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 줄 아는 사람이
귀농에 성공한다
청년 농부의 온라인마케팅

(주)파머대디 이정호 대표

글 ㅣ 김동연사진 ㅣ 황성규
최근 들어 막연히 자연이 좋다는 이유로 귀농에 뛰어들었다가 실패한 사례를 많이 접할 수 있다.
무엇을 기를지, 어떻게 팔지 전혀 공부하지 않은 채로 농사에 뛰어들었다가 초기 자본금을 날리고 빈털터리가 되고 마는 것이다.
파머대디 이정호 대표도 쳇바퀴 도는 도시 생활을 벗어나 귀농을 선택했다가 실패의 쓴 맛을 보았다.
그러나 팔지 못하고 남은 작물로 만든 즙이 억대 매출로 이어지면서
홍천을 대표하는 청년 농부가 되었다. 그에게서 귀농에 성공하는 알짜배기 조언을 들어본다.

실패한 농작물에서
성공의 가능성을 보다

(주)파머대디 이정호 대표
‘파머대디’, 농부 아빠란 상호는 청년 농부 이정호 대표가 운영하고 있는 농장의 정감 가는 이름이다. 가족에 대한 책임감과 아이를 자랑하고픈 아빠의 마음을 가득 담아 ‘파머’에 ‘대디’를 붙여 정했다는 ‘파머대디’는 이름에서 연상되듯이 진정성, 최선, 나눔을 최우선 가치로 두고 있다. 파머대디의 이정호 대표가 생칡즙을 통해 거둔 억대 매출 이야기는 익히 잘 알려져 있다. 그의 성공에는 그만의 남다른 통찰과 감각이 녹아있다. 그 노하우는 귀농을 결심하기 전 젊은 시절에 경험했던 다양한 직업에서 우러나온 것이었다.
이정호 대표는 IMF 당시 대학에 진학하는 대신 미사리 카페촌에서 서빙을 하며 사회에 첫 발을 내디뎠다. 그 후로 동대문시장에서 장사도 해보고 규모가 큰 식당의 매니저를 맡으면서 자연스럽게 장사 수완을 익히게 되었다.
“2009년부터 장사를 시작했습니다. 강남 역삼동에서 성황리에 한정식집도 운영했고, 천호동에서 작은 식당도 운영했었죠. 1년 매출이 10억일 정도로 가게가 엄청 잘 되었습니다. 그런데 음식점을 운영하다보니 쉬는 날도 없고, 사람 간의 관계에서도 지치게 되었죠. 당시 친구들이 한창 결혼할 때였는데 결혼식에 한 번을 못 갔으니까요. 그 삶에 지쳐서 귀농을 결심했습니다. 때마침 아버지와 친척분들이 홍천에 땅을 매입하셨고 제가 그 땅에 임대료를 내고 농사를 지으면서 귀농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첫 해에는 30만 평의 농장을 관리하면서 땅을 익히고, 두 해째부터 농업기술센터와 기술원을 다니면서 귀농 교육을 받았다. 하지만 막연하게 도전한 귀농은 만만치 않았다. “농장이라고는 하지만 밭이 다 구릉지라서 심을 게 없었습니다. 일단 굴착기로 땅을 파서 무작정 호박을 심었습니다. 심기만 하고 ‘판매’에 대한 생각이 없어서 호박을 수확한 다음에 곤란해지고 말았죠. 교육만 들었을 때는 농사만 지으면 농협에서 그냥 사고 팔 수 있는 줄 알았거든요. 그런데 그게 아니더라고요.”
첫 호박 농사는 매출이 형편없었다. 수확을 했는데 팔 수가 없었던 것이다. 팔지 못한 호박은 보관이 여의치 않아 반은 버리고 반은 건강원에서 즙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만든 호박즙을 서울에 있는 지인들에게 선물했다. 그러던 중에 기회는 예상치 못한 곳에서 찾아왔다.
“서울에 있는 지인들이 즙을 먹어보더니 주문을 하기 시작한 겁니다. 그걸 보고, 어, 이건가 싶었습니다. 밭을 개간하다 나온 칡을 즙으로 내려 같이 보냈는데 주문하고 싶다며 돈을 보내주었습니다. 그때 제대로 즙을 만들어 판매해야겠다고 생각했죠.”
이정호 대표는 그 길로 용하다는 칡즙 만드는 건강원을 찾아가서 착즙 기계 다루는 법을 배웠다. 오랫동안 식당을 하며 익혔던 음식에 대한 감이 착즙기술을 배우는데 도움이 많이 되었다. 그렇게 처음에는 기계 한 대를 두고 즙 판매를 시작했다. 직접 짠 진한 즙은 농축액으로 만든 즙과는 분명한 차이가 있었고 첫 해 매출은 2억 원이었다. 착즙 기계를 한 대 더 늘려서 현재 연매출은 3억 원 정도 나오고 있다.
(주)파머대디 내부 기계

