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구석 시골 영화관

글자를 배우고,
인생을 시로 다시 쓰다

칠곡 가시나들

여든이 넘어 글자를 배우면서 세상을 다시 읽게 된 할머니들. 그들의 글씨는 서툴지만, 그 서툼 속에 피어난 문장은 오히려 진짜 문학의 온도를 품고 있다. 장면마다 잔잔히 흘러나오는 할머니들의 시를 통해, 영화는 말한다.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시는, 살아 있는 삶 속에서 태어난다고.

글자를 읽는다는 건, 세상을 다시 여는 일

‘1938년 조선총독부는 모든 학교에서 한글 교육을 금지, 일본어 사용을 강제했다.’

영화의 시작은 조용하지만 묵직하다. 이 자막이 뜨는 순간, 단지 ‘글을 배우지 못한 세대’의 이야기가 아니라 지워진 이름과 목소리를 되찾는 기록임을 깨닫게 된다.

<칠곡가시나들은> 인생 팔십 줄에 들어서 한글과 사랑에 빠진, 칠곡군 약목면 복성2리 일곱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2015년부터 ‘칠곡늘배움학교’에 다니기 시작한 할머니들은 난생처음 시험도 보고, 커닝도 하고, 농땡이도 피워가며 ‘가갸거겨’를 익혀간다.

그래서일까. 할머니들에게 한글을 읽는 일은 곧 세상을 다시 읽는 일이 된다. 시장에 나가 간판을 하나하나 읽어내는 장면은 그 자체로 경이롭다. ‘오골계, 생닭, 노계, 삼계’. 그리 거창한 문장도, 특별한 글자도 아니지만, 할머니들이 간판을 또박또박 읽어 내려갈 때마다 세상은 새롭게 열린다.

카메라는 이들의 일상을 큰 장치 없이 담아낸다. 빨래터에서 빨래를 하고 잠깐 쉬며 막걸리 한잔 기울이는 모습, 무릎과 허리 통증으로 병원에 가는 모습, 드라마를 보며 깔깔 웃는 장면들. 겉으로 보면 특별할 것 없는 하루의 반복이지만, 작은 하루하루가 모여 한 사람의 세계를 이룬다는 것 <칠곡가시나들>이 말하는 배움의 진짜 얼굴이다.

이래도 시고, 저래도 시다

할머니들은 한글을 깨친 것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시를 쓰는 사람’이 되었다. 매일 밥을 짓듯 한 글자 한 글자 눌러쓰며 마음을 담고, 그렇게 적은 시는 어느새 마을의 풍경이 되었다. 할머니들이 쓴 시는 맞춤법은 틀리고 띄어쓰기는 엉망이지만, 그 한 줄 한 줄엔 ‘배움의 진심’과 ‘사랑의 기억’이 묻어난다.

곽두조 할머니는 아들은 “뭐하러 공부하노”라며 말리지만, 며느리는 “시어머니 똑똑해지라고 공부하라”고 응원한다고 웃으며 말했다. 그래서 할머니의 시에는 이런 구절이 남았다. ‘우리 며느리가 공부한다고 자꾸 하라칸다. 시어마이 똑똑하라고 자꾸 하라킨다.’

강금연 할머니는 아들에게 편지를 쓴다. “아들노코 얼마나 조안는데 이제 그이들 하태 미아하다 내 몸따가 성하지를 모타이 아들 미느리 욕 빈다 자나깨나 걱정해주는 아들이 참 고맙다 밥 잘 무라, 어미 시다.’ 맞춤법도 띄어쓰기도 엉망이지만, 그 서툰 문장들은 오히려 문학보다 더 진한 문학이다. 편지를 다 쓴 할머니는 혹시 우표가 떨어질까 걱정돼 손가락으로 꾹꾹 눌러 붙인다. 그렇게 빨간 우체통 속으로 사라진 편지는 며칠 뒤 아들의 집에 도착한다. 그리고 다시 강금연 할머니에게로 되돌아본다.

“사랑하는 어머니, 편지 받고 깜짝 놀랐습니다. 정성스러운 어머니의 글씨에 눈물이 났습니다.” 이 순간 한글은 단순한 문자나 기술이 아니라, 사랑을 건네는 다리가 된다.

박금분 할머니는 말한다. ‘가마이 보니까 시가 참 만타. 여기도 시, 저기도 시, 시가 천지삐까리다.’

정말 그렇다. <칠곡가시나들>의 세계는 온통 시로 가득하다. 사랑을 몰라 부끄럽다고 읊는 박월선 할머니의 시, 하루하루를 살아내며 써 내려간 이름 없는 시들이, 이 영화 안에서 모두 하나의 삶으로 이어진다.

