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전체 지도로 여는 정밀 축산의 미래
박원철 농업연구사의 연구는 유전체(Genome) 지도를 출발점으로, 전사체(Transcriptome)·단백질체(Proteome)·대사체(Metabolome)·미생물체(Microbiome)까지 아우르는 ‘다중오믹스’ 분석을 통해, 가축의 형질을 정밀하게 해석하고 농가에서 활용할 수 있는 ‘바이오마커(Biomarker)’를 발굴해 축산업의 생산성과 지속 가능성을 높이는 데 초점을 맞춘다.
“제가 하는 연구는 다중오믹스라는 분야예요. 유전체·전사체·단백질체·대사체·미생물체처럼 다양한 생명 정보를 함께 살펴보는 거죠. 유전체는 흔히 모든 유전 정보의 ‘설계도’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설계도만으로는 실제 어떤 기능이 발휘되는지 알 수 없습니다. 전사체를 보면 어떤 유전자가 실제로 켜져 있는지 알 수 있고, 단백질체는 설계도로 만든 기계의 부품과 같습니다. 대사체는 그 기계가 작동하면서 생긴 부산물이라 할 수 있어요. 이처럼 여러 정보를 겹쳐 살펴보면, 가축에서 특정 질병이 왜 생기는지, 성장 속도가 왜 다른지, 육질이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훨씬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다중오믹스가 가축의 전체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작업이라면, 또 하나 중요한 도구는 ‘반수체(Haploid, n) 지도’다. 사람이나 동물은 부모로부터 유전자를 각각 절반씩 받아 이배체(Diploid, 2n) 구조를 이루지만, 문제는 어떤 유전자가 아버지로부터 왔는지, 어머니로부터 왔는지를 쉽게 구분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반수체 지도는 이처럼 유전자의 출처를 따로따로 구분해 보여준다. 박원철 농업연구사는 이 방법을 활용해 한우의 육량과 육질 형질을 보다 정확하게 분석할 수 있는 지도를 구축했고, 이를 통해 개량 연구의 정밀도도 높아졌다.
나아가 박원철 농업연구사는 한우뿐 아니라 난축맛돈, 미니돼지, 긴꼬리닭 등 다양한 가축의 ‘표준유전체 지도’를 제작하며, 종(Species) 단위에서 기준이 되는 지도를 마련하는 연구에도 힘을 쏟고 있다. 반수체 지도가 가족 안에서 아버지와 어머니의 흔적을 구분해주는 작업이라면, 표준유전체 지도는 종 전체가 공유하는 설계도를 세우는 일이다.
“표준유전체 지도는 한 종을 대표하는 개체의 유전정보를 바탕으로 만든 기준 설계도와 같습니다. 다른 개체를 분석할 때 이 지도를 기준으로 삼으면 비교가 훨씬 수월해지지요. 쉽게 말해, 축산 유전체 연구에서 좌표축을 세워주는 작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결국 이 모든 연구의 목표는 ‘바이오마커 발굴’로 모인다. 바이오마커란 가축의 미래 형질을 미리 알려주는 신호다. 특정 유전자, 대사물질, 미생물 등이 고기의 맛이나 질병 저항성을 결정짓는 단서가 되는데, 박원철 농업연구사는 바로 이 단서들을 찾아내 농가가 실제로 활용할 수 있는 길잡이로 만드는 데 힘쓰고 있다.
“우리가 건강검진에서 혈압이나 혈당 수치를 확인하듯, 가축도 마찬가지입니다. 고기 맛, 성장 속도, 질병 저항성과 관련된 변이·유전자·대사 물질 같은 것들이 모두 일종의 신호, 즉 바이오마커인 거죠. 이 신호를 미리 찾아내면 농가는 송아지 때부터 어떤 개체가 고급육을 생산할지, 또 어떤 개체가 질병에 강할지를 빠르게 알 수 있습니다. 그에 따라 맞춤형 사양 관리가 가능해지고, 사료와 비용도 절약할 수 있지요. 결과적으로 고기 품질은 더 일정해지고 가축은 건강해집니다. 나아가 생산비와 환경 부담은 줄고, 소비자는 합리적인 가격에 안정적인 품질의 축산물을 만날 수 있습니다.”
