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의 약성은 오랜 옛날부터 언급돼 왔다. 심한 감기가 들었을 때 따뜻하게 꿀과 익힌 배숙을 먹는 것이나, 숙취에 갈은 배를 먹는 등의 민간요법은 현대 과학의 관점에서도 합리적이고 대중적이다. 배를 먹었을 때 갈증이 해소되고 기침과 열을 다스리는데 효과적이었던 것을 체감한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현대 과학의 관점에서 보아도 배는 다양한 효능을 지닌 성분들이 많이 함유돼 있다. 염증과 바이러스, 병균 등에 대항하고 기름지거나 탄 음식 등이 유발할 수 있는 발암물질의 인체 흡수를 막아 암 예방에 효과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와 함께 배의 효능으로 주목받고 있는 것이 대사증후군 개선이다. 배 적과 시 버려지는 유과의 추출물로 비만 쥐에 5주간 투여한 결과, 체중과 내장지방이 줄었고 당 대사도 정상수준으로 회복됐다. 상품성이 없다고 판단된 유과에서 새로운 소비를 창출할 수 있다는 긍정적인 결과를 얻은 것이다.
또한 배에 아삭한 식감을 주는 석세포 또한 산업적 이용 가능성이 밝혀지고 있다. 두꺼운 세포막이 과육 내부에 박힌 것을 석세포라고 하는데, 이 분말이 미세플라스틱을 대신할 수 있는 유력한 대체재로 거론된 것이다. 활용 가능한 상품은 치약과 피부 각질제거제다. 배의 서걱거리는 식감은 치아 청결에도 좋다고 여겨져 ‘배먹고 이 닦기’라는 속담이 내려올 정도다. 그런데 배에 함유돼 있는 석세포가 실제 치아의 연마 효과에 큰 효능을 보인 것이다. 특히 프라그 제거 치약에 비해 1.8배 효과가 있다는 것은 고무적이다. 이와 함께 석세포 분말을 첨가해 제조된 각질제거제는 모공 속 노폐물을 제거해 모공을 축소하는 효과도 보여줘 새로운 소비 창출 가능성을 보였다.
늦여름부터 늦가을까지 즐기는
우리 배
일상에서 배와 신고배는 거의 동의어로 쓰인다. 신고배는 과육이 부드럽고 풍부한 과즙을 지니고 있어 한국인의 입맛에도 잘 맞기 때문에 배 농사의 80%가량을 차지하는 품종이기도 하다. 그러나 가을 명절인 추석에 출하하기 위해 적정 숙기를 채우지 않은 과실이 풀리면서 배의 선호도가 떨어지는 문제를 발생시키기도 했다. 자연히 재배면적도 꾸준히 줄었다. 현재 재배면적은 1만ha 이하로 2019년 생산량은 20만 1천 톤을 기록했다. 2008년 47만 1천 톤과 비교했을 때 생산량이 절반 이하로 줄어든 결과다.
이러한 상황에서 배의 소비 축소를 극복하고, 제수용 과일이 아닌 생활 속 과일로 자리매김하기 위해 다양한 품종들이 개발되고 있다. 여름에도 수확이 가능하거나 작은 크기로 껍질째 먹을 수 있는 배 품종 개발 등 소비자들의 입맛을 다시 사로잡기 위한 노력들이 지속되고 있다. 수확 시기도, 맛도 다채로운 국산 배 품종들을 소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