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원 운봉 두류산 자락 아래 자리 잡은 동편제마을은 지리산의 아름다운 자연과 흥이 살아있는 작은 시골 마을이다. 가을 끝에서도 여전히 푸르름을 뽐내는 소나무 길을 지나 마을에 들어서면 작은 들깨밭 너머로 영농조합법인 지리산처럼을 찾을 수 있다. 우리 들깨와 참깨로 건강한 먹거리의 가치를 이어가고 있는 정정은 대표를 만나 자연 그대로의 향과 맛을 담은 기름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자연 그대로의 맛과 향을 생생(生生)하게
어린이집 교사로 일하던 서울 토박이가 남편을 따라 남원으로 귀촌한 지 16년이 흘렀다. 각박한 도시 생활을 뒤로하고 조금씩 작물을 기르며 청정 지리산 자락에 뿌리내렸다. 맨 처음 기른 작물은 감자였다. 무작정 작물을 기르고 수확했지만 가공하지 않은 원물을 내다 파는 일은 초보 농사꾼에게는 쉽지 않은 일이었다.
“가공에 적합한 작물을 고민하다가 식용 유지에 관심을 두게 되었습니다. 마트에 기성품으로 나온 제품도 많고 방앗간에서도 갓 내린 기름을 살 수 있지만 건강한 재료로 더 나은 방식으로 짜낸다면 소비자에게 사랑받을 것으로 생각했어요. 2012년 ‘지리산처럼’을 창업하면서 본격적으로 식용 유지 사업에 발을 들였습니다.”
정정은 대표는 원물 본연의 맛과 향이 그대로 살아있는 기름을 짜낼 방법을 고민했다. 고온 압착 일색인 식용 유지 시장에서 차별화를 위해 전통적인 방식으로 기름을 짜기로 했다. 본래 고온에 약한 참깨와 들깨는 저온에서 압착하는 방식으로 기름을 짰다. 고온에서 볶아야 기름 양이 많아지고 좀 더 고소하기 때문에 지금과 같은 형태로 착유하게 된 것이다.
“생깨를 깨물었을 때 느껴지는 향긋함을 느껴본 적 있나요? 전통 기름은 참깨나 들깨를 고온에서 볶지 않아요. 그래야 영양분을 살리면서 본연의 맛과 향이 살아있는 건강한 기름을 선보일 수 있어요. 그래서 최소한의 열과 압력으로 짜낸 햇생들기름과 햇참기름을 개발하게 되었습니다. 월마다 정기적으로 품질 검사를 하고 있는데 유해물질(벤조피렌)이 검출된 적은 단 한 번도 없어요.”
정정은 대표는 대기업이 장악한 참기름보다 시장에서 소외되어 있던 들기름과 들깨에 집중했다. 건강에 대한 현대인의 관심이 커지면서 필수지방산인 오메가3를 많이 함유한 들기름이 주목받게 될 것이라 믿었다. 그리고 그 믿음에 보답하듯 기회는 찾아왔다.
“들기름의 효능이 주목받으면서 방송 출연을 하게 됐는데, 감사하게도 많은 분이 관심을 주셨어요. 들기름이 인기를 끌면서 경쟁 업체들도 많이 생겼지만, 시장이 형성되기 전부터 전통 방식을 고집해 왔던 터라 경쟁력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특히 햇생들기름은 올리브유처럼 샐러드에 활용하면 좋아 건강에 관심 있는 분들이나 젊은 세대에게 많은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우리 땅 우리 깨로 만드는 상생 가치
13년이란 오랜 시간 동안 꾸준히 사랑받아 온 비결은 무엇일까? 모든 농산가공품은 원물의 품질이 가장 중요하다. 직접 농사도 짓고 있는 정정은 대표는 지리산깨 작목반, 지역 계약재배 농가, 상생 농가 등과 협력해 국립식량과학원에서 개발한 우수한 종자만을 재배하고 있다.
“현재 농가들과 들깨와 참깨 종자를 통일 재배하고 있는데요. 들깨는 다유와 들샘을, 참깨는 강유와 건백을 심어 키우고 있습니다. 모두 국립식량과학원에서 개발한 우수한 종자들이지요. 우리 종자로 짠 기름이라 소비자가 신뢰합니다. 농업인에게 우수한 종자를 알리고 보급하는 데 일조할 수 있다는 것도 저에게는 큰 기쁨입니다.”
