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는 농업과학자

발효미생물의
가치를 확장하는 일

국립식량과학원 발효가공식품과

김소영 발효자원연구실장

발효미생물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그 안에는 다양한 산업의 미래가 들어 있다. 작은 생물에 지나지 않지만, 단백질, 아미노산, 효소, 유익한 대사산물을 생산할 수 있어 건강기능식품, 의약품, 화장품 등의 고부가가치 산업의 핵심 소재로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김소영 발효자원연구실장은 이처럼 미래 산업의 열쇠인 발효미생물 연구에 매진하고 있다. 수천 개의 균주를 다루며, 전통 발효의 가치를 현대 과학으로 확장하는 일에 집중하고 있다.

보이지 않는 발효미생물의 과학

발효식품이 우리의 밥상에 오르기까지, 그 중심에는 ‘미생물’이 있다. 특히 구수한 향과 감칠맛을 더하는 된장과 청국장 한 숟가락에는, 이렇게 보이지 않는 수많은 발효미생물의 ‘일’이 담겨 있다. 김소영 발효자원연구실장은 우리 땅에서 유래한 발효미생물 중에서도 장류·식초류·주류 등의 전통 발효식품의 품질과 안전성을 높일 수 있는 발효종균을 발굴·보급하면서, 수입 의존도가 높은 미생물 시장 대체를 최우선 과제로 삼고 있다.

“전통발효식품 안에는 아주 똘똘하게 작용하는 미생물이 정말 많아요. 예를 들어 술을 만들 때는 쌀을 잘 분해하고, 알코올을 많이 생성하는 능력을 가진 미생물이 필요하죠. 된장이나 간장처럼 장류에는 콩을 잘 분해하고, 단백질 분해 효소 활성이 높으며, 감칠맛 성분을 많이 만들어 내는 미생물이 유리해요. 이런 미생물을 발견해내면, 그 자체로도 굉장히 가치 있는 소재가 됩니다.”

이처럼 발굴된 발효미생물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다양하게 활용된다. 건강기능성 소재로 쓰이기도 하고, 뷰티 산업에도 응용된다. 그러나 활용 가능성은 커지는 반면, 전통발효식품을 만드는 현장에서는 여전히 불안정한 환경과 품질 편차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드라마에서 수천 개 항아리가 마당에 줄지어 놓인 장면을 한 번쯤은 보신 적이 있을 거예요. 그런데 요즘 여름은 너무 덥잖아요. 그러면 햇빛을 받은 항아리 안 온도가 확 올라가게 돼요. 게다가 비도 자주 오고 황사까지 심해지니까 제조 환경이 정말 불안정해졌어요. 그러다 보면 장의 생산성과 품질이 크게 떨어질 수밖에 없어요. 실제로 ‘작년에 담근 장이랑 맛이 달라요’, ‘이거 버려야 하나요?’ 하고 문의하시는 분들도 많고요. 이런 불안감을 해소할 수 있는 방법 중 하나가 바로 ‘종균’을 사용하는 거예요. 종균을 활용하면 일정한 맛과 품질로 장을 만들 수 있는 장점이 있거든요.”

무엇보다 감칠맛이나 구수한 향도 중요하지만, 결국 소비자가 안심하고 먹을 수 있으며 일관된 품질을 지닌 발효식품을 지속적으로 만들어내는 것이 연구의 핵심 가치다. 이를 가능하게 하기 위해 김소영 발효자원연구실장은 발효 과정의 안정성과 효율성을 높이는 균주 개발에 힘쓰고 있다. 예를 들어 NY12-2균주처럼 단백질 분해효소 활성이 높은 균주는 발효과정에서 위해 잡균 오염을 낮추고 줄이고, 제조 기간도 단축시켜 연중 내내 안정적으로 장류를 생산할 수 있도록 돕는다.

이러한 연구 성과는 실험실 수준을 넘어 산업체와의 협력을 통해 시제품 제작, 현장 실증, 표준화 작업을 진행하며 실질적인 효과를 발휘하고 있다. 그 결과, 현재 약 100여 개의 장류·주류 등 발효식품 가공업체에서 국산 균주를 실제로 활용하고 있으며, 향미 특성은 물론 위생과 안전성 측면에서도 높은 만족도를 보이고 있다.

보이지 않는 미생물을 '보이게' 하다!
발효미생물 DB

다양한 산업 현장에서 활용 가능한 균주의 특성과 이력을 체계적으로 정리해, 실제 활용성과 확장 가능성을 높이고자 하는 의미 있는 연구도 진행 중이다. 유용한 발효균의 특성을 정리해 정보화하고, 국내 토착 발효미생물 자원의 보급 확대를 위해 ‘발효미생물 특성 DB(이하 DB)’를 구축해 ‘농식품올바로’(koreanfood.rda.go.kr)를 통해 공개하고 있다. 미생물의 특성, 효소 활성, 기능성, 안전성 등을 조사해 정리한 데이터 베이스로, 쉽게 말해 ‘우수한 발효 균주’들의 이력서다.

“발효식품을 만드는 법을 적어둔 고문헌에도 ‘가마솥 근처 따뜻한 데 둔다’ 정도의 설명은 있지만, ‘정확히 37도에서 발효시켜라’ 같은 세세한 수치는 나와 있지 않아요. 이 DB에는 각 미생물이 가장 잘 자라는 온도가 명확하게 표기돼 있습니다. 보편적으로 사람들에게 알려진 중온(35도)에서 대부분 잘 자란다고 여기시겠지만, 어떤 균주는 30도에서 훨씬 잘 자라거든요. 이러한 미묘한 차이가 현장에서 실제로 발효를 할 때 성공과 실패를 가를 수 있기 때문에, DB는 주효하게 활용될 수 있습니다.”

