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했습니다!
<그린매거진>과 함께한
소중한 시간

정리 ㅣ 편집부
농촌진흥청 소식지 <그린매거진>이 어느덧 200호 발행을 맞았다.
지난 2002년 7월 20일 창간되어 매월 다양한 농업·농촌의 이야기를 담아온 <그린매거진>.
20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그린매거진>이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은 함께한 독자들이 있기에 가능했다.
<그린매거진>과 함께해준 독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농촌진흥청 <그린매거진>과의 인연
김승미 님

제가 <그린매거진>을 처음 만나게 된 건 무언가를 열심히 읽고 있던 어머니 덕분이었습니다. 대체 어떤 잡지이기에 이렇게 심혈을 기울이면서 읽을까? 궁금해서 찾아본 것이 <그린매거진>과의 인연의 시작이었습니다. 그날 이후로 읽게 된 <그린매거진>은, 얇지만 책자 속에 진하게 농축된 깊이 있고 유익한 내용들이 가득했습니다.
특히 <그린매거진> 199호에 나온 양파를 이용하여 개발한 ‘양대파’ 이야기는, 며칠 전 요리를 하는데 대파 대신 양대파를 이용하는 엄마의 모습이 생각나 더 흥미롭게 읽었던 부분이었습니다. 게다가 평소에 환경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데, <그린매거진>에서는 탄소중립과 함께 친환경적인 내용을 자주 다루어주니 더 주의 깊게 정독할 수 있었습니다.
산업이 발전함에 따라 1차 산업의 중요도가 비교적 낮게 평가되고 있지만 저는 농업과 같은 1차 산업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사람이 살아가는 데 있어 가장 기초적인 양식을 공급하는 농업이야말로 우리나라에서 없어져서는 안 될 중요한 산업이라고 느낍니다. 우리나라는 전 세계에서 몇 없는 1차 산업부터 4차 산업까지 자급자족할 수 있는 국가입니다.
4차 산업이 발전되어 갈수록 1차 산업은 비교적 등한시되는 경우가 많은데, 1차 산업이 무너지지 않게 지지대 역할을 해주고 있는 곳이 바로 농촌진흥청이라고 생각합니다. 최근까지도 농사는 나이가 들거나 은퇴한 경우 시작하는 직종이라는 인식이 있었는데, <그린매거진>에서 소개해주는 수많은 젊은 농업인들과 농업 기술의 발전 덕분에 낡게만 느껴졌던 농업이라는 분야가 굉장히 새롭고 트렌디한 직종으로 다가왔습니다.
<그린매거진>이 어느덧 발행 200호를 맞이한다고 들었습니다. 200호 동안 농업인들을 대표해서 유익하고 재미있는 내용을 소개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덕분에 농업에 관한 인식이 좋아졌고, 관심이 많아졌습니다. 앞으로 300호, 400호, 500호를 발간하는 그날까지 계속해서 응원하겠습니다!