정정은 대표는 “국내에서 깨 농사를 짓는 농업인과 가장 많이 만나 소통하는 것은 바로 나일 것”이라며 자부심을 드러냈다. 실제 농업인과 만나 해마다 작황을 살피고, 생산· 가공 기술과 소비자 반응 등에 대해 의견을 나누며 활발하게 소통하고 있는 그였다. 그 공로를 인정받아 올해 국립식량과학원 밭작물개발과 현장명예연구관으로 임명되기도 했다.
“지리산처럼이 성장할수록 지역 내 깨 농사를 짓는 농가도 점점 늘어갔어요. 10년 이상 계약재배 농가로 인연을 이어온 분들이 많은데요. 4년 전 장마로 참깨 파동이 일어났을 때 큰 도움을 받기도 했습니다. 원물을 확보하지 못해 생협 등 많은 업체가 참기름 판매를 중단할 수밖에 없었는데 계약재배 농가 도움 덕분에 참기름을 계속 생산할 수 있었어요.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도움을 주신 농업인과 묵묵히 버텨준 직원들, 늘 응원을 아끼지 않는 가족 덕분에 위기를 극복하고 더 큰 성장 발판을 마련할 수 있었습니다.”
매년 11월 1일과 6일이 되면 지리산처럼 앞 주차장은 인파로 북적인다. 정정은 대표는 이날을 ‘깨 수매의 날’로 정해두고 1년간 땀흘려 맺은 결실을 함께 확인하며 다과를 즐기고 있다. 수확량이 많든 적든 시세보다 높은 가격으로 모두 수매하고 있기에 농업인의 얼굴에는 웃음꽃이 가득하다.
“우리는 안정적으로 좋은 원물을 확보할 수 있고, 생산자는 판로 걱정 없이 농사에 전념할 수 있어 일석이조의 효과가 있지요. 앞으로 깨 수매의 날을 팜파티 형태로 확장해 생산자는 물론 소비자가 함께 즐기며 소통하는 자리로 만들어 나가고 싶습니다.”
‘행복한 정은씨’가 꿈꾸는 더 큰 행복
지리산처럼을 운영한 첫해에는 무작정 지하철역 상가에서 제품을 판매했다. 하나둘 손님이 늘어가며 입소문을 타자 제품력에 확신을 갖게 되었다. 정정은 대표는 확실한 판로 확보와 시장 상황 파악을 위해 국내외 식품 관련 박람회에 참가하기 시작했다. 또, 유튜브와 인스타그램 등 SNS 활동과 라이브 방송을 활발히 하며 소비자와 소통하고 있다.
“제자리에 안일하게 서 있으면 소비자가 알아서 찾아올까요? 우리 제품을 더 많은 사람에게 알리고 판매할 수 있는 장소를 찾아가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크고 작은 박람회에 참가하면서 우리 식문화가 변화하고 있음을 체감할 수 있었고, 제품을 보는 눈과 마케팅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었어요.”
현재 지리산처럼은 다양한 간편식 제품을 비롯해 화장품과 이너뷰티까지 저변을 확장하고 있다. 그중 오색버섯 들깨탕은 출시 1년이 채 되지 않아 10만 개나 판매되었다. 버섯을 잘게 잘라 넣어 수프처럼 즐길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다양한 요리에 육수처럼 활용할 수 있다는 점으로 차별화를 꾀했다.
“시중에 출시된 들깨탕 제품이 많지만 100% 국산 들깨를 사용한 것은 찾아보기 힘듭니다. 레시피를 개발하고 위탁생산 공장을 찾는 데만 6개월 이상 걸렸어요. 고생한 만큼 소비자들에게 사랑받고 있기에 보람을 느낍니다. 앞으로 미국, 일본 시장에 본격적으로 진출해 세계인에게 우리 들깨의 참맛을 알리고 싶어요. 올해 11월에는 선식과 수제비 등 신제품도 출시할 예정인데요. 많은 관심과 사랑 부탁드립니다.”
