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는 미룰 수 없는 저탄소 농업
우리가 식탁에서 마주하는 다양한 식재료는 기후변화의 원인이자 결과가 될 수 있다. 쌀·채소·고기·과일 등 수많은 먹거리가 다양한 생산 과정을 거쳐 식탁에 오르기까지 상당한 양의 온실가스가 배출되기 때문이다.
2024년 세계은행(WB)이 발표한 『살기 적합한 지구를 위한 레시피(Recipe for a Livable Planet)』에 따르면,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의 약 3분의 1이 농업 분야에서 발생한다. 주요 배출원은 ‘메탄’과 ‘아산화질소’로 메탄은 가축 사육에서, 아산화질소는 비료 사용 과정에서 주로 발생한다. 또한 전 세계 담수 사용량의 약 70%가 농업용으로 쓰이며, 특히 관개 농업은 물 소비량이 매우 많아 효율적인 물 관리가 중요한 과제로 지적되고 있다. 매년 세계적으로 약 2억 5,000만 톤 이상의 비료가 사용되며, 토양과 수질 오염의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지구 평균 기온 상승을 1.5℃ 이내로 억제하기 위해서는 농업 분야의 노력도 필수적이다. 이에 따라 농촌진흥청은 온실가스 배출량을 감축할 수 있는 다양한 기술을 개발해 우리 농가에 보급하고 있다.
농업 분야
① 효율적인 논물 관리를 위한 ‘단순형 자동 물꼬’
벼를 안정적으로 수확하고 고품질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논물 관리가 필수적이다. 하지만 논물 관리는 많은 시간과 노동력이 소요되기 때문에 대부분의 농가에서는 물을 흘려보내는 방식(흘러대기)으로 관리하고 있다. 이 방식은 농업 용수를 과도하게 소모하는 비효율적인 방법이다. 이에 농촌진흥청은 산업체와 협력해 자동으로 논물을 관리할 수 있는 경제적인 ‘단순형 자동 물꼬’를 개발했다.
자동 물꼬는 이름 그대로, 논에 물이 드나들 수 있는 물꼬를 자동으로 여닫으며 논물을 관리하는 장치다. 원하는 물 높이를 설정하면 그에 맞춰 자동으로 밸브가 열고 닫히며 물을 관리해, 사람이 직접 논에 나가지 않아도 손쉽게 물 관리를 할 수 있다. 무엇보다 물꼬 개폐 이력을 정확하게 기록할 수 있어, 농가가 물 관리 기술을 제대로 적용했는지 여부를 객관적으로 증빙할 수 있다. 이를 통해 중간물떼기, 걸러대기 등 저탄소 논물 관리 기술을 실천할 경우 감축한 온실가스 배출량에 따라 지원금을 받을 수 있으며, 1톤 감축 시 1만 원이 지급된다. 단순형 자동 물꼬는 이처럼 노동력 절감은 물론, 온실가스 감축 효과까지 인정받을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주고 있다.
② 비료 사용량을 줄이는 ‘깊이거름주기’
토양 오염은 비료 살포 방식에서 비롯된다. 현재 농업 현장에서는 토양에 비료를 뿌린 뒤 흙을 갈아 토양과 섞는 방식으로 비료를 주고 있다. 이 방식은 비료의 질소 성분 중 약 14%가 암모니아로 배출되면서 흡수율이 낮아질 수 있다. 무엇보다 암모니아는 공기 중 아황산가스, 질소산화물과 결합해 초미세먼지를 발생시키는 원인이다. 특히 질소 비료 사용량이 증가하면 온실가스 중 질소성 기체의 배출량도 함께 늘어나 탄소중립 실현을 위해서라도 질소 비료 사용 효율성을 높이는 연구가 필요하다.
이에 농촌진흥청은 2022년 토양을 25~30cm 깊이로 파서 비료를 투입하는 ‘깊이거름주기’ 기술과 사용 장치를 개발했다. 이 장치는 농업용 트랙터에 장착해 쉽게 사용할 수 있고, 쟁기 작업과 동시에 비료를 살포할 수 있어 ‘시간’과 ‘노동력’도 줄일 수 있다.
농촌진흥청은 현장 실증연구를 통해 기술 효과도 확인했다. 헥타르당 암모니아 12.4kg이 발생했던 논에서는 암모니아가 발생하지 않았고, 밭에서는 암모니아 발생량이 17.2kg에서 4.5kg으로 줄었다. 본 기술이 보급되면 연간 농경지 암모니아 발생량이 1만 8,799톤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암모니아 국가 배출량의 7.4%에 해당하는 양이다. 기존에는 작물을 심기 전 비료를 주고 심은 후에도 2~3차례 비료를 줬으나 깊이거름주기를 적용하면 추가로 비료를 주는 횟수를 줄일 수 있다. 실제로 비료 주는 횟수를 1회 줄인 양파 재배지에서는 질소 비료를 22% 절감할 수 있었다.