DB는 연구자, 산업계, 소비자 모두에게 실질적인 가치를 제공할 것으로 기대된다. 연구자 입장에서는 실험 목적에 맞는 후보 균주를 신속하게 찾고, 비교·분석할 수 있다는 점에서 특히 유용하다. 기존에는 원하는 균주를 얻기 위해 일일이 발효식품을 수집하고, 그 안에서 균을 분리해 실험하는 번거로운 과정을 거쳐야 했다. 그러나 이제는 DB를 통해서 ‘어떤 미생물이 어떤 특성을 갖는지’를 사전에 확인하고, 보유한 균주와 비교해 가장 적합한 균주를 선택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산업계의 활용 가능성도 무궁무진하다. 개발하고자 하는 제품의 목적에 따라 맞춤형 균주를 선택할 수 있다는 점에서, DB는 새로운 돌파구가 되고 있다. 실제로 이러한 정보에 기반해 국립식량과학원은 품목별 특성에 맞춘 맞춤형 발효 종균 33종을 개발했다.

특히 ‘보이는 안전’이 중요한 요즘, 발효미생물에 대한 정보가 투명하게 공개됨으로써 산업과 소비자 간 신뢰를 연결해주는 역할도 수행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복잡한 세상 속에서, 질서와 의미를 찾는 시선에 깊은 인상

미생물의 기능을 면밀히 분석하고, 수많은 조건 속에서 발효의 최적값을 찾아내는 일은 결국 ‘패턴을 읽어내는 과학’이라 할 수 있다. 데이터를 모으고, 그 안에서 질서와 의미를 발견해내는 과정은 물리학이나 수학처럼 복잡한 수치를 다루는 분야 못지않게, 발효 연구에도 중요한 기반이 된다. 그렇기에 김소영 발효자원연구실장이 『김범준 선생님이 들려주는 빅데이터와 물리학』을 읽고 깊은 인상을 받았던 것도 바로 이 지점에서였다. 겉보기에 무작위처럼 보이는 현상도, 충분한 데이터와 과학적 관찰을 통해 설명 가능하다는 책의 메시지는 연구자로서의 시선에도 큰 울림을 주었다.

“사실 저도 개인적으로는 물리를 싫어하는 편인데, 어느 날 한 강의를 들으면서 ‘내가 이렇게 흥미롭게 물리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고?’ 싶었던 적이 있어요. 김범준 교수님이 데이터를 직접 생산한 사람은 아니었지만, 공공 데이터를 활용해서 자기가 궁금한 걸 풀어나가는 방식이 너무 인상 깊었습니다. 저도 미생물 데이터를 AI나 예측 모델에 활용해서 소비자나 연구자들이 알고 싶어 하는 미생물의 특성을 보다 과학적이고 직관적으로 밝혀내어 정보 제공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김소영 발효자원연구실장은 앞으로도 하고 싶은 연구가 많다. 하지만 요즘 들어 더 절실하게 느끼는 건, 진짜 창의적인 아이디어는 혼자서는 나올 수 없다는 사실이다. 최근 자주 언급되는 ‘창발(創發, emergence)’이라는 말처럼, 혼자 오래 쌓아온 경험도 물론 소중하지만, 새로운 생각은 결국 사람과의 만남 속에서, 협업과 교류 속에서 나온다고 믿는다. 그래서 지금 하고 있는 연구도, 그리고 앞으로 해나갈 연구도 지속적인 네트워크 안에서 발전시키고 싶다.

“결국 모든 연구는 혼자만의 성과로 끝나는 일이 아닌 것 같아요. 더 많은 사람들과 지식을 나누고, 함께 확장해가는 과정이라 생각합니다. 발효미생물 데이터가 단지 식품 분야에만 머무르지 않고, 환경·의약·바이오에너지 등 다양한 분야로 확장될 수 있도록, 그 연결의 시작점이 되고 싶습니다.”

작은 균 하나를 찾고, 그 균이 가진 가능성을 열어가는 일. 결코 혼자서는 완성될 수 없다. 김소영 발효자원연구실장은 앞으로도 동료 연구자들과 함께 고민하고 협업하며, 발효미생물이라는 생명의 작은 점에서 더 넓은 연결을 만들어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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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범준 선생님이 들려주는
빅데이터와 물리학』

김범준 저|우리학교

통계물리학자 김범준 교수가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벌어진 일이나, 앞으로 일어날 수 있는 현상들을 ‘데이터를 통해 물리학 관점’으로 이해하고 예측할 수 있는지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춰 설명한 책이에요. 피카추의 비만에 대한 호기심으로 시작해 영아에서 성인으로 성장하며 변화하는 체질량지수를 통해, 동물과 인간의 발달의 차이를 데이터와 물리 법칙으로 설명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어떤 분야든 주의 깊은 관찰과 데이터 기반 해석을 통해 새로운 발견이 가능하다는 메시지를 전해주고 있어 과학에 흥미가 있는 청소년, 그리고 자녀와 함께 의미 있는 과학 대화를 나누고 싶은 부모들에게 특히 추천 드려요. 과학이 먼 이야기가 아니라, 내 일상 속 이야기라는 걸 느낄 수 있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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