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생명이 숨 쉬는
농장을 만듭니다

숨숨농장 권성민·백경록 대표

글 ㅣ 김주희 사진 ㅣ 박형준
농업에 정답은 없지만 남들이 많이 가지 않는 길을 가는 것에는 큰 결심과 노력이 필요하다.
숨숨농장 권성민, 백경록 부부는 초보 농업인이지만 농장을 오가는 모든 생명체들이
건강히 숨 쉴 수 있는 농사를 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
유기농법으로 포도농사를 짓는 숨숨농장을 찾아가봤다.

유기농법, 땅을 건강하게 하는 것부터

충북 옥천군 안남면에 위치한 숨숨농장. 겉은 다른 비닐하우스와 다를 것 없지만 안으로 들어서면 낯선 풍경이 펼쳐진다. 일반적인 포도 시설농사는 땅은 흙으로 덮여있고, 포도나무와 줄기 역시 올곧게 잘 정리되어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숨숨농장은 다르다. 얼마 전 포도 수확을 끝낸 나무들은 마치 덩굴처럼 자유분방하게 가지를 뻗고 있다. 땅에는 다양한 풀들이 가득 자라고, 보라색 꽃을 피운 허브까지 보인다.
“마을에서 오랫동안 유기농 포도농사를 지으시던 분께 농장을 구입해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농사를 짓고 있습니다. 멀칭을 하지 않고 초생재배로 양분을 주고 있어요. 시설 안에서 환경을 제어하곤 있지만 바람이 통하고 땅이 순환하는 농사를 짓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비료를 주면 질소성분으로 세포가 커지면서 포도 알이 크게 자라지만 다른 미량원소들은 잘 공급되지 않는다. 권성민 대표는 풀을 키워서 미생물로 토양을 건강하게 하면 미량원소가 공급되면서 항산화 효과까지 생긴다고 이야기한다.
“이렇게 키운 포도는 풀맛이 난다고들 해요. 자연의 맛이 더 느껴진다고 할까요. 사실 올해 첫 농사는 작황이 좋지 않았어요. 하지만 1년보다 5년, 그리고 20~30년이 지날수록 더 맛있는 포도를 재배할 수 있다는 믿음이 있습니다. 일반적인 농사는 10년 정도 된 포도나무는 베어야 하지만 나무의 힘을 키우면 40년 이상도 갈 수 있어요.”
순지르기와 알 속기도 최소화하고 있다. 포도가 자연스럽게 맺히는 방법을 전문가들에게 문의해서 시도하고 있다. 가능하다면 나중엔 퇴비를 안 주고 경운도 하지 않는 농사를 짓고 싶다. 유기물을 공급해 뿌리부터 튼튼하게 만드는 것이 목표다.
“땅에 허브를 키우는 것도 비슷한 이유입니다. 외국 자료를 보면 히솝이라는 허브를 심으면 포도 수량이 늘고 향이 뛰어나진다는 이야기가 있어요. 어떤 허브는 충해를 줄여주기도 하고, 공기층을 다양하게 만들어주는 효과를 내기도 해요. 포도농사를 지을 때 다른 작목이나 식물을 함께 심으면 안 좋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잘 살펴가면서 허브를 심어보려고 합니다. 아직 초생재배 1년차라 시도해볼 수 있는 일인 것 같아요.”

