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는 농업과학자

기술과 윤리의
교차점에서,
길을 찾는 사람

국립농업과학원 스마트팜개발과

김태현 농업연구사

인공지능은 농업 현장을 어떻게 바꿔놓을 수 있을까? 그리고 인공지능이 주도하는 농업 현장에서,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은 누구에게 있을까. 김태현 농업연구사는 인공지능으로 작물을 더 똑똑하게 키우는 기술을 연구하는 동시에, 그 판단의 무게와 책임에 대한 물음에도 귀 기울이는 연구자다.

스마트한 농업을 설계하다

다양한 신기술이 접목되며 농업 현장이 점점 더 스마트하고 효율적으로 변모하고 있다. 그 중심에는 ‘스마트팜’ 기술이 있다. 김태현 농업연구사는 정보통신기술을 기반으로 시설 환경을 모니터링하고 스마트폰으로 원격 제어가 가능한 1세대 스마트팜을 넘어, 한층 고도화된 ‘2세대 스마트팜’ 개발을 주도하고 있다.

“현재는 사람이 온실의 환경을 직접 판단해 온도나 습도를 조절하고 있어요. 궁극적으로 이런 작업을 사람 대신 인공지능이 스스로 판단하고 조절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연구의 목표입니다. 이를 위해 기계가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정보를 변환하는 과정이 필요한데, 저는 그 정보를 만드는 역할을 맡고 있습니다.”

김태현 농업연구사는 작물의 생육 상태와 환경 정보를 기계가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전환하고, 이를 바탕으로 인공지능이 스스로 판단하고 자동으로 환경을 제어하는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 무엇보다 이러한 연구는 단순히 환경을 자동으로 제어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적절한 환경 조건을 미리 조성함으로써 병해충 피해를 최소화하고 작물 생육을 최적화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농업에서 가장 중요한 건, 환경을 예측해 선제적으로 대응하는 거예요. 그러기 위해선 방대한 양의 빅데이터가 필요한데, 지금은 그 데이터를 수집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모인 데이터를 바탕으로 온도나 습도 조건에 따라 2주 뒤에 어떤 병이 생길 가능성이 있다든지, 특정 환경에서 작물이 받는 스트레스 등을 예측할 수 있죠.”

가능성을 인정받다

김태현 농업연구사가 개발 중인 시스템은 병해충을 초기, 중기, 말기로 구분해 인식할 수 있으며 병의 유형에 따라 바이러스성인지 곰팡이성인지도 판별해 적절한 대응을 가능하게 한다. 예를 들어 바이러스성 병해는 퍼지는 속도가 빨라, 선제적 방제를 하는 것이 중요하고, 감염식물을 신속히 제거하지 않으면 주변 작물로 금방 확산될 수 있다. 반면 곰팡이성 병해는 병든 부위만 방제하거나 제거해도 큰 피해를 줄일 수 있다. 따라서 초기 증상이 포착되면, 시스템이 즉시 농가에 알람을 보내 상황을 알려주고 농가는 이를 바탕으로 방제나 제거 여부를 신속하게 판단할 수 있다.

“이런 병해충 예측과 진단의 정확도를 높이기 위해 ‘모니터링 로봇’을 활용한 연구도 병행하고 있습니다. 이 로봇은 온실 안을 스스로 돌아다니며 작물을 관찰하고 병해 발생 여부를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게 돕습니다. 무엇보다 이처럼 병해충을 보다 빠르고 정확하게 인식하고 예측할 수 있는 기술은 농가의 피해를 줄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죠.”

김태현 농업연구사는 이러한 기술적 가능성과 현장 적용성을 높이 평가받으며, 관련 성과를 바탕으로 여러 기술이전 계약을 체결했다. 방제 로봇 등 관련 산업체로부터도 큰 주목을 받고 있으며, 실제로 농업공학부 내에서도 특허출원 및 기술이전 등 많은 실적을 쌓고 있으며 상업화 가능성을 높게 평가받고 있다.

하지만 연구는 여전히 완성되지 않았다. 무엇보다 농가에 가장 중요한 건 ‘생산성’이기 때문에, 이 기술이 실제로 농가의 생산성 향상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단순히 작물의 생육 상태와 병해충 발생 여부를 ‘인식’하는 데 그쳐선 안 된다. 그에 따라 환경을 어떻게 ‘제어’할지까지 자동화되어야 진정한 스마트팜이라고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토마토 같은 작물은 줄기 두께가 생육 상태와 밀접하게 연관돼 있어요. 영양생장은 작물이 자신의 몸을 키우는 단계이고, 생식생장은 열매를 맺고 자손을 퍼뜨리는 단계입니다. 처음엔 줄기를 튼튼하게 키워야 열매도 잘 맺기 때문에 영양생장이 중요하지만, 어느 시점부터는 생식생장으로 전환돼야 해요. 이 전환 시기가 매우 중요한데, 얼마나 적절하게 넘어가느냐에 따라 생산량이 크게 달라질 수 있습니다. 결국 이런 생육 정보를 인공지능이 스스로 판단할 수 있어야 하고, 그 판단을 바탕으로 제어 시스템이 자동으로 반응해야 진짜 자동화가 이뤄지는 거죠. 그래서 궁극적으로는 사람의 개입 없이 인식 시스템과 제어 시스템이 서로 소통하면서 작물 생육 상태에 대한 판단을 로봇이 스스로 내리는 기술을 목표로 연구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다만, 완전한 자동화에는 법적 책임 소재라는 현실적인 이슈도 함께 존재한다. 의사결정 권한을 인공지능이 가지게 되면, 작물 실패에 대한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 불분명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현재는 ‘의사결정 시스템’이 아닌 ‘의사결정 지원 시스템’으로, 사람이 최종 판단할 수 있는 구조로 개발이 이뤄지고 있다.

