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만의 장기로
농업이라는 블루오션에
뛰어들다

남산골농원 박길영 대표

글 ㅣ 김희정사진 ㅣ 황성규
남산골농원 박길영 대표가 배 농사에 뛰어들게 된 것은 남다른 사연이 있다.
평생 전기건설업에 종사하다 은퇴한 뒤 예전에 사 놓았던 땅으로 농사에 도전했다.
원래는 되팔기 위해 도로도 연결하고 계단식 밭을 평평하게 만들어 놓았었지만,
이 지역에서 배 농사를 많이 짓는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좋은 밭이 되었다.
아예 집을 밭 앞에 경량 목조주택으로 지으며 매일 배밭을 일군지 11년,
그의 배는 맛있기로 유명한 배들은 전부 모인다는 품평회에서도 우수상을 받을 정도로 소문이 자자해졌다.

국산 품종을 심고
고난의 시기를 겪다

신고배가 주류를 이루는 배 농사 현장에서 처음부터 국산 품종으로 농사를 시작한 박길영 대표의 선택은 눈길을 끈다. 처음으로 심었던 품종은 익산 농업기술센터에서 추천 받은 만풍과 화산이다. 묘목을 포트에서 키운 뒤 4~6m 거리를 두고 심어 밀식재배를 피하는 등 공을 들였지만, 토양 관리 미숙으로 1/4가량의 나무들을 잃는 실패를 겪기도 했다. 여기에 다시 심을 품종을 알아보다 재차 심게 된 것이 바로 슈퍼골드다. 이번에는 묘목을 심고, 전기건설업에 종사했던 공학도의 실력으로 자동으로 물을 주고 냉해를 방지하는 전기 설비를 갖추는 등의 노력을 했지만 신고배에 익숙한 시장에서 그의 배는 유통이 쉽지 않았다. 아예 다 포기하고 배나무에 신고배를 접붙여버리던 시점에 동아줄이 내려왔다.
남산골농원 박길영 대표
“배농가들이 모여있는 ‘배사랑방’이라는 밴드가 있는데, 거기에 아내가 글을 올렸어요. 품종을 추천해줬으면 유통도 할 수 있게 만들어줘야지 이렇게 방치를 하냐고, 남편이 나무들에 신고배를 다 접붙여버렸다고 말이죠. 그렇게 글을 올리니 회원 중 한 분이 국산 품종을 포기하지 말아달라며 청과 회사와 연결을 해주셨어요. 덕분에 한층 판로가 트였습니다.”
신고배를 접붙였던 것도 다 베어내고 그 자리에 다시 슈퍼골드를 접붙이는 것으로 마무리가 되었다. 그때가 어언 몇 년 전, 지금 남산골농원은 배 농사를 짓는 사람들이 공부를 위해 들렀다 가는 선도 농가로 자리 잡았다. 대부분의 농가에서 스마트팜을 적용하려고 할 때 관련 업체에 맡기고 있다. 반면 스스로 전기 설비를 설계하고 수리도 직접 하는 박길영 대표의 농장은 노지 스마트팜에 가깝기 때문에 따라 하고 싶은 농가들이 적지 않다.
“스마트팜까지 갔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노지에 물을 주고 결로를 방지하는 시설 등을 전기설비를 통해서 해결하는 것만 해도 상당히 편해지긴 합니다. 하지만 스스로 하려면 전기설비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기 때문에 쉽게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에요. 특히 고장이 났을 때 스스로 고칠 수 있는 역량이 없다면 업체와 스마트팜 계약을 할 때 유지보수를 함께 맡기는 게 훨씬 낫지요. 제 경우에는 전기설비에 대한 지식이 남들이 쉽게 따라 할 수 없는 강점이 되었죠. 이렇게 새롭게 농업에 뛰어들 때 자신만의 강점을 어떻게 발휘할지 생각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항상 배우는 자세로
새로운 정보 받아들여야

