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농UP 청년꿈UP

하이힐에서 장화까지,
도시 커리어우먼에서
농촌 청년농업인으로

도시의 빛나는 스카이라인을 뒤로하고 선택한 농촌의 삶. 국제회의 기획자에서 청년농업인으로, 김지영 대표의 인생은 전환과 도전의 연속이었다. 삼남매의 엄마이자 농부로서, 그리고 새로운 창농을 준비하는 여성농업인으로서 그녀는 오늘도 행복지수 200%의 농업 생애를 그려가고 있다.

도시의 커리어우먼에서 농촌으로

번쩍이는 마천루들로 미래적인 스카이라인을 자랑하는 중국의 가장 국제적인 도시 상해(上海). 외국어 특기생들만이 진학하는 상해외국어대학교에는 유난히 눈에 띄는 한국인 유학생이 있었다. 민트색 에나멜 하이힐, 메탈릭 실버 레깅스에 악어가죽 숄더백을 들고 영문학 강의를 듣던 그녀는 정확히 10년 뒤, 결혼과 동시에 충청북도 괴산으로 귀농하고 그로부터 7년 뒤인 2021년에는 삼남매의 엄마가 된다.

이 거짓말 같은 이야기의 주인공은 여성 청년농업인 김지영 대표이다. 귀농 후 김지영 대표는 매일같이 새벽 5시가 조금 넘은 시간, 일을 하러 집을 나선다. 하이힐과 가죽 숄더백 대신, 추리닝에 장화를 신고.

2011년 가을, 약 7년 동안의 해외생활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온 김지영 대표는 산업디자인 대학원 과정을 수료하고 곧바로 국제회의 기획업에 뛰어들었다. 밤낮없이 국제 컨퍼런스와 정부부처의 크고 작은 행사들을 기획하고 진행하는 직업은 흥미롭고 뿌듯했다. 누구보다 먼저 회사에 출근해 회의 준비를 했고, 모두가 퇴근한 사무실에 남아 해외 대사관의 협조 요청 이메일을 쓰던 사람도 바로 그녀였다. 대학생들의 직업 멘토로 선정되기도 하고, 국제기구의 인사 담당자에게 러브콜을 받기도 했던 그 시절, 누구나 보기에 그녀의 미래는 전형적인 커리어우먼이었다.

하지만 ‘워라밸’ 없이 폭주기관차처럼 일밖에 모르던 김지영 대표에게 갑작스럽게 번아웃이 찾아왔다. 과중한 업무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통장 잔고, 주택 마련 문제, 비혼자 급증 등 뉴스를 통해 보던 사회 문제들이 곧 자신의 현실이 되어버렸다. 보람도 즐거움도 만족도 없는 직장생활을 뒤로 하고 사직서를 쓴 김지영 대표는, 귀농 예정이던 남편을 만나 결혼을 결심하게 된다.

남편은 후계농도, 시골에 연고가 있는 사람도 아니었다. 단지 먹거리를 책임지는 농업에 뜻을 품은 젊은이였다. 두 사람은 신혼여행이 끝난 다음 날, 짐을 싸서 괴산군 감물면에 마련한 신혼집으로 이사했다. 적당한 빈집을 구하지 못해 직접 컨테이너를 개조한 농막에서 시작된 이 삶이 바로 김지영 대표의 농업 첫걸음이었다.

농부의 삶 속에서
청년농업인으로 성장하다

아무런 농업 기반 없이 시작한 영농생활은 그야말로 광야와 같았다. 귀농 후 첫 6개월 동안 남편은 지역을 이해하고, 고정적인 수입을 얻기 위해 영농조합법인 흙사랑에서 직장생활을 했다. 김지영 대표는 동네 귀농 선배의 밭일을 도우며 농사일을 배웠다. 대학찰옥수수를 파종하고, 밭의 이랑 고랑을 내고 멀칭비닐을 씌우고, 옥수수 곁순을 따며 조금씩 농부의 손길을 익혔다.

그렇게 차차 귀농 생활을 이어가던 3개월 차. 그녀는 옥수수 수확을 앞두고 이웃 농가 일을 돕느라, 온몸이 아프고 고열이 나기 시작했다. 그때 찾은 병원에서 임신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다. 무리한 농사일로 급성 신우신염까지 겹쳐 서울아산병원 중환자실에 실려 갔지만, 동시에 한 생명의 씨앗을 품게 된 순간이었다. 부부만의 삶에서 한 가정을 일구게 된 이 변화는 두렵고도 기대되는 일이었다.

열 달이라는 임신 기간의 종지부를 찍던 날 밤, 남편은 감자를 심을 밭을 만들다가 허겁지겁 서울로 올라와 출산의 순간을 함께했다. 출산 후 사흘째 되던 날, 김지영 대표는 산후조리원 대신 귀가를 결정하고 신생아를 안고 컨테이너 집으로 돌아왔다.

