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책을 뒤적이며 떠올린 맛, 만화방에서 태어난 떡볶이, 그리고 지금은 짜장면의 새로운 공식을 찾는 실험실까지. 조광효 셰프의 요리는 늘 상상과 현실 사이를 부지런히 뛰어다닌다.
넷플릭스 시리즈 〈흑백요리사〉 속, 각자의 사연을 품은 셰프들 가운데 단연 시선을 끈 인물이 있었다. 요리를 독학으로 배운 조광효 셰프. 그에게 요리의 교과서는 학교가 아니라 ‘만화책’이었다.
학창 시절, 늘 만화를 끼고 살았던 소년은 자연스레 미술대학으로 진학했고, 졸업 후에는 자전거 회사에서 제품 디자이너로 일했다. 그러던 어느 날, 감성 만화방이 인기를 얻던 시절 그도 친구와 함께 “우리도 저런 거 해보자”는 마음으로 2015년 작은 만화방을 열었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돈이 없어서 만화책은 몇 권 되지 않았고, 그래서 ‘음식을 팔자’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그때 만든 메뉴가 바로 만화 속에서 본 음식들이었다. “만화를 보며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있으면 좋겠다”는 가벼운 발상으로 시작한 메뉴, 떡볶이에 밥 덩어리를 얹은 ‘떠먹는 떡볶이’. 가볍게 시작한 시도였지만, 그 한 접시가 훗날 조광효라는 이름을 요리의 세계로 끌어당긴 첫 단서가 됐다.
그에게 만화는 여전히 가장 확실한 영감의 원천이다. 춘권, 타르트, 동파육처럼 만화 속에 등장하는 음식을 실제로 구현하며 ‘상상 속 맛’을 현실의 레시피로 옮긴다. 중국 주부들이 즐겨보는 요리책을 참고하고, 현지 가정식 조리법을 연구하며 상상과 기술 사이의 균형을 찾는다. 그의 요리는 늘 그 사이에 있다. 만화의 상상과 현실의 맛, 그리고 요리를 향한 진지한 탐구심 사이에.
현재 그는 자신이 직접 운영하는 공간 ‘조광201’에서 짜장면과 중식의 새로운 공식을 연구하고 있다. 밀가루를 블렌딩해 직접 면을 뽑고, 불맛을 입히는 새로운 방식을 실험하며 ‘낯익은 재료로 낯선 맛을 내는 법’을 찾아가고 있다. 이곳은 단순한 식당이 아니라, 조광효 셰프의 실험실이다.
그는 기술을 넘어 감정의 언어로서도 요리를 이야기하기도 한다. 최근에 쓴 두 권의 책 『만찢남의 오타쿠 레시피(세미콜론)』와 『만찢남의 인생 정식(책깃)』에는 그의 실험과 철학이 담담히 녹아 있다. 요리를 통해 사고하고, 생각을 조리하며, 일상의 감정을 한 접시에 담아내는 사람.
조광효 셰프는 오늘도, 작은 공간 한 켠에서 정답을 찾기보다 새로운 해석을 위한 실험을 계속하고 있다.
어린 시절 라면을 남다른 방식으로 끓여 드셨다고 들었어요. 그때만의 비법이 있었나요?
어릴 때 TV에서 스쳐 지나간 장면을 따라 해봤는데, 라면에 식초를 넣어보니 의외로 맛이 괜찮더라고요. 다들 신기해했지만, 제게는 그때가 ‘나만의 비법’을 찾은 순간이자 요리가 재미있다고 느낀 첫 경험이었어요. 지금은 라면을 끓일 때 한 봉지 기준으로 설탕 한 꼬집, 미원 한 꼬집을 꼭 넣습니다. 그러면 국물 맛이 한결 또렷해지고 감칠맛이 살아나요.
셰프님은 만화에서 많은 영향을 받으신 것 같아요. 특히 좋아했던 만화와 그 이유는 무엇인가요?
어릴 때 〈미스터 맛짱〉을 정말 좋아했어요. 주인공이 다소 소시오패스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요리에 임할 때만큼은 누구보다 진지한 인물이거든요. 항상 ‘이기는 요리’를 하려고 하는데, 그 승부욕이 단순히 결과에만 있는 게 아니라 요리를 완성하기 위해 시도하는 엽기적이면서도 기발한 방식들에 있죠. 그런 과정을 보면서 ‘요리란 이렇게도 생각할 수 있구나’ 하는 발상의 전환을 자주 느꼈던 것 같습니다.
