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업 과학자들의 서재
논어 50수로 깨치는
인생의 새로운 방향

농촌진흥청 국립농업과학원 기후변화평가과

심교문 농업연구관

우리는 삶을 살아가면서 가끔씩 어떻게 살아왔는가를 되돌아보게 된다. 삶의 이유에 대해 생각하고 지금 나 자신이 서 있는 자리를 확인하는 것은 흔들리는 중심을 다잡는 계기가 된다. 지천명에 이르러서도 여전히 우리의 삶은 흔들린다. 그래도 괜찮다. 지금까지 보낸 시간만큼 앞으로의 시간이 더 남았다는 것을 기억하며 천천히 인생의 방향을 정해 나가면 된다. 지난날의 회의와 피로, 남은 삶에 대한 올바른 방향을 고민하고 있다면 심교문 농업연구관과 함께 공자의 말과 철학 속에서 돌파구를 찾아보자.

기후 변화 속 우리 농업·농촌의 미래를 바라본 선구안

26년이란 오랜 세월 동안 농업 기상과 기후 변화를 연구하며 늘 같은 자리를 지켰다. 입사 당시 네 명이던 동료들이 하나둘 자리를 옮겨 떠날 때에도 홀로 묵묵히 농업기상연구실에 남았다. 기후 변화가 초래할 위기를 직접적으로 체감하기 힘들었던 90년대 후반부터 그 심각성을 깨닫고 뚝심 있게 관련 연구를 이어왔다. 일찍이 우리 농업·농촌의 미래를 염려했던 그 마음은 농촌 현장을 기후 변화로부터 지키는 새로운 기술을 만들어냈다. 세계 최초로 농장 단위 작물 맞춤형 기상·재해 조기경보 서비스를 개발하며, 이상 기상으로 인한 농촌 현장 재해 피해를 줄이는 데 기여한 심교문 농업연구관이 그동안 걸어온 길이다.

“같은 동네에 있어도 작물 종류나 농장 고도, 지형에 따라 기상 환경이 다릅니다. 작물에 따라 재해를 입는 기상 조건 역시 다르지요. 기존 기상 정보는 시군구 단위로 기상과 재해 위험이 동일하게 제공되어 대응책을 세우는 데 활용하기 힘들었습니다. 보다 세밀한 분석을 통한 맞춤형 기상 정보를 제공해야만 대응 조치를 취해 피해 규모를 줄일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농업기상재해 조기경보 서비스는 기상 예보를 기반으로 계곡, 평지, 해발 등 개별 농장 단위(30ⅹ30m)와 개별 농장과 가장 가까운 기상 정보를 비롯해 재해 예측 정보를 제공합니다. 해당 농장의 작물 정보를 알면 생육 상황을 추정할 수 있고, 이를 기반으로 재해 발생 시 예보를 넘어 피해를 최소화할 대응 지침까지 알려주고 있지요.”

현재 해당 서비스는 78개 시·군에서 40개 작물을 대상으로 평지, 계곡, 산골 등 농촌 지형을 고려해 운영되고 있다. 지역 주민과 농업인 등 누구나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고온해·저온해·가뭄·습해 등 온도 관련 기상 재해는 9일 후까지, 강수·바람·일조 관련 재해는 3일 후까지 예측 정보를 모바일 앱이나 문자로 발송해 준다.

“인터넷과 모바일에서 앱을 켜면 위치 정보를 인식해 현재 위치의 기상 정보는 물론 농작물 생육과 재해 정보가 뜹니다. 원하는 작물과 생육 상황을 선택하면 그에 맞는 재해 대응 지침을 확인할 수 있지요. 지난해 11월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는 농업인 만족도를 조사한 결과 86.6%가 만족한다고 답했습니다. 전국으로 서비스를 확대하면 농가에서 기상 재해로 인한 손해 규모를 10% 이상 줄여 연간 약 1,514억 원의 비용 절감을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됩니다.”

실제로 지난해 4월 과수 저온 피해가 발생했을 당시 이 서비스를 이용한 무주 일부 과수원은 경보 덕분에 냉해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 예보 당시 주변 평균 온도는 영상이었지만 해당 농장은 계곡 낮은 곳에 위치해 주변 평균 기온보다 최대 3.2도 낮아 저온 피해가 우려되는 상황이었다.