김태현 농업연구사는 이러한 기술적 진보와 현실 사이의 간극을 고민하던 중, 『라이프 3.0』에서 깊은 통찰을 얻었다. 인공지능이 판단을 내리는 사회에서 발생할 수 있는 윤리적 문제와 책임의 경계를 다룬 이 책은, 스마트팜 기술을 개발하는 김태현 농업연구사에게도 중요한 화두를 던져주었다.

인공지능을 향한 질문들

맥스 테그마크의 『라이프 3.0』에서는 생명의 진화를 세 단계로 구분해 설명한다. 생물학적 진화에만 의존하는 존재를 ‘1.0’, 지식을 후대에 전수할 수 있는 인간을 ‘2.0’ 그리고 하드웨어까지 스스로 설계할 수 있는 존재 즉 인공지능을 ‘3.0’으로 정의한다. 그리고 책은 묻는다. 머지않은 미래, 인공지능의 발전으로 인간이 자신의 육체를 인공적으로 완전히 바꾸거나 정신마저 인공지능으로 대체할 수 있는 시대가 온다면 우리는 과연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어떤 삶의 방식을 택해야 하는가.

“책에는 구글 창업자 래리 페이지 같은 인물과의 인터뷰도 나와요. 그런 사람과 나눈 대화를 통해, 인공지능이 앞으로 사회 구조를 어떻게 바꿀 수 있을지, 그리고 인간이 라이프 3.0으로 향하는 여정에서 어떤 선택을 하게 될지에 대한 고민이 담겨 있습니다. 특히 인상 깊게 읽은 이유는 단순히 ‘인공지능이 유용하다’, ‘기술이 이렇게 발전할 수 있다’는 식의 낙관적인 전망만을 제시하지 않기 때문이에요. 실제로 인공지능이 사회에 어떤 문제를 일으킬 수 있는지, 그리고 윤리 문제나 책임 소재는 누구에게 있는지와 같은 현실적인 이슈까지 다루고 있어요. 그래서 단순한 기술 안내서라기보다는, 인공지능이 사회에 도입됐을 때 벌어질 수 있는 다양한 사례와 상황들, 그리고 그 안에서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해야 할지에 대한 철학적인 질문까지 던지고 있는 책입니다.”

인공지능을 활용해 보다 스마트한 농업 현장을 구현하려는 김태현 농업연구사에게도, 기술이 불러올 책임과 판단에 대한 고민은 중요한 화두다. 그의 연구가 생명과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분야는 아니지만, 인공지능이 의사결정을 내릴 때 그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지, 또 어디까지 기계가 제어권을 가져야 할지에 대해 깊은 고민을 하게 됐다.

“온실에서 천창이나 측창을 자동으로 여닫아 온도를 조절하는 시스템의 경우, 단 한 번의 판단 오류만으로도 10분~20분 만에 작물의 생육 상태가 심각하게 나빠질 수 있어요. 책을 통해 느낀 건, 모든 의사결정을 인공지능에 맡기기보다는 일부 판단에는 사람의 개입이 반드시 필요한 구조를 설계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입니다.”

이처럼 김태현 농업연구사의 연구는 단순한 기술 개발을 넘어, 인공지능이 실제 농업 현장에 적용됐을 때 발생할 수 있는 다양한 변수까지 고려하는 방향으로 확장하고 있다. 그는 더욱 정교하게 인공지능을 발전시키는 동시에, 인간과 공존할 수 있는 윤리적인 관점도 함께 고민하며, 궁극적으로는 스마트팜을 통해 농업 현장을 보다 지속 가능하고 지능적으로 변화시켜 나가고 싶어 한다. 무엇보다 그가 꿈꾸는 미래는, 인간과 인공지능이 공존하는 농업 현장이다.

이런 분께 추천합니다

『라이프 3.0』

맥스 테그마크 저자(글)·백우진 번역|동아시아

책에서는 인공지능을 도입했을 때 미래에 발생할 수 있는 문제들을 다양한 예시를 통해 보여주고 있습니다. 특히 어려운 개념도 독자가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에피소드를 활용해 설명하고 있어, 전문 지식이 없는 사람도 흥미롭게 읽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연구자뿐만 아니라 일반 대중도 함께 읽어 보면, 인공지능이 바꿔놓을 미래에 대해 깊이 고민해볼 수 있는 계기가 될 것 같아요. 아울러 정책을 만드는 입장에서도 생각해볼 지점이 많습니다. 우리 연구자들 같은 경우에는 농업과 관련된 정책 제안을 직접 하기도 하기 때문에, 이런 책을 통해 시야를 넓히는 데도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 이유로 이 책을 많은 분께 추천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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