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제의 너른 들녘에서 농사의 가능성을 발견한 청년농업인 유지혜 대표.
농번기에는 흙을 일구고, 농한기에는 직접 재배한 쌀과 밀로 건강한 빵을 구워낸다. 아이들과 함께하는 체험 수업을 통해 농업의 가치를 전하는 일도 청년농업인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로 여긴다. 농사와 빵, 그리고 교육이라는 세 가지 기둥 위에 유지혜 대표는 청년농업인이 만들어갈 수 있는 건강하고 멋진 삶의 가능성을 몸소 보여주고 있다.
농부라는 ‘가능성’
김제에서 농업인의 딸로 태어난 유지혜 대표. 고등학교를 졸업할 즈음, 엄마로부터 ‘농사를 한번 지어보자’라는 제안을 받았다. 하지만 그녀는 곧장 고개를 끄덕일 수 없었다.
“지금은 농업인에 대한 인식이 많이 좋아졌지만, 그때만 해도 ‘농사짓는 사람’에 대한 편견이 컸어요. 그런 시선 속에서 농사를 시작하고 싶진 않았어요.”
유지혜 대표는 서두르지 않기로 했다. 농사가 싫어서가 아니라, 오히려 제대로 알고 진심으로 선택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다양한 경험을 해본 뒤에 시작해야 후회하지 않을 것 같았다. 대학에 진학하고, 중국 유학도 다녀오고, 사회생활도 경험했다. 그렇게 할 수 있는 모든 경험을 해보고 나서야, 비로소 농사를 시작해도 되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그렇게 다 해보니까, 미련도 없고 후회도 없더라고요. 솔직히 사람들은 ‘대학 못 나와서 농사짓나 보다’, ‘직장생활 못 버텨서 내려왔구나’라는 식으로 쉽게 생각하잖아요. 저는 그런 말에 당당하게 말하고 싶었어요. ‘대학 나왔고, 사회생활도 해봤어요. 그러고 나서 선택한 거예요’라고요.”
이 선택은 유지혜 대표 한 사람의 이야기를 넘어, 농업을 고민하는 다른 이들에게도 하나의 메시지가 되길 바랐다. ‘실패’ 해서 선택한 길이 아니라, ‘가능성’을 보고 스스로 걸어 들어온 길이라는 걸. 그렇게 본격적으로 농사일을 시작했다. 농업인의 딸로 자랐지만, 온전히 흙을 일군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아버지가 혼자 하기에는 벅찬 일들을 옆에서 함께하며, 유지혜 대표는 하나씩 배워나갔다. 그러다 보니 트랙터, 지게차 같은 농기계도 자연스럽게 익히게 됐다.
“고난이도 기술은 아버지가 맡고, 기계 운전이나 비교적 부담이 덜한 일은 제가 맡았어요. 기계를 제대로 다루고 싶어서 학원도 다녔고요. 제가 손에 익는 게 빠른 편이기도 하고, 현장에서 계속 부딪히다 보니 실력이 늘 수밖에 없더라고요. 하나씩 경험이 쌓이고, 주변 농업인들이 하는 걸 눈여겨보면서 자연스럽게 배워갔어요.”
그렇게 유지혜 대표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농사라는 삶을 조금씩 뿌리 내려가기 시작했다.
또 다른 가능성의 시간, 놀지 않는 ‘농한기’
농번기인 5월, 6월, 10월, 11월에는 바쁘게 논밭을 오가며 농사를 지었다. 하지만 농한기가 찾아오면, 말 그대로 텅 빈 시간이 펼쳐졌다. 여유는 있었지만, 그 시간을 어떻게 채워야 할지 고민스러웠다. 그때 유지혜 대표의 두 번째 일이 시작됐다.
“우연히 인스타그램에서 떡 케이크를 봤어요. 그걸 보는 순간 ‘내가 농사지은 쌀로도 만들 수 있겠다’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마침, 집 근처에서 수업이 열린다는 소식을 듣고 망설이지 않고 등록했죠. 그때만 해도 떡 케이크가 지금처럼 흔하지 않았고, 반응도 꽤 좋았어요.”
하지만 금세 현실적인 벽에 부딪혔다. 떡은 금방 무르고, 보관도 까다로워 택배로 보내기가 어려웠다. 무엇보다 수요가 한정적이었다. 결혼식, 돌잔치, 환갑잔치처럼 특별한 날이 아니면 찾는 이가 드물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시 고민에 빠져들었다. 그때 떠오른 것이 바로 빵 만들기 ‘체험’이었다.
“쌀과 밀을 직접 농사지으니까, 이걸 활용해서 체험형으로 운영하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직접 빵을 만들어 보기로 했죠. 기본적인 제조 과정을 알아야 할 것 같아 제빵 학원을 두 달 정도 다녔어요. 미니 오븐이나 반죽기 같은 기본 장비도 하나씩 마련하면서 집에서 직접 빵을 굽기 시작했어요. 그때 만든 빵을 인스타그램에 올렸더니, 지인이 구매하고 싶다고 물어오더라고요. 반응이 좋았어요. 그렇게 자연스럽게 빵을 판매하기 시작했습니다.”
