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호에 이어 <음식디미방>을 펼친다. 위의 문장은 이 책 맨 마지막에 붙어 있는 한마디이다. 글쓴이 장계향(1598~1680)은 일평생 돌본 식료품과 조리와 음식에 잇닿은 바를 대물려 가꾸고 간직할 일로 여겼다. 장계향에게 음식은 소중한 내 일이었다. 그만큼 대대로 이어지길 바랐다. 그래서 원본은 원본대로 한 집안 또는 종가에 잘 남고, 집안을 떠날 사람들은 필사본 또는 부본(副本)1) 을 만들어 실제로 잘 쓰고, 또 잘 간수하기를 바랐다. 과연 장계향의 바람대로 된 셈 아닌가. 독자 여러분도 저도 이렇게 오늘날 <음식디미방>을 들여다보고 있다.
<음식디미방>은 직접 살림을 산 여성, 대가족 한 집안의 식료품을 몸소 관리하며 살아온 여성의 경험이 녹아 있는 조리서이다. 일상생활의 먹을거리와 한 철의 먹을거리와 의례 때문에 갖추어야 할 음식을 아울러 매만지며 살아온 사람이 남긴 기록이다. 조리의 구체적인 과정을 몸소 경험한 사람이 썼기에 어떤 재료를 얼마만큼 쓰고, 어떤 순서로 손질하고 가열하며, 식료품과 음식의 분량을 얼마나 가늠할 수 있을지, 조리와 음식의 어느 부분에 유의해야 할지, 계절에 따른 재료를 어떻게 갈무리하고 저장해야 하는지 등등이 구체적으로 쓰일 수 있었다. 어떻게 차리면 좋다는 조언도 보인다. 오늘날의 말로 다시 표현하면, <음식디미방>을 일러 ‘재료의 전처리부터 차림과 저장·유통까지 아우른 종합 조리서 겸 본격 요리서’라고 할 만하다. 체계적인 서술과 방대한 항목도 지나칠 수 없다. 그 구성은 ‘면병류’, ‘어육류’, ‘주국방문’의 세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면병류’에는 국수· 만두·떡·과자가 망라되어 있다. ‘어육류’에는 고기·생선·갑각류·달걀 및 오리알·채소를 재료로 하는 음식이 주로 나온다. 여기에 다시 과자와 떡과 음료가 끼여 있고 음식 보관법이 여덟 항목 실려 있다. ‘주국방문’은 술과 누룩과 식초를 망라한 장이다. 술과 누룩에 관한 항목만 51항에 달한다.
또한 책의 곳곳에 ‘맛질방문’이라는 말이 등장한다. 맛질은 오늘날의 경상북도 예천로 추정한다. 장계향은 17세기에 실제로 안동·영해·영양·예천 등 경상북도 북부 지역에서 나고 자라고 생애를 마친 인물이다. 내 삶의 영역에서 충분히 겪은 음식 문화를 내 손으로 구체적으로 쓰되, 짜임새 있게 또 충분히 기록하고 전하려 애쓴 결과가 또한 <음식디미방>이다.
살펴보면 재미난 점이 하나 있다. 이 책에는 죽과 밥 어느 하나도 독립한 항목에 올라가지 않았다. 왜 그랬을까? 늘 하기에, 누구나 매일 손댈 만하기에 굳이 시시콜콜 말할 필요 없는 조리법은 다루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 그보다는 별미, 한 해를 두고 몇 번 하지 못할 특별한 음식(또는 저장법), 집안의 법수를 뽐낼 만한 음식, 한 번 실패하면 큰 낭패를 보게 되는 술과 식초 같은 음식에 보다 집중했을 가능성이 높다. 별미의 의미도 오늘날과는 또 다르다. 곡물의 가루를 내고, 먹을 만한 깨끗한 가루를 받는 과정 자체가 보통 일이 아니었던 시대의 국수와 만두를 살펴보자. <음식디미방>을 열자마자 보이는 ‘면병류’의 ‘면’ 항목이 이렇다.
“겉메밀을 씻어 많이 말리지 말고 알맞게 말려 쌀(메밀쌀)을 좋게 하여 찧을 때 미리 물을 뿜어 축축이 하여 두고, 녹두의 거피한 알을 좋게 씻어 건져 물 빼거든 메밀쌀 닷 되에 물에 불린 녹두 한 복자2) 씩 섞어 찧은 뒤 방아를 가만가만 찧어 겉가루는 쳐 버리고, 키로 퍼 버리고, 키 끝에 흰 쌀이 나거든 그를 모아 다시 하면 가루가 가장 희거든, 면 말 때 더운 물에 눅게(묽게) 말아 누르면(국수틀에 누르면) 빛이 희고 좋은 면이 되느니라(이하 생략).”