정밀한 유전체 연구, 현장 변화를 이끌다
박원철 농업연구사의 연구는 결코 연구실 안에 머무르지 않는다. 현장에서 농가와 소비자가 직접 체감할 수 있는 변화로 이어진다. 이러한 변화를 이끌기 위해 그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뚜렷한 연구 철학이다. 그의 철학은 크게 세 가지로 요약된다. 먼저, 다양한 데이터를 하나로 엮어내는 ‘통합’이다. 유전체, 전사체, 대사체, 미생물체 같은 각각의 다중오믹스 데이터는 퍼즐 조각과 같아 따로 떼어내서는 전체 그림을 볼 수 없다. 서로 연결해 해석할 때 비로소 생명 현상의 진짜 모습이 드러난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건 ‘협력’입니다. 다중오믹스 연구는 여러 전공과 현장을 아우르는 만큼, 다양한 전문성을 가진 연구자와 현장 전문가가 꾸준히 대화하며 문제를 함께 풀어가는 과정이 필수적이에요. 마지막으로 연구는 결국 현장에서 가치를 발휘해야 합니다. 농가와 축산업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의미가 없으니까요. 생산자에게는 사료·시간·인력을 절약해 지속가능하고 수익성 높은 가축 생산을 돕고, 소비자에게는 안전하고 일정한 품질의 축산물을 안정적으로 공급하는 것, 바로 그 지점을 연구의 궁극적인 목표로 삼고 있습니다.”
통합과 협력, 그리고 현장 가치라는 세 가지 원칙은 박원철 농업연구사의 다중오믹스 연구를 단순한 기술 경쟁이 아니라 사회적 기여로 이끄는 든든한 나침반이 되고 있다. 그의 철학은 더 건강한 축산물, 더 강한 가축, 그리고 지속 가능한 축산업이라는 미래로 이어진다.
경험과 시간의 의미를 다시 돌아보게 하고, 성취만이 아닌 과정을 살아가는 가치를 일깨워 줄 수 있을 거예요.
“송아지 때부터 성장 속도, 육질, 질병 저항성을 예측해 개체를 더욱 정밀하게 선발할 수 있고, 맞춤형 사양 관리도 가능합니다. 질병에 강한 계통을 미리 알 수 있으니 항생제 사용은 줄고, 안전성은 더욱 높아지는 거죠. 또 하나 중요한 변화는 데이터 기반의 의사결정 문화입니다. 센서, 빅데이터, AI가 결합된 정밀 축산 기술이 일상화되면 농가는 더 이상 ‘감’이나 ‘경험’에만 의존하지 않습니다. 실시간 데이터를 근거로 사양 관리, 번식 계획, 출하 시기를 결정할 수 있게 되는 것이죠. 이러한 기술은 단순히 생산성을 높이는 데 그치지 않아요. 사료와 에너지를 절약해 탄소 발자국을 줄일 수 있고, 친환경 인증이나 프리미엄 브랜드 전략에도 힘을 보탭니다. 결국 농가는 비용을 절감하고, 소비자는 더 안전하고 지속 가능한 축산물을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성과만이 전부가 아님을 일깨워준 책
박원철 농업연구사는 기시미 이치로의 책 <나이 들 용기>를 통해 삶과 연구를 다시 돌아보게 됐다고 말한다. 오랫동안 성과를 내야 한다는 목표 하나만 바라보고 쉼 없이 달려왔던 그는, 어느 순간 성과만을 위해 살아온 건 아닌지, 그리고 그렇게 달려온 인생이 과연 잘 살아온 것인지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을 품게 됐다.
