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서 탐구

산가요록 山家要錄

대학에서 고전문학을 공부했다. 고전문학 작품 번역과 해제 및 음식문헌 읽기와 정리에도 힘쓰고 있다. 현재 경향신문 기명 칼럼 〈고영의 문헌 속 밥상〉을 연재하고 있다.

“과저[瓜菹, 오이지]. 푸른 오이를 깨끗이 씻어 볕에 하루 말렸다가 항아리에 담는다. 한 켜는 향유(香薷)1), 한 켜는 오이 하는 식으로 켜켜이 담아 항아리가 가득 차면 끓인 소금물을 식혀 부은 뒤 할미꽃으로 덮는다.”
“가자저[茄子菹, 가지김치]. 첫서리가 내린 뒤 크거나 작거나 가지 한 말을 준비해, 가지의 중간까지 십자(十字) 칼집을 내 끓는 물에 살짝 데쳤다가 꺼내 말린다. 축축하면 베수건으로 물기가 없어질 때까지 닦아낸다. 생파와 마늘을 곱게 다져 십자 칼집 한 가운데에 넣고 항아리에 담은 뒤, 간장 한 사발과 참기름 다섯 홉을 섞어 진하게 끓여 붓고, 익으면 먹는다. 분량은 이와 같이 가늠한다.”

오이랑 가지 없이 어떻게 한여름을 난담! 시대와 감각이 달라졌다고는 하지만 한반도의 찌는 날씨 속에서 오이와 가지는 여전히 귀한 식료품이고 밥상머리의 친구이다. 이 친구들, 익혀 보관해야 두고 먹을 수 있고, 꺼내자마자 바로 반찬이 된다. 한반도의 여름 계절 감각과 식료품의 조건 속에서 일찌감치 오이지가 태어났다. 더불어 일찌감치 가지의 물성과 특성에 따라 장물을 끓여 붓는 형태2)의 가지김치도 태어났다.

위의 오이지 만드는 법과 가지김치 만드는 법은 지난 호3)에 소개한 〈식료찬요(食療纂要)〉의 편저 자 전순의(全循義, ?~?)가 엮은 〈산가요록(山家要錄)〉에 실린 방법이다. 이 책이 엮인 시기는 〈식료찬요〉를 펴낼 때보다 앞선, 조선 세종 때로 추정한다. 그러니 이미 15세기면 오이지고 가지김치고 한반도에서 저만큼 틀이 잡혀 있었다고 볼 수 있겠다. 여기서 〈산가요록〉의 책이름을 살펴보자. 유학과 한문을 공부하는 사람을 선비[士]라고 한다. 선비가 선발 과정을 거쳐 벼슬길에 오르면 벼슬아치[大夫]가 된다. 선비와 벼슬아치의 집안은 논밭과 임야를 경영하며 집안을 돌보고 선비를 기른다. 벼슬아치의 중앙 정치 활동을 뒷받침하기도 한다. 농업 경영 없이는 사대부(士大夫)도, 사대부를 기를 집안도 없다. ‘산가(山家)’란 이들의 논밭과 임야가 있는 공간을 일컫는다. 벼슬 없이 고향에 물러나 있는 지식인을 가리켜 ‘산림처사(山林處士)’라고 하거니와 산가, 산림(山林), 임원(林園) 등이 다 비슷한 말이다. 조선 시대 농업 경영서 또는 가정 경영서 제목에 산가, 산림, 임원 등의 말이 붙는 데4)에는 이런 이유가 있었다. ‘요록(要錄)’은 ‘요긴한 정보’ ‘꼭 필요한 바를 요약하다’의 뜻이다. 전순의는 15세기 논밭과 임야의 자원을 제대로 갈무리해, 제대로 운용하고 활용하기 위한 정보를 〈산가요록〉에 담았다. 음식 관련한 정보까지 아울러야 함은 자연스럽고도 당연했다.

자료: (재)궁중음식문화재단

아쉽게도 이 책의 전반부는 훼손되어 없다. 오늘날까지 전해져 우리가 읽을 수 있는 부분은 원래의 온전한 내용이 아니다. 그럼에도, 남은 내용만으로도 방대하다. 양잠(養蠶)·유실수·경제적으로 가치 있는 나무(대나무 포함)·채소·염료용 식물 및 약초·가축·술·장(醬)·초(醋)·김치와 장아찌와 짠지·과일과 채소 저장·어육 저장·동절양채(冬節養菜, 겨울철 채소 가꾸기)·죽·병과류·국수 및 만두·과정 등 과자류·자반·식해(食醢, 생선 또는 고기 발효 식품)·기타 조리법·옷 짓는 날 선택하는 법5)·염색에 이르는 항목이 남아 있다. 여기서 확인할 수 있는 식품 가공법 및 조리법만 해도 200가지가 넘는다.