소소하게 시작했던 일은 점점 커졌다. 처음에는 몇 개 정도 구워냈지만, 어느새 수백 개를 구워내야 할 만큼 주문이 늘어났다. 그에 따라 장비도 하나둘 업그레이드하고 대량 생산 체계도 갖춰 나갔다. 그런 과정 속에 우리 쌀과 우리 밀로 만든 건강한 빵 브랜드 ‘바람난농부’가 탄생했다. 무엇보다 바람난농부의 빵에는 첨가물이 전혀 들어가지 않는다. 그저 좋은 재료로 정직하게 구울 뿐이다. 그래서 위장이 약한 사람, 몸이 아픈 사람도 부담 없이 한 조각 먹을 수 있는 빵. 그것이 바로 바람난농부의 자부심이다.
쌀과 밀을 직접 농사지으니까, 이걸 활용해서 체험형으로 운영하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직접 빵을 만들어 보기로 했죠. 기본적인 제조 과정을 알아야 할 것 같아 제빵 학원을 두 달 정도 다녔어요.
교육으로 잇는, 농업의 가능성
농번기에는 농사를 짓고 농한기에는 빵을 굽는 두 가지 일을 병행하면서도 유지혜 대표가 놓지 않는 것이 하나 있다. 바로 ‘공부’다. 시간이 날 때마다 다양한 교육기관을 찾아다니며 교육을 듣고, 사람을 만나며 농사만으로는 얻을 수 없는 또 다른 지혜를 쌓아간다. 무엇보다 수많은 삶의 방식을 마주하면서, 청년농업인으로서 ‘나는 어떤 삶을 살고 싶은가’를 끊임없이 물으며 찾고 있다.
“처음에는 해외연수도 가보고, 사람들도 만나보자는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했어요. 그런데 다니다 보니 오히려 사람들의 경험을 통해 더 많은 걸 배우게 되더라고요. 그중에서도 한국벤처농업대학에 입학한 건 제게 큰 전환점이었어요. 대학에는 연 매출 수십억 원을 올리는 분들도 있고, 여유롭게 사는 분들도 많아요. 그런 환경에 있다 보면 정말 쉽게 흔들려요. ‘딸기를 키워볼까? 블루베리를 해볼까?’ 처음엔 교육만 다녀오면 ‘엄마, 우리도 그거 해보자!’ 하면서 들떴거든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저한테 맞는 일과 아닌 일을 구분할 수 있게 됐어요. 그렇게 기준이 생기고 나니까 더는 흔들리지 않더라고요. 다른 사람의 성공에 휘둘리기보다, 이제는 제가 잘할 수 있는 일에만 집중하게 됐어요.”
그 과정에서 고민도 많았다. 체험이나 빵 사업을 더 키우고 싶었지만, 결혼 이후의 거취가 불투명해 쉽게 결정을 내릴 수 없던 시기였다. 사업을 확장하자니 부담스러웠고, 멈추자니 아쉬운 상황이었다. 그런 시간을 지나며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해외 연수를 경험하며 유지혜 대표는 다시 한번 뚝심 있게 결론을 내린다.
“공장을 크게 지어 대량 생산을 해야 할지, 그게 과연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일인지 계속 고민하게 됐어요. 결국 내린 결론은, 그냥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만큼만 하자는 거였죠. 이렇게 마음을 먹고 나니까 한결 편안해지더라고요. 이후 사업자등록을 하고 교육 체험 일을 시작했어요.”
그 뒤로 유지혜 대표는 방과 후 수업을 비롯해 체험 강의까지 다양한 교육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학교 텃밭에 상추, 가지, 부추 등을 심고 가꾸며 건강한 식재료로 햄버거를 만들어보는 체험을 통해 건강한 먹거리와 농업의 가치를 함께 전하고 있다. 또한 2차 가공과 6차 산업에 관심 있는 농업인을 대상으로 선진지 견학이나 교육 프로그램도 활발하게 운영하며, 우리 농업의 새로운 가능성과 미래를 함께 모색하고 있다.
두 아이의 엄마이자 농사짓고 빵을 굽는 대표로 살아가는 유지혜 대표는, 요즘도 여전히 청년농업인으로서 하루하루 더 깊은 고민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지속가능한 농업의 내일을 만들기 위해, 수도권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농업 체험 프로그램을 구상하고, 청년농업인이 직접 학교에 들어가 진로 강사로 활동할 기회도 모색 중이다.
“청년농업인이 교육 활동을 펼칠 수 있다는 건 정말 의미 있는 경험이에요. 앞으로 더 성장할 수 있는 중요한 발판이 되기도 하고요. 그래서 요즘은 이런 기회를 더 많이 만들기 위해 공부도 열심히 하고 있어요. 소비자들과도 더 많이 연결될 수 있는 방향으로요.”
오늘도 유지혜 대표는 공부하고, 사람들을 만나며, 다음 꿈을 향해 조금씩, 또박또박 나아가고 있다. 무엇보다 청년농업인으로서 멋지게.
바람난농부의 대표 상품
farmersbakery
쌀카스테라 & 우리밀단팥빵
가루를 드시기 어려운 분들을 위해 직접 재배한 국산 쌀 100%로 빵을 만듭니다. 방부제, 보존료, 첨가제, 베이킹소다 등을 넣지 않고 재료 본연의 맛으로 정직하게 굽습니다.
- 설탕은 최소량만 사용해 다소 거칠게 느껴질 수 있지만 그만큼 속이 편하고 어르신부터 아이까지 안심하고 드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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