“주변보다 낮은 곳에 위치해 매년 과수원 전체 면적 85% 이상에 저온 피해가 발생하던 나주의 한 배 농장도 우리 서비스를 이용한 이후 적기에 열풍 방생팬을 가동해 개화기 저온 피해를 예방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 서비스를 이용해 재해 피해를 예방할 수 있었다는 농업 현장의 목소리를 들을 때마다 큰 보람을 느낍니다.”

심교문 농업연구관은 해당 서비스를 통해 2020년 국가연구개발 우수성과 100선에 이어 2023년 농업과학기술 우수성과 공유대회 우수성과로 선정됐을 때를 농업 과학자로 일하며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으로 꼽았다. 기후 변화에 대응하고 농업 현장의 직접적인 기상 재해를 막기 위해 고군분투해온 26년 외길 인생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삶의 목표와 태도를 변화시킨 공자의 가르침

서른에 시작한 농업 과학자로서의 삶은 어느덧 무르익어 오십 중반에 접어들었다. 이제 본격적으로 인생 후반기를 준비해야 할 때, 심교문 농업연구관은 은퇴 후 고향으로 돌아가 조용한 삶을 가꾸려고 꿈꾸었다. 하지만 단 한 권의 책이 그 결심을 바꿨다. 바로 『오십에 읽는 논어』다.

“연구과제 협의회 참석차 부산에 가려고 버스를 기다리다가 잠시 서점에 들렀는데 우연히 이 책을 발견했습니다. 당시 제 나이가 오십 초반이었기 때문인지 책 제목 속 ‘오십’이라는 단어가 단번에 눈에 띄더라고요. 나이가 들면서 제가 생각하고 느끼고 고민했던 것들에 대해 해답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삶의 방향을 알려주는 지침서 역할을 해 지금도 틈틈이 반복해서 읽고 있어요.”

저자인 최종엽 카이로스인문연구소 대표는 서문에서 “인생 전반이야 여러 제약 때문에 내 마음대로 살 수 없었다는 핑계라도 댈 수 있지만, 인생 후반은 다르다”고 말했다. 또 “스물의 미숙함, 서른의 치열함, 마흔의 흔들림도 줄어든 오십은 일관성 있는 일을 시작하기 좋은 나이”라며, 주체적인 삶을 영위하기 위해서는 꺾이지 않을 꿈과 흔들리지 않는 뜻을 세워야 함을 강조했다.

“저자의 말에 따르면 55세는 30세와 80세의 딱 중간이에요. 30세까지를 인생을 준비하는 단계로 치고 그 이후를 전반기와 후반기로 나눈다면, 오십은 본격적인 인생의 절반도 살지 않은 나이라 할 수 있지요. 인생을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지니 편안하게 안주하는 삶이 아닌 새로운 도전을 꿈꾸게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계속 이어온 농업 과학자로서의 삶을 버리고 전혀 새로운 분야에 도전하거나, 지금까지 해왔던 연구를 확장시켜 더 큰 성과를 만들어내고 싶은 욕심이 생겼어요. 어느 쪽을 선택할지 아직 정하진 않았지만, 우선 건강이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생각에 3년 전부터 걷기와 달리기를 시작했어요. 지금도 평일 아침 4시면 일어나 채비를 하고 10~12㎞씩 달리고 있어요. 주말이면 20㎞씩 달리고요. 해마다 열리는 굵직한 마라톤 대회들에 빠짐없이 출전해 개인 기록을 단축시키고 있을 정도로 달리는 것이 일상이 되었습니다. 삶의 목표와 함께 삶을 대하는 태도도 달라진 것 같아요.”

자왈: 인무원려 필유근우(子曰: 人無遠慮, 必有近憂)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멀리 생각하지 않으면, 늘 가까이에 근심이 있다.”

심교문 농업연구관은 위 구절을 책 속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문장으로 꼽았다. 원려는 목표이자 간절한 꿈이다. 목표가 분명하다고 근심과 걱정이 바로 사라지지는 않는다. 하지만 미래가 있고 희망이 보이면 더욱 힘을 내 살아갈 수 있다. 심교문 농업연구관은 먼 미래를 꿈꾸며 준비하는 한편, 눈앞에 있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노력도 게을리하지 않고 있다.