주말농부,
네 자매의 꿈이 이루어지다
김지현 님

작년 이맘때 둘째 언니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지현아! 나랑 양평 한번 다녀오자.” 주말에 바람도 쐴 겸 차를 달려 도착한 곳은 경기도 양평 도장리 산중턱의 부자마을이라는 곳이었습니다. 부자마을 어느 한 귀퉁이에 풀이 가득 자란 작고 아담한 땅 앞에 차를 세우면서 “현아! 내 꿈이 이루어졌어! 이거 내 땅이야!” 그것이 우리 자매들의 농사 시작이었습니다.
사연은 이러합니다. 경북 울진이 고향인 우리 네 자매는 학업을 위해 서울에 터를 잡고 서울 강동구에서 20년 넘게 옹기종기 살고 있습니다. 강동구에 네 자매 모두 정착을 하고 아이들을 키우면서 자연스레 강동구의 도시농업 사업에 관심을 가졌습니다. 매년 아파트 근처 주말농장에서 농사를 짓고 구청 프로그램인 도시농부학교를 수강하면서 땅과의 거리를 늘 조금씩 좁혀가면서 살았지요. 그리고 언젠가 양평에 조그마한 땅을 사서 우리 자매들 먹거리는 직접 수확해서 먹자고 늘 버릇처럼 말했는데 그게 이루어진 겁니다.
그날부터 우리는 매주 주말농부가 되어 그곳에 농사를 지으러 갔습니다. 각자 배분받은 빵, 과일, 컵라면, 물 등 먹거리를 챙겨 해뜨기 전 새벽에 언니, 동생, 형부들과 출발해서 도착과 동시에 각자 맡은 일을 일사천리로 해나갔습니다. 그렇게 1년이라는 시간이 지났고, 참으로 즐거웠습니다.
일하다 간식을 먹으면서 그동안 모아두었던 <그린매거진>을 교과서 삼아 매달 농사 관련 자료를 공유하면서 열띤 토론도 함께 했지요. 풀만 가득 찼던 그 땅은 조금씩 얼굴이 드러났고 조금씩 숨을 쉬는 기름진 땅으로 변해가는 모습에 우리들은 늘 힘이 났습니다. 물도 화장실도 없는 시간들이 힘들었지만 나름대로 해결(?)하면서 참 즐거웠어요. 어릴 적 울진에서 언니들과 소꿉장난하던 그 시절로 돌아간 것 같아서요.
풀을 뽑고 서울에서 일주일동안 모아둔 과일껍질, 채소껍질을 챙겨가 거름을 만들고 작은 농막도 설치하면서 우리의 아지트는 점점 멋있게 변화했습니다. 늦은 여름 농사를 시작했으나 초보농사꾼들인 탓에 수확물은 거의 없었고, 벌레가 많이 먹은 열무가 전부였지만 참으로 맛나게 나눠 먹었어요. 가을에는 배추를 심었는데 배추혹뿌리병 때문에 김치를 담그진 못하고 우거지로 만들어 먹었지만 내손으로 직접 기른 농작물을 먹는 즐거움은 마음의 영양가가 가득한 건강재료가 되어서 우리 가족에게 활력을 불어넣어 줬습니다.
겨울이 지나고 이제 봄이 왔어요. 작년의 시행착오들을 꼼꼼히 체크해서 올해는 아주 푸짐한 밥상을 우리가 직접 만들어 보자는 각오로 농사를 시작했습니다. 작년에 만들어 둔 거름으로 땅도 기름지게 하고 집근처 행정복지센터에서 받은 EM으로 건강한 밭을 만드는 중입니다. 올해 초여름엔 풍성한 농작물로 우리 자매들의 밥상이 건강하고 푸짐하게 채워질 거라는 믿음은 지금 최고조입니다.

농업은 생명, 농촌은 미래!
이재형 님

200호 발행을 맞아 기억하는 <그린매거진>, 그리고 농촌진흥청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자 합니다. 지난 2002년 한·일 월드컵축구의 국민적 응원열기와 세계인의 놀라운 관심이 뜨거웠을 때, 더 뜨거운 울림을 담고 더 커다란 희망을 품고 세상에 탄생한 그 이름 농촌진흥청 <그린매거진>!!
2002년 7월 창간호를 시작으로 20년의 성상(星霜)이 흘러 2022년 봄과 함께하는 4월에 <그린매거진> 발행 제200호를 맞이하여 실질적 애독자로서 축하의 마음을 듬뿍 전하며, 편집진의 많은 노고에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그린매거진>이라는 발행 책자 이름에서 연상되는 것처럼 그린이 지닌 녹색의 자연친화적 풍요로움을 곁들인 아름다움이 살아있고 푸근한 농촌의 모습을 떠올릴 수 있지요. 농업이 지닌 미래지향적 상징성 및 농촌이 가진 가치 지향적 부각성을 함께 공유하고 서로 소통하는 공감(共感)으로 농업인에게는 농업과 관련된 다양한 정보를 전달할 뿐 아니라, 국민에게는 농업과 농촌을 널리 알리는 홍보대사의 메신저 역할을 수행하여 많은 도움을 주고 있지요.또한 마지막 쪽에 게재되는 그린능력평가는 <그린매거진>을 대충 읽어보고 마는 것이 아니라, 더 정성을 들여 꼼꼼하게 읽도록 만들어 주네요!
더욱이, 올해는 농촌진흥청 개청 60주년으로 지난 60년 동안 농업발전과 식량생산을 위한 농업기술혁신으로 농업인과 국민의 삶의 질 향상을 이끌어 왔다고 여겨집니다.
2004년, <그린매거진>을 발행하는 농촌진흥청에서 실시한 캐치프레이즈 공모에서 대한민국 전국에서 549명이 참여한 1,945건의 작품 중 농촌진흥청 직원, 대학교수, 농업인 등을 대상으로 3회에 걸친 선정 및 선호도 조사를 실시한 후, 최종적으로 선정심의회에서 본인의 작품이 최우수작으로 선정되었습니다. 18년이 경과한 현재까지도 농촌진흥청 본청을 비롯하여 각 시·군 농업기술센터 청사 입구 및 각종 농업책자, 관련 홍보물 등에서 “농업은 생명, 농촌은 미래”라는 문안이 폭넓게 활용되고 있어 본인의 캐치프레이즈가 상당기간 농촌진흥청 관련 대외 홍보업무에 혁혁한 이바지와 빛나는 공로를 하고 있다고 자부하고 있습니다.
사람으로 치면 20살 청년의 나이가 된 <그린매거진>이 앞으로도 농업인의 성원과 국민의 사랑으로 오래 함께하기 바라며, 이순(耳順)의 나이가 된 농촌진흥청은 나이에 걸맞은 변화와 혁신을 통하여 시대의 흐름에 발맞추어 알찬 역할과 미래상(未來像)을 펼쳐가는 힘찬 도약을 기대하여 봅니다.

