. 된장 가루를 활용한 신제품 시즈닝 개발도 진행 중이니 많은 기대와 응원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