게다가 내용 자체가 풍부하다. 다시 오이지로 돌아가면, 앞서 본 방법을 기본형으로 하고, 그 아래 다섯 종의 오이지 또는 오이김치를 소개한다. 예컨대 1)푸른 오이를 한 치쯤으로 잘라 끓는 물에 데쳐 형개(荊芥)6)·초피잎·생강·마늘과 함께 항아리에 봉해 가지김치 조리법처럼 참기름으로 향을 더한 달인 장을 부어 익히는 법, 2)오이를 데쳐 여뀌잎과 섞어 담그는 법, 3)오이를 동아꼭지·형개·여뀌잎 또는 열매와 섞어서 절이는 법, 4)어린 오이를 데쳐 세 조각을 내 장에 재웠다가 내는 법, 5)음력 5~6월 사이의 오이를 볕에 말려 준비하고, 할미꽃의 뿌리와 줄기를 쪄 오이 사이에 켜켜이 넣고 끓는 소금물을 뜨거운 채로 부어 봉했다가 가을이나 겨울에 먹는 법 등이다. 여기다 여름에 금방 끓는 장에 담그는 오이장아찌인 ‘하일장저(夏日醬菹)’, 볕에 말린 오이에 칼집을 내 그 속을 마늘·향유·산초잎으로 채우고 장에 담가 하룻밤을 익혀 먹는 ‘하일가즙저(夏日假汁菹)’도 함께 기록되어 있다. 이제 향신채의 시대가 왔다는데 향유에서 형개, 또 초피잎이며 여뀌에 산초잎 등등 한식에서 그 다양성과 다채로움을 되살린다면 또한 〈산가요록〉 곳곳에 기록된 자원과 조리법이 큰 참고가 될 만하다. 오이지만 그런 것이 아니다. 식해만 해도 생선을 기본으로 해서, 소의 양이며 도라지를 활용하는 모습까지 보여준다. 그런 가운데 무어니 무어니 해도 정말 사람의 눈을 휘둥그렇게 하는 기록이라면 ‘동절양채’ 항목이다. 겨울에도 채소야 어떻게든 가꿀 수는 있지, 하고 말 일이 아니다. ‘동절양채’는 본격적인 온실 제작 및 운용법이다.

“어떤 크기로 집을 짓든 3면은 벽을 쌓아 종이를 바르고 기름을 먹인다. 남쪽 면에는 살창을 내고 그 벽에는 종이를 바르고 기름을 먹인다. 구들을 놓아 연기가 생기지 않게 하고 온돌 위에 흙을 1치 반쯤 쌓아 봄나물을 가꿀 수 있다. 아침저녁으로 따뜻하게 하고 바람이 들어오지 않게 하되, 몹시 추우면 반드시 덮개로 두껍게 살창을 가리고, 날씨가 풀리면 바로 거둔다. 날마다 물을 뿌려 방안에 이슬이 맺게 하고, 늘 따뜻하고 촉촉한 상태를 유지해 흙이 하얗게 마르지 않도록 한다. 또 ‘굴뚝은 벽 밖으로 뽑고 가마솥은 벽 안쪽에 걸어, 아침저녁으로 가마솥의 수증기가 방안 전체에 퍼지게 한다’라고도 한다.”

글쓴이가 굳이 더 구구한 설명 보탤 것 없겠다. 시설재배의 원초적인 기술이 이 한 항목에 오롯하다. 읽고 있으니 제2차세계대전 이후 녹색혁명을 이루고, 녹색혁명 지나 다시 백색혁명7)을 이룬 한반도의 농업 연대기가 새삼스럽다. 옛글 앞에서 한국 농업사의 분투 또한 새삼스럽다.

  1. 노야기를 가리킨다. 장을 튼튼히 하고 구취를 없애는 용도로도 쓰였다. 국립생물자원관의 해제 참조.
    https://species.nibr.go.kr/home/mainHome.do?cont_link=009&subMenu=009002&contCd=009002 &pageMode=view&ktsn=120000063060
  2. 장김치는 소금, 젓갈 등을 쓰지 않고 장으로 간을 맞추어 익힌 김치이다. 위 가지김치 항목이 장김치의 본래 모습을 잘 보여준다.
  3. 농촌진흥청 엮음, ‘고서탐구 식료찬요’, 〈그린매거진〉, 2025년 7월호, 통권 제239호 참조.
  4. ‘산림경제’, ‘증보산림경제’, ‘임원경제지’와 같은 책이름을 보라. ‘경제 기반’ 더하기 ‘경제’의 꼴을 이룬다. 농업 경영은 당연히 가정 경영과 겹친다. 농업 자원에 대한 감수성은 가공과 저장과 조리와 음식으로 귀결되게 마련이다.
  5. 당시에는 옷을 짓는 데에도 길한 날이 따로 있고 흉한 날이 따로 있다고 여겼다.
  6. 약용 식물의 일종. 국립생명자원관의 해제 참조.
    https://species.nibr.go.kr/home/mainHome.do?cont_link=009&subMenu=009002&contCd=009002& pageMode=view&ktsn=120000063109
  7. 녹색혁명(綠色革命, Green Revolution)은 새로운 농업 기술에 따른 폭발적인 농산물 증산이나 제2차세계대전 이후 개발도상국의 급격한 식량 증산을 뜻하는 말이다. 다수확 신품종·제초제·살충제·살균제·화학비료 등이 ‘새로운 농업 기술’의 핵심적인 요소이다. 백색혁명(白色革命, White Revolution)이란 시설재배를 통해 사시사철 신선한 작물을 재배하게 된 농업상의 획기적인 변화를 가리킨다. 비닐하우스 등 재배용 시설이 농지를 하얗게 뒤덮은 풍경에서 따온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