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가위만 같아라

글 ㅣ 고영 음식문화연구자

필자 소개
대학에서 고전문학을 공부했다.
고전문학 작품 번역과 해제 및 음식문헌 읽기와 정리에도 힘쓰고 있다.
현재 경향신문 기명 칼럼 <고영의 문헌 속의 '밥상’>을 연재하고 있다.
단정한 저 한가위 달(端正中秋月)
곱고도 곱게 하늘에 걸렸구나(姸姸掛碧天)
깨끗한 달빛은 똑같지, 천 리 밖에서도(淸光千里共)
차가운 달그림자는 둥글 대로 다 둥글었고(寒影十分圓)
_이덕무(李德懋, 1741~1793), <한가위 달[中秋月]>에서
깨끗하고 곱고, 어느 한구석 이지러진 데 없이 둥근 달과 함께 한가위는 오리라. 이덕무의 시구처럼 음력 8월 보름의 달빛은 어디서 바라보든, 모두에게, 똑같이 소담하다. 추석·중추절·한가위 등 이름도 많은 이날은 아득한 예부터 좋은 날이었다. 조선 후기 지식인들은 이날이 신라 때부터 이어졌다고 여겼다. 7세기에 편찬된 중국 역사서 <수서(隋書)>에는 신라 사람들의 8월 보름 잔치 기록이 남아 있다. 9세기 일본 승려 엔닌(圓仁)은 그가 쓴 <입당구법순례행기(入唐求法巡禮行記)>에 산둥 지역에 사는 신라 사람들이 즐긴 8월 보름 잔치 기록을 남겼다. 내력이 이렇게 깊다. 한반도의 음력 보름 즈음은 어떤 때인가? ‘5월 농부 8월 신선’이라는 말도 있지만, 이즈음은 세벌 김매기까지 무사히 마친 뒤다. 곡식의 성숙을 바라보며 농민이 잠깐 쉴 수 있는 때다. 옛 한반도에서 본격적인 벼 수확, 양식의 절반인 장을 담그는 콩 갈무리, 면화 수확과 면실유 생산 등이 음력 9월 이후였다. 농민은 8월 보름을 즈음해 잠시 쉬었다가 추수와 김장과 한 해 농업 결산에 이르기까지 전력으로 질주한다.
한가위는 추수감사절(Thanksgiving Day)이 아니다. 추수감사절은 10월 또는 11월에 돌아오는 북아메리카 수확기의 명절이다. 한가위는 한반도의 자연과 농업의 주기가 허락한 농촌 농민의휴가(vacation)에서 비롯한 명절이다. 1년의 절반을 넘기고 이제 수확이 눈앞이다, 감사합니다, 우리 쉬었다가 힘내자 - 한가위는 그렇게 이어왔다. 마음도 넉넉했다.
나무꾼 돌아오니
머루 다래 산과(山果)로다
뒷동산 밤 대추는 아이들 세상이라
볼 때마다 흐뭇한 정학유(丁學游, 1786~1855)의 <농가월령가(農家月令歌)>, ‘8월령’의 한 대목이다. 나무꾼도 품속을 뒤져 먹을거리를 꺼낸다. 아이들에게도 밤과 대추 한 알씩은 돌아가는 즈음에 한가위가 돌아온다. 사람들은 올벼라도 간추리고 술도 좀 빚어, 소박한 차례를 지낸다. 그러고는 서로를 위로하고 모두 함께 잘 쉬고 잘 논다. <농가월령가>, ‘8월령’의 한 대목이 또한 이렇다.
북어쾌1) 젓조기를
추석 명일(名日) 쇠어보세
신도주(新稻酒)2) 오려(올벼)송편
박나물 토란국을
선산에 제물 하고
이웃집 나눠 먹세.
비슷한 시기에 김형수(金逈洙)가 남긴 <농가십이월속시(農家十二月俗詩)>의 한가위도 마찬가지이다.
1) 한 쾌는 북어 스무 마리.
2) 올벼로 빚은 술.
포를 뜬 조기와 북어(鮑石首魚乾北魚)
추석 좋은 날에 쓸 제물이라(秋夕佳節用當牲)
오려송편과 햅수수로 빚은 술(早稻葉餑新秫酒)
박나물 볶고 토란국 끓여(甛匏煿菜蹲鴟羹)
정갈히 차려 묘소에 차례 올리고(潔陳玆品祭先壟)
이웃과 나누며 기쁜 정 함께하네(分餕及隣共歡情)
좋은 마음이 내 이웃을 향한다. 음식은 형편껏 마련하면 그만이다. 이 ‘형편껏’에는 지역이 깃들어 있었다. 예컨대 북어와 조기가 중부 내륙의 만만한 한가위 수산물이라면, 남동해안에서는 고래·상어·전갱이·민어·상어·가자미·문어가 못잖았다. 서남해안에서는 홍어·꼬막·낙지가 못잖았다. 매생이는 당연히 전거리로 쓰였다. 바닷가의 미역·톳·모자반·우무는 내륙의 박나물이나 토란과 한가지다. 조기뿐인가. 문어·전복·대구·오징어 모두 포를 해 썼다. 송이가 나는 데서는 송이가 있는 한가위 상차림이 당연했다. 강원 산간에서는 메밀과 감자를 썼다. 얻을 수 있는 먹을거리 안에서 최선을 다했다. 떡도 그렇다. 반드시 송편만이 추석을 대표하지 않는다. 송편‘도’ 있지만 인절미·절편·부편·경단·밤단자·무시루떡 등등 지역마다, 집집마다 내 고향떡, 우리 집 떡이 따로 있었다.
낡은 교과서와 대중매체는 한가위를 제대로 그린 적이 없다. 호화로운 차례, 과시를 위한 상차림, 억지로 마련하는 선물 모두 이날과 어울리지 않는다. 이날은 너와 내가 서로 토닥이고, 공동체가 서로를 토닥이며 이어온 날이다. 그래서 이날은 그 누구도 일방적으로 심부름꾼이 되어서는 안 된다. 떡 한 조각도 서로 도와 마련할 뿐이다. 누구 한 사람을 심부름꾼 만들자고 남녀노소, 상하귀천 따지는 날은 잔칫날일 수 없다. 2백 년 전 정학유도 한가위를 맞아 시댁에 쉬러 가는 며느리에게 이런 말을 전했다.
“여름 지낸 지친 얼굴 소복(蘇復)이 되었느냐
중추야(仲秋夜) 밝은 달에 지기(志氣) 펴고 놀고 오소! (마음껏 놀고 오소!)”
_정학유, <농가월령가>, ‘팔월령’에서
단정한 달 아래, 모두의 평안을 빈다. 모두에게 회복의 시간이 돌아가기를 빈다. 그야말로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기를 바란다.