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후위기, 농업의 판을 바꾸다
디지털육종이 만드는 지속가능한 미래
기록적인 폭염과 한파가 잇따르며, 우리는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몸소 실감했다. 이상 기상은 작물의 생육을 방해하고 수확량을 크게 감소시켰으며, 병해충 피해까지 확산되어 농업 전반에 큰 타격을 입혔다. 그 여파로 농산물 가격이 급등하고, 생활물가의 불안정성도 더 커졌다.
이미 기후변화가 우리 일상에 깊숙이 들어와 있다. 과거의 방식으로는 더 이상 지속 가능한 농업을 이어가기 어렵다. 이에 전 세계는 해답을 찾기 위해 디지털 기술을 농업에 접목한 ‘디지털육종’에 주목하고 있다.
디지털육종은 유전정보, 빅데이터, 인공지능(AI) 등 첨단 기술을 활용해 생산성은 높이고 기후변화에 강한 품종을 효율적으로 개발할 수 있는 새로운 접근법이다. 육종가의 안목과 경험에 의존했던 전통 육종 방식에서 벗어나, 정확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정밀하고 빠른 품종 개발이 가능해졌다.
무엇보다 디지털육종은 식량 안보를 강화하고 미래 농업 산업을 이끌어갈 핵심 전략 기술로 떠오르고 있다. 농촌진흥청 역시 이 흐름에 발맞춰, 디지털육종을 활용한 신품종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기술이 바꾸는 육종의 속도와 정확성
농촌진흥청은 디지털육종의 실현을 위해 ‘분자마커’ 기반 생명공학 기술을 적극 도입하고 있다. 분자마커는 DNA 속 특정 염기서열을 식별해 작물의 병 저항성, 품질, 생산성 등을 조기에 예측하고 선발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이 기술은 품종 개발 기간을 단축하고, 육종의 효율성을 크게 높여준다. 특히 농촌진흥청이 개발한 벼 분자마커 세트는 기존 5개월이 걸리던 제작 기간을 단 1개월로 단축하는 데 성공했다.
또한 세계 최초로 개발한 ‘밀 스피드브리딩’ 기술은 인공 광원을 활용해 식물 생장을 가속화함으로써, 품종 개발 기간을 기존 13년에서 7년으로 절반 가까이 줄였다. 이 기술은 기후 대응 품종 개발의 속도를 혁신적으로 끌어올린 사례로 평가받고 있으며, 국가과학기술 100선에 선정되었고, 세계 3대 식물학술지인 Molecular Plant에도 소개되어 국제적으로 그 우수성을 인정받았다.
디지털육종으로 작물 품종 경쟁력 쑥쑥!
기후 변화에도 끄덕없는 농작물,
이제는 디지털 기술로 만든다!
농촌진흥청은 디지털육종 기술을 활용해 다양한 작물의 병해충 저항성, 가공 적합성을 갖춘 벼, 콩, 밀 등 새로운 품종을 속속 개발하고 있다.
<신품종 육성 사례>



더 튼튼해진 밥맛 좋은 쌀, ‘신동진1’
대표적인 성과로는 맛있는 밥으로 잘 알려진 쌀 품종 ‘신동진’ 을 한층 업그레이드한 ‘신동진1’이 있다. ‘신동진1’은 기존의 쌀알 크기와 밥맛은 그대로 유지하면서 병에 강한 유전자를 더해 키다리병이나 벼흰잎마름병에도 강해졌다. 즉, 갑작스러운 날씨 변화에도 잘 자라는 튼튼한 쌀로 진화한 것이다.
바로미2 보다 재배안정성이 개선된 ‘바로미3’
폭우나 고온으로 인해 쌀이 싹을 틔우는 ‘수발아’ 피해를 막기 위해 개발한 ‘바로미3’가 있다. 이 품종은 ‘바로미2’ 보다 수발아에 강한 특징이 있고, 바로미2와 마찬가지로 가공식품을 만드는 데 적합하다. 식품산업용 벼 품종의 안정적인 공급 기반을 마련했다는 데 의의가 있다.
기계로도 쉽게 수확하는 콩, ‘장풍’과 ‘선유2호’
콩 품종에서도 디지털육종의 힘은 빛을 발하고 있다. ‘장풍’은 꼬투리가 땅에서 높게 달려 있어 침수 피해에 강하고, 기계로 수확하기에도 적합해 노동력을 크게 줄일 수 있다. 또 ‘선유2호’ 는 밀과 함께 재배할 수 있는 유연한 품종으로, 농가의 수익성을 높여주는 효자 품종이다.
자급률을 높일 기대주, 우리 밀 ‘한면’
밀도 예외는 아니다. '한면'이라는 이름의 밀 품종 역시 디지털육종의 성과 중 하나다. 이 품종은 글루텐 질적 단백질이 우수하여 건면, 라면 등 면 가공에 적합하다. 수확량도 높아서 국산 밀 자급률을 높이는데 큰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한다.
농촌진흥청은 앞으로도 기후변화에 잘 견디는 품종, 가공·산업용으로 적합한 작물들을 계속 개발해 나갈 계획이다. 디지털육종 기술이 본격적으로 활용되면서 우리 농업의 경쟁력도 한층 더 높아지고 있다.


