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움은
지키는 것입니다

미실란 이동현 대표·소설가 김탁환 작가

글 ㅣ 김주희 사진 ㅣ 박형준
유기농 발아현미 생산 기업 미실란(美實蘭)은 ‘아름다운 사람들이 희망의 열매를 꽃피우는 곳’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아름답다는 말에는 예쁘다 또는 보기 좋다는 말과는 달리 시각적인 무언가를 뛰어넘는 가치를 포함하고 있다.
미실란엔 어떤 아름다움이 있을까?
미실란 이동현 대표와 미실란에 머물며 농부가 된 소설가 김탁환 작가를 만났다.

미실란,
복합문화공간이 되다

곡성 장선리에 자리한 미실란에 도착하자 가장 먼저 드넓은 잔디밭과 아담한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이동현 대표는 2005년 미실란을 설립하며 당시 곡성군수의 제안으로 학생 수가 줄어 폐교된 초등학교에 터전을 마련했다. 흉물로 남을 뻔한 학교건물은 채식 요리를 맛볼 수 있는 ‘밥cafe飯하다(밥카페반하다)’, 음료와 발아현미, 가공식품을 구입할 수 있는 카페, 지역 예술가들의 작품 전시 공간 등으로 재탄생했다. 학교 운동장은 잔디밭에 테이블과 의자가 놓인 휴식공간이 되었다.
“최근에는 건물 1층에 생태책방 ‘들녘의 마음’을 열었습니다. 생태와 관련된 500여권의 책을 김탁환 작가가 직접 큐레이션했습니다. 지난 9월에는 3일간 ‘섬진강마을영화제’를 열었어요. 마을 주민들과 생태농업과 마을공동체에 대한 영화들을 함께 감상하고, 섬진강변을 따라 논길을 걸었지요. 작은 음악회도 꾸준히 열고 있습니다.”
이동현 대표 이야기를 듣다 보니 미실란이 유기농 발아현미를 생산·판매하는 곳인지, 복합문화공간인지 헷갈렸다. 유기농 발아현미와 가공식품은 카페 한편 작은 공간에 마련되어 있을 뿐이다. 카페 옆으로 농촌진흥청 국립식량과학원 현장실증을 위해 벼를 심은 논이 펼쳐져 있지만, 농업현장이라는 느낌보다는 주변과 어우러지며 하나의 아름다운 풍경이 되었다.
“미실란에는 한 해 2만여 명이 방문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논에 국립식량과학원이라고 쓰인 푯말을 보고 ‘저기가 뭐하는 곳이에요?’라고 묻는 분들이 있어요. 그간 국립식량과학원에서 벼 품종 개발 등 많은 성과를 냈지만 소비자와의 거리는 아직 좁혀지지 않았음을 느꼈습니다. 미실란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도 발아현미가 왜 좋은지, 우리 농업을 왜 지켜야 하는지 알려왔지만 소비자에게 전해지지 않는 것들이 많았습니다. 미실란에 문화가 필요한 이유였지요.”
미실란 이동현 대표·소설가 김탁환 작가
미실란
미실란
생태책방 ‘들녘의 마음’
생태책방 ‘들녘의 마음’

일상의 모든 순간에
아름다움이 있다

이동현 대표의 고민은 김탁환 작가를 만나며 풀리기 시작했다. 지난 2018년, 김탁환 작가는 지인이 예약한 ‘밥cafe飯하다’를 찾아 식사를 하다가 이동현 대표와 첫 인사를 나눴다. 이후 김탁환 작가는 서울에서 곡성을 오가며 수시로 미실란을 찾았다. 인심 좋은 시골농부 같은 이동현 대표, 정갈한 밥상, 생태적인 삶이 자꾸 김탁환 작가를 미실란으로 이끌었다.
“메르스 피해자들을 다룬 장편소설을 쓰면서 팬데믹, 기후위기에 대해 많이 고민했습니다. 생태적인 삶을 사는 게 중요했지만 서울에서는 할 수 있는 게 없었죠. 그러던 중 이곳을 만나니 이동현 대표가 오랜 노력으로 터를 잘 닦아 놓았더군요. 함께 할 수 있는 일들이 많겠다 싶었습니다.”
두 사람은 곡성을 두루 다니며 생태농업, 지방 인구소멸, 공동체 붕괴, 농업위기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함께 섬진강변과 습지, 논밭, 골짜기를 걸을 때마다 이동현 대표는 김탁환 작가에게 물었다. ‘아름답지요?’
“도시에서 아름다움은 돈을 주고 사야 하는 것들이에요. 일상은 아름답지 않고 미술관을 가든 영화관을 가든 돈을 내고 경험해야 하죠. 그런데 농촌은 일상에 아름다움이 있어요. 처음 이동현 대표를 만나서 문득 하늘을 봤는데 너무 아름다운 거예요. 밖에 나가서 그냥 들판을 봤는데 또 아름다워요. 하지만 경제나 효율성 논리로 계속 파괴되니까 이런 일상의 아름다움을 지키는 게 굉장히 중요한 거죠.”
두 사람이 처음 만나던 때를 얘기하는 이동현 대표, 김탁환 작가

