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는 농업과학자

비옥한 토양을 위하여

국립농업과학원 토양비료과

이은진 농업연구사

삶을 살아가며 결정을 내려야 할 때, 우리는 개인의 경험과 감정이 개입된 ‘직관’에 크게 의존하고는 한다. 직관은 빠른 결정을 가능하게 하지만, 선입견과 편견이 개입된 왜곡된 판단을 초래할 수 있다. 따라서 겉으로만 드러난 정보만으로 판단하기보다 체계적인 분석과 논리적인 사고가 필요하다. 특히 과학자들에게는 직관보다는 체계적인 분석을 통한 논리가 중요하다. 과학이란 객관적인 근거와 검증된 데이터를 바탕으로 사실을 증명하는 과정이기 때문. 이은진 연구사는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를 읽으며, 직관보다 논리적 판단의 중요성을 농업연구사로서 다시금 한번 느꼈다. 단순히 아름다운 일러스트에 끌려 ‘러브 스토리’일 것이라 판단하고 읽기 시작한 책이었지만, 그 안에는 직관의 오류가 얼마나 위험한 결과를 초래하는지에 대한 깊이 있는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

토양을 연구하는 일

이은진 농업연구사는 식물 생육의 핵심 요소인 ‘토양’을 연구한다. 식물도 사람과 마찬가지로 건강하게 성장하려면 양분· 수분·공기가 필수적인데, 이 과정 대부분이 토양에서 이루어지므로 적절한 토양 환경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토양에 수분이 부족하면 식물이 물을 흡수하지 못해 말라 죽을 수 있고, 반대로 과다한 경우에는 뿌리가 숨을 쉬지 못해 썩을 수 있어요. 비료를 너무 많이 사용하면 염류집적이 발생해 마치 배추가 소금에 절여지는 장해가 발생합니다. 토양 내 공기·수분 비율, 양분 함량이 적절해야 식물이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죠. 이런 요소들은 대부분 육안으로 확인하기 어려워 정밀한 분석이 필요해요.”

토양의 비옥도는 식물이 자라는 데 필요한 영양분과 물리·화학적 특성을 갖춘 토양 상태를 의미한다. 이를 위해 이은진 농업연구사는 토양의 화학적 특성을 분석·평가하는 연구를 한다. 질소·인·칼륨 등 필수 양분과 pH 및 유기물 함량을 분석해 토양의 화학적 특성을 평가하고, 중금속이나 오염 등의 여부를 판단한다.

농촌진흥청, 도 농업기술원, 시·군 농업기술센터와의 협업으로 분석된 전국의 토양 검정 결과는 흙토람(토양환경정보시스템)에서 확인할 수 있으며, 공공·민간 분야에서 다양하게 활용된다. 특히 토양 분석 데이터는 비료 사용량을 과학적으로 조정할 수 있도록 지원하며, 이를 통해 비료 과다 사용으로 인한 토양 산성화 또는 알칼리화 문제를 예방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

성실한 수행, 그리고 값진 성과

이렇게 확보된 데이터는 기상·환경 정보와 융합해 전국의 농업 환경을 종합적으로 평가하는 데 활용된다. 서로 다른 데이터를 연계하고 복합 해석하는 부분은 최근 이은진 농업연구사가 집중적으로 연구하는 분야이기도 하다.

“디지털 시대가 도래하면서 농업 분야에도 데이터가 무척 중요해졌어요. 국립농업연구원도 농업 데이터를 체계적으로 수집·표준화하고, 품질을 관리해 제공할 수 있는 플랫폼을 개발하고 있어요. 특히 여기에는 토양 비옥도를 비롯해 농업 용수 수질, 비료·농약 사용량 등 다양한 농업 환경 관련 정보가 포함됩니다. 이를 통해 농업인은 자신의 경작지에 맞는 비료량을 확인할 수 있고, 국회·농림축산식품부와 같은 정부 기관은 정확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농업 정책을 효과적으로 수립할 수 있습니다.”

빅데이터를 보다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GIS를 활용한 연구도 진행 중에 있다. 기존에는 개별 토양 정보만을 분석할 수 있었다면, GIS를 접목함으로써 토양이 속한 주변 환경까지 통합적으로 분석할 수 있게 됐다. 주변 지형과의 연계 분석이 가능해지면서 농업 환경에 대한 보다 정밀한 평가가 이루어질 수 있게 된 것이다.

데이터 수집과 분석, 그리고 체계적인 관리에 더해 플랫폼 구축과 GIS 기술을 접목시켜 지속 가능한 농업을 위한 기초 자료를 구축하고 있는 이은진 농업연구사. 그는 최근 그 기여를 인정받아 2024년 흙의날 <토양검정 및 농업환경변동조사를 통한 농경지 보전 정책지원>으로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상을 수상했다.

