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여름 우리나라는 기록적인 폭염에 직면했다. 점점 심각해지는 지구 온난화가 사계절이 뚜렷했던 우리나라 기후를 아열대 기후대로 빠르게 바꿔 놓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기온에 영향을 받는 농업에도 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 이에 대응하기 위해 농촌진흥청에서는 지난 2015년부터 제주도에 온난화대응농업연구소를 운영하며, 온난화 극복을 위한 다양한 기술과 신품종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때때로 위기는 더 큰 기회로 다가온다. 온난화대응농업연구소 전지혜 소장을 만나 아열대 작물로 찾은 우리 농업·농촌의 새로운 가능성에 대해 들어본다.
성큼 다가온
기후 위기,
아열대 작물로 찾은
가능성
지구가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유엔 세계기상기구(WMO)는 2027년 이내 지구 평균 기온이 66% 확률로 1.5도 이상 상승할 것이라 경고했다. 우리나라도 예외일 수는 없다. 지난해 9월 중순까지도 폭염 경보가 발효될 정도로 무더위가 이어지며 ‘기후 위기 시대’를 체감하게 했다. 이러한 변화는 우리 농업·농촌에 가장 큰 영향을 주고 있다. 온도가 상승하면서 기존 작물의 재배 적합지가 줄어들고 주산지가 점차 북상하는 등 다양한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이제 우리 농업의 새로운 방향성을 정하고 미래를 대비해야 할 때이다. 제주에 위치한 온난화대응농업연구소는 그 전초기지로서 온난화 극복을 위한 새로운 기술과 품종 개발에 앞장서고 있다. 특히 우리나라에서 기존에 재배되던 전통적인 작물 대신 점점 변화해가는 기후대에 적합한 아열대 작물을 선발해 기후 적응성 평가와 재배법 개선 연구, 품종 육성 등을 진행하고 있다.
“농촌진흥청에서 2022년 연구한 결과 현재 과일나무 품종과 재배법이 유지된다는 조건에서 2070년대에는 사과가, 2090년대가 되면 배와 복숭아가 강원도 일부 지역에서만 재배가 가능할 것으로 예측됐습니다. 반면 비교적 재배 온도가 높은 키위나무는 현재 제주도 및 남해안 일부 지역에서만 재배하고 있는데, 2070년대가 되면 남부와 중부 일부 지역까지 재배 적합지가 확대될 것으로 예측했지요. 점점 더 빨라지는 온난화로 인해 기존 작물 재배 적지가 줄어들고 있는 만큼 대안을 마련하는 것이 시급합니다. 온난화대응농업연구소에서는 기존 작물은 새로운 품종과 기술 개발을 진행하는 한편, 재배지 확대가 예상되는 아열대 기후대에 알맞은 작물에 대한 연구를 확대해 나가고 있습니다. 국내 환경에 적합한 아열대 작물 58가지를 시험 재배하고, 그 가운데 앞으로 변화할 환경에 잘 적응하고 소비 확장성이 클 것으로 기대되는 17가지를 선발했는데요. 채소로는 여주, 강황, 얌빈, 아티초크, 공심채, 오크라, 인디언시금치 등이 꼽혔고, 과수로는 애플망고, 올리브, 파파야, 리치, 용과, 아보카도, 커피 등이 선발됐습니다. 온난화가 심화될수록 아열대 작물 재배가 국내 농업의 중요한 축으로 자리 잡을 가능성이 크다고 확신합니다.”
실제로 국내 아열대 작물 수입량과 재배 면적은 늘고 있는 추세다. 그중 망고는 2014년도에 1만 톤을 수입했으나 2023년에는 약 2만 7천 톤을 수입해 두 배 이상 증가했다. 2024년에도 6월까지 1만 8천 톤을 수입하는 등 국내 소비 수요가 크게 증가하고 있다. 또한 2022년 기준으로 국내에서 재배되고 있는 아열대 채소는 139헥타르(ha), 과수는 193.1헥타르이다. 채소 재배 면적은 2017년 245헥타르에 비해 줄었지만, 과수는 2017년 109.2헥타르에서 1.7배 증가했다.
