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조금 다른
농부가 되기로 했습니다

꽃비원 정광하·오남도 대표

글 ㅣ 김주희 사진 ㅣ 박형준
충남 논산에는 꽃비가 내리는 과수원이라는 뜻을 가진 꽃비원이 있다.
정광하, 오남도 부부가 11년 전부터 가꿔온 농장으로 꽃이 피고 지고 열매가 맺고 떨어지는 과정을 고스란히 볼 수 있다.
이곳에서 부부는 농사를 지으며 작은 레스토랑에서 제철 재료로 음식을 만들고, 청년농업인, 소비자들과 소통한다.
도시와 농촌, 일과 삶의 균형을 찾아가고 있는 두 사람을 만났다.

자급자족하는 삶을 위한 선택

논산 연무읍에 위치한 아담한 레스토랑 꽃비원홈앤키친. 그곳에서 만난 정광하, 오남도 대표에게선 따뜻함과 소박함이 느껴졌다. 두 사람을 만나기 전, 미국에서 직장을 다니다 귀농했다는 이야기에 조금 화려한 농부의 모습의 떠올렸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두 사람은 농업과 먹거리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하며 욕심을 부리지 않는 자급자족 시골살이 중이다.
“귀농을 결정하고 2012년 10월에 논산으로 내려왔습니다. 남도 씨 가족이 서울에 있어요. 서울과 많이 멀지 않은 충남지역을 찾아보다가 아버지 고향인 논산에 정착했지요.”
두 사람은 대학시절 선후배 사이로 만났다. 정광하 대표는 축산업을 하는 아버지 뜻에 따라 농업고등학교를 나와 대학에서 축산학과를 전공했다. 농촌에서 자란 그는 서울생활을 동경했지만, 막상 서울생활은 무언가 중심을 잡기 어려웠다. 오남도 대표는 대학에서 원예학과를 전공하면서 농업을 만났고, 대학 졸업 후엔 농업 분야 비영리단체에서 일했다.
“대학 졸업 후 캘리포니아 어바인에 있는 회사에 취업이 결정되면서 남도 씨와 혼인신고만 한 후 혼자 미국으로 떠났습니다. 그곳에서는 해외에서 사들인 곡물을 현지에 유통하는 일을 담당했는데요. 창고에 보관한 곡물을 보면 씁쓸함이 밀려왔습니다. 생산자와 소비자의 거리가 한없이 멀게 느껴졌거든요.”
그렇게 농산물 유통과정을 배우며 농업, 먹거리에 대한 더 많은 고민들을 하게 됐고, 2년 후엔 오남도 대표도 미국으로 건너왔다. 그리고 1년 동안 미국생활을 함께하던 중 아이가 생기면서 두 사람은 앞으로 어떤 삶을 살아야할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연애를 할 때부터 농업이나 먹거리, 시골생활, 육아 등을 주제로 다양한 이야기들을 나누었어요. 당시엔 도시생활을 하고 있었지만 대화를 할수록 우린 시골살이가 잘 맞을 것 같았죠. 아이가 태어나면 함께하는 시간이 많았으면 해서 시골에 가서 자급자족하는 삶을 살자고 결심했습니다.”

