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큰하고 칼칼한 국물에 고기와 해산물, 채소가 가득 담긴 짬뽕 한 그릇에는 얽힘의 미학이 숨어 있다.
갖가지 재료가 맛의 조화와 균형을 이루며 질서 있게 얽힌 모습은 오랜 세월 다양한 문화와 민족, 재료와 조리법을만 나이룬 결실이다. 매콤한 감칠맛으로 우리네 팍팍한 삶을 위로해 주고 있는 짬뽕이 흘러온 궤적을 따라가 본다
“ …그것에 들어가는 수다한 재료와 매운맛,
그리고 땀을 흘리게 만드는 과정 때문에 나는
그것을 먹을 때마다 미묘한 회오의 감정에 사로잡히곤 한다.
짬뽕은 평상적으로 먹는 음식이 아니라
갱생을 위해 먹는 음식이기 때문이다.”
거창해라! 박상우의 소설집 『짬뽕』➊에 실린 작가의 말 가운데 한 대목이다. 이어지는 작가의 말은 이렇다.
“ 대표적인 예가 술을 마신 다음날 먹는 짬뽕—땀을 뻘뻘 흘리며
먹는 과정은 일견 고통스럽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하지만 땀을 흘리고 난 뒤에는 그래, 인생이 이런 거지 뭐, 하고
흠씬 매를 두들겨 맞고 난 사람처럼 속이 후련해진다.”
물론 작가가 ‘평상의 짬뽕’을 무시하는 게 아니다. 곧 잔잔한 일상생활을 감당하지 못하는 음식이 어떻게 일상이 폭렬하는 순간을 감당하겠는가. 작가는 “인생에서 얻어지는 자잘하고 소소한 재료를 지지고 볶고 삶아 때로는 경쾌하게, 때로는 씁쓸하게, 때로는 흐뭇하게, 때로는 해낙낙하게 먹을 수 있는 짬뽕” 같은 소설을 쓰고 싶었다. 짬뽕 하니 김종광의 단편 「소주와 짬뽕의 힘」 또한 떠오른다. 이 작품 속 주인공은 집안의 농사일을 도우며 시내에 얻은 방 한 칸에서 소설을 쓰고 있다. 배움이 짧은 주인공의 아버지는, 대학에 간 데다 등단해 작가가 된 아들이 자랑스럽다. 그래서 아들의 작품이라면 발표하는 족족 모조리 읽고 있지만, ‘내가 너의 독자다!’ 하고 표 낸 적이 없다. 그런 아버지가 아들의 알량한 집필실을 찾아온 날 부자는 동네 중식당에서 짬뽕을 놓고 소주를 권커니 잣거니 한다. 이윽고 아버지가 묻는다. “요샌 무슨 얘기를 쓰고 있는 겨?” 덕분에 부자는 말문이 터졌다. 그러고는 “아들은 짬뽕과 소주의 힘을 알게 되었다.” 아버지와 아들은 이날 중식당에서 과음했을까? 다음 날 해장하느라 다시 짬뽕 국물을 들이켰을까? 문득 내 멋대로 소설을 이어 쓰게 된다.
짬뽕. 한국인에게 익숙하다 못해 비근한 지경에 이른 생활 속의 음식이다. 누구에게나 만만한 한 끼이자 마음먹고 찾을 만한 별미이다. 이 음식은 언제 어떻게 한국인 앞에 왔을까? 잘 모른다. 푸젠(福建) 출신 화교가 1899년 세운 중식당 시카이로(四海樓)에서 태어난 ‘나가사키짬뽕’이 원조라는 설명이 있다. 하지만 푸젠은 탕면보다는 쌀국수와 볶음면이 우세한 곳이다. 그저 나가사키에 자리 잡은 화교 손에서 우발적으로 태어난 국수가 어느새 자연스레 자리를 잡았다고 짐작할 뿐이다. 시카이로에서 짬뽕은, 처음에는 시나 우동[支那饂飩, しなうどん]으로 불렸다. 중식 국수라는 뜻이다. 이런 데서 보듯 짬뽕이라는 말도, 나중에 우발적으로 붙어 정착했을 테다. 짬뽕의 본딧말, 일본어 ‘챤폰[攙烹, ちゃんぽん]’에는 ‘한데 뒤섞다’라는 뜻도 있다. 조리법, 재료, 민족과 민족, 문화와 문화가 짬뽕되어 재료가 어느 날 뒤섞이고 볶이고 우러난 국수, 그게 짬뽕이겠다.
한편, 한국 노포 중식당의 노장 요리사를 오랫동안 취재해 온 박찬일 요리사에 따르면 “일제강점기, 나가사키로부터 조리법이 이전되었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 파고들고 싶어도, 문헌도 문물도 증언도 찾기가 어렵다. 다만 ‘짬뽕 되었다’라는 말과 쓰임이 일제강점기에 이식되었을 가능성이 있는 정도”➋라고 설명한다. 한국인에게 익숙한 한국식 ‘짬뽕’ 또한 나가사키짬뽕처럼 우발적으로 태어나 한국인의 일상생활 속에 자리를 잡아 한국인의 국수가 됐고, 한국 소설가들이 눈물겹게 서술하고 묘사하는 데 이르렀다고 짐작할 뿐이다. 1964년생 중식 요리사 왕 아무개 주방장의 이야기를 따라가 보자.
“ 본래 한국 짬뽕은 하얀 짬뽕이었다.
하지만 돼지고기로 기름을 낸 짬뽕을 느끼하게 여긴
한국인들이 처음에 실고추를 넣어 먹다가 고춧가루로
이어지면서 오늘날처럼 맵고 빨간 짬뽕이 탄생했다.”
