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만들어가는
식문화공동체

꽃비원 정광화 대표

내가 먹는 음식은 어떤 과정을 통하여 나에게 오는지 알고 있는가?
우리는 생산자를 만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가?
농산물 유통회사에서 일하면서 반품된 구부러진 오이를 수거하러 갔을 때 그런 생각이 들었다.
분명 부모님이 농사지은 오이는 구부러져 있었다. 그리고 모양도 모두 제각각이었다.
그렇다고 우리는 그것을 오이가 아니라고 이야기한 적은 없었다.
마트에 진열되어 있는 매끈한 과일과 채소를 보면서 얼마나 많은 농부들의 노력과 복잡한 유통과정이 포함되어 있는지 알게 되었다.
생산자와 소비자가 직접 만날 수는 없을까?

농부의 삶을 꿈꾸다

시골에서 자라며 항상 꿈꾸던 도시생활을 대학에 입학하면서 시작했다. 부족하다고 느꼈던 시골 생활과는 달리 도시에서는 마음만 먹으면 무엇이든 구할 수 있었다. 다양한 음식, 패션, 문화, 사람 등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만나고 누릴 수 있는 도시생활이었다.
그러나 시골에서처럼 집에서 키운 채소가 바로 식탁 위에 올라오는 시간과 경험보다는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세척하고 절단된 채소와 빠르게 한 끼를 해결할 수 있도록 만든 가공품을 보면서 양적으로는 다양하고 풍부해 보이지만 질적으로 빈곤한 도시의 먹거리라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먹거리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물건들이 편리함 또는 유행으로 과잉 생산되는 모습을 보면서 도시에서는 참 많은 물건이 소비되고 있구나 생각했다.
이런 도시의 삶을 통하여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우리가 편리하게 이용하는 것들은 어디에서 오는 것 일까? 계속 소비해도 괜찮은 걸까? 그리고 이런 삶을 누리기 위해 나는 또 얼마나 노력을 해야 하는 것일까? 내가 원하는 삶일까?
결국 이렇게 잘 짜인 시스템에서 지내기 위해서는 사회에서 요구하는 기준에 맞춰 수많은 경쟁에서 살아 남아야 하고 때로는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현실과 타협해야 할 때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렇게 20대에 경험했던 도시 생활은 나를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시골에서 사느냐, 도시에서 사느냐보다 주체적인 삶을 사는 게 더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다시 돌아본 시골생활은 부족하고 불편함이 가득했던 시골이 아닌 생산적인 활동과 천천히 자신의 속도에 맞춰 삶을 가꿔 나갈 수 있는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가 제공해 주는 먹거리가 아닌 직접 키운 먹거리와 가꾸는 삶을 꿈꾸며 그렇게 나는 농부가 되기로 결심했다.

얼굴 있는 농산물의 만남

2009년 곡물 유통 회사에 취업하여 3년간 미국생활을 한 적이 있다. 집에서 음식을 자주 해 먹었는데 식재료를 구하기 위해 근처에서 열리는 파머스마켓을 주로 이용했다. 직접 농산물을 판매하러 나온 농부들을 만나고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우리가 직접 키우지 않았지만 애정이 생기고 먹으면서도 작물을 키운 농부들에게 늘 감사한 마음을 갖게 되었다.
그동안 유통회사에서 만난 농산물은 유통하기 쉽도록 재배된 균일한 모양의 채소들이나 색이 진하고 당도가 높은 과일 등 소비자가 원하는 맛, 외형이 농산물 품질의 기준이 되었다. 흠집이 있는 것은 낮은 등급으로 분류되었다.
하지만 파머스마켓에서 만난 농부들의 농산물 판매 기준은 달랐다. 같은 작물이라도 계절에 따라 기후에 따라 맛도 모양도 다르다는 설명과 소비자들은 그게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건강한 먹거리라고 생각했다. 이렇게 생산자와 소비자의 만남은 서로에게 좋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2012년 10월 논산에 땅을 마련하고 다음해 부터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그동안 부모님 농사일을 도와드린 적은 있었지만 직접 키워 본 건 처음이었다. 작물은 크기도 작고 수확량도 적어 이런 작물을 판매해도 되나 싶은 생각이 들었지만 직접 소비자를 만날 수 있는 자리라면 어디든지 참여해 보고 싶은 마음이었다. 마침 서울에서 열리는 농부시장 마르쉐@에 농부팀으로 참여를 하게 되었고 우리가 키운 농작물을 알아보고 구매해준 손님들이 있었다. 그 덕분에 농부로서의 자부심과 많은 용기를 얻을 수 있었다.
마르쉐@에 참여할 때마다 마트에서 볼 수 없는 잎 달린 당근, 보리수 열매, 목화송이, 냉이꽃 등과 잊혀 가는 작물, 그해 기후에 따라 각기 다른 맛을 내는 작물들을 소개했다. 농작물에 대한 올바른 정보를 제공하면서 농촌을 가장 잘 소개하고 알릴 수 있는 농부의 역할이 큐레이터 같다고 생각했다.

농촌과 도시의
연결에서 답을 찾다

마르쉐@에 참여하면서 만난 손님, 다른 참가팀과 더욱 깊은 관계가 쌓이기 시작했다. 요리사와 협업을 통하여 올바른 식문화를 만들어가는 좋은 관계가 되기도 하고 다른 지역 농부들과 정보를 주고받는 만남으로도 이어졌다. 이렇게 마르쉐@는 단순히 농산물을 사고파는 시장이 아닌 서로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고 교류를 이어가고 농촌과 도시, 지역과 지역을 연결하는 역할을 했다. 그리고 도시 속에서 농촌의 문화를 알리고 만들어가는 시장이 되었다.
마르쉐@를 통해서 꽃비원도 새로운 활동을 이어갈 수 있었다. 만난 손님들에게 매달 제철채소를 발송하는 꾸러미를 통하여 꽃비원의 계절을 도시에서도 함께 느낄 수 있었다. 지역에서도 농장에서 수확한 재료를 활용해서 요리하고 있는 꽃비원홈앤키친에서 음식으로 소통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갈 수 있었다. 시골살이에 관심있는 사람들은 우프(wwoof) 프로그램을 통하여 참여하면 꽃비원 농장과 식당을 오가며 함께 생활하기도 한다. 이렇게 도시에서의 만남은 다시 농촌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꽃비원에 도시민들을 초대하거나 그동안 요리사들과 협업으로 진행했던 요리워크솝, 팝업식당, 팜투테이블 그리고 곡물집과 내일의 식탁과 함께 운영했던 미각학교 등 지역 활동을 이어가는 것은 농촌과 도시의 관계가 깊어지고 가까워질수록 우리의 식탁은 더욱 풍성해진다고 믿기 때문이다. 결국 이런 작은 교류와 관심을 시작으로 농촌 전체의 문화가 조금씩 발전해나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꽃비원은 올해로 11년 차가 되었다. 어렵다고 말하는 농촌의 삶을 살아보지 않으면 알 수 없기 때문에 3년 동안 열심히 살아보기로 결심했고 아이가 태어나고 바로 시골로 내려왔다. 어느덧 10년이 지나 돌이켜보면 우리보다 더 꽃비원 채소를 좋아해줬던 사람들이 있었고 항상 꽃비원의 활동을 지지하고 응원해주는 가족같은 사람들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제는 시골에서, 도시에서 함께 살아가고 있는 이웃같은 사람들이다. 농부친구가 있다고 자랑하던 지인처럼 이제는 많은 도시민들이 농부 친구 한 명씩 꼭 만들어서 언제든지 시골에 놀러갈 수 있는 가까운 농촌이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