“농업환경자원의 실태 조사는 단순한 모니터링을 넘어 농업의 지속 가능성을 높이기 위한 필수적인 과정입니다. 정확한 데이터 수집과 분석을 통해 농업 환경을 체계적으로 관리할 수 있습니다. 이런 점을 인정받아 이번 상을 수상한 것 같아요. 앞으로는 AI를 활용한 토양 분석 연구에 더욱 집중하고 싶어요. 현재까지 확보된 데이터는 우리나라 전체 농경지 면적에 비하면 아직 부족한 수준이예요. AI를 활용하면 기존의 토양 분석 데이터를 학습해, 미 검정 지역의 토양 상태도 보다 정밀하게 예측할 수 있을 겁니다.”

직관보다는 명징한 분석과 판단의 중요성

정확한 환경 분석을 위한 기초 자료를 제공하는 연구를 수행하는 이은진 연구사에게, 오판을 막기 위한 중요한 원칙은 직관보다 데이터에 기반한 분석과 판단이다. 특히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를 읽고 과학적인 분석을 통해 연구를 이어가겠다는 다짐을 새롭게 했다.

저자 룰루 밀러는 19세기 어류 분류학자인 데이비드 스타 조던(David Starr Jordan)의 삶을 추적하며 그가 수많은 물고기 표본을 수집하고 분류하며 보여준 집념과 끈기를 조명한다. 그러나 그의 삶을 되돌아보면서 룰루 밀러는 의문을 가지게 되었고, 그의 부도덕성이 드러나면서 혼란에 휩싸인다. 무엇보다 그의 분류법은 현대적 시각에서 보면 과학적 오류가 많았다. 결국 그가 분류한 물고기들은 실제로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다. 조던은 수많은 물고기 종을 발견하고 이름을 붙였지만, 그의 분류 방식은 직관과 편견에 크게 의존했다. 이런 접근은 후에 우생학과 같은 이론을 지지하게 됐으며, 특히 직관적으로 더 우수한 유전자의 특성을 정의하고 그런 특성이 다음 세대에 전달돼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의 주장은 인종차별적 사고를 강화하고 합리화하는 결과를 초래하기도 했다.

“우리가 세상을 더 오래 검토할수록 세상은 더 이상한 곳으로 밝혀질 것이다. 부적합하다는 판정을 받은 사람 안에 어머니가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잡초 안에 약이 있을지도 모른다. 당신이 얕잡아봤던 사람 속에 구원이 있을지도 모른다.”

“처음에는 조던의 삶에 감탄하며 책을 읽었는데, 책 후반부에 이르러 그 진실이 밝혀지면서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저 역시 ‘직관에 의존하거나 다른 사람에 대해 선입견이나 편견을 갖고 판단한 적은 없었나’ 하는 반성도 하게 됐어요. 연구도 이와 다르지 않은 것 같아요. 직관에 의존하기 보다, 정확한 판단과 분석으로 신뢰할 수 있는 데이터를 만들어야 한다는 점을 다시 한번 깨달았습니다.”

조던의 가장 큰 실수는 과학적 근거보다는 자신의 직관과 신념에 의존하며 생물 분류를 진행한 점이다. 결국 수 세기가 지난 후, 조던이 설정한 ‘어류’라는 범주는 과학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고 밝혀졌다. 농업 역시 기존의 지식이나 관념이 오랜 시간 동안 유지되고 고정될 수 있는 분야다. 생존에 필수적인 분야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에 대해 확립된 생각과 전통적인 방식에 의존할 가능성이 높다. 이은진 농업연구사가 지난 연구에 머무르지 않고 새로운 연구를 유연하게 받아들이고, AI와 같은 신기술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려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과거의 고정된 틀에 갇히지 않고, 변화하는 시대에 맞는 혁신적인 접근을 통해 농업의 한 분야를 이끌어가고 있는 이은진 농업연구사. 이은진 농업연구사의 명확한 분석과 판단을 통해 증명된 데이터가, 농업 분야의 발전을 이끄는 중요한 기반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

이런 분께 추천합니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룰루 밀러 지음|곰출판

“이 책은 19세기 어류 분류학자인 데이비드 스타조던(David Starr Jordan)의 발자취를 돌아보며 과학자와 리더가 지녀야 할 자세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연구에 대한 열정과 끈기, 실패와 시련에 좌절하지 않는 마음가짐이 잘못된 개인적 직관이나 믿음과 결합됐을 때 아주 극단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는 책이예요.농업은 인간의 생존과 밀접하게 연관된 학문이기 때문에 선입견이 고착될 수 있습니다. 기술 혁신을 위해서는 편견을 버리고 데이터에 기반한 판단을 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이 책을 통해 전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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