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에서
내게 맞는 삶을 살다
프로젝트그룹 짓다
조준희·박정숙·김지수 대표
글 ㅣ 김주희 사진 ㅣ 한상훈
프로젝트그룹 짓다는 조준희, 박정숙, 김지수 대표가 제주에서 활동하는 청년 공동체다.
이들은 다른 청년들과 비슷하게 성장, 발전이라는 사회적 요구에 따라 바쁘게 살아왔다.
하지만 원하는 삶과는 달랐다.
그렇게 제주로 거처를 옮겼고, 그곳에서 자신들이 꿈꿔온 일들을 자연스럽게 해나가고 있다.
재미있는 삶을 원했던 세 청년
중국과 제주에서 대안학교 교사로 일하던 조준희 대표와 서울에서 문화예술 기획자로 일하던 박정숙 대표는 대도시가 아닌 로컬에서도 잘 살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싶었다. 고민만 할 게 아니라 자신들이 그 사례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조용한 마을인 구좌읍 평대리에 자리를 잡았다. 김지수 대표는 중국에서 대학을 나와 대기업에 취업했지만 경쟁 구도 속에서 살아가는 게 버거웠다. 퇴사 후 인연이 있던 조준희, 박정숙 대표가 있는 제주로 건너왔다.
“일단 제주도에서는 그냥 재미있게 살고 싶었어요. 뻔한 일자리, 끊임없이 돌아가는 공장 시스템이 싫었어요. 돈을 많이 벌지 않아도 좋으니 재미있게 살자는 생각이었죠. 제주 바닷가에서 놀고, 오름도 올라가면서 자유를 맘껏 느꼈습니다. 그런데 너무 당연하게도 사람이 살기 위해선 먹거리가 필요하잖아요. 자연스럽게 농업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재미있게 사는 것도 일단 먹거리가 필요하다며 조준희 대표가 껄껄 웃는다. 그렇게 시작한 게 감자농사다. 박정숙 대표와 결혼하면서 구입한 1,322㎡ 땅에서 감자를 심기 시작했다. 감자를 수확하면 다양하게 요리해 먹을 수 있겠다는 단순한 생각이었다.
“감자농사는 자급자족 개념이었어요. 그런데 농사를 짓는 중에 태풍이 9번이나 온 거예요. 농사를 다 망쳤죠. 거기다가 이 땅에 아무도 관심이 없었던 이유가 있었어요. 비가 오면 물이 고스란히 밭으로 흘러들어왔죠. 일명 ‘물 차는 밭’이라고 할까요. 그런데 다행히 마을에서 귀인을 만났답니다.”
작은 동네에 자리 잡은 청년들을 무심한 척 유심히 살펴보던 사람이 있었다. 평대리에서 오랫동안 농사를 지어온 주민 한 명이 자신의 땅을 내어줄 테니 봄에는 감자를, 가을엔 당근을 심어보라고 권유한 것이다. 무려 5,289㎡나 되는 밭이었다.
“저희는 그분을 귀인이자 스승님이라고 부르는데요. 하필 그분이 그 힘들다는 유기농 농부셨어요. 농사를 제대로 알지 못하던 저희는 스승님께 배워 열심히 유기농 농사를 짓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그해 감자농사가 정말 대박이 났어요. 주위 친구들에게 ‘감자 사먹는 감자농부’라며 놀림을 받았었는데, 갑자기 유기농 감자 농부로 엄청난 승급을 한 거죠.”
농업·농촌에서 즐거움을 찾다
감자를 캐는 것도 일이었다. 다 함께 재미있게 하는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다가 ‘팜터짐 페스티벌’이라는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누구든 감자밭에 와서 감자를 캐고 감자 일부를 가져가도록 하는 이벤트였다. 모집한지 3일 만에 전국에서 30명이 모여들었다.
“도시 사람들은 농사를 경험하기가 어렵잖아요. 감자를 캐는 게 힘들지만 흙을 만지고 땀을 흘리는 기분이 좋다고 하시더라고요. 감자밭에 있는 동안은 현실에서 힘든 일을 잊게 된다고도 하고요. 농사로 사람들이 모이고 소통하고 즐겁게 일할 수 있다는 걸 깨달은 일이었어요.”
수확한 유기농 감자는 스마트스토어에서 판매 1위를 차지할 정도로 인기가 많았다. 단순히 감자만 판매한 것이 아니라 어떻게 감자를 심고 기르고 수확했는지 스토리를 담은 덕분이었다. 하지만 농촌마을에서 자급자족하기엔 부족했다. 조준희 대표는 일당을 받고 마을에 돌담을 쌓는 일을 했다. 하다 보니 목수 일에 재능이 있고 즐거워한다는 걸 깨달았다.
