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성에서 키운 친환경 바나나,
농사의
고정관념을 깨다
다릿골농원 김재홍 대표
글 ㅣ 김주희 사진 ㅣ 박형준
우리나라는 제주도와 산청 등지에서 바나나를 재배하고 있다.
하지만 경기도 안성이라고 하면 물음표가 생긴다. 수도권에서도 바나나를 키울 수 있을까?
다릿골농원 김재홍 대표는 고정관념을 깨고 안성에서 성공적으로 바나나를 재배하고 있다.
키가 작은 바나나나무 품종을 심다
일반적인 바나나농장에 방문하면 3~4m가 넘는 커다란 바나나 나무가 높은 천장까지 우뚝 서있다.
다릿골농원 역시 비슷할 거라고 생각했지만 농장에 들어서니 예상과는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바나나나무는 2.0~2.7m 정도로 고개만 살짝 올리면 커다란 바나나 잎을 볼 수 있고, 눈앞에서 바로 주렁주렁 달린 탐스러운 바나나를 마주할 수 있다.
“오이농사를 짓던 비닐하우스를 활용해 바나나를 재배하기 때문에 키가 큰 바나나나무는 적합하지 않았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캐번디쉬’라는 바나나 단일품종을 먹고 있는데요. 이 품종 중에는 키가 작은 개체들도 있습니다.
그 개체를 조직 배양한 바나나 나무를 저희 농장에 심은 것이죠.”
아열대 유실수농장 미라팜에서 지난 2017년 국립종자원에 국내 1호로 등록한 ‘손끝바나나’라는 품종이다.
바나나농장을 수도권에서 하면서, 여기에 새로운 품종을 심는다는 건 도전의 연속이다.
하지만 김재홍 대표는 도전 정신으로 과감한 결정을 내렸고, 1년 만에 친환경 바나나를 수확할 수 있었다.
“외래 품종에 비해 나무 크기가 작아 오이 비닐하우스를 그대로 사용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3~4m 크기의 품종은 20℃ 이상 온도를 유지해야 해서 난방비가 많이 들어갑니다.
반면 저희 농장에서 심은 품종은 15℃ 미만의 저온에서도 견디는 특성이 있어 겨울에도 안정적인 수확이 가능합니다.”
경험을 바탕으로 친환경 바나나 수확 성공
김재홍 대표는 어릴 때부터 오이농사를 짓는 부모님을 도와 농장 일을 해왔다.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농업으로 진로를 정하고, 한국농수산대학교 특용작물학과에 입학했다.
졸업 후엔 부모님과 함께 오이농사를 지었지만 어려움이 있었다. 오이를 수확할 시기엔 단 하루도 쉴 수 없었고, 20kg인 오이상자를 하루에도 30~50상자까지 채우고 옮겨야했다.
“저도 힘들었지만 부모님이 갈수록 지치셨어요. 다른 작물을 해야겠다고 결심한 가장 큰 이유였지요.
과채류나 엽채류는 오이와 크게 다르지 않았어요. 나만의 작물을 해야겠다고 생각하면서 바나나 재배에 도전하게 되었습니다.”
그때가 2019년이었다. 당시 20대 후반이었던 김재홍 대표는 바나나 재배에 대한 정보를 모으기 시작했다.
하지만 뜬구름 같은 이야기도 많았다. 몇 ℃ 이하면 나무가 죽는다는 등 시작도 하기 전에 실패를 먼저 떠올리게 하는 정보들도 있었다.
하지만 직접 해보기 전에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었다.
“우리나라는 바나나를 필리핀에서 많이 수입하는데, 사실 전 세계 바나나 생산량에서 필리핀이 차지하는 건 20%에 불과합니다.
또한 중국에서는 ‘스위트마운틴’이라는 바나나 품종을 고산에서 재배합니다.
어느 정도 온도가 낮아도 바나나를 재배할 수 있다는 거죠.
그리고 전 세계에서 다 바나나를 재배하고 있으니 토양도 크게 상관없을 거라고 판단했습니다.
예전엔 제주도에서도 바나나를 많이 재배했었으니까요.”
김재홍 대표의 생각은 옳았다. 안성에서, 그리고 오이 비닐하우스에서도 충분히 바나나를 키울 수 있었다.
물론 변수도 있었지만 모든 농사가 그렇듯 직접 경험하고 노하우를 쌓으며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답이었다.
바나나나무가 갑자기 고사했지만 원인을 알 수 없었을 때는 안성시농업기술센터에서 조언을 받기도 했다.
“첫해엔 1개동 661m2 규모에서 3톤 정도를 수확했습니다.
지금은 4개동, 2,644m2로 규모를 늘렸고, 바나나나무 850주에서 1년에 15톤가량을 수확하고 있습니다.
다른 농장은 1년에 3~4개월 정도만 수확하기도 하지만, 저희는 1년 내내 주마다 2회 가량 수확하고 있습니다.
현재는 연 1억 원 정도의 매출을 올리고 있습니다.”
농사의 성공 여부는 판로 확보가 중요
김재홍 대표의 매력은 솔직함이다. 국산 바나나의 특별함을 묻자 ‘그런 건 없다’며 씨익 웃는다.
바나나 맛은 대부분 비슷하다는 것이다. 다만 무농약 인증을 받을 만큼 안전하게 재배하기 때문에 믿고 먹을 수 있다는 게 장점이라고 이야기한다.
바나나를 수입해 오면 장시간 배에 실려 있어야 해 방부제 등을 사용할 수밖에 없고, 그 나라에서 어떻게 재배했는지도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저희 바나나는 대부분 H백화점 친환경 농산물 코너에 납품되고, 경기도 사업인 ‘임산부 꾸러미’에도 들어가고 있습니다.
소비자들은 안전한 과일을 원하지만, 친환경 과일이 생각보다 많지 않습니다.
그런 면에서 친환경이라는 게 저희 바나나의 특별한 점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요.”
김재홍 대표는 바나나농사에 대한 장밋빛 이야기도 하지 않는다.
바나나농사에 관심을 갖고 견학을 오는 사람들에게도 현실적인 조언을 해준다.
특히 귀농인들이 바나나농사를 하기엔 초기비용을 무시할 수 없다.
긍정적인 면만 보고 진입했다가는 실패할 확률이 높다는 것이다.
또한 생산도 중요하지만 판로는 무조건 확보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옛날에는 농사만 잘 지으면 팔 수 있었다면 지금은 판로가 제일 중요합니다.
물론 성공사례는 분명히 있지만, 그런 분들은 어느 분야에서도 성공할 만한 특별한 몇몇입니다.
저는 바나나농사를 결심했을 때부터 경기도 ‘임산부 꾸러미’ 사업을 고려했었습니다.
이전에 학교급식에 농산물을 납품한 경험이 있어서 친환경 과일에 대한 수요를 알고 있었거든요.”
바나나농사를 수도권에서 한다고 하면 놀라고 의아해하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김재홍 대표는 오히려 수도권이 아니었으면 바나나농사는 생각하지도 않았을 거라고 말한다.
시장이 완전히 달라진다는 것이다.
“농산물을 잘 키우는 것은 기본입니다. 농사를 짓거나 작목을 바꾸기 전엔 무조건 판로부터 고려하시길 바랍니다.
경기도에서는 친환경 과일이 승산이 있습니다. 자신이 정착하는 지역을 고려해 그에 맞는 작목을 선택하시길 바랍니다.”
다릿골농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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