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인의 삶과 같이한 메밀로
세계화에 도전하고 싶어요

메밀문화원 이현서 원장

글 ㅣ 김주희 사진 ㅣ 한상훈
메밀은 제주인의 삶과 같이해 온 작물이다.
척박한 환경에서도 잘 자라는 것은 제주인의 정신과 닮았고, 제주 문화와 환경에 맞게 발전해 왔기 때문이다.
제주엔 메밀에 대한 기원, 특징, 음식, 신화 등 역사와 문화가 고스란히 전해지고 있다.
지난해 11월 문을 연 메밀문화원은 이러한 제주 메밀을 알리고 지역 사회와 함께하는 복합문화공간이다.
이곳에서 메밀문화원 이현서 원장을 만나 이야기를 나눠봤다.

메밀로 소통하고 문화를 만들다

일반적으로 문화원, 게다가 메밀과 같은 작물을 주제로 했다면 조금은 딱딱하고 예스러운 분위기를 떠올리기 마련이다. 하지만 메밀문화원은 입구부터 돌담과 야자수, 다양한 꽃들로 활기 넘치는 제주 분위기가 물씬 느껴진다. 내부로 들어서면 한 번 더 놀란다. 바깥 풍경이 환하게 보이는 통유리창과 분위기 있는 카페, 공간을 채우고 있는 메밀 관련 제품들이 감각적이면서도 자연스러운 분위기를 연출한다.
“메밀문화원은 메밀 플랫폼 기능과 강의실, 자료실, 프리마켓 공간, 메밀제품 판매장 등이 있는 복합문화공간이에요. 이곳에서는 메밀지도사과정, 메밀제품 R&D, 농가 교육, 6차 산업 컨설팅, 메밀음식·베개 만들기, 제주메밀밭 현장체험 등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어요. 하지만 메밀만이 아니라 미술, 교양, 문화 강의도 열리고 지역 주민들이 자유롭게 작업할 수 있는 공간으로도 사용돼요. 메밀로 인해 모이고, 또 그 안에서 새로운 문화 활동들이 이루어지는 것이죠.”
메밀문화원에서는 메밀을 곡물 형태로 볼 수 있다. 메밀을 주로 음식에 쓰는 가루 형태로 접했던 사람들은 실제 메밀을 보고 놀라곤 한다. 메밀 생김이 다른 곡물처럼 둥글지 않고 모가 나 있는가 하면 껍질도 돌처럼 무척 딱딱하기 때문이다.
“메밀엔 반전이 있어요. 짙은 색 껍질과 다르게 속살은 희고 부드러워서 잘 부서집니다. 그래서 콩, 보리, 팥과 달리 불리지 않고 살짝 씻어서 바로 밥을 짓죠. 또 하얀 꽃은 여리고 여립니다. 하지만 메밀꽃은 생김과 다르게 거름냄새가 납니다. 메밀밭에 거름을 뿌렸다고 생각하지만 그게 바로 메밀꽃 향기에요. 반전의 연속인 메밀은 정말 매력적인 곡물이죠.”
메밀문화원 곳곳엔 메밀과 음식, 자연, 농업 등 다양한 책이 놓여있다. 한 편엔 제주 공예가들이 만든 소품들도 전시되어 있고, 햇살이 들어오는 카페에선 메밀이 들어간 커피와 차를 마실 수 있다. 누구나 들어와 메밀을 보고 만지고 맛보며 다양한 감각으로 제주메밀을 알아가는 공간인 것이다.

제주인의 삶이 녹아있는 메밀

메밀문화원은 제주 메밀을 올바로 알리고자 설립됐다. 제주 메밀이 알려지기 시작하면서 잘못된 정보가 퍼져나갔기 때문이다. 제주 메밀꽃은 흰색인데 일부 농가가 저렴한 몽골산, 중국산 종자를 심었고 붉은색, 분홍색 꽃이 피었다. 그걸 본 관광객이 제주 메밀꽃은 분홍색이라고 인터넷에 올리기도 했고, 메밀 가공식품에 붉은색 메밀꽃을 그려 넣는 업체도 있었다.
“제주 메밀에 대한 올바른 정보를 알리는 곳이 필요했습니다. 메밀은 단순한 제주 특산물이 아니고 제주 문화와 생활을 대변하는 곡물이에요. 제주에는 메밀탄생신화도 전해져 내려오고 있습니다. 농경의 여신인 자청비가 하늘나라에서 제주로 올 때 중요한 오곡을 가져왔는데 그중 하나가 메밀이라는 것이죠. 특히 이 탄생신화에는 메밀 형태, 성질에 대한 표현도 구체적이어서 세계적으로도 매우 가치가 있습니다.”
역사적으로는 600년 전 고려 때 몽골로부터 전해져 온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오랜 세월 동안 메밀은 자연스럽게 제주인의 삶에 스며들었고 문화로 자리 잡았다. 제주에서는 태어나면서 메밀을먹고 이승을 떠날 때도 메밀을 먹는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제주에서는 ‘원미’라는 메밀죽으로 제를 올리는 관습이 있고, 아이를 낳은 산모는 피를 맑게 해주는 메밀을 산후조리 때 먹기도 했다.
“현재도 제주에서는 메밀로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비비작작면’입니다. 영농조합 ‘한라산아래첫마을’에서 개발한 들기름야채비빔메밀음식으로, ‘비비작작’은 제주어로 ‘어린아이가 마구 흩뜨려놓는 모습’을 표현한 말이에요. 다양한 식재료를 잘 비벼서 먹는데, 심심하지만 재료 본연의 맛이 잘 살아있습니다.”
과거 제주에는 다양한 양념이 없어서 삶거나 간단히 익혀서 심심하게 먹는 음식이 많았다. ‘비비작작면’은 이러한 제주 음식문화를 반영하면서도 요즘 트렌드에 맞는 아름다운 음식 모양과 건강함을 살렸다.
“메밀문화원 옆에 한라산아래첫마을이 자리하고 있어 메밀문화원에 방문했다가 ‘비비작작면’으로 식사를 하기에 좋아요. 빙떡으로 대표되었던 제주 메밀음식이 현재 ‘비비작작면’으로 어떻게 새롭게 해석되고 발전하고 있는지를 직접 확인하면 재미있는 경험이 될 거예요.”