처음 기름을 짜던 66㎡ 남짓한 작은 공간은 어느새 496㎡ 규모의 2층 공장이 되었다. 그사이 직원 수도 18명으로 늘었다. 2017년에는 참기름과 생들기름으로 국제 우수미각상을 수상하며 우리 전통 기름의 우수성을 세계에 알렸다. 늘 웃는 얼굴로 누구보다 신바람 나게 깨 농사를 짓고 기름을 짜던 정정은 대표였지만, 누군가는 3년을 채 버티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어느덧 3년에 10년을 더해 13년째가 되었다.
“3년을 버티고 ‘행복한 정은씨’라는 브랜드명을 만들었어요. 나와 고객, 직원, 농업인까지 모두의 삶이 행복하길 바라는 마음을 담고 있지요. 또, 건강한 먹거리는 만드는 이의 행복한 마음과 정성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해요. 앞으로도 ‘행복한 정은씨’라는 별명에 걸맞게 웃음을 잃지 않고 일할 거예요.”
정정은 대표가 지리산처럼을 운영하게 된 것은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우리 농산물로 더 건강한 밥상을 소비자에게 선물하고 지역 농업인과 상생하고자 하는 사명감으로 사업을 시작했다. 그래서 지리산처럼은 오랜 시간을 두고 지역 농가와 함께 천천히 내실을 다지며 성장해 왔다. 정정은 대표의 지리산처럼은 이름 그대로, 묵묵히 여러 마을을 품에 안은 지리산을 닮았다. 지리산 품 안에서 정정은 대표와 농업인들이 함께 써 내려갈 이야기에 기대를 전한다.
대표 제품
행복한 정은씨의 햇생들기름
100% 국산 들깨를 깨끗하게 세척 후 화학첨가물 없이 최소한의 열로 건조하고 착유해 원물 그대로의 영양을 보존했다. 필수지방산인 오메가3 함유량이 높고 들깨 본연의 고소한 맛과 향이 일품이다. 샐러드 등 열을 가하지 않은 요리에 활용하거나 공복에 한 스푼씩 복용하면 건강에 도움이 된다. 월마다 정기적인 품질 검사를 해 벤조피렌 걱정 없이 먹을 수 있으며, 주문 즉시 당일 생산한다.
오색버섯 들깨탕
100% 국산 들깨가루와 느타리, 새송이, 양송이, 표고, 만가닥 다섯 가지 버섯을 넣어 만든 간편 영양식. 고소한 들깨가루에 진한 사골육수, 식감 좋게 자른 국내산 생버섯이 어우러져 깊은 맛이 느껴진다. 그냥 먹어도 좋지만, 들깨 미역국, 들깨 떡볶이, 들깨 옹심이 등 다양한 사리를 넣어 국물 요리 베이스로도 활용할 수 있다.
들깨 삼계탕
100% 국산 햇들깨에 누룽지를 더해 담백하고 고소한 풍미가 가득한 간편 보양식. 주재료는 물론 찹쌀, 수삼, 통마늘, 대추 등 부재료까지 국산 농산물을 사용해 안심하고 먹을 수 있다. 1,200g 대용량으로 실온 보관이 가능하다. 초계국수, 닭 한 마리 칼국수, 얼큰 들깨 닭개장 등 다양한 요리에 활용할 수 있다.
간편 밀키트 시리즈
• 들기름 막국수: 쫄깃한 메밀면에 감칠맛 나는 간장 소스, 고소한 들기름과 들깨가루, 김을 더해 담백한 맛이 일품이다.
• 들기름 마제소바: 지리산 흑돼지를 듬뿍 넣은 특제 소스와 들기름, 쫄깃한 메밀면이 어우러져 씹을수록 고소함이 느껴진다.
• 들깨 칼국수: 국산 들깨가루와 16가지 채소 육수를 더한 비건 국수. 껍질 벗긴 들깨가루와 찹쌀가루를 넣어 고소하고 진득한 국물이 특징이다.
주요 판매처
자사몰, 마켓컬리, 쿠팡, 오아시스마켓, 배달의 민족, 신세계백화점 발효곳간, 롯데백화점 식품관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