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에 충실하게,
농촌의 소소한
변화를 꿈꾼다

보란정민 농사일기 최보란·윤정민 대표

글 ㅣ 김희정사진 ㅣ 최성훈
강원도 정선의 농업이 바뀌고 있다.
전통적으로 많이 짓는다고 알려졌던 배추와 무, 고추 같은 작물들은 정선에서는 점차 줄어가는 추세다.
반면 날씨가 많이 따듯해지면서 사과나무가 특화작목으로 등장했다.
이처럼 작목이 바뀌어가는 것도 있지만 사람 역시 바뀌고 있다.
강원도 대부분의 지역에서 한농대 동문을 많이 만나는 것이 쉽지 않지만, 정선에서는 이야기가 다르다.
4-H 활동이나 동문들과의 만남이 드물지 않아 한층 다양한 시도가 이어지는 것을 볼 수 있다.
‘보란정민 농사일기’라는 이름으로 농사를 꾸리는 최보란·윤정민 대표도 그 일원이다.

농가의 자녀들,
또 다른 농업을 꿈꾸며 뭉치다

보란정민 농사일기 최보란·윤정민 대표
최보란 대표와 윤정민 대표가 정선에서 농사를 짓게 된 것은 2016년, 한국농수산대학교를 졸업한 바로 다음이다. 같은 과였던 특용작물학과에서 만난 지 한 달이 채 안 되었을 때 결혼을 결정했을 정도로 애정이 넘치는 커플이다. 이들이 현재 농사를 짓는 품목은 노지 채소 4,500평, 사과 4,000평, 하우스 아스파라거스 500평가량이다. 그들의 전공이었던 특용작물학과와는 전혀 다른 갈래의 농사다. 특히 전남 구례에서 매실농사를 지으려고 했던 최보란 대표에게는 더욱 그렇다.
“저와 윤 대표의 부모님 모두 농업에 종사하시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직업으로 농업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제 고향은 전남 구례인데, 부모님이 지으시던 매실 농사를 기반으로 특용작물학과에서 배운 것을 접목하려고 했거든요. 3년 동안 배운 것도 인삼이나 복분자, 가시오가피 같은 특용작물 기반이라 실습을 나갈 때도 농장이 아닌 연구소로 나갔었어요.”
같은 과를 나온 윤정민 대표도 농사 경험은 크게 다를 바 없었다. 실습으로 나갔던 연구소에서는 오미자나 하수오, 천마 등의 약재를 조직배양 하는 법을 배워온 터였다. 무와 배추의 병충해 방제, 사과나무의 수형 관리처럼 정선을 내려온 뒤 매해 하게 될 일은 배우게 된 것은 학교를 졸업한 뒤였다. 정선에서 계속 농사를 지었던 윤 대표의 아버지가 권유한 끝에 정선에서 농사를 짓게 되었지만 3년 동안은 그 과정이 쉽지 않았다. 올해 농사를 지으면서 얼마간의 여유가 생겼다고 자평할 수 있게 된 정도다.
“정선에는 4-H 활동이 활성화되어 있다 보니 최 대표 말고도 학교 동문들을 꽤 자주 볼 수 있어요. 그동안 농사로 뿌리를 내리지 못했을 때도 주기적으로 모여서 농업에 대해 이야기하고 상담을 나눈 것도 큰 도움이 되었어요.”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개인적으로 학교에서 가장 잘한 일이라면 제 반려자인 윤 대표를 만난 것을 첫 번째로 손꼽아요. 하지만 함께 농사에 대해 공부하고 소통할 동문들과 정선에서 주기적으로 뭉칠 수 있다는 점도 헤아리기 어려운 결실이에요.”
사과나무

함께 농사에 대해 공부하고
소통할 동문들과 정선에서
주기적으로 뭉칠 수 있다는 점도
헤아리기 어려운 결실이에요.