“아열대 작물의 소비와 재배 확대는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로 여겨집니다. 우리나라의 아열대 기후대 확대와 소비자 경향 변화, 다양한 음식 문화 수용, 유통·저장 기술 발달, 다문화 가정 확대 등을 꼽을 수 있는데요. 특히 동남아시아 여행객들이 늘면서 현지에서 손쉽게 접했던 아열대 과수에 대한 선호도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아열대 과수는 지자체에서도 신소득 작물로 주목하고 있다. 그러나 온난화가 가속화되고 있다고는 하지만 아직까지는 제주를 비롯한 일부 남해안 지역을 제외하고는 시설 내 난방이 필요한 상황이다. 난방비 부담을 줄여 가격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에너지 절감과 안정적인 생산 기술 개발이 필요하다.
“난방으로 탄소 배출량이 늘어나게 된다면 새로운 작목을 도입해 온난화에 대응한다는 취지가 무의미해지지 않을까요? 연구소에서는 지역·작물별로 아열대 과수 시설 재배 시 등유 소요량을 나타내는 지도를 제작·배포해 농업인이 경제성 높은 작물을 선택하고 실질적으로 난방비를 아낄 수 있는 방안을 제시했습니다. 또, 비교적 재배 기간이 짧은 아열대 채소의 경우 2기작 재배 시스템을 만들기 위해 연구를 진행하고 있지요. 겨울철을 제외한 고온기에 집중 수확이 가능해 앞으로 아열대 작물을 선택한 농가 소득 증대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됩니다.”
낯선 아열대 작물,
친숙한 요리법으로
소비 증진 도모
아열대 과수는 조리하지 않고 그대로 먹으면 되기에 소비자가 다가가기 쉽다. 하지만 채소의 경우 조리가 필요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소비자가 낯설게 느낄 수밖에 없다.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온난화대응농업연구소에서는 대학, 지자체 등과 손을 잡고 아열대 작물 보급과 소비 확산을 위한 공동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처음 보는 식재료를 바로 이해하고 요리해서 먹는 건 쉽지 않은 일입니다. 농업인 입장에서는 소비자가 많이 찾아야 안정된 판로를 확보하고 생산에 뛰어들 수 있는데요. 소비를 증진하기 위해서는 요리법을 개발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대학이나 지자체와 함께 공동 과제로 요리법을 연구 중인데요. 예를 들어 공심채는 한국인에게 익숙한 나물 무침으로 요리하고, 얌빈은 샐러드에 활용하면 좋습니다. 특히 얌빈 뿌리에 달리는 구근은 무와 비슷한데 당도가 훨씬 높아서 한국인들이 좋아할 만한 채소라고 생각해요. 아삭한 식감에 비타민 C와 식이섬유가 풍부하고 혈당 조절에 효과가 있다고 알려진 이눌린 등 기능성 성분도 풍부하게 함유하고 있습니다.”
온난화대응농업연구소는 강원, 충북, 충남, 전북, 경남, 전남, 제주까지 7개 지역에서 다양한 아열대 작목에 대한 현장 실증을 진행하고 있다. 강원에서는 롱빈과 그린빈, 충북에서는 차요테, 제주를 비롯한 경남과 전남에서는 올리브에 주목하고 있다. 그중 제주 기후에서 노지 재배가 가능한 올리브는 원산지인 지중해에 비해 경쟁력이 떨어지지만 체험·관광과 연계한 6차 산업 모델로 주목받고 있다.
“아열대 작물 재배와 가공, 유통을 넘어 관광까지 연계한 농업인의 소득 증대 전략을 마련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와 더불어 새로운 작물 도입과 재배에 따른 병해충 대응 전략과 기후 변화에 따른 농업 환경 변화를 지속해서 모니터링하고 대처하는 시스템을 구축해 나가고 있어요.”
온난화대응농업연구소는 농업 환경 변화와 재배지 변동을 예측해 미래 작물 재배에 필요한 의사 결정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이를 위해 SSP 기후변화 시나리오를 적용해 최고 기온과 최저 기온, 평균 기온, 강수량, 일사량에 대한 고해상도 농업용 미래 상세 전자 기후도를 제작하고 이를 데이터베이스로 구축하여 여름 배추, 키위 등 14개 작물의 미래 재배 적지 변동 지도를 제작했다. 또한 작물 부분에 있어서는 기후 변화에 따라 확장 가능성이 높은 아열대 작물인 차나무와 키위 품종을 중점적으로 육성하고 있으며, 농가에 보급하고 육성된 품종의 고품질 안정 생산을 위한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만감류나 키위 등 친숙한 아열대 작물에도 농업인들이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키위는 연간 200만 톤 이상 수입하고 있지만 우리 품종 보급률이 30%가량밖에 안 됩니다. 수입량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소비자 수요가 크다는 것을 반증하는데요. 소비자에게 친숙하면서도 시장이 커질 가능성이 높은 아열대 작목을 중심으로 우리 농업인들이 새로운 도전을 시도했으면 해요.”
