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식치 또는 식료라는 말
식치 또는 식료는 거칠게 요약하면 전근대 시대의 ‘식이요법’이다. 먹을거리를 통해 면역을 강화하고, 질병을 예방하고, 약 쓰기 전에 몸으로 느끼는 나쁜 기운을 물리치는 방법이다. 사람이 매일을 살아가매 매일 먹는 음식을 통해 건강을 지킨다는 생각은 당연히 해볼 만하다. 형편껏 식료품과 음식을 가리고, 깨끗이하고, 조리하고, 간수하는 행동은 온 지구를 통틀어 사람 사는 데서 자연스레 이어진 일상생활의 한 면모이다. 당연히 이 분야의 책이 필요할 수밖에. 쓰일 수밖에.
이를 대표하는 한국 역사상의 문헌 가운데 하나가 전순의(全循義, ?~?)의 〈식료찬요(食療纂要)〉이다. 전순의는 조선 세종 때부터 세조 때까지 약 30년 동안이나 전의감(典醫監)1)에서 일한 의관이다. 이미 세종 때 의학서 〈의방유취(醫方類聚)〉2)의 편찬에도 참여했던 전순의는 1460년(조선 세조 6년) 〈식료찬요〉를 편찬한다. 이 책의 서문의 첫 문장이 이렇다.
(人之處世, 飮食爲上, 藥餌次之).”
약 쓸 상황 맞기 전에, 제대로 먹어서 건강을 지키자는 말이다. 이렇게도 말했다.
서문을 보거나 내용을 보거나 맛난 것만 잔뜩, 되는 대로 골라먹자는 소리가 아니다. 식생활을 잘해 약 쓰기 전에 내 몸을 지키자는 말이고, 그래서 필요한 약 마흔다섯 조문의 식이요법을 망라했다. 전순의가 올린 원고를 본 세조는 크게 만족한 듯하다. 세조는 ‘식료찬요’라는 책 이름을 직접 지어 내렸다.

닭 식료찬요가 품은 재료
별별 음식이 다 있지만 한여름 앞두고 있으니 특히 닭을 주재료로 한 음식을 한번 살펴보자. 〈식료찬요〉에는 닭고기 및 닭의 창자와 모래주머니를 쓰는 여덟 가지 조리법이 실려 있는데 그 가운데 난삽한 조리법 세 가지를 빼면 아래처럼 정리할 수 있다.
- 누런 암탉의 고기 5냥, 흰 밀가루 7냥, 총백 잘게 다져 2홉. 여기에 썬 닭고기를 넣고 완자를 만든다. 초피와 간장을 넣고 양념해 푹 삶아 빈속에 먹는다.
- 누런 암탉은 먹을 만큼 볶아 고깃국을 끓인다. 밀가루 반 근, 계심가루 1푼, 복령가루 1냥. 계심가루와 복령가루를 밀가루와 섞어서 국수를 만든다. 닭고깃국에 넣고 푹 삶아 먹는다
- 누런 암탉 한 마리는 털과 발톱을 제거하고 내장을 꺼내어 깨끗이 씻는다. 생지황 1근은 씻어서 썰어 둔다. 생지황을 닭의 뱃속에 넣고 묶어서 구리냄비 안에 넣고 푹 익힌다. 꼭 짜서 즙을 내고 다섯 번에 나누어 먹는데 때를 따질 것 없이 따뜻하게 먹는다
- 검은 암탉 한 마리를 여느 때처럼 손질한다. 찹쌀 3홉. 닭을 푹 삶아 살을 발라 썰어 장을 푼 국물에 넣고 찹쌀을 넣어 죽을 끓인다. 소금, 초피, 생강, 파를 넣고 빈속에 먹는다. 국을 끓여 먹거나 완자나 국수로 만들어 먹어도 모두 좋다.
- 누런 수탉 한 마리의 털을 제거하고 배를 가른다. 불에 구운 생백합(生百合, 나리) 3개, 멥쌀 반 되. 여느 때처럼 재료를 준비하고 양념해 버무린 다음, 닭의 뱃속에 넣고 삶아 익혀 배를 갈라 백합과 멥쌀밥을 꺼내 먹고, 국물을 더해 국도 끓여 먹고 고기도 먹는다
글쓴이가 함부로 약재에 대해 아는 체할 수는 없다. 그저 닭고기로 완자도 빚고, 닭칼국수도 하고, 닭죽까지 끓이는 모습을 제시할 뿐이다. 그래도 닭고기를 다루는 모습이 익숙해서 정답다. 생략한 문단에서는 닭의 창자로도 국을 끓이는 모습도 보인다. 또는 오늘날과 똑같이 닭모래주머니도 알뜰하게 먹어 치우려 들었다.
더구나 ❸과 ❺의 조리법이 재미나기만 하다. 닭의 뱃속에 독특한 풍미가 있는 부재료를 넣고, 닭을 온 마리로 살려 조리하는 방식이라니! 그야말로 삼계탕의 원형 아닌가. 더구나 ❺의 방식을 보자. 생백합을 인삼(수삼)으로 바꿔치기만 하면 그대로 오늘날의 삼계탕이다. 한국인이 삼계탕거리를 마련하고, 닭을 손질하고, 뱃속에 밥까지 채워, 닭 한 마리를 온전히 살려 즐기는 모습이 여실하다. 전순의가 식이요법에 오로지 닭만 쓴 것도 아니요, 삼계탕을 기록하려 든 것도 아니다. 그렇지만 덕분에, 이렇게 음식 문화사의 한 조각이 남는다. 남은 조각과 조각을 맞추면 한반도에서 닭고기 쓰임새의 역사도 정리할 수 있고, 그에 맞춘 향신재의 쓰임도 알 수 있다. 한반도 삼계탕의 연원, 그 원초적인 상상력이 단박에 떠오른다. 다 떠나, 여기 보이는 손질법이나 조리법의 면면한 흐름은 어떤가. 손에 걸리는 대로 파와 생강도 쓰고, 조금 더 신경을 써서는 복령 등 약재도 쓴다. 후추 아니라도 초피와 같은 한반도 자생 향신료를 써 풍미를 돋운다. 찹쌀과 멥쌀을 달리 쓰는 섬세함도 발휘한다. 새삼 〈식료찬요〉를 다시 본다. 한반도에서 태어나, 진화해, 이어지고 있는 먹을거리를 향한 구체적인 행동과 태도와 감각을 되돌아 본다.

- 왕실과 중앙의 약재와 진료를 관장하던 기관.
- 1445년 완성되었고, 1477년 간행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