떡국은 설날 새해맞이 밥상에 빼놓을 수 없는 음식이다.
설날 먹는 떡국 한 그릇은 나이를 한 살 더 먹는다는 의미가 있다.
햅쌀로 길게 늘여 뽑은 가래떡은 무병장수를 의미하고, 동그랗게 썬 모양새는 재물을 뜻하기도 한다.
새로운 한 해를 시작하는 지금, 우리네 삶 속에 오래도록 이어져 온 떡국의 의미와 역사를 되돌이켜본다.
“세시(歲時)에 흰떡을 쳐 만들고 썰어 떡국을 끓인다. 추웠다 더웠다 하는 날씨 변덕에도 잘 상하지 않고 오래 견딜 뿐 아니라 그 조촐하고 깨끗한 품이 더욱 좋다.”
떡국 하면 떠오르는 흐뭇한 문장이다. 조선 후기 문인 이덕무(李德懋, 1741~1793)가 자신의 시 「첨세병(添歲餠)」에 붙인 주석의 일부이다. 첨세병이란 ‘나이를 먹게 하는 떡’이라는 뜻이다. 오늘날에도 떡국 한 그릇이 한 살이라는 농담 겸 덕담을 주고받지 않는가. 그 시를 한 번 읽어보자.
“천만번 방아에 쳐 눈빛이 둥그니(千杵萬椎雪色團)
저 신선의 부엌에 든 금단과도 비슷하네(也能仙竈比金丹)
해마다 나이를 더하는 게 미우니(偏憎歲歲添新齒)
서글퍼라 나는 이제 먹고 싶지 않은걸(怊悵吾今不欲餐)”
흰떡 뽑아 떡국 끓이는 풍경, 떡국 한 그릇이 있는 새해 아침의 정취를 표현하는 데 “그 조촐하고 깨끗한 품이 더욱 좋다[取其凈潔]”라는 이 한마디만큼 마침맞은 말도 없을 것이다. 이 조촐하고 깨끗한 음식은 언제부터 한국인의 새해 명절에 깃들었을까. 알 길이 없다. 그저 한 해의 시작이 조촐하고 깨끗하기를 바라는 마음과, 흰떡이 아주 잘 어울린다는 점은 옛날이나 오늘날이나 한결같다. 아무튼 새해 떡국 이야기는 옛 문헌 여기저기에 참 많이도 보인다. 김매순(金邁淳, 1776~1840)은 『열양세시기(洌陽歲時記)』에서 서울식 떡국을 이렇게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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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장국을 끓이다가 국물이 펄펄 끓을 때 떡을 동전처럼 얇게 썰어 장국에 집어넣는다. 떡이 끈적이지도 않고 부서지지도 않으면 잘 된 것이다. 그런데 돼지고기, 소고기, 꿩고기, 닭고기 등으로 맛을 내기도 한다.”
홍석모(洪錫謨, 1781~1857)의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는 이렇게 기록했다.
“멥쌀가루를 쪄 큰 떡판 위에 놓고 떡메로 수없이 쳐길게 뽑은 떡을 흰떡[白餠]이라고 한다. 이를 얇게 엽전 두께로 썰어 장국에다 넣고 끓인 다음쇠고기나 꿩고기를 더하고 번초설(蕃椒屑_후춧가루 또는 조핏가루)을 쳐 조리한 것을 떡국[餠湯]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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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맑은장국을 기본으로 해 흰떡을 깨끗하고 조촐하게 끓여내는 모습이다. 식민지시기의 조선 음식 연구자 방신영, 비슷한 시기의 음식 전문가 조자호의 요리책에서도 소고기 육수를 기본으로 한 떡국이 이어진다. 한편, 소고기 외에 닭고기, 꿩고기, 돼지고기도 활용되었음도 살펴볼 일이다. 소고기를 바탕으로 한 장국이 기본이었지만 손에 잡히는 대로 또는 취향에 따라, 집마다 내 식으로 다양한 떡국을 끓여 먹었다.