“사실 이 책을 읽기 전에는 같은 저자의 <미움받을 용기>를 30대 초반에 먼저 읽었어요. 그런데 그때는 목표만 보고 달리던 시절이라 크게 공감되지 않았습니다. 반대로 40대 중반이 된 지금은 상황이 달랐어요. 연구 성과에 매달려온 끝에 ‘정말 이렇게 사는 게 맞나?’라는 의문이 생겼거든요. 아마 연구 현장이나 공공기관에서 일하시는 분들도 비슷한 고민을 하고 계실 거라 생각합니다. 이 책은 그런 분들에게 경험과 시간의 의미를 다시 돌아보게 하고, 성취만이 아닌 과정을 살아가는 가치를 일깨워 줄 수 있을 거예요.”
그는 특히 저자가 강조하는 ‘못 한다고 솔직히 말할 용기’, ‘지금 여기에서의 삶을 긍정하는 태도’라는 대목에 깊이 공감했다. 성과 달성에만 매달려온 지난 시간을 위로 받았고, 앞으로는 결과를 쌓는 데 그치지 않고 과정 자체를 즐기며 연구와 삶을 더 깊이 있게 이어가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됐다.
“지금 도전하고 있는 연구도 그 연장선상에 있습니다. 바로 한우 유전병의 원인 유전자를 밝히는 거예요. 사실 3년 전쯤 비슷한 연구를 진행한 적이 있는데, 그때는 데이터 수집이 쉽지 않고 협업도 원활하지 않아서 결과가 좋지 않았습니다. 이번에는 농가에 꾸준히 홍보해 시료와 정보를 확보하고, 여러 과와 기관이 협력하는 방식으로 다시 도전하고 있습니다. 만약 원인이 유전병이라면, 그걸 밝혀내서 피해를 줄이는 게 목표예요. 부모의 유전정보를 활용해 인공수정 과정에서 위험한 유전자형은 배제하거나, 원인 유전자형을 가진 씨수소나 암소를 도태시키는 방식으로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죠. 세계적으로는 소의 기형이나 질병 관련 유전정보가 많이 공개돼 있지만, 한우에 대해서는 아직 전무하거든요. 그래서 꼭 이 연구만큼은 밝혀내고 싶은 마음이 큽니다.”
성과를 넘어 과정을 중시하고, 현장에서 가치를 찾으려는 그의 연구 철학은 결국 더 건강한 축산물과 지속 가능한 축산업으로 이어지고 있다. 앞으로 그의 발걸음이 한국 축산 연구의 새로운 길을 여는 또 하나의 이정표가 될 것이다.
이런 분께 추천합니다
『나이 들 용기』
기시미 이치로 저·김지윤 번역 | 21세기북스
이 책은 나이 듦을 단순히 젊음의 상실이나 쇠퇴로 보지 않고, 시간이 쌓아 준 경험과 통찰을 통해 새로운 가치를 발견하는 과정으로 설명합니다. ‘못 한다고 솔직히 말할 용기’, ‘지금 여기에서 가능한 것에 집중하기’, ‘성과나 생산성이 아닌 존재 자체의 의미를 찾기’와 같은 메시지를 통해 삶의 방향을 다시 세울 수 있도록 돕습니다.
또한 부모와 자식 관계, 돌봄, 죽음과 유한성의 수용 등 누구나 마주하게 될 주제를 차분히 풀어내고 있어요. 특히 성과와 실적에 쫓기는 연구자, 공무원, 직장인뿐 아니라 인생의 전환점을 앞둔 모든 분들께도 ‘지금까지의 삶이 헛되지 않았으며 앞으로도 성장할 수 있다’라는 위로와 용기를 전해 줍니다. 스스로의 삶을 되돌아보고 다음 단계를 준비하는 데 큰 도움이 되는 책입니다.
#나이_들_용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