예상치 못했던 노지 농사,
매해 다른 작물로 꾸려나가다

2016년 정선으로 내려오면서 가장 먼저 손을 대야 했던 작물은 사과였다. 한농대를 다닐 때에도 과수 농사, 특히 사과 농사는 여러모로 힘들다고 익히 들어온 바 있었다. 친구들과 농담으로 사과 농사는 절대 짓지 않겠다고 했던 말이 무색해진 것이다. 그와 함께 관리해야 했던 것이 4,000평의 채소밭이었다. 두 대표가 선택한 방식은 해마다 돌아가며 일모작 감자와 이모작 김장채소를 심는 것이다. 작물이 다른 만큼 장단점도 확연히 달랐다.
“김장 채소인 배추나 무, 고추는 정말 손이 많이 가는 작물이기도 해요. 이 순서대로 벌레들이 잘 먹는 채소들이라 벌레 방제에 힘이 많이 들어가죠. 기존에는 고랭지이다 보니 벌레는 적은 편이었는데, 기후변화가 심해지면서 농사에도 많은 영향을 주고 있어요. 정선에서 무, 배추는 더 이상 안 되는 작물이라는 말도 나올 정도에요. 김장채소를 심은 해에는 저도 그렇지만, 윤 대표의 일이 엄청 많아져요. 대신 이모작으로 수확을 할 수 있어서 인건비나 비료값을 제하고 난 뒤에 남는 이익도 쏠쏠한 편이죠.”
“함께 짓는 농사가 규모가 크다 보니 작물을 고르는 기준의 하나로 노동력 투입 강도를 중요하게 생각해요. 감자를 심은 경우에는 4월에 씨감자를 심고 나면 병해충만 관리해주면 돼요. 그런 뒤에는 8월부터 10월까지 수확을 해요. 씨감자를 심기 전 비료를 충분히 넣어주기만 하면 넓은 밭에 심어도 손이 덜 가는 게 장점이지만, 평당 이익이 거의 나오지 않아요. 비료나 인건비를 제외하면 일모작이라 쳐도 수익이 아쉬운 게 단점이에요.”
이렇게 정성껏 지은 노지 채소는 직거래와 포전거래로 소비자에게 전달된다. 특히 배추와 무처럼 때를 놓치면 가격 등락이 큰 채소들은 농산물의 재배 후 관리에 드는 노력을 줄일 수 있어 포전거래가 큰 도움이 된다. 계약재배와도 비슷하기 때문에 시장을 개척하는 데 드는 노력을 줄이고 농사에 전념할 수 있는 것도 장점이다.
“날씨에 따라 작황이 좋지 않은 때도 있지만, 그런 때에도 믿고 거래해주신 분들이 있어서 소득이 적어도 버텨올 수 있었던 거라 생각해요. 그런 만큼 농사에서 사람이 해야 하는 부분은 최대한 노력과 정성으로 가꿔나가려고 합니다.”
매해 달라지는 노지 채소와는 달리, 아스파라거스와 사과는 꾸준하게 가꿔야 하는 작물이다. 특히 아스파라거스는 다년생이라 길면 20년까지도 재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스파라거스는 3월부터 8월까지 수확하는데, 온도와 영양분만 잘 맞는다면 6시간 안에도 쑥 자라기 때문에 하루에 두 번은 수확을 해야 한다. 반면 사과는 3월에는 꽃을 따고, 6월에는 열매를 솎아내는 등 그 시기마다 해줘야 하는 일들이 정해져 있다. 이 흐름을 놓쳤다가는 그해 작황에도 큰 영향을 줄 수 있어 장기적으로 관리를 해야 한다. 과일의 질을 높이기 위한 퇴비도 수확기 60일 전에는 주어야 그 효과를 볼 수 있을 정도니 밭을 가꾸며 겪은 경험이 큰 자산이 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함께 고민도 나누고
이런 식으로 뭔가
같이 이루어내려는 청년공동체와
기존의 토종씨앗 운동처럼
자급자족하는 전통이 만나면
농촌도 더욱 풍성해질 거라고 생각해요.

보란정민 농사일기 최보란·윤정민 대표

자급자족하는
농촌의 즐거움 살리고 싶어

최 대표가 정선으로 온 지 벌써 5년 차가 되었다. 그전에도 농촌 지역에서 살았던 만큼 귀농인에 해당하지는 않지만, 마을에 적응하는 과정은 귀농인과도 비슷한 부분이 있었다. 고령화가 많이 진행된 마을에 새로 온 새댁인 만큼 마을 어르신들의 관심도 적지 않았다.
“사실 강원도는 처음 접하는 곳이다 보니 지역을 편하게 알려주는 곳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었어요. 보통 그런 곳은 지역의 귀농귀촌센터인데, 저는 농업지역에서 또 다른 농업지역으로 옮겨온 케이스라 귀농인의 기준에는 맞지 않아 그곳을 이용할 수는 없었죠. 또 저 자신을 마을과 융화하는 데에도 시간을 꾸준하게 들여야 했어요.”
서류의 소소한 부분에 지난다고 볼 수도 있지만 농업 관련 행정 서류에서 보게 되는 가부장적인 면모도 최 대표에게는 아쉬운 부분이었다. 농장을 함께 가꿔나가는 만큼 공동경영주로 이름을 등록했지만, 대표 경영주의 이름으로는 윤 대표만의 이름이 올라가는 것도 그렇다. 농촌의 문화가 천천히 바뀌는 것을 알고 거기에 손을 보태기도 하지만 보다 여성 친화적인 문화가 빨리 자리 잡길 바라게 될 때도 있다.
보란정민 농사일기 최보란·윤정민 대표
보란정민 농사일기 최보란·윤정민 대표
윤 대표도 농촌이 조금 더 변화하길 바라는 부분이 있다. 옛날에는 농촌에 사람이 많았던 만큼 스스로 즐기기 위한 자생적인 문화가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문화생활을 즐기기 위해서는 도시로 가는 경우가 대다수다. 마을 자체가 고령화되는 만큼 청년들이 마을을 꾸려가야 하는 책임도 있기에 아쉬운 부분이다. 그런 점에서 위안이 되는 것은 같은 지역에서 열심히 자신의 농사를 짓는 청년 농부들이다.
“농사를 짓기 위해 내려오는 것 자체가 쉬운 일은 아니에요. 저희는 땅을 부모님이 물려주셨기 때문에 정착하기가 쉬웠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잘못하면 맨땅에 헤딩하는 수도 있거든요. 또 부모님께 농사를 물려받는다 해도 신구의 조합이 쉽지 않아요. 어르신들은 자신의 노하우가 있지만 젊은 사람들도 그들의 생각이 있거든요. 그런 점에서 4-H 활동에 열심히 참가하는 청년농부들과 함께 뭉치게 되는 것 같아요. 저희가 입은 티셔츠도 함께 맞춘 건데 ‘정성을 선물하는 청년농부’, 줄여서 ‘정선청년농부’라고 부르거든요. 함께 고민도 나누고 이런 식으로 뭔가 같이 이루어내려는 청년공동체와 기존의 토종씨앗 운동처럼 자급자족하는 전통이 만나면 농촌도 더욱 풍성해질 거라고 생각해요.”
보란정민 농사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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