“제주에서는 돌담 쌓는 일을 ‘돌챙이’이라고 해요. 무거운 돌을 들고 담을 쌓고 있으니 처음엔 지역 주민 분들이 슬쩍 보시다가 어느새 한두 마디씩 말을 걸어주셨어요. 사실 처음엔 로망을 갖고 농촌생활을 잠깐 해보려는 청년들인가 보다 하셨던 것 같아요. 그런데 오래 정착하고 있으니 조금씩 마음을 열어주신 게 아닌가 싶어요.”
박정숙 대표는 농촌생활을 하며 문화·예술, 인문학에 대한 갈증이 생겼다. 대도시가 아닌 곳에선 사실상 특별한 문화생활을 하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칸트의 식탁’이다. 자유롭게 청년들이 모여 매 모임마다 4차 산업혁명, 비건, 환경 등 다양한 주제로 대화를 나눈다.
“세계적인 철학자 칸트는 자신이 살고 있는 작은 마을을 한 번도 벗어난 적이 없었다고 해요. 우리는 칸트처럼 될 순 없지만, 이 작은 마을에서 다양한 인문학적 생각을 나눌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칸트의 식탁은 코로나 시대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관심 속에 6회 진행되었다. 모임에서 나눈 대화를 정리해 독립출판을 하기도 했다. 이와 함께 한 달에 한 번 각자 집에 있는 반찬들을 가져와 바닷가에서 식사를 하는 ‘월간도시락’도 진행하고 있다.
미래 위해 농업 문턱 낮춰야
작은 마을에서 생활하며 관심 있는 일, 즐거운 일,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일을 하나씩 하다 보니 많은 변화들이 생겼다. 지난해엔 첫 농사를 망쳤던 주범인 ‘물 차는 밭’에 돌과 흙 등을 채우고, 직접 목재로 건물을 지어 ‘소농로드’를 열었다. 이곳에서는 직접 농사지은 농산물로 당근주스, 감자아이스크림, 비건커리 등을 판매하고 있다. ‘당근피크닉’이라는 당근 캐기 체험프로그램도 운영 중이다.
“청년들이 모이는 데 구심점 역할을 할 수 있는 공간이 생긴 것 같아 기쁩니다. 얼마 전엔 청년농업인들과 함께 비건커리 밀키트도 만들었어요. 양파와 감자 등을 듬뿍 갈아 만든 커리에 청년농업인들이 재배한 월동무, 구좌당근, 겨울감자 등 총 7가지 제철채소를 올려 완성해요.”
밀키트 포장지, 레시피 엽서 등 모든 디자인은 김지수 대표가 담당하고 있다. 디자인이 필요한 모든 것엔 김지수 대표의 손길이 담겨있다. 매번 경쟁해야 했던 직장생활과는 다르게 지금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즐거움을 찾고 있다.
“몇 해 전부터 반농반X라는 삶의 태도가 주목 받고 있는데요. 처음엔 반농반X라는 개념도 몰랐지만, 지금은 반농반X가 저희를 가장 잘 표현하는 말이 아닌가 싶어요. 저희뿐만 아니라 많은 청년들이 돈은 덜 벌더라도 농사를 작게 지으며 다른 하고 싶은 일을 하길 원해요.”
이러한 이야기들을 도 농촌진흥기관 관계자들에게 전하는 자리도 있었다. 청년들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무엇을 원하는지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얘기할 수 있었다.
“저희 이야기를 듣고 많이 놀라시더라고요. 반농반X로 농업을 새롭게 이해하신 것 같아요. 물론 변하긴 쉽지 않겠지만, 농업 미래를 고려했을 때 농업 문턱을 낮춰야 해요. 농업을 소득으로만 연계하면 청년들은 재미없고 힘들다고 생각합니다. 청년들을 농촌으로 들어오게 하려면 농경과 관련된 문화를 키우는 등 또 다른 방식이 필요합니다.”
반농이라고 하면 문턱을 높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세 사람은 식물 하나만 잘 기르는 것도, 건강하게 키운 농산물을 사먹는 것도 이미 반농이라고 말한다.
“저희 캐치프레이즈가 ‘누구에게나 농부의 기질이 있습니다’예요. 농업에 대한 건강한 관심과 생각이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경제적 원리가 아닌 마음 한편에 농업에 대한 생각이 있었으면 해요. 내게 맞는 삶이 무엇인지 고민해본다면 반농반X가 충분히 가능할 거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