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서 탐구

조선후기의 맛과
생활을 기록한 문헌

규합총서

대학에서 고전문학을 공부했다. 고전문학 작품 번역과 해제 및 음식문헌 읽기와 정리에도 힘쓰고 있다. 현재 경향신문 기명 칼럼 〈고영의 문헌 속 밥상〉을 연재하고 있다.

자료: 한국학중앙연구원
“문득 생각하니 옛사람이 말하기를 총명이 무딘 글만 못하다1) 하니 그러므로 적어두지 않으면 어찌 잊을 때를 대비하여 일에 도움이 되리오.”

앞서 소개했듯, 어려서부터 글 읽기 좋아했고, 평생 읽고 쓴 사람 빙허각 이씨(憑虛閣李氏, 1759~1824)는 <규합총서(閨閤叢書)>의 서문에 이렇게 썼다. 내 머리만 믿고 글쓰기와 기록에 게을렀다 낭패를 본 적 있는 모든 사람에게 아프게 다가올 만한 문장이다. 또는 사람이 잠깐의 총명함만 믿고 살 수는 없다는 점을 일깨우는 문장이다. 빙허각 이씨는 자신의 경험과 감각과 고전적인 지식을 망라하되 내 머리에만 의존하지는 않으려 했다. <규합총서>를 일관한 마음이었다.

그 짜임새를 살펴보자. <규합총서>는 ‘주사의(酒食議)’·‘봉임칙(縫紝則)’·‘산가락(山家樂)’·‘청낭결(靑囊訣)’·‘술수략(術數略)’의 5부 체계이다. 그 가운데 ‘주사의’는 식료품과 조리법과 음식을, ‘봉임칙’은 옷감을 포함한 의생활을, ‘산가락’은 축산과 원예를 포함한 농업의 기술을 두루 다루었다. ‘청낭결’에는 태교와 육아를 중심으로 해 응급과 약에 관한 내용을, ‘술수략’에는 당시의 민간신앙 또는 주술을 담았다. 이 모두가 전근대 가정에 꼭 필요한 실용적인 지식이었다. 가장과 주부에게 실제로 요긴했다. 이는 동시대 빙허각 이씨의 주변에서 먼저 알아주었다. 시동생 서유구(徐有榘, 1764~1845)가 쓴 <수씨단인이씨묘지명(嫂氏端人李氏墓誌銘)>2)에 따르면 <규합총서>는 이미 친인척 사이에서 소문이 나 서로 베껴 간직할 정도였다. <규합총서>는 필사본 덕분에 세상에 알려졌고, 오늘날까지 인쇄본을 포함한 여러 이본이 전해질 수 있었다. 그 내용 일체가 모두 흥미롭지만 음식 문화사에서는 역시 ‘주사의’3), 곧 술과 음식을 주제로 한 제1부에 먼저 눈이 간다. ‘주사의’는 ‘약주 여러 가지’, ‘장 담그는 법’, ‘초 빚는 법’, ‘밥·죽 몇 가지’, ‘차 여섯 가지’, ‘반찬 만들기—김치/생선붙이/고기붙이/꿩·닭붙이/나무새(남새)붙이’, ‘떡·과줄4)붙이’, ‘기름 짜는 법’ 등을 차례대로 써 편집했다.

서문에 따르면 “첫째는 ‘주사의’이니 무릇 장 담그며 술을 빚는 법과 밥, 떡, 과줄, 온갖 밥반찬이 갖추지 않은 것이 없다”라고 했다. 이 문장을 통해 조리의 기술과 조리와 음식의 실제를 잘 정리해 집안과 세상에 전해주겠다는 의지가 읽힌다. 그런데 빙허각 이씨는 <예기(禮記)>나 <사기(史記)>와 같은 전근대 교양의 영역에서 자주 언급되는 음식의 이름과 그 풀이를 구체적인 조리법 및 음식에 앞세웠다. 아울러 음식을 대하는 태도에 관한 한마디 또한 본문 앞에 썼다. 예컨대 ‘주사의’의 시작, 고전적인 술의 세계에 대한 해제에 앞서, 빙허각 이씨는 ‘사대부식시오관(士大夫食時五觀)’을 제시하였다. ‘사대부식시오관’이란 ‘사대부가 음식을 먹을 때 생각해야 할 다섯 가지’ 라는 뜻이다. 그 항목과 내용은 중국 당나라 불교의 계율에서 비롯하였다. 이는 북송 때의 시인 황정견(黃庭堅·1045~1105)에게 와서는 유학의 경구로 재구성되었다. 오늘날 한국 불교, 한국 사찰음식의 <오관게(五觀偈)>’와도 비슷한 ‘사대부식시오관’의 내용을 거칠게 요약하면 이렇다.

①밥 한 그릇에 사람들의 노고가 얼마나 깃들었는지 생각한다, ②자신에게 밥을 먹을 자격이 있는지 생각한다. ③과식과 탐식을 경계한다. ④밥을 약으로 여겨 밥을 통해 내 몸을 지킨다. ⑤사람다운 도리를 다하기 위해 이 밥을 먹는다는 점을 생각한다.