노장 요리사는 “1970년대에 처음 빨간 짬뽕을 접하고 ‘매운탕면’이라고 불렀다”라는 설명도 덧붙였다. 한편, 1960년대까지만 해도 중식당은 산둥의 국수를 응용해 ‘하얀 짬뽕’ 을 했고, 이 국수를 ‘초마면(炒碼麵)’이라고 하는 화교도 있었지만, 보편적인 이름은 아니었다. 그러다 대체로 1960년대 후반 이후 1970년대에 등장한 ‘빨간 짬뽕’이 점차 중식당에서 중식 우동과 울면 등을 밀어내면서 자리를 잡는다. 한국인에게 익숙한 ‘빨간 짬뽕’은 1970년대 이후 대세가 되었다.
아직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게 많은 그 유래와 역사는 글쓴이가 더 입에 담기 어렵다. 다만 짬뽕이란 중식 사리와 대파며 양파를 필두로 한 온갖 채소, 버섯, 돼지고기를 비롯해 해물, 육수 등 ‘수다한 재료’가 조화와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는 점을 굳이 되돌아보고 싶다. 거기에 고춧가루의 빛깔과 풍미와 질감이 짬뽕에 ‘짬뽕다움’을 더한다는 점을 떠올리고 싶다. 갖가지 재료가 가지런한 칼질을 거쳐 함께 어우러지는 재료로 거듭난다는 점을 굳이 환기하게 된다.
짬뽕은 온갖 재료를 볶다가 육수를 더해 끓여 짬뽕 국물을 완성한다. 그 온갖 재료에는 저마다 향을 내거나 진액을 내거나 씹는 재미를 더하거나 풍미를 북돋거나, 진하고 두터운 질감을 연출하는 등의 역할이 있다. 재료 저마다 가지런히 칼질이 되어 있을 때만 제 역할을 할 수 있다. 요컨대 중식의 기본기가 짬뽕에 깃들어 있다. 여기 완성된 한 그릇의 빛깔과 맛의 방점을 찍는 또 다른 핵심은? 두말할 나위 없이 고춧가루이다. 오늘날 중식당 주방은 빛깔, 입자의 고운 정도, 맵기 셋을 두고 정말 신중하게, 고르고 또 골라 짬뽕용 고춧가루를 선택한다. 보기에 좋은, 음식에 어울리는 빨간 빛깔, 또는 붉은 빛깔 내기는 쉬운 노릇이 아니다.
초기 짬뽕은 고추나 마른 고추를 썰어 넣거나 실고추를 얹는 정도였다. 그러다 걸릴 것 없는 고운 고춧가루를 내게 되면서 짬뽕에 고춧가루를 적극적으로 쓰게 되었다. 보다 특색 있는 빛깔과 풍미를 연출하는 데 고춧가루를 쓰게 되었다. 1983년 이후 등장한 청양고추도 잊을 수 없다. 한국인이 선호하는 매움은 맵싸하면서도 칼칼하되 단맛이 받쳐 주어야 한다. 청양고추는 나오자마자 위에 말한 복합적인 풍미를 더하는 고추로 이름이 났다. 다른 고춧가루와 함께 섞어 쓰면 매운맛이 더하고, 음식의 맛을 끌어올린다는 호평을 받았다. 그러다 이제는 혀가 떨어지는 듯한 매운맛의 남방계 고추인 태국 및 베트남 고추까지 뒤섞이고 있다. 그야말로 ‘짬뽕’이다. 한데 뒤섞이는데, 조화와 균형을 찾으며 질서 있게 섞이고 있다. 맛 좋은 긴장을 유지하면서, 고운 빨강을 내보이면서, 짬뽕은 오늘도 한국인의 속을 후련하게 하고 있다.
➊<짬뽕> (박상우, 하늘연못, 2007)
➋한국화교화인연구회, <학교에서 짬뽕까지 군산화교 다시 읽기>, 2020년 연구발표 자료집 속 박찬일의 발표문에서
청양고추는 1983년 국내 종자 기업인 중앙종묘에서 태국 재래종인 ‘MS태국’과 ‘제주재래종 고추’를 교잡하여 만든 국내 품종이다. 청양이라는 이름은 개발 당시 지역 적응시험을 수행했던 경북 청송의 ‘청(靑)’과 경북 영양의 ‘양(陽)’을 따서 붙인 것으로, 이 이름 그대로 상표권이 등록됐다. 이후 1998년 외환 위기(IMF) 시기에 중앙종묘는 멕시코 종자회사 세미니스에 인수되고, 세미니스는 2005년 미국의 몬산토, 2018년에는 다시 독일 바이엘에 인수되면서 청양고추는 로열티 지급과 종자주권 상실의 상징이 됐다. 그럼 우리나라는 외국계 회사의 청양고추에 비싼 로열티를 지급하고 있을까? 답은 “그렇지 않다” 이다.
우선 청양고추 원조 품종은 지금 거의 재배되지 않는다. 현재 시중에 유통되는 청양 품종은 2000년대부터 국내 종자회사들이 병 저항성 등 성능을 개량해서 판매 중인 청양계 고추 품종들이다. 매운맛과 식감이 우수한 약 30여 종이 재배 중인데, 이들의 종자 시장은 약 60~70억 원 규모로 추정한다. 모두 우리나라 종자 기업이 개발한 품종이므로, 청양계 고추의 종자 자급률은 100%라고 할 수 있다.
출처_김명수 농촌진흥청 국립원예특작과학원장 칼럼 ‘K-매운맛, 청양고추에 대한 오해(헤럴드비즈 2024-8-22)’ 일부 내용
필자 소개
대학에서 고전문학을 공부했다. 고전문학 작품 번역과 해제 및 음식문헌 읽기와 정리에도 힘쓰고 있다. 현재 경향신문 기명 칼럼 <고영의 문헌 속 밥상>을 연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