메밀 대중화를 위한 세계 축제 열 것

메밀문화원 이현서 원장은 30여 년 전 프랑스와 이탈리아 등 유럽에서 미술을 공부했다. 그러다 2001년부터 10여 년 동안 아프리카에서 지내며 컨설팅 등 다양한 사업을 했고, 한국으로 돌아온 후엔 (사)한-아프리카교류협회 상임이사로 활동했다. 그런 그녀가 2010년 제주에 방문했다가 가을 달밤에 노루가 뛰어노는 메밀밭을 보게 되었다. 그 풍경이 이현서 원장을 사로잡았고, 제주로 이주하면서 메밀의 매력에 점점 빠져들었다.
“메밀꽃이 필 때면 메밀밭을 찾아다닙니다. 낮이 아름다운 곳과 밤이 아름다운 곳이 달라요. 그저 걷는 것만으로도 즐겁습니다. 하지만 아쉬웠던 건 이렇게 아름다운 제주 메밀이 잘 알려지지 않았다는 겁니다. 봉평은 이효석 문화제를 통해 메밀을 관광상품으로 아주 잘 활용하고 있습니다. 제주를 메밀과 연관 짓기는 조금 어려웠는데, 메밀문화원이 메밀을 친숙하게 알리는 역할을 했으면 하는바람입니다.”
봉평은 소설 ‘메밀꽃 필 무렵’이라는 강력한 콘텐츠를 갖고 있다. 반면 제주는 국내 메밀 생산량 1위일 정도로 메밀 자원이 풍부하다. 각자 강점이 있는 제주와 봉평은 메밀을 널리 알리기 위해 업무협약을 체결했고, 앞으로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 알리기위해 다양한 콘텐츠를 만들어나갈 계획이다.
“아름다운 메밀탄생신화가 있는 제주도에서 봉평, 그리고 다른 지 역과 함께하는 멋진 축제를 열고 싶습니다. 더 나아가 세계 각국의 메밀 생산자, 학자, 소비자들이 함께 메밀로 소통하는 플랫폼을 만 들고 싶어요. 메밀의 세계화에 도전하는 것이죠. 제주는 외국관광 객들도 많이 오는 관광지이기 때문에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름다운 메밀탄생신화가 있는 제주도에서 봉평, 그리고 다른 지역과 함께하는 멋진 축제를 열고 싶습니다. 더 나아가 세계 각국의 메밀 생산자, 학자, 소비자들이 함께 메밀로 소통하는 플랫폼을 만들고 싶어요. 메밀의 세계화에 도전하는 것이죠. 제주는 외국관광객들도 많이 오는 관광지이기 때문에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메밀문화원의 다양한 활동은 메밀을 대중화하는 것과 동시에 지속가능한 농업·농촌을 만드는 힘이 되기도 한다. 다양한 콘텐츠로 농업 문화를 즐길 수 있는 발판을 만들어주는 것이다. 새로운 문화와 사업이 무궁무진하게 파생될 수 있다.
“농촌마을이 갖고 있는 자원은 분명히 차별화되는 특징이 있습니다. 다만 그 자원을 누가 어떻게 어떤 형태로 발굴하느냐에 따라 그 가치가 다르게 빛을 발할 수 있습니다. 나에겐 늘 익숙하고 편안한 것이 다른 사람에게는 새롭고 가치 있는 것이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농촌자원은 나와 다른 이들이 함께 찾아야 합니다. 앞으로 더 많은 네트워크를 구축해 소통하면서 제주 메밀을 알리고 지속 가능한 농업·농촌을 위해 더 다양한 일들을 해나가겠습니다.”
메밀문화원
주소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표선면 민속해안로 631-34
전화 | 0507-1380-30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