먹기만 할 줄 아는 사람한테는 아무것도 아닐 테지만, 내 손으로 식료품을 만지며 내 눈으로 물성의 변화를 지켜본 사람이라면 감탄할 만한 구체성이 여실하다. 장계향은 분량을 가늠하며 조리의 과정을 썼다. 방아질에서 키질에 이르는 세부도 중요하다. 공장 제분 이전, 오로지 사람의 손으로 감당하던 자가 제분의 풍경이 이러했다. ‘맛있다’로 다가 아닌 면모가 이러했다. 여느 자원이 하필 식료품이 될 때, 식료품이 드디어 음식이 될 때 필요한 과정과 기본기술이 훈민정음을 익힌 여성을 통해 이토록 생생하게 기록되었다.
‘만두법’도 재미나다. 17세기 조선에서 밀가루는 정말 귀했고, 국수고 만두고 메밀가루가 밀가루에 앞섰다. 만두는 반죽을 전제로 한다. 반죽 앞에는 깨끗하고 고운 가루가 있어야 한다. ‘만두법’ 은 “메밀가루 장만하기를 마치 깨끗한 면가루 같이(밀가루의 예와 같이) 가는 모시나 깁3) 에 쳐서”로 시작한다. 빻는 것으로 끝이 아니다. 만두피를 밀 만큼의 가루를 받으려면 다시 모시나 깁에 한 번 더 치는 수고를 생략할 수 없다. 그러고도 다시 그 가루로 풀을 쑤어 반죽을 쳐, 그 반죽을 개암열매 크기로 떼 내어 만두를 빚었다. 만두의 소는 꿩고기의 연한 살을 다져 기름장에 볶아 잣·후추·초피가루로 양념해 마련한다. 쪄 낸 만두 옆에는 생강즙을 탄 초간장이 있어야 한다. 꿩고기 대신 소고기도 좋은 소재이다. 또는 채소만 가지고 소를 만든다면 삶은 무, 표고, 송이, 석이를 다져 참기름을 치고, 잣을 빻아 간장물에 볶아 넣어도 좋다. 장계향은 밀가루를 낼 수 있다면 밀가루도 좋다고 덧붙였다. 초간장에 생강 대신 마늘을 쓸 수도 있지만, 향이 너무 강하니 생강만 못하다는 조언은 마지막에 살짝 덧붙였다. 읽다 보면 살짝 웃음이 난다. 솜씨 좋은 큰이모 또는 자취 이력이 길어 자연스레 반요리사가 된 선배한테 시시콜콜 음식 하는 법을 배우는 느낌이 나니 말이다. 떡을 살펴보아도 그렇다. ‘석이편법’ 곧 ‘석이시루떡 찌는 법’ 항목을 읽어보자.
“백미가 한 말이면 찹쌀 두 되를 한 데 담갔다가 가루 만들고 석이 한 말을 데운 물에 깨끗하게 씻어 다듬어 썰어 섞어 넣어서 팥시루편(팥시루떡)같이 (시루에) 안치되 백자(栢子, 잣)를 으깨어 (켜켜이) 놓아 찌라. 이 편(떡)이 가장한(최고의) 별미니라.”
손님 맞을 줄 알고, 절기와 명절에 맞는 음식을 마련할 줄 알고, 봉제사 제대로 지내는 집안에서 태어나, 못잖은 집안에 시집가, 일평생 살림과 음식을 돌보며 살아온 장계향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그래, 석이편, 잘 안쳐 찌면 최고지. 이런 별미 먹어 봤니? 우리 집안 사람들아, 고향에서 이 음식 지키고 살자. 어디로 떠나 가든 이런 멋진 떡 잊지 말자!’ 하는 말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음식마다 이렇다. 항목마다 이렇다. 읽을수록 흐뭇하고 정다운 음식문헌이 또한 <음식디미방>이다.
- 원본과 동일한 내용의 문서를 부본이라고 한다. 원본의 훼손에 대비하여 예비로 보관하거나 실제로 사용하기 위해 만든다.
- 기름을 따르거나 기름의 분량을 가늠할 때 쓰는 작은 그릇.
- 명주실로 거칠게 짠 비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