농촌에 청년들이 들어오려면
자기들이 흥이 나고 재미있어야 합니다.
결국은 농업에 문화가 잘 어우러지면
재미가 있다는 거죠.

농촌과 농업에
문화를 입히다

지난 8월, 『아름다움은 지키는 것이다』를 출간했다. 김탁환 작가가 농촌, 인구, 공동체, 생태 소멸에 맞서 묵묵히 자신의 일을 해나가는 이동현 대표를 1년 동안 지켜보며 쓴 르포형 에세이다. 그리고 그 시간 동안 농부과학자였던 이동현 대표는 글을 쓰는 작가로, 도시소설가였던 김탁환 작가는 농부이자 마을소설가가 됐다.
이동현 대표는 매월 15일마다 생태책방 레터를 통해 ‘이동현의 농사이야기’ 에세이를 발행하고 있다. 김탁환 작가는 결국 2020년에 곡성으로 이주했다. 이곳에서 오전에는 농사를 짓고, 오후엔 미실란 2층에 창고로 사용되던 공간을 집필실로 꾸며 글을 쓴다.
“김탁환 작가와 함께 농업과 생태를 주제로 북토크를 열고 있습니다. 벌써 80회 이상 진행했는데 많은 분들이 참여하고 계세요. 재미없고 힘든 분야라고만 생각했던 농업에 문화를 입히니 흥미로운 거죠. 북토크, 섬진강마을영화제, 작은 음악회를 비롯해 벼 심기 등 농촌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하니 미실란에 더 큰 활력이 생겼습니다.”
지속 가능한 농업을 위해서는 청년들이 돌아와야 한다. 현재 미실란에는 10명의 청년이 함께하고 있다. 일도 하고 문화 활동도 함께 한다. 고무적인 건 미실란에 청년동아리가 만들어진 것이다. ‘옹기종기’라는 동아리로 쌀과 지역 농산물을 접목해 막걸리를 담근다.
“농촌에 청년들이 들어오려면 자기들이 흥이 나고 재미있어야 합니다. 결국은 농업에 문화가 잘 어우러지면 재미가 있다는 거죠. 지금 저희가 하는 일이 다른 어느 농업 현장보다 좋은 본보기라고 생각합니다. 농업회사법인이지만 공적인 영역에서 많은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두 사람은 지금 하는 일이 무척 재미있다고 말한다. 농촌이라는 공간에서 농업을 주제로 계속 다양한 문화콘텐츠를 만들어갈 계획이다. 수익이 나는 일도, 누가 인정해주는 것도 아니지만 소멸해 가는 농촌과 공동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이다.
더 많은 이야기들을 남기고 일어나며 무심코 들판을 바라보니 노랗게 물든 벼들이 바람에 흔들리고 있다. ‘이 모든 게 아름답지 않나요?’라고 묻던 이동현 대표와 김탁환 작가가 지키고 싶은 아름다움이 무엇인지 알 것 같은 순간이었다.
농업회사법인 미실란 이동현 대표
이동현 대표는 순천대학교에서 농생물학을 전공하고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농생물학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일본 큐슈대학교에서 생물자원개발관리학 박사 학위를 받고 귀국 후 2005년에 유기농 발아현미를 연구·생산하는 농업회사법인 ‘미실란’을 창업했다. UN식량농업기구(FAO) 아태지역사무소가 주관하는 ‘2019 모범 농민’에 선정됐다.
김탁환 작가
첫 장편 『열두 마리 고래의 사랑 이야기』와 『불멸의 이순신』으로 장편작가가 되었다. 평생의 작업으로 ‘소설 조선왕조실록 시리즈’와 ‘무블 시리즈’를 시작했다. 현재 곡성으로 이주해 도시소설가에서 농부이자 마을소설가로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미실란
주소 : 전라남도 곡성군 곡성읍 섬진강로 2584
전화 : 061-363-70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