텃밭 가꾸기,
일상이 즐거워집니다

텃밭문화연구회 김현명 씨

글 ㅣ 김주희 사진 ㅣ 한상훈
반농반X의 삶은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에서도 충분히 가능하다. 경기도 고양시에 거주하는 김현명 씨는
회사를 그만두고 번아웃을 극복하기 위해 텃밭을 가꾸기 시작했다. 그렇게 어느덧 13년이란 세월이 흘렀고,
반농반X로서의 삶을 느슨하게 즐기는 중이다.

번아웃 극복 위해 가꾸기 시작한 텃밭

회사에서 상품기획 일을 하던 김현명 씨는 지난 2010년, 30대 후반이 되면서 번아웃이 됐다. 일하는 것에 보람을 느끼고 즐겁기도 했지만 그만큼 부담과 피로도 컸다. 무기력한 일상을 보내던 그녀는 우연히 영국 케어팜 관련 다큐멘터리를 보게 됐다. 어르신들이 텃밭에 씨앗을 뿌리고 농산물을 키우며 우울증을 극복하는 모습이 무척 신기했다.
“케어팜 다큐멘터리가 제 삶의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나도 해봐 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당시 겨울이어서 모종은 구하기 어려웠어요. 해외직구로 외국여행을 하면서 먹어봤던 루꼴라, 딜, 고수, 바질 등 허브 씨앗을 샀습니다. 시작은 베란다 텃밭이었어요. 플라스틱 화분에 상토를 넣어서 씨앗을 심었지요.”
허브를 처음 심어봤기 때문에 궁금한 게 많았다. 식물 재배 강의가 있으면 무조건 찾아다녔다. 허브가 곧게 자라라고 나무젓가락으로 지지대도 만들어줬지만 베란다에 햇빛이 잘 들지 않아 키우기 어려웠다. 콩나물처럼 자꾸 꺾이는 허브를 보며 마음이 편치않았다. 그러다가 우연히 한 어르신과 대화를 나누었는데, 김현명 씨와 공통점이 많았다.
“60대 어르신이었는데 허브가 잘 자라지 않는다는 제 고민을 들으시곤 흙에서 키워보라고 권유해주셨어요. 그분도 30대에 번아웃이 오면서 식물을 키우기 시작하셨는데, 당시 1만㎡ 정도의 텃밭에서 다양한 식물과 농산물을 재배하고 계셨어요. 저에게 330㎡ 텃밭을 빌려줄 테니 언제든 와서 식물을 키워보라고 하셨죠.” 지금도 연락하며 ‘사수님’이라고 부르는 어르신의 텃밭에 루꼴라와 바질을 심으니 그렇게 잘 자랄 수가 없었다. 예쁘게 자란 루꼴라와 바질로 만들어먹는 샐러드는 그 어느 유명 레스토랑 음식보다 맛있었다. 김현명 씨는 그렇게 식물 재배에 푹 빠졌고, 재배 과정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제가 텃밭에 푹 빠져서 주위 사람들에게도 얘기를 하니 회사 후배에게 ‘팀장님, 왜 그러세요. 정말 자연인 되려고 하세요?’라는 농담을 듣기도 했죠. 그만큼 텃밭을 가꾸는 일은 제 삶에 새로운 활력과 즐거움을 주었어요.”