남산골농원
박길영 대표가 농업에 종사하면서 참 잘했다고 생각하는 결정 중 하나가 농업마이스터대학에 다닌 것이다. 본디 아내인 김영자 대표가 먼저 다니고 있었는데, 남편인 박길영 대표에게 추천한 것이다. 그전까지는 배우지 않아도 내가 알아서 할 수 있다는 마인드를 가지고 있었지만, 진학을 통해 새로운 관점으로 농사를 볼 수 있게 되면서 한층 시야가 넓어졌다. 원예 기초 개론을 배우는 것부터 시작해 농업이 종합과학이라는 것을 실감하게 된 것도 농업마이스터대학에서였다.
“농업을 하는 데 있어서 생물도, 화학도, 기계도 골고루 알아야 합니다. 하다못해 과실에 피해를 끼치는 곤충을 잡기 위해서 농약을 쓸 때도 지식이 필요해요. 곤충은 한살이가 빠르기 때문에 농약에 적응하는 속도도 빠르거든요. 약제가 곤충의 입을 통해 소화관 내에 들어가 중독작용을 일으키는지, 아니면 호흡을 어렵게 해서 사망하게 하는지 등은 농약마다 원리가 다릅니다. 그 차이점을 알고 목적에 따라 약을 써야 하는데, 30년을 농사를 지어도 귀를 막으면 농약을 어떻게 골라서 써야 하는지 모를 수 있어요.”
농업마이스터대학에서 만들 수 있는 인적 네트워크도 박길영 대표가 진학을 추천하는 이유 중 하나다. 농업마이스터대학까지 오는 사람들은 대부분 농업에 열정을 가지고, 본인이 가지지 못한 다른 장점이 있는 경우가 많아 여러모로 자극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요즘처럼 농업 환경의 변화가 빠른 때에는 기존의 관성에 의지해 농사를 짓는다 해도 성공을 거두기가 쉽지 않아 더욱 그렇다. 그런 점에서 젊은 사람들이 농업으로 유입되는 것을 권장하고 싶다고 박길영 대표는 말한다.
“농업기술센터에서 농장 실사를 통해 더 나은 재배 기술을 알려주려고 해도, 현장에서 농사를 짓지도 않는 사람들이 농사에 관여한다고 생각하는 경우도 있어요. 하지만 환경이나 소비시장이 계속 변화하는 상황에서는 농업기술센터의 정보를 받아들여 변화를 시도해보는 것이 생존에 더 유리합니다. 저는 이공계를 전공한 사람들이 농업에 종사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인데, 우선 자신의 전공을 농사를 통해 펼칠 수 있다는 것이 큰 경쟁력이 되거든요. 또 새로운 재배 기술을 배우고 적용하는 데에도 이공계적 지식이 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남산골농원 박길영 대표

이렇게 새롭게 농업에 뛰어들 때
자신만의 강점을 어떻게 발휘할지
생각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과일부터 포장까지,
소비자와 눈높이를 맞춘다

남산골농원의 판매 방식은 간단하다. 일단 농협과 과수 수출 회사에 일정 물량을 납품한 뒤, 남은 배들은 1:1로 판매하는 방식이다. 인터넷을 통해 마케팅을 할 수 있지 않냐는 말도 듣곤 하지만 그쪽으로는 계획이 없다. 아는 사람들끼리는 이미 유명한 배 맛 덕분에 오히려 1:1 판매 물량이 부족한 경우도 있다. 요새는 화산과 슈퍼골드를 주력으로 판매하고 있는데, 그중 슈퍼골드는 특유의 맛에 아삭아삭한 식감까지 갖추어 소비자들에게도 인기가 좋다. 제대로 저장만 한다면 사계절 내내 팔아도 맛이 떨어지지 않는 품종이 될 거라는 자신감도 있다. 신고배처럼 추석에 출하하기 위해 성장촉진제를 사용하거나 하는 일도 없어 배 본연의 맛을 고스란히 살린 생과만 파는 것이 큰 자부심이다.
남산골농원 박길영 대표
“1:1 판매를 할 때, 본인이 먹을 배를 사러 오는 사람은 상처난 배라도 상관없으니 물량이 있으면 달라고 하는 경우도 있어요. 어쨌거나 맛은 본인들이 먹어봐서 이미 알고 있고, 상처난 배는 껍질을 깎으면 보이지도 않으니까요.”
남산골농원의 배를 선물용으로 구입하는 고객들을 위해 포장 상자의 디자인에도 공을 들였다. 배에 대한 자랑으로 박스 한가득 채울 수도 있었지만, 핵심 내용만을 담고 글씨도 간결한 디자인을 써서 한층 고급스러운 이미지를 높였다. 과일을 선물로 받았을 때 시각적인 이미지가 얼마나 중요하게 다가오는지 스스로도 경험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과일 포장을 열었을 때 모양이 예쁜 과일이 가득 차 있으면 만족스러운 건 누구나 같아요. 보기도 좋은 떡이 맛도 있다는 속담처럼 배맛도 중요하지만 포장 등 디자인에도 신경을 쓰고 있습니다. 저희 배를 선물로 받으시는 소비자 분들에 대한 예의이기도 하고요.”
앞으로 박길영 대표의 바람은 소박하다. 갑작스러운 기후변화로 인해 농업이 나날이 힘들어지고 있지만, 할 수 있을 때까지 배밭을 가꾸며 마음 편히 살아가는 것이다. 몸이 약했던 아내도 농사를 하면서 많이 건강이 좋아진 터라 더욱 걱정이 없다. 맛있는 배를 자부심으로 가꿔나가는 박길영 대표의 환한 표정이 오래도록 지속되길 바란다.
남산골농원 박길영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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