만화 속 레시피를 실제로 따라 해보신 적도 있나요?
그때 만화에 나온 레시피 중 일부는 직접 시도해 보기도 했어요. 예를 들어 고추기름 같은 건 실제로 만들어봤죠. 그런데 무엇보다 흥미로웠던 건, 당시 일본 요리 만화들이 이미 ‘분자요리’처럼 과학적인 접근을 시도하고 있었다는 점이에요. 꽤 오래전 이야기인데도 요리에 과학의 원리를 접목하려는 시도가 보였죠. 그런 점들이 제게는 굉장히 신선했고, 요리를 전혀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게 해준 계기가 됐습니다.
만화방에서 시작된 떡볶이가 셰프님의 요리 인생의 첫 출발점이 아니었을까 싶어요. 레시피는 어떻게 탄생했나요?
그날따라 친구와 다투고 있었어요. 떡볶이는 이미 만들어둔 상태였는데, 실랑이 중에 밥버거가 그릇에 떨어졌고, 그걸 맛본 순간 의외로 잘 어울리더라고요. 그래서 “이걸 좀 더 다듬어보자” 하면서 발전시키기 시작한 게 비룡 떡볶이의 시작이었죠. 특별한 비법이 있었던 건 아니에요. 다만 만화책을 보면서 한 손으로 숟가락만으로도 편하게 먹을 수 있는, 만화방 분위기에 어울리는 ‘떠먹는 떡볶이’를 만들고 싶었어요. 지금 돌이켜보면 그걸 ‘요리’라고 부를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제게는 창의적인 시도의 첫걸음이었던 것 같습니다.
거의 독학으로 요리를 익히셨다고 들었어요. 셰프님만의 공부법이나 연구 방식이 궁금합니다.
요리를 시작하기 전에 먼저 ‘내가 어떤 음식을 만들고 싶은지’를 오래 고민해요. 어느 가격대에서, 어떤 맛을 낼지, 어떤 조리 방식이 어울릴지 등을 하나하나 노트에 정리하죠. 그다음에는 필요한 조리 기법이나 재료를 찾아보고, 실제로 만들어보면서 실패 요인을 하나씩 체크합니다. 말하자면 ‘오답 노트’ 를 계속 써 내려가며 음식의 구조를 조립해 가는 방식이에요. 자전거를 조립한다고 생각하면 비슷해요. 먼저 프레임을 세우고, 바퀴를 올려봤다가 안 맞으면 빼고, 체인을 갈아 끼우고. 그런 식으로 머릿속에서 조합을 끊임없이 바꿔가며 완성해 나갑니다.
일식·분식·중식 등 스펙트럼이 넓은데, 특히 중식에서 매력을 느끼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저렴한 재료로도 놀랄 만큼 맛있는 요리를 만들 수 있다는 점이에요. 그래서 요리사가 원재료에 개입할 수 있는 여지가 정말 많더라고요. ‘이 부분은 오일로 맛의 층을 줄 수 있겠구나’, ‘여기는 식감을 완전히 다르게 만들어볼 수 있겠네’ 하며 다양한 시도를 해볼 수 있죠. 정해진 요리의 틀에서 조금 벗어나니까 오히려 제가 개입할 수 있는 지점이 많아지고, 그만큼 더 흥미롭게 느껴집니다.
『만찢남의 오타쿠 레시피』에는 다양한 메뉴가 등장하지만, 의외로 레시피는 심플하더라고요. 선정 기준이 있었나요?
영감이 꼭 만화책에서만 나오진 않아요. 다만 만화를 보면서 “요리를 구상하는 나만의 방식”을 한 번 정리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만화 속 음식을 그대로 따라 만들 때도 있지만, 그 장면에서 느껴지는 분위기나 감정을 요리로 어떻게 표현할까 고민하는 과정이 더 흥미로웠거든요. 그래서 책도 그런 느낌을 살리고 싶었어요. 내용 자체가 가볍고, 어린이 공작책 같은 분위기랄까요. 집에 있는 젓가락, 종이컵, 페트병 같은 걸로도 뚝딱 무언가 만들어낼 수 있듯이, “레시피도 너무 어렵거나 복잡하게 가지 말자”는 마음으로 쉽고 재밌게 구성했습니다.