좋아하는 일이 다양한 활동과 연결되다

허브 등 다양한 식물과 농산물을 키우는 일은 김현명 씨에게 힐링이었지만, 경제적인 부분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관련 사업을 할까 고민하던 중 마침 농부시장 마르쉐가 생겼다. 잘 키운 허브로 만든 허브믹스스틱, 허브꽃다발, 허브모종, 바로 먹을 수 있는 신선한 허브를 다듬어 마르쉐에 생산자로 참여했다.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과 허브 키우는 방법도 공유하고, 조경도 배우기 시작했다.
“조경을 배우면서 여러 프로젝트를 맡기도 했는데, 일하면서 즐겁지가 않더라고요. 조경은 관상 위주라 식물과 교감이 많지 않다고 느꼈어요. 그래서 원예 가드닝 교육과 건강한 먹거리 분야로 활동을 넓혀갔습니다.”
텃밭문화연구회를 만들어 스쿨팜이나 원예수업을 하는 강사들과 함께 모임을 갖고 활동을 하기도 했다. 강의 때 사용하는 식물이나 농산물을 사다 쓰지 말고 직접 재배하여 활용하자는 데 뜻을 모았다. 2,000㎡ 토지를 임대해 연구 목적의 밭으로 사용하면서 텃밭을 바탕으로 하는 프로그램과 교재를 만들기도 했다.
“하지만 오래는 못 갔어요. 무경운, 무농약을 하다가 망했다고 할까요.(웃음) 이렇게 친환경으로 농사를 지으려면 다른 활동은 전부 접고 농사에만 매달려야겠더라고요. 하지만 지금도 강사들 간텃밭과 원예수업에 관련된 정보를 공유하면서 친환경 먹거리에 대한 관심을 지속하고 있습니다.”
자연스럽게 김현명 씨의 활동은 아동센터와 스쿨팜 등에서 원예수업을 하는 것으로 이어졌다. 회사를 그만두고 여유시간이 많다 보니 마르쉐에도 달마다 참여하고 있다. 텃밭은 건강한 먹거리와 연결고리가 있다 보니 한 식품유통회사의 제안으로 상품 홍보콘텐츠를 만드는 일도 했다.
“반농반X라고 하면 경제적인 부분을 고민하지 않을 수가 없지요. 그런데 즐겁게 텃밭 농사를 짓고 좋아하는 일을 하다 보니 생각지도 않게 여러 일들과 연결이 되더라고요. 회사에 다닐 때보다 시간 여유는 많고 스트레스가 적다 보니 13년째 번아웃이라는 단어와는 아주 멀어진 생활을 하고 있어요.”

위로가 되는 다른 반쪽의 삶

현재 김현명 씨는 3곳의 텃밭, 총 500㎡ 규모로 농사를 짓고 있다. 소농만이 할 수 있는 다양한 품종을 심고 있다. 그녀가 재배하는 토마토만 24품종이다. 모양도, 색도, 맛도 다른 토마토들은 그 자체로 아름다운 작품이다. 또한 올해 4월부터 11월까지는 고양 도시관리공사에 관리하는 토당문화플랫폼의 일부 공간을 빌려 '도시텃밭'을 운영했다.
“올해 초에 토당문화플랫폼 로컬크리에이터지원사업에 선정되어 시작한 프로젝트에요. 평소 능곡역을 이용하면서 이 건물을 지났는데, 그때마다 텃밭을 운영하면 좋겠다고 생각했지요. 프로젝트를 기획했을 때부터 소소하게 하고 싶어서 청년 6명만 모집해서 운영했어요. 타이바질, 캐모마일, 수세미, 토마토, 오이, 루꼴라 등을 상자에서 키웠어요.”
친환경 텃밭을 만들고 싶어 멀칭을 안 하고 퇴비도 커피찌꺼기로 만든 비료를 사용했다. 상자도 원목으로 만들고 플라스틱 끈 대신 마끈을 썼다. 텃밭이 생활공간과 멀리 있으면 일부러 시간을 내서 찾아가야 하고, 차를 타고 이동해야 한다. 하지만 도시텃밭은 이름 그대로 능곡역을 이용하며 하루 5~10분 정도만 잠시들러 농사를 지으면 된다.
“청년들이 능곡역을 오가며 물 한 번 주고, 루꼴라 한 줄기 따서 점심 때 먹기도 하면서 텃밭을 가꾸었어요. 번아웃이 왔던 청년도 있었는데 도시텃밭을 하면서 지친 마음에 위로가 되었다고 하더라고요. 이렇게 농사를 가볍게 접하면서 재미 정도만 느낄 수 있도록 하고, 정말 농업이 하고 싶어지면 본격적으로 해볼 수도 있겠지요. 도시텃밭이 동기부여 역할을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김현명 씨는 텃밭을 가꾸다 보면 자연의 철학자가 되는 듯도 하고, 인생이 훤히 보이는 듯한 느낌에 행복하고 즐겁기도 하다고 이야기한다. 그래서 베란다 상자텃밭으로라도 시작해보길 추천한다. 씨앗을 뿌리고, 새싹이 돋고, 잎이 무성해지고, 꽃이 피고, 열매를 맺는 순간들을 마주하면 식물에 애정이 생기고 그 모습을 또 보고 싶어 다음 계절이 기다려진다는 것이다.
“반농반X의 삶을 위해 원래 하던 일을 굳이 버릴 필요는 없어요. 거기에 농사가 더해지면 나도 모르게 여유와 느긋함이 생겨요. 회사 말고도 반쪽의 다른 삶이 있다고 생각하면 위로가 되지요. 농사를 경험해 보고 싶다면 관련 프로그램이 많으니 지원해서 해 보세요. 일상이 굉장히 즐거워져요. 일상이 즐거워져야 내 삶의 행복지수가 높아집니다. 국민 모두가 자신의 텃밭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