남편은 직장생활을 마치자마자 몸담았던 영농조합법인에 생산자로 가입해 본격적인 농업을 시작했고 그녀 역시 몸조리가 끝나고 아기의 신생아 시기가 지나면서부터는 조금씩 농사일을 돕기 시작했다. 어린 아기를 맡길 곳이 없었기에 귀농 첫해만큼 앞장서서 밭일을 하지는 못했지만, 꼭 두 사람이 함께해야만 하는 작업에는 다시 농업의 현장에 뛰어들었다.

육아, 농사 그리고 SNS까지

출산 후에도 그녀는 농업을 놓지 않았다. 아기를 등에 업고 씨감자를 심고, 감자를 담고, 옥수수를 선별했다. 밖에서 직접 일하기는 힘들었지만, SNS를 통해 귀농의 일상을 기록하며 농장을 홍보했고, 직거래 고객들에게는 직접 제작한 뉴스레터를 문자로 발송했다. 도시 소비자들과의 소통은 그녀에게 농업을 이어갈 힘이 됐다.

김지영 대표의 케이스는 청년농업인 중에서도 전무후무한 편이다. 그래서인지 독보적인 스토리가 되면서, 수많은 공중파 방송 프로그램에서 캐스팅 제의를 받기도 했다. 하지만 김지영 대표는 대부분 거절했다. 대신 자신의 자리에서 농업인이라는 정체성을 더욱 확고히 할 수 있는 일들을 이어갔다. 낮에는 남편과 함께 농사일을 하고, 저녁에는 SNS에 글을 쓰며 귀농과 청년농업인의 육아, 농사를 주제로 일상을 기록했다. 이를 본 요리책 작가, 요리 연구가, 좋은 재료를 찾는 레스토랑 셰프들과 연결이 되었고, 그들의 팬이나 고객들이 곧 김지영의 고객이 되었다.

SNS 소통을 통해 얻는 청년농업인과 농산물에 대한 도시 소비자들의 즉각적이고 직접적인 피드백은 아무리 힘들어도 농업을 포기할 수 없는 원동력이 되어주었다. 그렇게 쉬지 않고 써온 글들은 자산이 되어 현재는 농민신문 외부 칼럼에도 기고할 수 있게 되었다. 농업과 초기 육아를 병행하며 고달팠던 그 시기는, 농업의 언저리에 머물면서도 청년이자 여성농업인으로서 어떤 역할을 설정해야 할지를 탐색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그 결과, 귀농 첫해 800평으로 시작한 농장은 현재 1만 5천 평 규모로 성장했다. 감자, 양배추, 브로콜리, 대학찰옥수수 등을 무농약 이상 친환경 방식으로 재배하며 생협과 직거래를 통해 공급한다. 청년창업농 지원정책의 도움도 컸다. 2년 동안 매달 지원받은 90만 원은 생활의 기반이 되었고, 농기계와 트랙터를 갖추며 농업 기반을 다져갔다.

또한 괴산군의 임대형 스마트팜을 경험하며 콜리플라워 시설 재배도 시도했고, 보건복지부 장관상을 수상한 이력이 있는 농업회사법인 ㈜뭐하농을 공동창립했고, 식물을 기반으로 하는 피토테라피 브랜드 ‘치유의 정원 허바닉’을 창업했다.

새로운 비즈니스를 향해

귀농 10년 차, 그 사이 김지영 대표의 가족은 둘에서 다섯이 됐다. 영농의 주도권은 남편에게 있었지만, 그녀는 공동 영농인으로서의 정체성을 놓지 않고 공부를 이어갔다. 여성 특유의 섬세함과 육아 경험은 오히려 새로운 사업의 가능성을 열어주었다.

아이들의 아토피를 계기로 허브와 에센셜오일을 연구하기 시작한 그녀는 허벌리스트 자격증을 취득하고 프랑스 메디컬 아로마테라피 교육을 이수했다. 현재는 농장 운영과 더불어, 그녀만의 허브 생산 정원과 아로마테라피 제품 제조실을 오가며 식물을 기반으로 하는 웰니스 라이프 스타일 브랜드 ‘허바닉’을 운영하고 있다. 또한 국내 1세대 비건 화장품 브랜드인 (주)아로마티카의 제품개발 및 교육 자문을 맡아 먹거리 이외에도 여성이 귀농하여 성장할 수 있는 분야를 개척하고 있다.

김지영 대표는 말한다. 귀농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여전히 새롭게 시작하는 기분이라고. 하지만 지난 10년의 밀도 있는 경험이 발판이 되어, 앞으로는 더 단단히 성장할 것이라고 믿는다. 도시의 삶을 뒤로하고 농촌에서 그려가는 그녀의 농업 생애는 이제 막 200% 행복지수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

김지영 대표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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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기농 서리태, 유기농 절임배추, 유기농 김장 양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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