피할 수 없는 온난화,
작물 다양성을 키우는
계기로
온난화는 다양한 문제를 초래한다. 그중 새로운 병해충 발생 가능성도 커지고 있어 능동적이고 체계적인 병충해 방제와 조기 경보 시스템이 필요하다. 온난화대응농업연구소에서는 새로운 아열대 작물에 대한 병해충 발생 변화를 조사하고 있으며, 기후 변화로 예측되는 주요 해충의 생활사와 기능 반응 연구도 수행하고 있다. 특히 대만 농업연구소와 국제 협력으로 외래 병해충 유입에 대응해 선제적인 연구를 수행함으로써 농업인들이 병해충으로 인한 피해를 최대한 줄일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다.
“이미 온난화 주범인 이산화탄소 농도 증가에 따라 농업 해충 생태가 급변하고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오고 있습니다. 기후 변화에 따라 일부 해충의 생육과 번식 속도가 눈에 띄게 빨라지고 개체 수가 지속해서 증가할 것으로 보이는데요. 이는 장기적으로 생태계 교란으로 이어질 수 있어 더 큰 문제를 야기할 것입니다. 이러한 변화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도록 방제 체계를 지속적으로 개선하고 해충 발생과 방제 시기 알림 시스템을 개발하는 등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기후 변화에 따른 농업 환경 변화는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하지만 이를 위기가 아닌 기회로 삼아 새로운 작물과 재배 기술을 도입한다면 작물 다양성을 키워 지속 가능한 농업 발전을 이끌 수 있다.
“전 세계가 기후 변화를 겪고 있고, 많은 사람이 이를 체감하고 있습니다. 모든 사람이 한목소리로 기후 변화에 따른 문제를 제기합니다. 결국 조금 늦어질 수는 있어도 언젠가는 다가올 현실이라는 것을 인지해야 합니다. 그리고 막연히 ‘사과나 배는 이제 우리 식탁에서 사라진다더라’ 하는 위기감만 조성할 것이 아니라 차근차근 미래에 대비해 나가야 합니다. 기존 품종에서 재배지가 사라질 뿐, 또 다른 품종과 작물이 그 자리를 대체할 수 있거든요. 농촌진흥청을 비롯해 수많은 학계와 정부, 지자체가 힘을 합쳐 위기를 극복할 방안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좀 더 긍정적으로 미래를 바라봐 주길 바랍니다.”
가을이 되면 나뭇잎의 엽록소가 파괴되며 단풍이 든다. 과일도 일교차가 커져야 노랗고 붉은 빛을 내며 익어간다. 하지만 올여름에는 늦더위가 이어지며 일교차가 줄어 과일이 새 빛깔로 옷을 갈아입을 시간이 없었다.
“기후가 변화하면서 과일에 착색이 잘 되지 않는 현상이 일어나고, 열과 피해 규모도 눈에 띄게 커지고 있습니다. 예전부터 우리가 즐겨 먹어온 고유 자원도 점점 사라지고 있지요. 하지만 농업 기술은 변화하는 농업 환경에 발맞춰 진보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기후 변화를 기회로 삼아 새로운 아열대 작물과 재배 기술을 도입해 작물 다양성을 키우고 지속 가능한 농업 발전을 이룰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감도 갖고 있어요. 앞으로 농업 환경 변화에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2050년에 이르면 우리나라 절반 이상이 아열대 기후대에 들 수도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머지않아 아열대 작물이 우리 식탁 위에 오르는 게 당연해지고 우리 식생활에도 큰 변화가 찾아올지 모른다. 하지만 이러한 변화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것은 우리의 몫이다. 온난화대응농업연구소를 중심으로 농업인과 소비자가 함께 만들어 나갈 우리 농업·농촌의 새로운 미래에 기대와 응원을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