기록 밖의 떡국은 더욱 다양하다. 지역마다, 지역에서 나는 재료를 떡국에 얼마든지 창의적으로 쓰고 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개성의 조랭이떡국은 어슷하게 썬 떡이 아니라 허리가 잘록하니 조롱박 모양으로 앙증맞은 모양을 낸 떡을 쓴다. ‘조랭이’란 조롱박을 가리킨다. 경북, 경주 지역에서는 옹근 원형으로 떡을 썰어 끓이기도 한다. 서남해안, 굴이 많이 나는 데서는 굴 떡국을 끓인다. 전남 해안의 매생이 떡국도 별미이다. 마침, 굴과 매생이는 나는 철도 비슷하고 서로 맛의 조화도 뛰어나다. 굴과 매생이가 다 잘 나는 지역에서는 당연히 굴 매생이 떡국이 있다. 충북 해안에는 미역 떡국, 경남 해안에는 멸치 장국을 바탕으로 한 떡국을 끓이는가 하면 물메기 떡국도 끓였다. 강원도의 북어 떡국 또는 황태 떡국은 더 설명할 것도 없겠다. 내륙으로 가 보자. 다슬기가 잘 잡히는 호서 내륙에서는 다슬기 육수에 된장으로 간을 해 다슬기 떡국을 해 먹는다. 광주를 중심으로 한 호남 내륙에는 닭고기 장조림인 ‘닭장’을 바탕으로 한 닭장 떡국이 있다. 고기는 물론 뼈에서 우러난 닭의 풍미와 완성된 장조림의 감칠맛이 흰떡과 어울린 닭장 떡국 또한 한 번 맛을 보면 잊을 수 없는 별미이다. 아무튼, 떡국은, 흰떡을 중심에 두고 한반도 전역의 농수산물을 아울러 새해를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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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 나라 일본에서도 새해에 떡국이 있다. ‘오죠니(お雑煮)’가 그것이다. 오죠니는 멥쌀 떡이 아니라 찹쌀떡[もち] 떡국이다. 지역마다 집마다 다양한 방식으로 해 먹는 점은 한국과 마찬가지이다. 한국보다 큰 떡 덩이를 넣고 끓이기도 하고, 떡을 국물에 얹기도 하고, 국물을 떡에 끼얹기도 한다. 떡을 구워서 쓰기도 한다. 떡 모양은 사각형, 원형, 타원형으로 크게 나뉜다. 집마다 다르긴 하지만, 대체로 도쿄 쪽에서는 사각형 떡이 간장 또는 소금으로 간한 맑은 국물에 어울린 모습이다. 교토 쪽에서는 원형 떡이 흰 미소에 어울린 모습이다. 지역에 따라 가정에 따라, 팥죽에 흰떡을 넣기도 하고 팥소 넣은 떡을 쓰기도 한다. 어떻든 그 중심은, 핵심은 희디흰 떡이다.
중국 남쪽의 벼농사 지역에도 떡국까지는 아니지만 ‘녜가오[年糕]’, 곧 말 그대로 ‘설떡’을 먹는 지역이 있다. 예전에 떡이란 주곡이 잘 자라고 수확과 보관까지 잘했을 때, 드디어 공동체가 연말연시에 한 번 해 먹을 수 있는 별미였다.
벼농사 지어 살아온 민족과 지역의 문화 속에서 떡은, 더구나 흰떡은 한 해를 잘 살아온 끝에 다시 한 해의 시작을 맞았음을 환기하는 음식이리라. 이를 한국인이나 일본인이나 중국인이나, 저마다 다른 문화적 토양 위에서 다양하게 먹어왔다. 농민의 수고가 깃든고마운 주곡과 그것으로 만든 단정한 새해 음식에 새해의 희망을 부치는 마음은 온 지구 공통이다.
필자 소개
대학에서 고전문학을 공부했다. 고전문학 작품 번역과 해제 및 음식문헌 읽기와 정리에도 힘쓰고 있다. 현재 경향신문 기명 칼럼 <고영의 문헌 속 밥상>을 연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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