영화의 또 다른 주인공은 사계절의 칠곡 풍경이다. 봄의 쑥, 여름의 장맛비, 겨울 장독대의 눈. 할머니들의 시 한 줄처럼 소박하고 정겨운 풍경들이 스크린 위에 펼쳐진다. 과장되지 않았지만 따뜻한 이 장면들은, 결국 할머니들이 써 내려간 시의 마음과 닮아 있다. 이제 그 시 속 풍경을 따라, 칠곡의 하루로 천천히 걸어가 보자.

금오산 깊은 골짜기에 숨은 물의 절벽
구미 금오산 대혜폭포

비가 부슬부슬 내리던 날, 세 할머니는 구미 금오산으로 향한다.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 도착한 대혜폭포 앞, 눈앞에는 웅장한 물줄기가 쏟아지고, 그 앞에 선 할머니들은 잠시 말을 잃는다. “옛날엔 다리도 없었는데… 절만 있었지.” 세월이 흐르며 달라진 풍경을 바라보며, 할머니들은 조용히 옛 시절을 떠올린다.

대혜폭포는 경상북도 구미시 남통동 금오산 자락, 해발 약 400m 지점에 자리한 높이 28m의 폭포다. 금오산을 울릴 만큼 세차게 떨어지는 물소리 때문에 ‘명금폭포(鳴金瀑布)’라 불리기도 한다. 폭포 아래 넓은 소(沼)는 예로부터 하늘의 선녀가 내려와 목욕을 즐겼다는 전설이 전해져 ‘욕담(浴潭)’ 또는 ‘선녀탕’이라 불린다.

등산객이 많은 금오산에 자리한 대혜폭포는 사계절 내내 다른 얼굴을 보여준다. 봄이면 물안개가 피어나고, 여름에는 녹음이 폭포를 감싸며, 가을에는 단풍이 물 위에 흩어지고, 겨울이면 얼음기둥이 절벽을 수놓는다. 또한 폭포 주변에는 도선굴, 약사암, 도리사 등이 자리해 금오산 관광의 백미를 이룬다.

  • 주소 경상북도 구미시 남통동 산 94
기억의 통로이자 역사의 풍경
왜관철교 & 관호산성 둘레길

병원 진료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 두 할머니는 나란히 다리를 걸으며 대화를 한다. “아따, 물 많다. 참 낙동강이 유명해 그제?” “여기 물을 보니께 어지러운 기분이라” “보지 마라, 물 쳐다보지 마라.” 그 짧은 대화 속에 흘러간 세월과 삶의 무게가 스민다. 다리 너머로 노을이 붉게 번지고, 그 위로 천천히 걸음을 옮기는 두 사람의 모습이 오래 남는다.

이 장면의 배경이 된 곳이 바로 왜관철교다. 경부선의 약목역과 왜관역 사이, 낙동강을 가로지르는 이 철교는 1908년 일본이 대륙 침략을 위해 부설한 군용 철도의 교량이었다. 한때는 수많은 열차가 이곳을 오갔지만, 1941년 새 철교가 놓이면서 인도교로만 사용됐다. 6·25전쟁 당시에는 남하하던 북한군을 저지하기 위해 폭파되며 ‘호국의 다리’라는 이름을 얻었다. 오랜 세월 풍상을 겪은 왜관철교는 안전 문제로 철거 위기에 놓이기도 했지만, 역사적 상징성과 지역민의 염원으로 복원이 결정되어 오늘까지 남아 있다. 지금은 낙동강을 따라 노을을 감상하며 걷기 좋은 산책로로 재탄생해, 칠곡 사람들에게는 기억과 평화의 다리로 자리 잡았다.

철교에서 이어지는 길 끝에는 관호산성이 있다. 삼국시대 신라가 처음 쌓은 토성으로, 동서 약 180m, 폭 50m에 이르는 내성과 북쪽 외성의 흔적이 남아 있다. 낙동강 절벽 위 자연 지형을 그대로 활용해 축조된 이 산성은, 예로부터 전략적 요충지이자 천혜의 방어선이었다. 현재 이곳에는 관호산성 둘레길이 잘 조성되어 있어, 남녀노소 누구나 걸으며 강과 산, 마을의 풍경을 함께 즐길 수 있다. 자연과 역사가 어우러진 대표 탐방 코스다.

  • 주소 경상북도 칠곡군 왜관읍 석전리
    칠곡군 약목면 관호2리 산17번지 일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