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잔의 차, 자연을 음미하다하동군 화개면
글 ㅣ 김그린자료제공 ㅣ 농촌진흥청 농촌자원과 채혜성 농업연구사, 최준식 농촌지도사
경상남도 하동은 우리나라 차 시배지로 알려져 있다. 신라 흥덕왕(828년) 때 당나라에서 들여온 차씨를
지리산에 심으면서 본격적으로 재배하게 되었다. 오늘에 이르기까지 무려 1,200년의 역사를 자랑한다.
긴 시간이 흘렀음에도 현재까지 한국 최고의 차로 각광 받는 하동 전통차.
험준한 지리적 여건에도 정성으로 차를 길러온 사람들이 그곳에 있다.
우리나라 차 시배지
경남 하동이라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초록의 찻잎이 자라나는 풍경이다. 경사진 언덕에서 찻잎들이 무럭무럭 자라난다.
명실상부 한국에서 최고의 차로 손꼽히는 하동 전통차이다. 하동은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차를 심어 가꾼 시배지이며, 우리나라 차 역사를 대변하는 지역이다.
하동에 차씨가 심어진 것은 신라 흥덕왕 3년인 82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삼국사기 기록에 따르면 사신 대렴공이 당나라에서 차 종자를 가지고 오자 왕이 지리산에 심도록 한 것이 시초였다.
지리산 쌍계사 입구에 있는 대렴공추원비를 보면 이곳이 우리나라 차의 시배지임을 알 수 있다.
고려시대 문인 이규보는 화개를 찾아가 차를 맛보며 “험준한 산 중에서 간신히 따 모아 멀고 먼 서울로 등짐져 날랐네”라고 언급했다.
당시 이 지역의 주민들이 차 공납으로 인해 심한 고통을 당했음을 기록으로 남긴 것이다. 당시 화개는 대표적인 차 산지였으며 품질 좋은 차를 조정에 진상했다.
조선 초기 임금의 명령을 받고 중국에 사절로 가는 사신의 행장에는 화개차가 들어 있었다고 한다.
그만큼 화개차의 명성은 높았고, 우리 차를 중국에까지 자랑했던 시대였다. 그리하여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도 많은 차가 생산되었다.
일제강점기에는 재래종 차 재배의 위기를 맞았지만, 잘 극복하여 한국 차 문화의 전통을 오늘에까지 이어오게 되었다.
하동에 전해 내려오는 구전민요 <채다가>의 가사를 살펴보면 당시 주민들에게 차가 어떤 의미였는지 엿볼 수 있다.
초엽 따서 상전께 주고/ 중엽 따서 부모께 주고/
말엽 따서 남편께 주고/ 늙은 잎은 차약지어/
봉지봉지 담아 두고/ 우리 아이 배 아플 때/
차약 먹여 병 고치고/ 무럭무럭 자라나서/ 경상감사 되어주오
차는 주민들에게 나라와 가족을 위한 것이었다. 또한 희망찬 미래를 꿈꾸게 하는 신비로운 작물이었을 것이다.
지혜로 일군 차밭
하동이 대표적인 전통수제차 생산지역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던 건 사람들의 지혜와 노력 덕분이다.
하동군의 전통차 생산지역으로 널리 알려진 화개면은 해발 1,200미터가 넘는 지리산에 둘러싸여 있다.
남쪽으로는 섬진강과 화개천이 만나 흐르는 고장이다. 사실 산이 많고 평지가 적은 것은 작물을 생산하는 데는 불리한 환경이다.
화개 지역 역시 면적의 93%가 산지로 식량작물 재배가 어렵다. 그러나 주민들은 쉽게 포기하지 않았다.
산간지형을 최대한 활용해 돝 틈과 계곡 주변, 구릉지 등에 야생차를 식재했다. 산기슭 바위 틈에 차밭이 형성되어 있으니 기계 작업이 어려웠다.
덕분에 고급 수제 녹차 가공 기술이 만들어진 셈이다. 척박한 환경을 활용한 덕분에 지리산의 풍광과 조화를 이룬 차 군락지가 탄생할 수 있었다.
정성껏 길러낸 차이니만큼 더욱 차분히 음미하고 싶어진다. 음용법을 제대로 익히고 마시면 더욱 좋은 경험이 된다.
차를 마시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좋은 차를 선택해야 한다. 차는 제조시기에 따라 첫물차, 두물차, 세물차 등으로 구분하는데, 첫물차 품질이 가장 뛰어나다.
차를 우리기 위해 필요한 것은 차와 물, 그리고 이 두 가지를 넣을 수 있는 그릇이다. 마음에 드는 그릇에 차를 우려내면 된다.
이때 일반 수돗물을 사용할 경우 하룻밤 정도 재워서 쓰면 좋다.