식재료를 바라보는 셰프님의 관점이 궁금해요.
식재료가 정말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좋은 재료는 땅에서부터 이미 ‘요리’가 거의 완성된 상태로 올라오는 경우도 있거든요. 그래서 그런 재료들을 만날 땐 괜히 “멋을 부리지 말자, 있는 그대로의 맛을 살리자”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또 하나는 로스를 어떻게 줄일까, 그리고 이 재료를 다른 요리에 어떻게 다시 활용할 수 있을까를 늘 고민해요. 결국 요리는 그런 기본적인 생각들에서 출발하는 것 같습니다.
셰프로 살아오면서 기억에 남는 특별한 순간이 있으셨을까요?
아무래도 ‘흑백 요리사’에 출연했던 경험이 가장 인상 깊었어요. 그 무대에서 요리하고, 함께했던 셰프들을 가까이에서 보는 것 자체가 큰 배움이었죠. “아, 이분들은 진짜 요리사다”라고 느껴지는 분들이었거든요. 그런 분들 옆에서 요리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제게는 너무 큰 경험이었어요. 15인까지 올라갔던 것도 물론 의미가 있었지만, 그 과정 자체가 제게는 더 값진 시간이었습니다.
앞으로 꼭 해보고 싶은 요리가 있을까요?
요즘은 짜장면을 집중적으로 연구하고 있어요. 밀가루를 종류별로 블렌딩하는 것부터 시작해서, 면에 불맛을 입히는 법, 연기를 스며들게 하는 방법까지 세세하게 테스트 중이에요. 화려한 재료를 쓰지 않아도, 집에서 면만 넣으면 불향이 살아 있는 짬뽕이나 짜장면을 만들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있습니다. 제가 하고 싶은 건, 남들이 아는 짜장면에 내가 어떻게 ‘살짝’ 개입할 수 있을까 그 지점을 찾는 거예요. 말하자면 요리에 조금 덜 개입하면서도, 새로운 맛의 문을 열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연구하고 있는 거죠.
셰프님이 그리는 앞으로의 요리 세계는 어떤 모습인가요.
2019년에 요리를 본격적으로 시작했을 때 세운 꿈이 하나 있어요. 바로 ‘미쉐린 빕 구르망’ 선정이에요. 다른 꿈 없이 지금도 계속 그 꿈만 꾸고 있습니다. 내년이든, 내후년이든 언젠가 꼭 이뤄내고 싶어요.
계란과 닭!
가장 단순해서 가장 맛있는

“계란이랑 닭을 정말 좋아해요. 집에서는 아들이 계란말이를 좋아해서 자주 해주고요. 닭 요리는 복잡하게 하지 않아요. 그냥 물에 삶아 끓여 먹는 단순한 방식이 좋습니다. 재료가 좋으면 그 자체로 충분히 맛이 나니까요.”
재래종 토종닭은 기름기가 적고 콜라겐이 풍부해 쫄깃한 식감과 깊은 감칠맛을 자랑하지만, 사육 기간이 길다는 한계가 있었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농촌진흥청이 개발한 품종이 바로 ‘우리맛닭 1호’다. 빠르게 자라는 닭, 맛이 좋은 닭, 알을 잘 낳는 닭 이 세 가지 순계를 선발해 성장 속도와 풍미를 모두 잡은 새로운 토종닭을 만들어낸 것이다.
이후 2010년에는 ‘우리맛닭 2호’가 탄생했다. 1호의 육질을 유지하면서도 성장 속도를 더욱 높이는 데 중점을 두었고, 실제로 1호보다 약 30% 빠르게 자란다. 육질 역시 한층 부드럽다는 평가를 받는다.
지금도 우리맛닭의 개량은 계속되고 있으며, 앞으로는 용도와 목적에 맞춘 더 다양한 국산 토종닭을 만나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맛상무 편!
지금 바로 QR코드를 스캔하고 감상해 보세요! 조광효 셰프의 인터뷰 영상은 1월호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