온라인으로 마케팅을 하면
먹고 사는 데는
지장이 없을 것 같다는
판단이 섰죠

온라인마케팅의 성공과
뜻밖에 닥친 인생의 위기

(주)파머대디
귀농을 결심하고 홍천으로 내려와 새로운 도전을 시작하면서 청년 농부가 된 이정호 대표는 고민을 거듭했다. 농촌에서 청년의 강점을 살릴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고민하던 끝에 찾은 답은 온라인을 통한 마케팅과 유통이었다.
“이 산 속에서 내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를 고민하다 이곳 홍천과 관련된 상품을 찾는 소비자들을 찾아봐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다 온라인으로 마케팅을 하면 먹고 사는 데는 지장이 없을 것 같다는 판단이 섰죠.”
당시 대형 포털사이트에서는 쇼핑몰 플랫폼 개설이 한창이었다. 이정호 대표는 망설임없이 해당 포털사이트에서 진행하는 쇼핑몰 아카데미 1기생에 도전했다. 그렇게 쇼핑몰 관련 플랫폼 교육을 몇 주간 받고나서 포털사이트의 도움을 받아 온라인 홍보를 시작했다. 1기생이었기 때문에 사이트 메인에도 자주 홍보가 되었다. 당시에는 산지직송 플랫폼은 없었고, 플랫폼 서비스 자체도 초기라 경쟁자가 없었던 덕분인지 파머대디의 칡즙과 양배추즙은 어렵지 않게 쇼핑몰 플랫폼 상품 1위를 차지했다.
이정호 대표는 지금도 블로그와 온라인 쇼핑몰에서 제품을 판매하고 있다. 오프라인 판매처에도 제품을 들여놓기는 하지만 판매 비중이 적어서 주된 판매처는 단연 온라인이다. 그렇게 과채즙을 판매하며 귀농 6년차에 들어서니 어떤 작물에 도전하더라도 걱정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비트 농사를 지어서 수확량이 많아도 부담이 없다. 비트즙을 만들어 재고를 해결하면 된다. 호박을 많이 심어도 상관없다. 호박은 수확 즉시 냉각해서 보관하면 1년 내내 즙을 짤 수 있다. 그렇게 짠 호박즙은 진하기도 진하고 맛도 좋다.
언뜻 성공의 연속인 것만 같은 그의 귀농 생활에 위기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작년 초 이정호 대표의 첫째 아이에게서 자폐 증상을 발견했다. 치료가 시급했다. 이정호 대표는 서둘러 집을 정리하고 작년 내내 아내와 함께 아이 치료에 집중했다. 다행히 아이는 고기능성 자폐로 적절한 시기에 조기개입을 한 덕분에 예후가 좋은 상황이다. 이정호 대표는 올 1월부터 농장을 재정비하고 아내와 함께 아이들을 돌보기 위해 남양주와 홍천을 오가는 생활을 이어가는 중이다. 그리고 매출의 2%는 발달장애 관련 기관에 기부하고 있다.
(주)파머대디 내부 기계

자연이 좋다는
이유로 귀농하는 것은
귀농하는 이유의
일부분일 뿐이고 결국 귀농은
먹고살려고 하는 것

청년 농부들의
도전을 기대한다

(주)파머대디 작업
이정호 대표는 자연이 좋다는 이유로 귀농하는 것은 귀농하는 이유의 일부분일 뿐이고 결국 귀농은 먹고살려고 하는 것이라는 말을 강조했다. 때문에 귀농을 계획하고 있는 예비 청년농부들에게 경험에서 우러난 구체적인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청년들이 설 자리가 적은 농촌에서 귀농한 젊은 사람들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것은 아무래도 온라인 진출이라고 생각됩니다. 농촌에서 청년이 자생할 수 있는 힘을 기르려면 도시에 있을 때부터 온라인 플랫폼에 관련된 양질의 교육을 많이 받아서 충분하게 배우고 연습하는 것을 추천하고 싶습니다. 도매시장 같은 곳에서 물건을 사다가 팔아보면서 시장 감각을 익히는 거죠. 그렇게 시장 감각을 익히면 귀농해서 무얼 해야겠다는 것이 캐치가 됩니다. 그걸 익히고 오지 않고 와서 ‘뭘 할까?’ 하게 되면 시장에 대한 감각이 없기 때문에 실패할 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성공적인 귀농귀촌 방법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면 농사와 장사에 대한 감각을 기르기를 조언하는 이정호 대표는 귀농생활을 시작했다면 아주 소규모라고 해도 가공 분야로 도전하기를 추천했다. 예를 들면 즉석판매제조가공업을 해서 귀농 후 온라인 판매를 시작해보는 식이다. 즉석판매제조가공업은 판매자가 식품을 즉석에서 가공하거나 제조하고 가공 업소 내에서 직접 최종 소비자에게 파는 영업 방법이다.
“식품제조가공업은 신경 쓸 것이 많고 까다롭지만, 상대적으로 즉석판매제조가공업은 조금 덜 까다롭습니다. 유통만 알면 온라인으로 판매하면서 직거래만 하면 됩니다. 이렇게 하면 내 농산물에 대한 손실이 전혀 없다는 큰 장점이 생기죠. 작물도 가성비와 효율성을 생각하며 내가 혼자서도 매출을 크게 낼 수 있는 작물을 재배하고 그 판매와 유통을 고민해야 합니다.” 끊임없는 도전을 통해 억대 매출을 창출한 청년 농부 이정호 대표에 이어 또 다른 청년 농부의 도전이 새로운 성공기를 만들어내는 그날을 고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