차가 충분히 우려졌으면 이제 마시며 음미해 보자. 첫물차는 감칠맛이 강하고, 두물차, 세물차는 떫은맛이 강하다.
뜨거운 물로 차를 끓이면 떫은맛 성분이 빨리 우러난다. 낮은 온도의 물로 천천히 우리면 감칠맛이 나는 차가 된다.
차 종류와 각자 취향에 따라 방법을 달리하여 음미하면 된다.
차를 더 깊이 이해하기 위하여
하동의 전통 차농업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꼭 들러야 할 장소들이 있다. 가장 먼저는 화개면 운수리에 위치한 차시배지이다.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차나무를 심은 곳으로, 차의 역사가 시작된 곳답게 드넓은 야생의 차밭이 펼쳐져 있다.
차나무 군락이 형성하는 그림 같은 풍경 속에서 조용히 산책을 즐기기도 좋다.
화개면 정금리에 위치한 도심다원은 ‘천년차나무’라 불리는 우리 나라 최고 차나무가 위치한 다원이다.
차밭 정상에 오르면 최고 차나무임을 나타내는 표지석을 발견할 수 있다.
천년차나무와 유전 형질이 유사한 15개체가 산재되어 후계목으로 보전 관리되고 있다. 지리산 전통 방식으로 정성을 들여 만든 차를 맛볼 수 있다.
또한 화개면 탑리에 위치한 쌍계야생다원은 돌 틈 사이에 차나무가 자생하는 전통적인 야생차밭의 형태를 유지한 곳이다.
벚나무와 어우러져 아름다운 경관을 자아낸다.
하동군 화개면에 가면 오래된 차나무와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정성을 들여 차를 재배해온 사람들의 지혜와 정성을 만날 수 있다.
자연을 바꾸려 하지 않고, 자연 안에서 더불어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예쁘다.
그들이 덖은 차 맛을 깊이 음미하며 화개면의 아름다움을 탐색해 보자.
여행 더하기 : 국가중요농업유산
차를 덖어 역사를 만들다
경남 하동군 전통차농업
글 ㅣ 김그린
경남 하동군은 우리나라 차 시배지이자 대표적인 전통수제차 생산지역이다. 험준한 산지로 둘러싸인 이곳에서
주민들은 돌 틈과 계곡 주변에 야생차를 식재하여 가꿔왔다. 1,200년의 시간 동안 해발 1,200미터가 넘는 지리산에 둘러싸여
정성껏 차를 재배해온 사람들. 그들의 노력 덕분에 하동 전통차농업은 국가중요농업유산으로 선정되었다.
식재부터 재배까지 친환경
하동군의 전통차농업은 2015년 국가중요농업유산 제6호로 지정된 데 이어 2018년에는 세계중요농업유산으로 인증 받았다.
통일신라시대부터 현재까지 유지되어온 차밭의 역사성, 지리산의 수려한 경관과 어우러진 점 등이 한국 차문화의 발상지임을 뚜렷하게 말해주었기 때문이다.
또한 자연훼손을 최소화하고 생물 다양성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한 점을 높이 평가받았다.
하동 사람들은 지리산 산비탈에 조성된 차밭에서 전통적인 방식으로 차를 생산하며 척박한 환경을 극복해왔다.
안개가 많고 다습하며 차 생산 시기에는 밤낮 기온차가 큰 것이 차나무 재배의 최적 환경을 만들어 주었다.
하동군에서는 수확이 끝난 후 차나무를 전지하며 생긴 부산물을 차밭에 그대로 둔다. 친환경 퇴비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또한 친환경 차밭을 보전하기 위해 화개면 일대에서는 가축을 사육하지 않는다. 다른 작물을 기를 때에도 농약을 치지 않는 등 세심한 노력을 기울였다.
전통 제다법을 이어오다
정성이 들어간 덕분인지 하동녹차는 다른 지역에서 생산되는 녹차보다 맛과 품질이 모두 우수하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다른 지역에서는 보급형 녹차를 생산한다면, 하동에서는 고급 녹차를 생산하여 차별화를 추구하는 이유다.
이곳에서 생산되는 차는 전통 제다법으로 만들어진다 250~350°C 고온 덖음솥에 찻잎을 넣고 타거나 설익지 않도록 균일하게 덖어낸다.
가내수공업 형태로 오랫동안 전해져 내려온 하동만의 전통 방식이며, 소량생산이기에 가능한 방법이기도 하다.
하동의 제다법은 그야 말로 모든 단계에 정성과 사랑을 듬뿍 담는다고 얘기할 수 있다.
“신령한 뿌리를 신성한 산에 의탁했으니 신선의 풍모와 옥 같은 기골은 종자가 다르다”고 노래했던 옛 시인의 말은 오늘에도 유효하다.
전통적인 방식을 소중히 이어온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차 시배지이자 다도의 중흥지인 하동. 하동은 대한민국 차농업의 중심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