“2025년까지 농업기상재해 조기경보 서비스 적용 지역을 전국 155개 시·군으로 조기 확대할 계획입니다. 올해 9월부터 민간 플랫폼인 농협 ‘오늘농사’와 그린랩스 ‘팜모닝 등을 비롯해 공공 플랫폼인 농림수산식품 교육문화정보원 ‘농사ON’ 등에 가입된 회원과 연계 서비스를 시작할 예정이에요. 또 농작물재해보험에 가입한 농업인을 대상으로 서비스를 제공하는 방안도 농림축산식품부와 협의 중입니다. 앞으로 모든 농업인이 손쉽게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도록 기반을 다져 활용성을 극대화하고자 합니다.”

심교문 농업연구관은 2027년 7월부터 공로연수 기간을 가질 예정이다. 그때면 귀가 순해져 모든 말을 객관적으로 듣고 이해할 수 있는 나이라는 이순을 앞두게 된다. 인생의 반환점이자 큰 전환점이 될 시간이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인문학 탐구자로서의 새로운 삶을 선택하든 농업 과학자로서 숙명을 이어가든, 그가 꿈을 이루기에 남은 시간은 부족하지 않다. 앞으로 심교문 농업연구관이 선택할 제2의 인생에 미리 응원의 박수를 보낸다.

심교문 농업연구관 추천도서
『오십에 읽는 논어』
최종엽 지음 유노북스

『오십에 읽는 논어』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인문학 강사인 최종엽 카이로스인문연구소 대표의 역작으로 출간 5개월 만에 10만 부의 판매고를 올린 베스트셀러다. 책 이름처럼 오십의 흔들리는 인생을 다잡아 주는 공자의 말과 공허한 마음을 채우는 논어의 지혜가 담겨 있다.

공자는 오십을 지천명(知天命)이라 했다. 다시 말해 오십은 하늘의 명을 깨달아 세상에 태어난 이유와 나아갈 길을 알게 되는 나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오십에 이르러서도 여전히 정서적으로나 경제적으로 불안을 겪으며 방황하는 이들이 많다. 저자 또한 더 이상 남의 인생을 위해 시간을 쓰고 싶지 않고, 타인의 목표와 꿈을 위해 시간을 쓰고 싶지 않으며, 선택당하지 않고, 스스로의 꿈과 미래를 선택하며 살고 싶어 오십이 되기 직전 회사를 나왔다고 한다. 하지만 오십이 되며 흔들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흔들리는 오십을 다잡고자 목표를 세웠고 변화를 시도했다. 그 과정에서 접한 것이 바로 『오십에 읽는 논어』다. 인생 후반전을 계획하고 실천하며 사는 데 공자는 어떤 말로 제안했을까. 다음을 보자.

· 서두르지 말고 작은 이익을 돌보지 않는다.
· 어찌해야 할까, 심사숙고하는 힘을 기른다.
· 힘들어도 시 쓰고 노래하는 여유를 부린다.
· 혼자만의 삶에서 함께하는 삶으로 전환한다.
·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한다.

강요하지 않고 강조하며 몸소 보여 주려 한다. 충분히 따라 해 보고 삶을 바꾸는 데까지 도움이 될 만한 것들이다. 여전히 조급함이 앞서는 오십이 희망적일 수 있게 한다. 언제 읽어도 좋을 『논어』이지만, 오십에 읽는 『논어』가 특별한 이유다.

공자는 사십에 의혹이 없었고 오십에 천명을 알았다고 하지만, 오십이 넘어서야 비로소 왕의 부름으로 정치 일선에 나섰고 육십 중반까지 이룬 것 없이 이국을 떠돌아야 했다. 그럼에도 그는 좌절하지도 낙담하지도 않고 학문으로 정진하며 말을 글로 옮겨 전파했고 자신만의 길을 가고자 했다.

우리네 오십도 흔들리고 방황하며 공허한 것이 당연하다. 공자가 그랬던 것처럼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생각하고 결정하고 선택하면 된다. 그게 바로 지금 이 시대 오십의 지천명이다. 누구나 자신만의 길을 갈 수 있는 것이다.

먼저 온 미래, 우리 농업·농촌. 농촌진흥청에는 농업과 농촌을 연구하며 기술을 보급하는 농업 과학자, 농업 전문가들이 있습니다. 농업을 과학으로 이끄는 선구자들입니다. 농업 과학자는 어떤 책을 읽고, 연구에 활용할까요? ‘2023 농업과학기술 우수성과 공유대회’를 통해 선정한 농업 과학자들의 서재를 들여다봤습니다. <편집자 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