질소 비료 사용을 줄이면 생산량에도 영향을 미칠까? 질소 비료 사용을 줄였음에도 암모니아로 배출되던 질소 성분이 작물로 흡수돼 양파 생산량이 2% 늘었다. 양파 생산량이 늘어 10아르당 267만 8,000원의 농가 소득이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 기술은 양파뿐만 아니라 벼, 마늘, 콩, 배추, 밀, 보리, 옥수수 등 다양한 작물에도 적용할 수 있다.
축산 분야
① 메탄 발생량을 효과적으로 억제하는 ‘저메탄 사료 소재’
축산 분야에서도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기 위한 다양한 기술 개발과 연구를 추진하고 있다. 농촌진흥청은 2025년 농업 연구개발(R&D) 혁신 방안 중 탄소감축 실천 기술 개발의 하나로, 한우의 메탄 발생량을 효과적으로 억제할 수 있는 사료 소재인 ‘티아민 이인산’을 개발했다.
티아민 이인산은 비타민 B1의 활성형 물질로, 반추위 내 메탄 생성과 관련된 조효소와 결합해 메탄 발생을 억제하는 효과를 낸다. 농촌진흥청 연구진은 축산 분야의 메탄 감축을 목표로 최근 4년간 200여 종 이상의 식물 소재, 해조류, 화합물 후보 물질을 분석했다. 이 과정에서 반추위 미생물의 유전정보를 기반으로 컴퓨터 모의실험(시뮬레이션)을 통해 티아민 이인산을 선발했다.
티아민 이인산을 사료에 첨가해 한우에 급여한 결과, 무첨가 사료를 급여했을 때보다 평균 18.3%의 메탄 배출량이 감소하는 효과가 확인됐다. 사료 섭취량과 성장률은 유지되어 생산성 저하 없이 온실가스를 줄일 수 있는 기술로 평가된다.
한편, 농촌진흥청은 이번 저메탄 사료 소재 관련 기술에 대한 특허 출원을 완료했다. 앞으로 기술이전을 희망하는 기업들과 협의를 거쳐 기술을 이전, 티아민 이인산을 활용한 메탄 저감제 등록 및 상용화를 추진할 계획이다.
② 가축분뇨 자원순환 촉진
가축분뇨의 자원순환을 위한 다양한 기술개발이 2026년부터 2030년까지 본격적으로 추진된다. 우선 환경친화형 가축분뇨 처리 기술 개발의 하나로, 우분 고체연료의 품질을 개선하고 배기가스 저감 연구를 추진한다. 수열탄화(HTC) 공정을 활용해 유기물도 고효율 연료로 전환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할 예정이다. 이와 함께, 고체연료를 소각한 후 발생하는 소각재의 산·염기 용출 특성을 분석해 질소·인 회수 기술을 고도화하고, 암모니아·요소 등 유용물질을 회수해 산업 소재로 활용하는 방안도 마련된다. 이와 더불어 가축분뇨에서 발생하는 냄새물질을 성상별로 처리하는 저부하형 순환 시스템도 개발해, 축산 환경 개선에 기여할 전망이다.
탄소 저감형 가축분뇨 열분해 부산물 활용 기술도 함께 추진된다. 2022년부터 진행 중인 이산화탄소 활용 열분해 공정 기술 개발을 통해 CO₂ 적용 시 합성가스 생산량 증가와 바이오오일 내 유해물질 감소 효과가 확인되고 있으며, 앞으로 가축분 기반 바이오차를 활용한 온실가스 흡착·저감 기술과 HDO(Hydrodeoxygenation) 공정을 적용한 바이오오일 개질화 기술도 2026년부터 2030년까지 개발할 예정이다.
에너지 분야
이상기온, 광량 부족 등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신재생에너지 기술개발이 본격화된다. 2026년부터 2030년까지 태양광·태양열을 활용한 복합열원 냉난방 기술과 고온기 대응 스마트온실 냉방 효율화 기술을 단계적으로 보급할 계획이다. 영농형 태양광 하부 식량작물 생산성 평가와 정책 제안, 대규모 농업시설 단지를 위한 에너지 그리드 모델 개발도 추진한다. 또한 농업부산물과 가축분뇨를 활용한 수소 에너지 생산 기술과 실증 연구를 진행하며, 농업시설의 보온성 향상과 에너지 소비 최적화 기술, IoT·AI 기반 냉방 에너지 예측 시스템 등도 개발할 예정이다. 이를 통해 농업 에너지 소비 구조를 효율화하고, 기후변화에 강한 지속가능한 농업 기반을 마련할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