더 나은 세상을 위한 삶의 방식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농사가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안다. 갑작스러운 기온 변화로 하루아침에 한 해 농사를 망치기도 하고, 시장 상황에 따라 제값을 받지 못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렇게 어려운 농사를 소득보다는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짓는다는 건 큰 결심이 필요한 일이다. 권성민, 백경록 부부는 자신들에게 맞는 삶의 방식을 오래 고민하며 귀농을 한 케이스다.
“부모님이 귀농해서 25년 정도 농사를 지어오셨어요. 저도 농업고등학교를 나와서 농사가 익숙했지만, 제 삶으로 하는 건 꽤 오래 고민했죠. 경록 씨와는 사회적경제 조직에서 직장생활을 하면서 만났어요. 결혼을 하면서 어떤 게 우리에게 맞는 삶의 방식일까 많이 고민하고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백경록 대표는 도시 생활을 오래 해 농업과는 거리가 먼 삶이었다. 하지만 직장에서 다양한 사회문제를 풀어나가는 일을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사회에 만연한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됐다. 권성민 대표와 공통 관심사는 기후변화였다. 앞으로 얼마나 더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을지 물음표가 생겼고, 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농업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귀농 전 1년 동안 둘이서 워크숍을 하며 삶의 방식을 정해 나갔다.
“농업 방식을 바꾸는 것밖에 없다고 생각했어요. 현재는 저희가 추구하는 농사방법으로 농업 생산기반을 만드는 것이 목표에요. 하지만 나중엔 건강한 먹거리 생산을 넘어 건강하고 즐거운 노동을 하고 싶어요. 마을에서 주민들과 서로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받으며 생태적인 농업 활동을 하는 게 꿈입니다.”
올해 마을 아이들과 함께 텃밭 정원 활동을 한 것도 그 하나다. 아이들이 텃밭에서 포도, 미니단호박, 수세미, 땅두릅을 활용한 다양한 활동을 하며 치유하고 쉴 수 있는 경험을 제공한 것이다. 농부시장인 사단법인 마르쉐에도 참여하며 두 사람의 농사철학에 공감해주는 소비자들을 만난 것도 큰 수확이었다.
“마르쉐에서 선배 농업인들을 만나며 저희가 가야할 길을 알게 되고, 저희를 원하는 소비자들을 만나니 무척 즐거웠어요. 축제 같았다고 할까요. 저희의 방식에 공감하고 지지해주는 분들이 있기에 힘내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앞으로가 더 기대되는 농장 만들어갈 것

아직은 농업으로만 생계를 이어가기란 어려운 상황이다. 그래서 두 사람은 귀농을 결정했을 때부터 농업과 함께 다른 경제적 활동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권성민 대표는 농사에 집중하며 수확한 포도를 로컬매장과 지역 마트에 납품하는 일을 주로 담당했다. 백경록 대표는 대학에서 유아교육을 전공한 이력으로 지역 내 초등학교에서 방과후교사로 일하며 사회적경제 활동 관련 일자리가 있을 때마다 단기 근무를 하기도 한다.
“저희가 원하는 농사를 오랫동안 하기 위해선 다른 일도 함께 해야 해요. 반농반X의 삶이라고 할까요. 현재 새롭게 계획하는 일은 지역 청년농업인들과 허브나 목공으로 체험프로그램을 만드는 일이에요. 아직 구체적으로 사업화하는 건 아니지만 지속 가능한 농촌에서의 삶을 위해 기반을 하나씩 만들어 가려고 합니다.”
귀농 후 좋은 점 중 하나는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이 늘었다는 것이다. 햇볕이 내리쬐는 낮에 3살인 아들 새봄이와 마을을 산책하는 시간은 무척 소중하다. 도시에서 직장생활을 하면서는 만들기 어려운 추억이다. 새봄이와 같은 아이들이 더 건강하게 자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나가는 데 일조한다는 믿음도 두 사람에게는 큰 힘이다.
“본격적으로 농사를 시작한 지 1년밖에 되지 않아 다양한 모습도, 이렇다 할 성과도 없어요. 그래서 인터뷰를 하는 것도 고민이었지만, 지금 이 순간의 이야기 그리고 완벽하지 않은 모습을 담는 것도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내년, 내후년엔 더 기대되는 포도를 재배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숨숨농장의 이름은 들숨과 날숨에서 만들어졌다. 사람이 호흡하는 것처럼 미생물, 땅, 나무, 풀, 벌레, 동물 등 농장을 오고가는 모든 생명체가 건강히 숨 쉬었으면 하는 바람에서다. “유기농법으로 재배한 농작물을 소비하고 관심을 가져주는 것만으로도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데 기여해주시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소비자 입장에서도 농사를 짓는 것과 같아요. ‘내가 무엇을 먹는지가 나를 표현한다’라는 말처럼 건강한 농작물 소비에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가져주시면 좋겠습니다.”
숨숨농장
SNS | 인스타그램 @soomsoom_farm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