제철 농산물로
만남과 만남이 이어지다

논산으로 내려온 두 사람은 논산 훈련소 옆에 저렴하게 나온 땅 6,600㎡을 가진 돈과 대출을 합해 구입했다. 과실나무를 심고 싶어서 집은 없어도 땅은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 마련한 땅이었다.
“과수원들은 보통 나란히 나무를 심어서 생산량을 높이는데, 저희는 군데군데 나무를 심고 산책로를 만들었어요. 열매를 맺으려면 3년 정도가 걸려서 나무들 사이에는 마늘, 양파, 고추, 감자 등 먹을 것들을 심었죠. 둘 다 요리하는 걸 좋아해서 허브나 평소 궁금했던 서양채소도 재배했고요.”
두 사람은 다품종 소량생산으로 가족들이 먹을 식재료를 마련했다. 제철마다 수확할 수 있는 농산물들이 달랐다. 농약을 치지 않고 친환경으로 재배해서 모양이나 크기는 균일하지 않았지만, 맛은 무척 좋았다. 두 사람은 도시에서 열리는 농부시장인 ‘마르쉐@’에 말린 고추, 호박고지, 솎은 당근순, 땅콩, 옥수수차, 목화송이를 가져갔다. 그곳에서 소비자들과 직접 만나 농산물에 대해 이야기하며 자연스럽게 판매로 이어졌다.
“목화송이는 최고 인기였어요. 소비자들이 한 송이씩 손이 들고 다녔으니까요. 그해 겨울엔 목화송이로 리스를 만들어 판매했지요. 먹지도 못하는 걸 왜 키우느냐고 핀잔을 듣던 목화송이가 도시에서는 새로운 문화적 가치와 소비가 된다는 게 신기했습니다. 모양과 크기가 제각각이라 마트에서는 판매할 수 없는 농산물들도 ‘마르쉐@’에서는 신뢰를 얻었어요. 농부가 어떤 마음으로 어떻게 키운 것인지 그 과정을 소비자가 알 수 있으니까요.”
‘마르쉐@’ 참여는 다양한 기회로 연결됐다. 소비자들은 종류는 상관없으니 꽃비원에서 나는 농산물을 택배로 보내달라고 요청했다. 그렇게 한 달에 한번 채소 꾸러미를 보내주는 일을 시작했다. 제철 식재료에 관심이 있는 요리사들과도 자연스레 친분을 쌓을 수 있었다. 두 사람은 요리사들과 함께 좋은 식재료와 요리방법에 대한 수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제철 채소를 주로 키워서 겨울엔 시간이 많은 편이었어요. 겨울에만 식당을 열면 어떨까 라는 아이디어는 ‘꽃비원홈앤키친’이 되었죠. 지난 2019년 식당을 열면서 평소 꽃비원과 인연이 있던 분들, SNS를 통해 알게 되어 논산에 들렀다가 방문한 분들 등 새로운 만남이 이어졌습니다.”

농촌과 도시를 잇는
다양한 시도들

현재 ‘꽃비원홈앤키친’은 목금토만 문을 연다. 월화수에는 농사를 짓기 때문에 지치지 않고 운영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다. 이곳에서는 직접 농사지은 제철 채소를 활용한 파스타와 피자, 포카치아, 음료 등을 판매한다. 대체로 건강한 먹거리에 관심이 높은 사람들이 오다 보니 자연스레 다양한 모임들도 열렸다.
“이곳에 방문하신 분들 중 꽃비원 농장을 궁금해 하기도 하세요. 그럼 자연스럽게 농장으로 함께 가서 농산물을 같이 수확하고, 과실나무 사이를 산책하기도 하죠. 그래서 꽃비원 스테이 프로그램을 운영하게 되었어요. 농촌생활에 관심 있는 청년들이 1박2일로 와서 함께 생활하면서 농촌을 경험해 보는 거죠. 함께 음식을 만들어 먹고 농장에서 농산물도 수확하면서 시간을 보내요.”
다양한 활동들을 순차적으로 계획한 건 아니었다. 농산물과 먹거리라는 공통 관심사로 만남과 만남이 자연스럽게 이어지며 하나둘 시작한 일들이다. 책 ‘시골살이, 오늘도 균형’을 펴낸 것도 꽃비원홈앤키친을 찾은 출판사 대표와의 인연 덕분이었다.
“‘시골살이, 오늘도 균형’은 귀농 후 10년의 기록이 담겨있어요. 10번 지은 농사는 즐겁기도 했지만, 기후변화 등으로 농사를 망쳤을 때는 풀이 죽기도 했죠. 농사 5년 차엔 광하 씨와 진지하게 농사를 그만둘지 얘기한 적도 있으니까요. 하지만 좋아하는 일을 꾸준히 하면서 만난 인연들, 아이와 보낸 많은 시간들이 무척 소중해요. 앞으로도 자급자족하는 삶을 지속하며 다양한 일들을 연결해 보려고 합니다.”
두 사람은 앞으로도 비슷한 삶을 살아갈 것 같다고 이야기한다. 농촌에서 살아보고 싶은 사람들에게 자신들의 방식이 꼭 옳은 게 아니라 여러 사례 중 하나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 도시와 농촌을 연결하는 다양한 활동을 하는 것도 이러한 이유 중 하나다.
“도시 역할, 농촌 역할이 있다고 생각해요. 도시재생 열풍이 불고 있는데, 농촌이 다 도시화될 수는 없습니다. 도시에서 채울 수 없는 부분을 농촌에서 채울 수 있어요. 각자 본연의 모습을 지키면서 상생해야 합니다. 청년들이 그런 부분들을 채울 수 있는 기반들이 만들어졌으면 해요. 그래야 농촌과 농업을 바라보는 도시의 시선이 다양해지고, 도시와 농촌을 이을 기회를 마련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