저 몇 마디가 한참 크고 무거운 말임에는 두말 할 나위도 없다. 그렇지만 밥 한 그릇, 밥 한 상에 이만한 말글을 부친 그 마음이 있었기에, 음식과 그 세목을 짜임새 있게 써 남길 수도 있었을 테다. 예컨대 ‘장 담그는 법’은 콩을 기본으로 하는 한식 장에 관한 개론이다. 메주를 쑤어 장 담그는 모습, 용수를 장독에 박아 간장을 뜨는 모습 등은 전통적인 장 문화의 흐름과 그 핵심을 기록한 대목이다. 기본이 되는 콩으로 빚는 장에 관한 정보 뒤에는 조선 전기에도 보이는 별미장이 따라온다. 육류의 감칠맛과 장이 만나 별미를 이루는 어육장, 푸른 콩을 부재료로 하는 이색적인 청태장, 가을보리 또는 밀을 쓰는 집장5) 등의 기록이 다채롭다. 아울러 조선 전기에는 전혀 볼 수 없는 고추장에 관한 기록이 함께이다. 조선 전기에는 왜 고추, 고춧가루, 고추장, 붉은 김치가 없었을까? 고추가 없어서다. 16세기 이래 아메리카 대륙 안데스 바깥으로 나오기 전까지는 고추라는 존재 자체가 없었다. 조선뿐만 아니라 구대륙 어디에도 없었다. 이윽고 일반 가정에 들어온 고추가 여기 보인다.

“메줏가루 한 말이거든 소금 네 되를 좋은 물에 타 버무리되 (중략) 고춧가루를 곱게 빻아 다섯 홉이나 일곱 홉이나 식성대로 섞는다.”

가만히 웃음이 난다. 메줏가루와 고춧가루의 만남, 이야말로 고추장의 시작이요 기본 원리이다. 여기에 곱게 빻는다든지, 식성대로 섞는다든지 하는 실제 조리와 감각까지 정답다. 보시면서 ‘이런 것도 있어?’ ‘콩으로 메주를 쑨다고’ 하며 놀라겠지만, 조선 전후기를 별미장의 세계는 다채로웠다. 오늘날에도 한반도 구석구석에 그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 그 가운데 조선 후기의 ‘흐름’을 살필 때 <규합총서>는 정말 소중한 문자 기록이다. 밥에서는 어떨까. “밥과 죽은 돌솥이 으뜸” 하는 도구에 관한 품평이 뒤따르기도 한다. 약밥을 할 때에는 ‘진한 지렁’ 곧 묵어 농도는 짙어지고 특유의 단맛이 올라온 장으로 간을 하고 색채를 더하는 방식이 분명하다. 이 책에 오른 우유를 쓰는 타락죽, 칡의 전분을 활용하는 방식 등은 당장 일상생활에 되돌려도, 당장 상품화를 해도 손색 없겠다는 생각이 든다. 여기에 매화차, 포도차, 매실차, 국화차 등 당대의 차에 관한 기록이 함께이다. 김치에서는 섞박지, 동치미, 오이지, 산갓김치, 장아찌, 생선과 고기 육수를 쓰는 김장법에 전복김치 등등이 함께이다. 무수한 음식 이야기가, 낱낱의 조리법과 함께이다. 펼치면 동아시아의 고전적인 어휘와 수사법을 한 번은 지나쳐야 한다. 사람다운 도리를 하고서야, 먹을 자격을 갖추고서야 먹을거리가 사람의 목구멍을 지나갈 수 있다며, <규합총서>는 한 번은 경계를 한 다음에 음식의 세계를 펼쳐 보였다.

  1. 한문으로는 ‘聰明不如鈍筆(총명불여둔필)’이다. 조선 후기 지식인 사이에 널리 쓰인 격언, 경구이다.
  2. <그린매거진> 9월호 관련 부분 참조
  3. 정양완(鄭良婉, 1929~)의 <규합총서> 필사 및 역주 그리고 현대 한국어 표현을 따른다. 정양완은 1975년 <규합총서>를 현대적인 단행본으로 펴내 <규합총서> 연구의 획기를 마련했다. 빙허각 이씨의 저술은 원래 <빙허각전서(憑虛閣全書)>로 정리되어 있었다. 그 제1부가 <규합총서>, 제2부가 <청규박물지(淸閨博物誌)>, 제3부가 <빙허각고략(憑虛閣稿略)>이다. 적어도 1939년까지는 이 모두가 빙허각 이씨의 시가인 대구 서씨네에 전해왔으나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제3부는 사라져버린 채로 아직 발견되지 않고 있다.
  4. 과줄은 한마디로 한과로 이해하면 되겠다.
  5. 집장은 요컨대 곡물과 고춧가루와 장을 버무려 빨리 익혀 먹는 별미장이다. 채소를 섞기도 한다. 한반도 중부 이남에서 즐겨 먹었고, 지역마다 여러 방식의 집장이 있다. <규합총서> 속의 집장은 집장의 원형을 잘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