디지털육종 플랫폼 본격 추진
농촌진흥청은 올해부터 ‘디지털육종 플랫폼’ 구축을 본격적으로 추진하며, 농업기술의 디지털 전환을 가속화하고 있다.
수첩 대신 데이터로, 육종 방식이 달라진다
기존에는 농가나 연구자들이 작물 육종에 필요한 정보를 종이에 손으로 기록하곤 했다. 품종 이름, 작물의 생육 특성, 병해충 저항성 등 수많은 데이터를 수첩이나 문서로 관리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아날로그 방식에서 벗어나, 디지털로 모든 육종 정보를 정리하고 활용하는 체계화된 시스템, 즉 디지털육종플랫폼이 그 역할을 하게 된다.
2027년까지 플랫폼 완성 → 민간에도 개방
올해 농촌진흥청의 주요 추진 방향은 ‘민관협업을 통한 첨단 융복합 기술 개발과 보급으로, 농업·농촌의 현안 해결과 미래 신성장 동력 창출’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이를 위해 핵심 농업정책 지원, 농업·농촌 현안 해결, 미래성장 견인, 지역 활성화 및 국제기술 협력 등 4대 전략 과제가 추진될 예정이다.
디지털육종 플랫폼은 품종 개발의 전 과정을 디지털화하고, 선진 생명공학 기술과 연계해 육종 기간을 획기적으로 단축할 수 있는 기반 기술로 주목받고 있다. 농촌진흥청은 오는 2027년까지 주요 품종의 육종 데이터를 집적할 수 있는 플랫폼을 완성하고 데이터를 축적해 나가며 인공지능 기반 교배조합 추천도 서비스할 계획이다. 이 모든 서비스는 민간에 개방하여 공유할 계획이다. 이를 통해 공공-민간 간 데이터 공유와 협업이 가능해지며, 국내 종자 산업 전반의 경쟁력 강화가 기대된다.
디지털육종 플랫폼이란?
쉽게 말해, 작물 품종을 개발하는 전 과정을 디지털로 처리하는 통합 시스템이다. 이 플랫폼이 완성되면, 수많은 육종 데이터를 한곳에 모아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최신 생명공학 기술과 연결해 품종 개발에 걸리는 시간도 훨씬 줄일 수 있게 된다.


디지털육종의 핵심 인프라,
‘슈퍼컴퓨팅센터’와 ‘표현체연구동’
디지털육종의 실현의 핵심 기반으로는 ‘슈퍼컴퓨팅센터’와 ‘표현체연구동’이 있다.
농촌진흥청은 2023년 9월, 농생명 슈퍼컴퓨팅 센터를 준공하고 2.9 페타플롭스(PetaFlops) 성능을 갖춘 슈퍼컴퓨터 2호기를 도입했다. 이는 기존 1호기보다 29배 향상된 성능으로, 일반 컴퓨터 3,600대에 해당하는 작업량을 동시에 처리할 수 있다.
또한, 2017년 완공된 작물표현체 연구동은 국내 최초의 대규모 식물 표현형 분석 전용 시설로, 디지털육종의 정밀도와 속도를 높이는 또 다른 핵심 공간이다. 이 연구동은 1,000개체 이상의 식물을 동시에 분석할 수 있는 영상분석 온실과, 360개체를 정밀 측정할 수 있는 환경조절실을 갖추고 있다. 작물은 컨베이어벨트를 통해 영상장비가 설치된 분석실로 이송되며, 이곳에서 다양한 영상 장비를 활용해 생육 시기별 크기, 생체량, 수량 등 농업 형질을 디지털화해 DB로 저장된다. 이 데이터를 기반으로 우수 형질을 가진 품종과 유전자를 효율적으로 선별할 수 있다.
슈퍼컴퓨팅 기반 유전체 분석과 고도화된 표현형 분석 시스템의 결합은, 디지털육종이 기후변화에 대응하고 식량 안보를 확보하기 위한 미래 전략 기술로 자리 잡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