각별한 마음
장선영 님

“자네 작년에 벼농사가 힘들다고 이야기하지 않았나? 계속 농사를 지을 때마다 잘 안되고, 아내는 이제 농사일은 그만하라고 하고, 아들딸들은 커 가는데 돈도 안 되고 힘들다고 ‘자식농사를 잘 지으려면 벼농사를 그만두고 막노동이라도 해야지’ 라고 하며 푸념처럼 말하지 않았나?”
“그랬지, 뭔지 모르겠지만 신기술은 자꾸 나온다고 하는데 나는 까막눈이라 알 수도 없고, 어디 가서 배울 수도 없어. 못 배운 것이 한이 된다네…”
그렇게 커피숍에서 농업인 두 분의 이야기가 자꾸 제 귀 속으로 파고 들어왔습니다. 이천에 살고 있는 저는 한집 걸러 한집은 벼농사를 하거나 농촌에 관련된 일을 하는 분들이 참 많았습니다. 저희 아버지도 벼에서 나오는 왕겨를 배달하는 일을 하십니다. 가끔 집에 오셔서 농사짓는 분들의 고충을 이야기하실 때면 마음이 편치 않았습니다.
그러던 중 우연히 <그린매거진>을 만났습니다. 전주에 사는 동생과 토요일 저녁에 커피 한 잔하며 이야기를 나누던 중 동생이 농촌진흥청에서 발행한 월간지를 보여주었습니다. 반짝반짝 빛을 내며 ‘난 당신을 보러왔어요.’라고 말하는 것 같았습니다. 우연도 이런 우연이 있을까요? 때마침 <그린매거진> 196호에 실린 ‘세네갈에 벼 품종 개발·보급으로 농업 분야 자립을 일구어내다’라는 제목의 농스타 강경호 연구원님 인터뷰를 보게 되었습니다.
국내외 유전자원을 수집하고, 특성이 다른 벼를 교배한 후 수술(꽃밥) 안에 있는 화분세포를 배양하는 약배양기술을 비롯하여 야생벼를 활용하는 육종, 돌연변이 육종기술을 바탕으로 새로운 품종을 개발하고 있다는 기사를 보고, 간절함이 있는 곳에 기적이 있다고 했던가! 저는 한달음에 아버지께 달려가 <그린매거진>을 전해 드렸습니다.
한 글자 한 글자가 소중한 자식처럼 느껴졌습니다. 글을 읽지 못하는 분들이 많다는 말을 듣고 마을회관에 벼농사하시는 분들을 모아 <그린매거진>을 읽어 내려갔습니다.
어떻게 되었냐고요? 어르신들은 기술, 품종, 재배 방법을 새로운 방식으로 하겠다고 마음을 단단히 잡수시고, 농촌지원센터로 찾아가서 지금은 학생이 되었습니다. 한 가지 바람은 아직 글을 읽지 못하시는 취약계층의 농업인을 위해 소리로 읽어주는 서비스가 있으면 더 좋겠습니다.
200호를 발행하는 동안 어떤 분들은 청년에서 시작하여 지금은 중년의 신사가 되었을 것이고, 또 어떤 분들은 다른 일을 하고 계실 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매 호마다 분명 저희처럼 절실히 필요한 분들에게 그 손길이 닿았으리라 믿습니다.
그동안 많은 분들의 수고와 헌신이 있기에 농촌에 계신 분들이 위기를 벗어나게 해주었을 거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그린매거진>을 통해 저도 친정집 작은 마당에 농사를 시작해 보았습니다. 열매가 될 때 한번 들고 찾아가겠습니다. 어느 시골마을 각별한 마음으로 시작한 한권의 잡지가 큰 결실이 되어 돌아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